환혼전 - 원혼을 부르는 책
김영미 지음 / 산수야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630여 페이지. 작가는 무슨 이야기를 쓰고 싶었을까. 그 이야기가 얼마나 많았기에 이렇게 많은 페이지를 할애했을까. 원혼을 부르는 책이라는 환혼전은 또 대체 무슨 뜻일까. 읽기 전부터 궁금증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그런 한 권의 책이다.


양반집 규슈였던 여리는 아버지에 의해 궁녀로 궐에 들어간다. 궐이 어떤 곳이던가. 열려 있지만 아무나 들어갈 수 없고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 힘든 그런 폐쇄적인 공간이 아니던가. 추리소설에서 쓰이는 클로즈드 서클은 이런 궐에 아주 잘 어울리는 배경이 된다. 거기다가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은 입이 무겁다. 무슨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쉽게 떠벌일 사람들이 아니다. 자기네들끼리는 이야기를 할지언정 외부인에게는 더욱 닫힌 모습을 보인다. 그곳이 바로 궐이다. 



또래 무리에 섞여본 경험이 적다 보니 그들 사이의 견제나 신경전 같은 일엔 백지다 싶을 만큼 무지했던 탓이었다. (25p)


대비전 소속으로 마마에게 불경을 읽어주는 역할을 맡은 여리다. 그녀는 자신을 질투하는 강생이에게 속아서 폐서고에 들렀다가 세자와 만나게 되고 그에게 낚이어 내기를 하게 된다. 일단 궁녀와 세자의 신분 차이가 눈에 뜨인다. 궐의 사람들은 두 종류로 나뉠 수 있다. 대접을 받는 사람과 그들을 돌보는 사람. 엄연히 나누어진 계급이다. 그 둘의 간격은 크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매우 작기도 하다. 가령 궁녀가 임금의 눈에 들어 승은을 입는 경우 그 궁녀는 비록 첩이긴 하지만 대접을 받는 계급으로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 궁녀가 세자와 마주하고 내기를 한다라. 있을 수 없는 설정을 조건으로 하여 이야기를 이끌어 갈 수 있는 방향을 정리해둔 것이다. 그들은 귀신의 존재와 행방에 관해서 내기를 한다. 여리가 찾아야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때론 껄끄러운 진실보다 불가해한 거짓이 더 설득력을 얻곤 한다. 그것이 참이 아님을 알면서도 감춰둔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났을 때 겪게 될 곤란과 불편을 견딜 수가 없어 외면해버리는 것이다. (67p)


한편 궐에서는 환혼전에 등장했던 괴물인 천구가 방울 소리와 함께 나타나고 그 방울 소리로 인해서 대비는 신경증에 걸려 발작을 일으키게 된다. 대체 그녀는 왜 그리도 방울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일가. 천구라는 존재는 실재하는 동물일까 아니면 그 또한 귀신의 일종일까.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는 환혼전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 책이 실제로 저주를 불러 일으키는 것일까. 그 책을  쓴 사람은 누구일까. 무슨 의도로 그런 책을 쓴 것일까.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가치가 있다는 의미이고, 한동안 포기하다시피 했지만 누군가에게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그녀가 오랫동안 바라 마지않던 일이기도 했다. (261p)


작가의 말에 의하면 각 장의 말미에는 사료가 덧붙여 있다고 했다. 이야기가 끝난 다음에 조선왕조실록이라던지 하는 그 당시 존재했던 책의 이야기 부분이 그대로 실려있다. 그 책의 이야기들은 이 환혼전에 나온 에피소드와 매우 흡사한 점이 있다. 작가는 그런 자료들을 참고로 이야기들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사료들을 읽는 것이 더 재미나다. 책의 이야기는 분명 픽션이지만 실록이라던지 사료에 나온 이야기들은 그때 당시에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 아니던가. 그러니 실제와 혀구를 비교하는 재미도 함께주어지는 것이다.


