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로 보는 단테의 신곡 (양장) 명화로 보는 시리즈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이선종 편역 / 미래타임즈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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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제1막 1장

어두운 숲

(표범, 사자, 늑대가 나타난다.)

단테 : 제발 절 좀 구해 주십시오! 당신은 사람인가요?

베르길리우스 : 지금은 인간이 아니지만 전에는 인간이었다네. 어찌하여 지옥에 가려하는가.

단테 : 슬픈 영혼들을 만나길 원합니다.

베르길리우스 : 내가 자네를 영원한 곳으로 인도하겠네. 나중에는 베아트리체에게 자네를 맡기고 떠날 것이네.


제1막 2장

아케론 강 가

단테 : 스승님, 저들은 누구입니까.

베르길리우스 : 하느님을 분노케 하여 죽음을 맞이한 자들. 구원 받을 희망을 잃고 단념한 사람들이네.


<연옥>

제2막 2장

카셀라 :자네는 단테가 아닌가.

(안으려 하지만 허공을 가른다)

카셀라 : 어찌 여기에 왔는가.

단테 : 나의 친구여. 나는 천국으로 향하는 영혼들 틈에 끼여 긴 여행을 하고 있다네. 나를 위해 노래를 블러 주지 않겠는가.


<천국>

제3막 1장

베아트리체 :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단테를 바라본다.)

이곳은 당신의 원래 고향이었던 천국이에요.

단테 : 하지만 내가 저 불꽃 위를 어찌 올라가겠소.

베아트리체 : 하느님 원리에 따른 것일때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둘은 달을 향해 비상한다.)


그토록 유명한 단테의 신곡이지만 제대로 읽을 기회가 단 한번도 없었다. 이제는 누구에게나 말할 수 있겠다. 나는 단테의 신곡을 읽었다고 말이다. 지옥, 연옥 그리고 천국 편으로 이루어져 있는 각 장의 앞부분을 희곡처럼 만들어 보았다. 많은 등장인물들과 이야기들이 다양하게 있어서 쉴새없이 몰아치는 느낌을 받는다.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책은 명화와 함께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어서 그림책을 읽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읽는 것이 더없이 재미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특히 지옥편에 가장 많은 그림이 들어가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가장 사실적인 묘사 때문이 아닐까 한다. 자극적이면서도 잔인한 장면들도 많은데 그것이 예술가들의 혼을 자극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특히 신곡을 읽고 감명을 받은 보테칠리가 그렸다는 <지옥의 지도>라는 작품은 영화 <인페르노>에서도 본 적 있어서 더욱 반갑게 느껴진다. 신곡의 같은 부분을 그리더라도 예술가들이 느끼는 것이나 화풍이 다르기에 같은 장면 다른 그림을 비교하는 재미도 꽤 즐겁다. 귀스타브 도레와 윌리엄 블레이크의 작품들이 특히 많은데 그것은 그가 이 신곡이라는 작품을 읽고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는지를 여실히 드러내는 요소라 할 있겠다. 


버니언의 [천로역정]을 읽는 기분과도 비슷하다. 그것은 기독교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책은 카톨릭에 더 가까운 편이다. 그때 당시 이탈리아를 지배하고 있었던 종교였고 단테 또한 종교를 가졌기에 이런 배경을 가진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지극히 사실적이고 자세하게 묘사되었던 지옥편와는 다르게 천국편에서는 조금 철학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천국이라는 것 자체가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그 이상의 무엇이기에 그런 생각이 든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곳에 있는 인물들을 만나면서 주인공인 단테가 하는 말들이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이탈리아의 피렌체 출신의 작가 단테다. 그곳에 가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 곳에 갔다 온 것이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든다. 230쪽에 등장하는 <천국의 문>이라는 작품을 봤을 때 가장 기뻤다. 그 작품을 직접 본 적이 있다. 피렌체에서 말이다. 사진을 모아둔 클라우드를 뒤져본다. 역시 있다. 내가 직접 찍은. 그때는 단테의 신곡을 몰랐고 지금은 그 작품을 읽고 난 뒤라서 이 작품이 새롭게 보인다. 이 작품은 보았지만 단테의 생가는 방문하지 못했다. 그의 박물관 또한 지나쳤을지 몰라도 사진이나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그러니 이탈리아의 피렌체에 다시 갈 이유가 생긴 것이다. 단테의 신곡이라는 작품을 보고 나니 그곳이 색다르게 보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서다.


