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 이전의 샹그릴라
나기라 유 지음, 김선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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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너무 아름답다. 표지족들은 표지 만으로도 살짝 홀린듯이 쳐다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표지가 이야기의 내용과는 하등 상관이 없다. 그저 단순하게 어딘가에 있을 아름다운 풍경이고 그런 그림일 뿐이다. 이것이 지구 멸망의 날이라면 뭐 이 정도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게 된다. 



노부부에게 남자는 무정한 강도였지만 어머니에게는 사랑스러운 아들이다. (234p)


서점대상 수상작 작가의 작품이다. 그만큼 대중적인 매력을 가진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서는 강력한 매력을 발산하는 작가의 마력이 그대로 살아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총 네 개의 챕터로 이루어진 이야기는 저마다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같은 이야기를 그려낸다. 그렇다고 있었던 일을 다시 한번 반복해서 설명하는 그런 구태의연함은 보이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관점이지만 그 이야기는 시간적으로 계속 진행 중이다. 그래서 그들을 따라가는 로드무비같은 느낌으로 읽게 된다. 


그저 단순한 하루였다. 에나 유키에게는 말이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 뚱뚱하다고 미움을 받는 아이. 대들지도 못하고 모든 것을 그대로 다 받아주는 아이.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어도 말도 붙일 수 없는 아이. 그 아이가 바로 에나였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달라졌다. 한 달 후에 지구 종말의 날이 온다고 했으니 말이다. 십 대 소년에게 지구 종말은 어떤 의미일까. 앞으로 더 살아갈 날이 창창한 아이에게는 날벼락 같은 느낌일까. 아니면 매일 구박을 당하는 날이 줄지어 있으니 차라리 멸망이라도 와서 더이상 당하는 일이 없이 살아갈 수 있었음 하고 바라게 될까. 에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후지모리를 따라서 아니 그녀의 뒤를 쫓아서 도쿄에 가게 된다. 상황은 그렇게 좋지 못하다. 기차만 타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멸망의 날이 선포되면서 사람들은 미쳐갔고 기차선은 끊겼다. 에나는 후지모리가 일행에게 당할 뻔한 것을 구해주며 그녀와의 동행에 나서게 된다. 그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여자를 안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건 좋은 남자고, 아이를 안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건 좋은 부모다. (248p)


에나의 입장에서 그려 낸 이야기는 시즈카를 여전히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불법도박장 운영자 메지카라로 이어진다. 그는 지구 멸망을 앞두고 자신이 마음에 두고 있던 그녀를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세 번째 이야기는 시즈카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녀는 메지카라를 만나고 생각지도 않았던 여정에 나서게 된다. 이 여행길에서 어떤 추억을 쌓게 될까.



좋아하는 소녀에게 무시당했다. 초등학교 남학생이 지구 폭발을 바라기에는 충분한 이유이리라. (31p)


마지막 이야기는 조금 다른 결이다. 주인공이 계속 바뀌는 걸 보았을 때 이 사람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가졌지만 그 생각은 빗나갔다. 오히려 이 주인공을 선택함으로 인해서 앞에 등장했던 사람들이 다 같이 한자리에 모이는 계기가 되고 완벽한 대단원의 결말을 보여준다. 탁월한 선택이라 할 수 있겠다. 큰 그림을 그려낸 작가의 의도가 보인다. 작가는 이야기 속에서 실제로 지구 멸망의 날이 왔는지 오지 않았는지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더욱 그들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해진다. 이런 여행 아닌 여행을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그들의 인생이 또 바뀌지 않겠는가. 


나는 한달 후에 지구 종말이 다가온다면 무엇을 할까. 다른 사람들처럼 막 먹을 것을 사서 저장하게 될까 아니면 그저 담담하니 그날을 기다리고 있을까. 그때쯤이면 읽지 못하고 쌓아둔 책들을 읽기에 여념이 없을 것 같다. 죽을 때까지 다 읽어버릴테다라는 열망으로 책을 읽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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