귀신이라는 존재가 실제로 있을까. 성경에서도 귀신이 있다고 악한 영은 존재한다고 밝히고 있다. 성경 상에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인간이 그 영들을 이겨낼 수 있다고 한다. 우리의 실생활에서는 어떨까. 지금 당신은 어떠한가. 귀신은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당신에게 영향을 미치는가 미치지 않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국어교사
유디트 타슐러 지음, 홍순란 옮김, 임홍배 감수 / 창심소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랫동안 연인 관계로 같이 살았던 사람이 연인의 성공을 눈 앞에 두고 사라진다. 이보다 더 슬픈 아니 기가 막힌 일이 어디 있을까. 마틸다와 크사버는 그렇게 헤어졌다. 아니 마틸다는 그렇게 남겨짐을 당했다. 일방적으로. 헌신적으로 유지했던 관계에서 난데없이 뒤통수를 맞고 발로 걷어 차임을 당한 것이다. 크사버는 아직 이름 없는 작가였고 자신은 교사였다. 모든 경제활동을 자신이 담당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것에 대한 불평이나 불만은 없었다. 크사버가 언젠가는 멋진 책을 쓰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날도 그렇게 일을 하고 장을 봐서 집으로 돌아왔다. 언제나처럼 반겨주던 연인은 없었다. 그의 자리가 비워져 있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마틸다라는 인간의 모든 것이 의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240p)


이제 1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들은 국어교사와 작가로 다시 만났다. 마틸다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아니 그 이전에 메일로 먼저 만났다. 일 때문이었다. 학교에 오게 된 작가와 그 프로젝트를 맡은 국어교사. 크사버는 메일로 반가움을 표시했지만 마틸다는 냉담했다. 그럴 수 밖에 없지 않은가. 16년 전에 그가 어떻게 집을 나갔는지를 알고 있는데 말이다. 나라도 당연히 그런 반응이었을 것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 취급하듯 그렇게 딱 실무적인 것만 일 적인 것만 얘기했을 것이다. 크사버의 반응이 너무 황당하기까지 하다. 저렇게 반가워하다니. 아니 그럼 그때는 왜 그렇게 한마디 말도 없이 쪽지도 없이 이유나 변명도 없이 집을 나간건데? 대체 뭔데? 



인생에는,떠나는 것과 남겨지는 것밖에 없어! (275p)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된 그들은 과거의 일을 회상한다. 그러면서 각기 자신의 이야기를 만든다. 그 이야기 속에서 독자들은 어렴풋이 과거의 일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며 각자가 숨긴 비밀을 알아가게 된다. 이야기 속에서 다시 이야기를 구성하는 형식이다. 이런 방식이 확연히 드러나는 독특한 방식은 아니지만 하나의 이야기를 번갈아 가면서 이야기를 하고 그것이 접점이 되는 순간 모든 것이 폭발한다는 면이 다른 액자식 구조의 소설과 다른 점이라 할 수 있겠다. 크사버는 마틸다의 이야기 속에서 자신이 감추고 있던 비밀을 더이상 숨길 수 없음을 깨닫는다. 마틸다는 자신이 깨달은 사실을 소설 에 녹여냄으로 그가 어떤 해동을 했는지 자신에게 밝혀주길 원한다. 그렇게 그들의 인생은 다시 한번 일상을 되찾는가 했는데 엔딩은 또 한번 비틀렸다. 그렇게 멍하니 책장을 덮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화이트아웃
심포 유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 / 크로스로드 / 2021년 11월
평점 :
절판


<버티칼 리미트>나 [클라이머즈 하이] 같이 산을 소재로 한 영화나 책들은 깊은 감동을 준다. 또한 흥분되기도 한다. 익숙한 생활 환경에서 보이는 그런 곳이 아니다 보니 상상만으로도 짜릿해지는 것이다. 산이라는 곳은 밀실과도 같은 그런 조건을 제시해주며 아무나 함부로 접근 할 수 없는 그런 배경을 전제로 하고 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앞에 흰색 어둠이 펼쳐졌다. 화이트아웃이다. (30p)


이 이야기의 전체적인 내용은 띠지에 적힌 것처럼 제사한 시간 24시간 내에 백만 명의 인질을 잡고 50억엔의 돈을 요구하는 납치범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내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준 것은 책을 넘기자마자 시작되는 이야기였다. 도가시와 요시오카. 댐에서 근무하는 그들은 산에서 조난자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그냥 두면 그들은 분명 죽은 채로 발견될 텐데 그들을 찾아야만 하는 그런 사명감에 사로잡힌 것이다. 그렇다고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산악부였고 자신들이 충분히 훈련이 된 존재라고 생각했기에 그들을 구하러 간 것이다. 


