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니아 - 전면개정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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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하게 알고 싶었다. 유지니아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작가기 이 글을 통해서 남긴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정확히 그리고 딱 맞게 수학 공식에 대입되어서 풀어낸 답 마냥 그렇게 나오길 원했다. 옮긴이의 말을 빌자면 그랬다. 퍼즐 하나하나가 다 제자리에 있는 것 같은데 어딘가 모르게 빡빡하고 잘 들어 맞지 않고 완성된 그림은 삐뚤빼뚤하다고 말이다. 그것이 답인 것 같다. 이 유지니아에 대한, 그리고 온다 리쿠라는 작가의 작품에 대한 답 말이다. 묘하게 딱 들어맞지 않는 그것이 바로 온다리쿠다. AMBIGUOUS, 그것이 바로 온다리쿠다.



오래된 도시를 걷는 걸 좋아해요. 낯선 거리, 낯선 사람들의 생활. (17p)


나는 이 구절을 보면서 온다 리쿠의 [에피타프 도쿄]를 떠올렸다. 등장인물들이 퍼덕퍼덕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그 이야기를 말이다. 보라색과 분홍 그리고 파랑색이 혼용된, 아니 그렇게 색으로 구별된, 나눠져 있으면서도 묘하게 청색과 보라색의 믹스되어 오일 위에 떠있으면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그런 느낌. 타박타박 걷고 있는 작가의 모습이 보인다. 



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사람 입으로 듣는 건 흥미로웠습니다. 

거꾸로, 사실이라는 게 뭘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저마다 사실이라고 생각하면서 말하지만,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을 본 그대로 이야기한다는 건 쉽지 않아요. 아니, 불가능합니다. 선입견이 작용한다든지, 잘못 봤다든지, 잘못 기억한다든지 하기 때문에, 같은 이야기를 여러 사람한테 물어보면 다 조금씩 다릅니다. (57p)


하나의 사건을 두고 사람들의 생각은 다양하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다르고 생각하는 방법이 다르고 배워온 정도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니 같을 수가 없다. 하지만 같은 사건을 보았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다르게 본다. 자신만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러니 아무리 충격적인 사건이라 하더라도 그 사건의 목격자들을 비롯해서 생존자 그리고 직접 경험자나 간접 경험자들은 다르게 기억하고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본문에서 사람들은 그 집을 저마다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과도 같지 않을까. 사람들은 그 집의 주인 이름을 따서 부르기도 했지만 주로 그 집의 형태를 따라서 그 집을 칭했다.배의 창문이 있는 집이라던가 둥근 창 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런 설명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상상을 해본다. 배의 옆면에서 보이는 동그란 창문이 나열된 그런 모양의 집을 말이다. 그 집에 들어서는 한 남자. 경찰은 술독과 음료를 가지고 온 그 남자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아오사와 일가 3대의 생일을 축하하는 잔치였다. 한 가족에서 삼대가 같은 생일이라는 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 지극히 희귀한 일이 아니던가. 본문에서는 그리 드물지도 않은 일이라고는 하고 있지만 그들은 생일이 기일이 되어 버렸다. 인정받는 의사였고 그랬기에 동네 잔치나 마찬가지였던 그런 날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그 자리에서 사람들은 음식이 아닌 음료가 아닌 독을 먹고 사망했다. 독은 남녀노소 주인과 객을 가리지 않았다. 


하나의 사건은 <잊혀진 축제>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되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그렇지만 죽음을 당하지 않았던 그 동네에 살았던 그 아이는 자신의 졸업논문으로 이 사건을 취재했고 그것은 논문을 넘어서 책으로 나오게 되었다. 축제.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였으니 당연히 축제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람들에게서 잊혀진 축제라는 제목의 이야기 속에는 저마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하나의 사건 그리고 다른 의견과 생각들. 이 책 속에서는 그때 당시의 범인과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그녀는 또 하나의 나라를 찾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는 꿈나라. 세계가 사라지고 영원의 정적으로 가득 찬, 둘만의 나라.

두 사람은 그 나라에 유지니아라는 이름을 붙였다. (387p)


제목의 유지니아는 벗이라는 단어를 일본어로 읽은 유진이라는 단어의 합성어다. 그들만의 나라. 벗이 되어줄 사람이 있는 나라일까 아니면 모든 사람이 다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나라일까 아니면 모두가 다 벗이 되어야만 하는 그런 나라일까. 그런 유지니아는 환상과 꿈이 가득찬 그런 나라일까 아니면 모든 사람들이 다 독살을 당하고 죽어야만 하는 그런 나라일까.


형은 늘 진지한 얼굴로 말했어요.

난 꽃의 목소리가 들려, 라고. (251p)


꽃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꽃의 향기는 나는 듯 하다. 분홍색의 꽃이 가득 피어있는 표지에서는 아무도 느끼지 못하는 향기가 나는 듯 하다. 한 가운데 있는 붉음을 내포한 흰 꽃 한 송이. 아니 표면적으로는 하얗지만 속으로는 붉은 꽃 한 송이일수도 있다. 그 앞에서 겹쳐진 손에서는 꽃내음이 날 것이다. 분명. 진하고 묵직한 향이 가득 담겨있을 것이다. 표지는 테두리를 따라서 그 속으로 파묻혀 들어간다. 그녀만의 유지니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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