유명하다. 하지만 그 유명세 때문에 아직 읽어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꼭 이 책을 권유하고 싶다. 고전이란 당연히 어렵기만 할 것이라는 생각을 타파하기에 가장 적합한 책이니 말이다. 머릿글에서 편역자는 처음으로 이 책을 접한 독자들이 깨달음을 얻었다면 그것으로 감사히 여기겠다고 했다. 나는 오히려 이런 책을 만들어준 편역자님께 더더욱 감사함을 느낀다. 덕분에 단테의 신곡을 드디어 읽어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고전은 어려워서 싫다거나 아직 단테의 신곡이 무엇인지 모른다거나 궁금은 하지만 섣불리 도전하기 힘들다거나 하는 사람을 위해 적극 추천하겠다. 바로 이 책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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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이해하지 않아도 다 껴안을 필요도
달밑 지음 / 부크럼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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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했다고 말은 하면서 같은 일에 계속 부딪힌다면 말뿐인 이해였을지도 모릅니다. 프롤로그 중에서



달밑. 굉장히 독특한 닉네임이다. 달의 밑이라는 뜻일까. @dal_meet이라는 인스타 주소로 본다면 달을 만난다는 뜻일까. 낮보다 밤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작가 소개에서 보듯이 밤에만 볼 수 있는 달을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에세이를 즐겨 읽지 않는 나에게는 약간 낯선 작가님이지만 인스타에서는 많은 팔로우들을 보유하신 분이었다. 짧은 글들이 주는 매력이라니.


소설처럼 단숨에 한번에 휘리릭 읽어보기보다는 두고두고 한 편 씩 꺼내어 보는 그런 책이 되길 소망한다. 마음이 힘들 때, 인간과계가 어려울 때. 괜스리 속이 상할 때. 하던 일이 잘 되지 않을 때, 친구로부터 섭섭할 때, 세상이 날 버린 것 같을 때, 나만 왜 이런가 하는 생각이 들 때. 위로 받듯이 꺼내 읽으면 그것 자체가 힐링되어 줄 것이고 치료약이 되어 줄 것이다.


사서 걱정한다는 소리가 있다. 실제로 읽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미리 걱정하며 걱정을 늘리는 일이다. 본문에서도 아주 잘 나와있다. <마음이 가벼워지는 방법>이라는 제목에서는 딱 세 가지를 제시한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 미리 걱정하지 않기. 사소한 것에 크게 의미 부여하지 말기. 아닌 인연에 미련이 자라게 두지 않기 (20p) 너무 딱 들어맞는 예시가 아니던가. 이대로만 한다면 절대 마음은 무거워지지 않을 것이다. 하늘 끝까지 날아갈 수도 있을 듯하다. 



오래 지키고 싶은 사람이라면 다퉜을 때 그 밤을 넘기지 말고 화해의 손을 내밀기를 바랍니다. (191p)