나쁘지 않았다. 그들은 찾았으니. 하지만 산은 그것도 눈 덮인 산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마음을 바꿔버릴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들은 그렇게 산속에 갇히고 말았다. 둘이 아니 넷이 말이다. 그렇게 있다가는 오도가도 못하게 된다는 것을 알았던 그들은 한 사람에게 모든 기대를 한다. 그가 내려가서 구조대들을 보내기를 바란 것이다. 그렇게 선탹된 것이 바로 도가시였다. 그를 응원했다. 제발 빨리 내려와서 그들을 구출하기를 소망했다. 산이 그들의 편이 아니었듯이 도가시도 내편이 아니었나보다. 도가시는 화이트아웃을 만나게 되고 그렇게 늦은 구조 요청을 보내게 된다. 만약 그가 그렇게 한 행동이 어떤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 않았다면 그는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절대. 



뿌연 소용돌이에 시야가 흐려져 감사 통로 바닥마저 보이지 않았다. 눈과 짙은 안개에 휩싸였을 때 말고도 화이트아웃이 있다니. (212p)


그후로 시간이 흐른다. 요시오카의 약혼녀 지아키는 지금 그곳으로 향하고 있다. 자신의 약혼자가 있던 그 산. 그 산을 직접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곳을 찾았다. 그녀는 그날이 그날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만약 그들이 계획한 날이 그날이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녀도 그곳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인질극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다.


이야기를 읽는 동안 내내 '인디아나 존스'가 생각이 난다. 일당 백을 자처하는 주인공이 아니던가. 도가시도 마찬가지다. 납치범들 몰래 댐을 빠져 나간 그는 일 대 다수의 상황을 만들어서 그들에게 대항을 한다. 그들이 더이상의 만행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그들이 댐을 이용해서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수백만 명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그가 막는다. 물론 이야기이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라 생각되어진다. 그는 전문가가 아니다. 아니 댐에 대해서는 전문가다. 그것이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는 요리조리 피해다니면서 그들의 눈에서 빠져나와 댐을 열려는 것을 막고 그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방해도 이겨낸다. 눈으로 둘러 쌓인 산 속에서 맨몸으로 다니고 혼자서 불을 피워서 몸을 말리고 다시 또 눈 속으로 뛰어든다. 



무기는 없어도 침입자들보다 유리한 점이 적어도 하나는 있었다. 그들보다 댐 내부에 대해 더 잘 안다는 사실이었다. (165p)


그가 만약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이런 감동은 좀 덜할 수도 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이런 극한 상황에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기에 더욱 감동적이다. 화이트아웃은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자칫 한 발이라도 잘못 디디면 그야말로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이 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화이트아웃이다. 이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이 책이 나로 하여금 눈을 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푸른 고도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민경욱 옮김 / 서울문화사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오니가시마. 이 섬에 가고 싶어졌다. 동과 서로 나뉘었던 마을이 하나로 연합하고 거기다가 관광 산업의 부흥을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가 자리 잡아서 사람들의 핫스팟이 되어 버린 그 섬에 가고 싶어졌다. 루이루이씨가 있을까. 다스쿠도 있을까. 쇼와 나나는 결혼을 해서 섬에 완전히 자리 잡았을까. 궁금한 게 너무너무 많아져 버렸다. 모리사와 아키오라는 작가는 늘 그렇게 뒷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들어버린다.


