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내 삶의 터전이 아니었고, 내 고향이 아니었으며, 심지어 나 자신이 아니었고, 내가 될 수도 없었다. 1977년 여름의 케임브리지가 그랬다. 23p
카페 알제 / 카페 오디션
아들과 함께 캠퍼스 투어를 다니는 나는 자신이 다녔던 학교에 와 있다. 누구라도 자신이 다녔던 학교에 온다면 그때의 일들이 생생하게 생각나기 마련이다. 근처만 가도 그럴 텐데 직접 캠퍼스에 발을 들이면 그것은 더할 것이다. 그렇게 그는 1977년도 케임브리지로 생각의 여행을 떠난다. 이야기는 주로 그와 칼라지의 일상과 생각들이다. 그들이 만난 곳은 카페 알제. 아랍인과 유대인 사이에도 우정이 가능하냐고 물었던 것처럼 그들 사이는 가까와지지 않을 것 같았지만 같은 프랑스어를 쓴다는 것에서 동질감이 생기고 그렇게 그들의 관계가 이어진다.
그들에게 카페 알제가 있었다면 나에게는 카페 오디션이 있었다. 그들이 70년대의 하버드를 그렸다면 나는 90년대 초반의 경기도의 어느 곳을 그린다. 지금도 그대 당시의 그곳을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다. 아무 약속을 하지 않고 들러도 선배든 후배든 동기든 누군가는 그곳에 있었다. 우리가 그곳을 아지트로 삼은 것은 커피의 맛이 좋아서도 음악이나 분위기가 좋아서도 아닌 단지 무료로 제공되는 토스트가 있었다는 거였다. 왜 그때는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고 뒤돌아서도 배가 고팠는지 오디션에 들어가면 우리는 음료를 주문하고 길다란 봉지에서 식빵을 꺼내서 토스터기에 넣고 튀어 오르는 순간 받아서 딸기쨈을 발라서 먹었다. 주문한 후 자리에 앉아 있다가 빵을 가지러 가는 것은 대개가 후배였으며 친구들 중에서는 그것을 가지러 가는 것도 내기를 할만큼 작은 것 하나에도 진심인 그때였다.
카페 알제에서는 칼라지와 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어떤 것도 이야깃거리가 되며 토론 주제가 되기도 하고 그로 인해 분란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런 모든 것이 일상처럼 느껴지는 그런 곳이다. 만약 그곳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칼라지라는 사람을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고 그로 인해 알게 되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또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장소가 가지는 중요성이다.
칼라지
그가 미국을 싸잡아 비난하는 건 사실 미국이 자신에게 굴복하지 않기로 결정할 경우에 대비해서 자신도 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애쓰는 것이었다. 243p
그는 택시 기사였다. 하버드에서 공부하는 나와는 다른 생활반경의 사람이었다. 학생은 교수나 다른 학생들과의 만남은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그 외의 사람들과의 만남은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는 이상은 잘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내가 칼라지가 운전하는 택시를 탔다 하더라도 그것은 잠시 동안일뿐 그것이 오랜 기간 우정을 나누는 요소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카페 알제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가 된다. 그가 어려울 때 그에게 일자리를 구해주기도 한다. 물론 사람과의 관계가 늘 좋으리라는 법은 없다. 나는 내 생활이 안정되고 자신의 주위 사람들과 만나게 되면서 칼라지와의 만남을 부담스러워 하면서 피하려고 한다. 그것이 꼭 계급 문화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은연 중에 그런 것도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하버드에 다니는 나인데 너 같은 친구와 어울린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는 보여주기 싫어하는 그런 것 말이다. 아닌 것 같지만 그런 내면의 소리가 실제로 드러난다.
이방인
우리 둘 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지만, 내겐 버티고 설 땅이 있었고 그는 언제나 방랑자였다. 96p
나와 칼라지는 둘 다 이방인이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는 그러하다. 그들은 미국 시민이 아니며 그곳에서 태어나지도 않았다. 칼라지는 미국이라는 곳에서 일을 하며 나는 공부를 한다. 언뜻 보면 동등한 위치에 있는 것 같지만 이혼을 하면 추방될 위기에 놓인 칼라지와 영주권을 가지고 하버드에서 공부를 하는 나와는 엄연히 다른 위치다. 같은 이방인이지만 다른 계급인 셈이다. 그러니 당연히 그들의 안정성에도 차이가 있다. 누군가는 공부만 하면 되는 - 실제로는 돈이 없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지만 그래도 - 사람이고 누군가는 쫓겨날지 말지를 고민하며 변호사를 찾아 상담을 해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외국에서 살아본 사람은 누구나 안다.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것을 말이다. 단기로 있는다면 몇 달마다 또는 몇 년마다 비자를 갱신해야 한다. 이민국에 들러야 하고 자신이 이곳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가 담긴 증명서를 내밀어야 한다. 그 시간들이 초조하다. 이민국에는 언제나 늘 이방인들로 넘쳐나며 이민국 직원들은 언제나 늘 느긋해 보인다. 그래서 더 조바심 내게 만든다. 영주권자라 하더라도 아니 시민권자라 하더라도 그곳에 살고 있는 그들과는 다른 외모 덕에 이방인이라는 생각은 벗어날 수가 없어 보인다.그래서 칼라지가 그렇게 천두복숭아를 외쳐댔던가. 머리는 자두 모양, 엉덩이는 복숭아 모양, 고환은 초콜릿 과자 모양.(77p)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아무리 그들의 말을 하고 그들의 옷을 입고 그들 속에 어울려 공부를 하고 일을 하고 살아간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지금 이방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