내 경우에는 관계를 정리해 놓은 글에 더 마음이 끌렸다.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는다고 했던가. 어려운 일이 지나간 후에 더 단단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속담이다. 그것은 인간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친구 사이에도, 연인 관계에도, 가족 사이에도 어떤 관계에서도 완전히 딱 맞는 합은 없다. 그럴 때 어떻게 행동을 할 것인가가 중요해진다. 만약 그런 면이 있다면 말을 하고 그것을 수용해낸다면 더욱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다툼이 있었을 경우 빠르게 회복하는 것도 중요하다. 너무 시간이 지난 후에는 그 틈이 겉잡을 수 없이 벌어져 더 이상은 어떤 것으로도 붙이지 못하는 그런 관계가 되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족이라는 것은 항상 얼굴을 대하고 살기에 화해라는 것도 더 빠르게 이루어지고 그렇기에 같이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해하고 인내하기 어려운 상대방의 면면을 입 밖으로 꺼내서 전달하는 건 이후에 이어지는 다소 불편한 시간까지 감당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그걸 잘 버텨 내면 더 단단한 사이로 제련되는 거고 실패하면 관계가 더 악화할 것이다. (156p)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아무리 몇 사람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라지만 그 많은 사람들을 다 알고 지낼 수도 없고 다 이해하고 지낼 수도 없다.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개인적인 피로도가 증가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그러니 어느 정도만 하자. 내가 할 수 있는 정도만 하자. 그것 만으로도 나는 내가 아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즐거운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Nobody is perfec!. 신이 아닌 이상 인간은 누구라도 완벽하지 않은 존재들이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를 다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다 껴안으려 하지도 말자. 그것이 내 마음에 더 편하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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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법안
김이수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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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수 작가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가토의 검]. 굉장히 독특하면서도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어떤 작품은 읽은 후 작가의 이름이나 제목마저도 남기지 않고 휘발되어 버리는데 반해 이 작가의 작품은 그만큼 강한 인상을 남겼다. 사실 처음부터 그 작가의 작품인 줄 알고 읽었던 것은 아니었다. 술술 잘 넘어가는 페이지는 읽다보니 궁금해졌고 책날개에 있는 가토의 검이라는 작품을 보고 확신을 했다. 다음에 이 작가의 작품이 나온다면 또 나는 흥미를 가지고 궁금증을 발동할 것이다.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일까 하고 말이다. 


작가는 작가 소개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현재 국회에서 행정실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런 경력이 이야기 속에서도 다분히 잘 드러나고 있다. 수행원인 호민은 의원들을 모시고 독일을 거쳐서 터키로 의원외교활동을 나왔다. 터키에서 일정을 마치고 아침 운동을 하겠다고 모인 의원들. 위원장님이 내려오실 때가 되어서 마중을 나갔던 호민은 엘리베이터에서 피습을 당한 또 다른 의원을 보고 놀란다. 급하게 병원으로 이송된 의원. 누가 무슨 이유로 이 외국 땅에서 사람을 칼로 찌른 것일까. 


요즘 같은 세상에 엘리베이터 정도야 cctv를 돌려보면 누구인지 다 범인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 호텔에는 그런 것이 없다. 개인의 인권을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일까. 겨우 확보한 것이 직원 통로로 나가는 부르카를 입은 한 여자의 모습이다. 전부 다 뒤집어 쓰는 그런 옷이라서 누구라도 특정할 수도 없는 그런 상황이다. 다행히 병원으로 이송된 의원은 목숨은 건졌지만 수술이 불가피한 상황. 혹시라도 이슬람 테러집단에 의한 것일까봐 남은 사람들은 전부 대사관으로 이동을 한다. 피습을 당한 사람만 빼고 나머지는 한국으로 돌아온다. 돌아와서도 그때 당시 상황에 대한 이야기나 사건에 대한 조사는 계속된다.


이야기 속에서 언급되는 수쿠크 법이라던지 한기통이라고 한국기독교통합이라는 집단이라던지 하는 것은 낯설지만 또 한편 익숙하다. 한기통은 아무래도 한기총을 조금 바꾼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정치계와 종교계. 같이 손을 잡을 수 밖에 없는 묘한 동거. 한 쪽은 표를 위해서 다른 한 쪽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다. 한국 내에서 하나의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인구가 어느 정도 있다 보니 그들을 제외하고는 표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 당연히 계산된 것이다. 