그의 전작들을 죽 읽어왔을때도 그런 느낌은 계속되었다. 무지개곶의 찻집에서는 여전히 에쓰코씨가 맛있어져라 하면서 커피를 만들고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쓰가루 백년 식당에서는 계속 국수를 만드는지 하며 타마짱의 심부름센터는 아직도 여전히 운행을 하고 있는지 에밀리는 그 바닷가에 살고 있는지 스미레는 밴드생활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그의 작품 하나하나가 실제로 존재해서 그의 주인공들을 그곳에서 우리와 똑같이 살고 생활하고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아니, 현실적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이런 밝고 명랑하고 의지가 굳은 주인공들이 살아있을 것 같지는 않으니 말이다. 아니 그건 너무 비극적인 생각인지도 모른다. 충분히 작품에서 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서도 더 밝고 굳건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러니 판타지처럼 보이지만 판타지스럽지 않다는 것이 증명되는 것이다. 



그 사람들은 이 섬에서 몇 년 살고 다시 본토로 돌아가니까요. 좋은 의미에서 즐겁고 태평하게 지낼 수 있는 겁니다. (112p)


회사에서 자신이 맡아서 하던 일까지도 밀려나서 배를 타고도 한참을 들어와야 하는 그런 섬에 놓인 다스쿠. 처음에는 반항도 하고 거절도 해 봤지만 종내는 결국 이 배에 타고 있다. 멀미를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회사돈으로 여행을 한다고 말이다. 이 섬을 되살릴 프로젝트를 생각하기보다는 그저 단순히 며칠 동안 쉬고 돌아가서 사표를 내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이 사람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한 바퀴 돌면 다 어디선가 본듯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그런 작음 섬마을에서 그는 이 사람들의 분쟁에 휘말리고 헤어질 수 없는 연인들의 로미오와 줄리엣 상황을 해결하고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한마디로 남에서 우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 차이는 굉장하다.


언제까지나 잔잔하고 다 착한 사람만 있으면 안되니 극적인 순간에 오해의 불씨가 생기고 그것은 확 불을 당겨서 갑자기 큰 불을 일으킨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이 불을 존재하게끔 만들어 준 것이다. 그 불론 인해서 오히려 사람들은 더 자신들의 상황을 확인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 후에 오해는 당연히 풀려야겠지. 모두가 다 행복해지는 그런 결론이 작가의 특징이니 말이다. 그래서 더 그의 작품을 좋아한다.


몇 명쯤 친구라고 부를 만한 지인들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만한'이라는 말이 붙지 않으면 거짓말이 되어버리는 상대다. (250p)


출판사에서는 BTS의 노래를 홍보에 사용하기로 작정한 듯 보인다. 작가는 영리하게 그들의 노래를 이 작품 속에 슬며시 삽입했다. 그 노래의 가사가 주는 마력이 있으니 솔직히 잘 어울린다. 시류를 잘 반영한 케이스라고 보인다. 하지만 그 노래 없이도 내게는 충분히 만족할만한 작품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갇힌 지 벌써 2년. 이 책을 통해서 나는 절해고도의 섬을 다녀왔다. 그 속에서 그들과 같이 어울리고 악수 대신 교수를 하고 그들의 전쟁에 참여하고 그들의 축제에 참여했으니 말이다. 만끽했다. 이 책을 덮는 순간 벌써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된다. 오랜만에 맛보는 포만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지니아 - 전면개정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명확하게 알고 싶었다. 유지니아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작가기 이 글을 통해서 남긴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정확히 그리고 딱 맞게 수학 공식에 대입되어서 풀어낸 답 마냥 그렇게 나오길 원했다. 옮긴이의 말을 빌자면 그랬다. 퍼즐 하나하나가 다 제자리에 있는 것 같은데 어딘가 모르게 빡빡하고 잘 들어 맞지 않고 완성된 그림은 삐뚤빼뚤하다고 말이다. 그것이 답인 것 같다. 이 유지니아에 대한, 그리고 온다 리쿠라는 작가의 작품에 대한 답 말이다. 묘하게 딱 들어맞지 않는 그것이 바로 온다리쿠다. AMBIGUOUS, 그것이 바로 온다리쿠다.



오래된 도시를 걷는 걸 좋아해요. 낯선 거리, 낯선 사람들의 생활. (17p)


나는 이 구절을 보면서 온다 리쿠의 [에피타프 도쿄]를 떠올렸다. 등장인물들이 퍼덕퍼덕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그 이야기를 말이다. 보라색과 분홍 그리고 파랑색이 혼용된, 아니 그렇게 색으로 구별된, 나눠져 있으면서도 묘하게 청색과 보라색의 믹스되어 오일 위에 떠있으면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그런 느낌. 타박타박 걷고 있는 작가의 모습이 보인다. 



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사람 입으로 듣는 건 흥미로웠습니다. 

거꾸로, 사실이라는 게 뭘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저마다 사실이라고 생각하면서 말하지만,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을 본 그대로 이야기한다는 건 쉽지 않아요. 아니, 불가능합니다. 선입견이 작용한다든지, 잘못 봤다든지, 잘못 기억한다든지 하기 때문에, 같은 이야기를 여러 사람한테 물어보면 다 조금씩 다릅니다. (57p)


하나의 사건을 두고 사람들의 생각은 다양하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다르고 생각하는 방법이 다르고 배워온 정도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니 같을 수가 없다. 하지만 같은 사건을 보았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다르게 본다. 자신만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러니 아무리 충격적인 사건이라 하더라도 그 사건의 목격자들을 비롯해서 생존자 그리고 직접 경험자나 간접 경험자들은 다르게 기억하고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본문에서 사람들은 그 집을 저마다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과도 같지 않을까. 사람들은 그 집의 주인 이름을 따서 부르기도 했지만 주로 그 집의 형태를 따라서 그 집을 칭했다.배의 창문이 있는 집이라던가 둥근 창 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런 설명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상상을 해본다. 배의 옆면에서 보이는 동그란 창문이 나열된 그런 모양의 집을 말이다. 그 집에 들어서는 한 남자. 경찰은 술독과 음료를 가지고 온 그 남자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아오사와 일가 3대의 생일을 축하하는 잔치였다. 한 가족에서 삼대가 같은 생일이라는 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 지극히 희귀한 일이 아니던가. 본문에서는 그리 드물지도 않은 일이라고는 하고 있지만 그들은 생일이 기일이 되어 버렸다. 인정받는 의사였고 그랬기에 동네 잔치나 마찬가지였던 그런 날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그 자리에서 사람들은 음식이 아닌 음료가 아닌 독을 먹고 사망했다. 독은 남녀노소 주인과 객을 가리지 않았다. 


하나의 사건은 <잊혀진 축제>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되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그렇지만 죽음을 당하지 않았던 그 동네에 살았던 그 아이는 자신의 졸업논문으로 이 사건을 취재했고 그것은 논문을 넘어서 책으로 나오게 되었다. 축제.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였으니 당연히 축제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람들에게서 잊혀진 축제라는 제목의 이야기 속에는 저마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하나의 사건 그리고 다른 의견과 생각들. 이 책 속에서는 그때 당시의 범인과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그녀는 또 하나의 나라를 찾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는 꿈나라. 세계가 사라지고 영원의 정적으로 가득 찬, 둘만의 나라.

두 사람은 그 나라에 유지니아라는 이름을 붙였다. (387p)


제목의 유지니아는 벗이라는 단어를 일본어로 읽은 유진이라는 단어의 합성어다. 그들만의 나라. 벗이 되어줄 사람이 있는 나라일까 아니면 모든 사람이 다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나라일까 아니면 모두가 다 벗이 되어야만 하는 그런 나라일까. 그런 유지니아는 환상과 꿈이 가득찬 그런 나라일까 아니면 모든 사람들이 다 독살을 당하고 죽어야만 하는 그런 나라일까.


형은 늘 진지한 얼굴로 말했어요.

난 꽃의 목소리가 들려, 라고. (251p)


꽃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꽃의 향기는 나는 듯 하다. 분홍색의 꽃이 가득 피어있는 표지에서는 아무도 느끼지 못하는 향기가 나는 듯 하다. 한 가운데 있는 붉음을 내포한 흰 꽃 한 송이. 아니 표면적으로는 하얗지만 속으로는 붉은 꽃 한 송이일수도 있다. 그 앞에서 겹쳐진 손에서는 꽃내음이 날 것이다. 분명. 진하고 묵직한 향이 가득 담겨있을 것이다. 표지는 테두리를 따라서 그 속으로 파묻혀 들어간다. 그녀만의 유지니아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