자신들이 조작을 만들고 그것을 믿지 못해 제2의 대안을 만들고 그 계획이 또 잘못되어 새로운 사건이 생겨나고. 이야기는 전형적인 장르소설의 형태를 따르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이것이 그저 단순한 픽션이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선거를 앞두고 있는 지금이라면 더욱 말이다. 대통령이 되기 위한 후보들이 나와 있지만 어느 한 사람도 마음에 들어서 누구다 싶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 지금 나의 결정이다.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더욱 몰입해 읽을 수 밖에 없는 작품. 그것이 바로 이 [유령법안]이 아닐까. 부디 현실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의원들의 의전을 빙자한 해외 여행은 계속되겠지만 말이다. 이 코로나시대에 갇혀 있는 일반사람들은 외면한 채.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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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의 어릿광대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7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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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공장장 게이고가 드디어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것인가. 초기작들이 개정되어 나오고 있는 와중에 신간 소식은 더욱 반갑다. 그것이 오랜만에 나오는 유가와 교수 시리즈라면 더욱 그러하다. 사건이 일어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똑똑한 탐정이 자신만 아는 이유와 방법으로 이렇게 해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보다는 과학적으로 증거를 제시해서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훨씬 더 이치에 맞다고 이해하게 된다. 유가와 교수 시리즈는 그러한 증명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준다. 그것은 전기 공학을 공부한 작가의 전공과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검증도 없이 그저 자신의 사고방식이나 감각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남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은 의욕 없는 게으름뱅이나 하는 짓이에요. (231p)


꽤 두꺼운 분량을 자랑하고 있지만 절대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 총 일곱 개의 각각 다른 사건이 나오기 때문에 하나의 이야기 별로 끊어 읽으면 그만이다. 보통 이야기가 꽤 길게 이어지는 장편의 경우에 잘못 끊어 읽으면 앞에 이야기를 다시 찾아서 이해를 하고 이어가야 하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이 경우는 그럴 가능성이 제로라는 것이다. 


사이비 종교를 그린 현혹하다와 실제로 그런 능력이 있는 건가 하고 깜빡 속을뻔한 투시하다, 남들에게는 안 들리는 이명을 소재로 한 들리다, 잘못된 오해가 부른 사건인 휘다, 쌍둥이들의 텔레파시를 다룬 보내다와 친구 결혼식에서 벌어진 위장하다, 마지막으로 연극 연출자의 죽음인 연기하다까지 총 일곱 편의 이야기는 어떠한 감각을 소재로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이면서도 그것이 딱 눈에 드러나는 것이 아니어서 오히려 더 과학적인 증명이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그런 소재들이다.



어떤 대답이 돌아오든 태연히 자신의 페이스로 끌어들인다. 그다지 내세울 것 없는 렌자키지만 그 화술에만은 늘 감탄해 마지않는다. (49p)


특히 사이비 종교 문제는 없어지진 것 같고 우리 주위에 없다고 느끼지만 그래도 어딘가에서는 계속 되고 있는 그런 부분이라서 나라마다 다르지 않음을 짐작한다. 본문에서도 그러듯이 그들은 사람들을 적당한 말로 현혹한다. 그것은 점을 보는 무속인들도 그렇지 않은가. 실제로 점을 본 적은 없고 사주 같은 것도 믿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이 말하는 것이 제대로 된 대답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들은 미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단지 과거에 어떠한 일을 맞추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알고 보면 그들의 화술에 현혹되어 의뢰를 한 사람이 다 직접 말하는 그런 케이스다. 그것은 두 번째 이야기에서 나오는 콜드 리딩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실제로 이런 일에 종사하고 있는 무속인들은 신을 노엽게 하면 안되다는 식으로 반응할 지는 몰라도 생각의 개인의 자유가 아닌가. 제일 처음에 나오는 이야기에서도 염을 받는 사람들이 실제로 감각을 느끼지만 그것을 과학적으로 유가와 교수가 확실히 보여준다. 그 장면들이 아주 통쾌하고 인상적이었다. 그러니 사람들이여 이런 것들은 다 허상일 뿐이라 말하고 싶어졌다. 


구사나기 형사가 친구인 유가와 교수를 찾아서 사건에 도움을 의뢰하는 데는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오랜만에 아주 배가 든든히 채워진 느낌이다. 이래서 '게이고는 중독성이 있다'라는 소리를 하게 되는가 보다. 이제는 그만 읽어야지 하면서도 신간이 나오면 또다시 손이 가는 그런 작가니 말이다. 이 중독은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다. 출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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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 이전의 샹그릴라
나기라 유 지음, 김선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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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너무 아름답다. 표지족들은 표지 만으로도 살짝 홀린듯이 쳐다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표지가 이야기의 내용과는 하등 상관이 없다. 그저 단순하게 어딘가에 있을 아름다운 풍경이고 그런 그림일 뿐이다. 이것이 지구 멸망의 날이라면 뭐 이 정도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게 된다. 



노부부에게 남자는 무정한 강도였지만 어머니에게는 사랑스러운 아들이다. (234p)


서점대상 수상작 작가의 작품이다. 그만큼 대중적인 매력을 가진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서는 강력한 매력을 발산하는 작가의 마력이 그대로 살아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총 네 개의 챕터로 이루어진 이야기는 저마다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같은 이야기를 그려낸다. 그렇다고 있었던 일을 다시 한번 반복해서 설명하는 그런 구태의연함은 보이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관점이지만 그 이야기는 시간적으로 계속 진행 중이다. 그래서 그들을 따라가는 로드무비같은 느낌으로 읽게 된다. 


그저 단순한 하루였다. 에나 유키에게는 말이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 뚱뚱하다고 미움을 받는 아이. 대들지도 못하고 모든 것을 그대로 다 받아주는 아이.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어도 말도 붙일 수 없는 아이. 그 아이가 바로 에나였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달라졌다. 한 달 후에 지구 종말의 날이 온다고 했으니 말이다. 십 대 소년에게 지구 종말은 어떤 의미일까. 앞으로 더 살아갈 날이 창창한 아이에게는 날벼락 같은 느낌일까. 아니면 매일 구박을 당하는 날이 줄지어 있으니 차라리 멸망이라도 와서 더이상 당하는 일이 없이 살아갈 수 있었음 하고 바라게 될까. 에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후지모리를 따라서 아니 그녀의 뒤를 쫓아서 도쿄에 가게 된다. 상황은 그렇게 좋지 못하다. 기차만 타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멸망의 날이 선포되면서 사람들은 미쳐갔고 기차선은 끊겼다. 에나는 후지모리가 일행에게 당할 뻔한 것을 구해주며 그녀와의 동행에 나서게 된다. 그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여자를 안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건 좋은 남자고, 아이를 안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건 좋은 부모다. (248p)


에나의 입장에서 그려 낸 이야기는 시즈카를 여전히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불법도박장 운영자 메지카라로 이어진다. 그는 지구 멸망을 앞두고 자신이 마음에 두고 있던 그녀를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세 번째 이야기는 시즈카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녀는 메지카라를 만나고 생각지도 않았던 여정에 나서게 된다. 이 여행길에서 어떤 추억을 쌓게 될까.



좋아하는 소녀에게 무시당했다. 초등학교 남학생이 지구 폭발을 바라기에는 충분한 이유이리라. (31p)


마지막 이야기는 조금 다른 결이다. 주인공이 계속 바뀌는 걸 보았을 때 이 사람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가졌지만 그 생각은 빗나갔다. 오히려 이 주인공을 선택함으로 인해서 앞에 등장했던 사람들이 다 같이 한자리에 모이는 계기가 되고 완벽한 대단원의 결말을 보여준다. 탁월한 선택이라 할 수 있겠다. 큰 그림을 그려낸 작가의 의도가 보인다. 작가는 이야기 속에서 실제로 지구 멸망의 날이 왔는지 오지 않았는지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더욱 그들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해진다. 이런 여행 아닌 여행을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그들의 인생이 또 바뀌지 않겠는가. 


나는 한달 후에 지구 종말이 다가온다면 무엇을 할까. 다른 사람들처럼 막 먹을 것을 사서 저장하게 될까 아니면 그저 담담하니 그날을 기다리고 있을까. 그때쯤이면 읽지 못하고 쌓아둔 책들을 읽기에 여념이 없을 것 같다. 죽을 때까지 다 읽어버릴테다라는 열망으로 책을 읽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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