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
곽재식 지음 / 비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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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흡수 방법이라고는 의사소통 기관을 이용해 억지로 다른 생물의 몸을 빨아들이는 것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 생물이 살아갈 수 있는 수단이 몹시 부족하고 부실하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11p

소설을 썼으니 작가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니 교수다. 작가와 교수. 과학과 문학. 절대적으로 상반된 이 두 가지를 아주 퍼펙트하게 줄타기 하고 계시는 분이 바로 이 곽재식이라는 사람이 아닐까. 과학에 치우친 나머지 소설이긴 한데 무슨 말인지 못 알아먹겠다라는 그런 투정이 튀어나와야 하는데 그보다는 오히려 이 짧은 이야기들에 매혹되어 세이렌의 노래를 따라가다 사고가 나는 사람마냥 내내 책을 붙잡고 있다가 할 일을 잊어버렸다. 이것은 순문학이지 이게 무슨 과학이냐고 하고 싶은데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군데군데 들어가있는 깨알같은 과학지식은 과학을 거부감없이 받아들이게 해주고 있으니 이 아니 완벽할쏘냐.

단적으로 말해서 소설은 좋아하지만 sf는 좋아하지 않는다. 과학이라는 것이 배경이 되거나 소재가 되어 이야기를 짜냈을 때 그것이 너무 재미가 없고 딱딱하고 어렵게 느껴진다는 그런 선입견에서 나온 불호이다. 하지만 이런 sf라면 나의 불호는 호로 바뀔수도 있다고 본다. 뭐든 고정되어 있는 것은 없으니까.

총 열 편의 이야기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세 편을 꼽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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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p

특히 너무너무너무너무 아주 미친듯이 공감을 했던 작품이 바로 <슈퍼 사이버 펑크 120분>이었다. 마치 빰빰빠밤빰 하면서 100초 미션을 하는 식으로 시간이 줄어들 때마다 내 마음도 같이 졸아들었다. 내야 하는 시간은 다가오고 프린트를 해야 할 서류 하나 받는 것은 왜 이리 말을 안 듣고. 뭘 하려고 하면 이걸 받으라 그러고 이걸 하려고 하면 저 프로그램에서 하라 그러고 하라는 대로 다 받아서 했는가 싶으면 뭐가 안 되어져 있다고 다시 처음부터 하라고 그러고. 회원가입하다가 우편번호 안 나와서 다시 처음부터라는 말이 나올 때는 내가 그 작업을 하고 있는 것 마냥 어깨까지 축 늘어드리게 되고 짜증이 그냥 확 올랐다. 어쩌라고!!!! 하면서 그냥 확 때려칠까 했지만 그랬다가는 서류 제출 미비로 벌금이나 감옥에 갈 수도 있는 일. 다시 한숨을 크게 쉬고 도전. 이 120분의 환장 파티는 어떻게 끝이 날까. 부디 해피엔딩이기를.

이 웹사이트에서 지금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을 만한 메뉴인데, 왜 이렇게 찾기 어렵게 꽁꽁 숨겨둔 것일까?

105p

두번째는 <기억 밖으로 도주하기>였다. 한 남자가 도망치고 있다. 누군가가 자신을 잡으러 오는 듯 필사적으로 도망을 치고 있다. 나는 그 남자를 따라간다. 그는 자신을 따라오는 사람을 피해 요리조리 잘도 도망 친다. 남의 아파트로 올라가서 비상계단에 앉아 있기도 한다. 그를 응원한다. 그를 잡으러 오는 사람이 누구이던지 간에 나는 일단 도망을 치고 있다는 그 사람을 응원하기로 한다. 그가 무슨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을 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으므로 말이다. 그는 자신이 예전에 살았던 집을 기억한다.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과 함께 살았던 그 집이다. 그 집에서는 누가 나올까. 생각지 못한 결론으로 인해 모든 것을 다 알아챈 후에 눈물 한방울이 또르르 흘렀다는 것은 안 비밀이다.

어제 본 텔레비전 프로그램 <나는 자연봇이다>에서는 산속에 들어가서 굳이 화력발전으로 만든 전기를 동력원으로 쓰며 생활하는 로봇들이 있었다.

261p

마지막은 <지상 최후의 사람일까요>라는 작품이었다. 이 세상에 딱 한 사람 나만 남았다. 이 설정을 보고 나는 윌 스미스가 나왔던 <나는 전설이다>라는 영화를 떠올렸다. 그래도 그는 개라도 있었지. 하기야 여기는 사람은 없지만 로봇은 많다. 로봇은 자신이 사람처럼 행동하고 살아간다. 로봇들의 세상. 저들은 오직 나라는 한 사람을 위해서 일하고 있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모조리 다 있다. 무엇이든 자동화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는 세상이다. 이 세상에서 나는 더없이 편안하게 살아가지만 한가지 고민이 있다. 내가 죽으면 더이상의 인간은 없다는 것.

물론 인간을 만드는 것이야 아주 간단하다. 그냥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인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렇게 인간을 만들면 무얼할까. 나는 내가 이 세상에 서 마지막 사람이라면 어떤 결론을 내릴지 생각해 본다. 나라면 진작에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로봇이 아무리 사람같다고 해도 사람이 아닌 이상 사람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기야 사람이라 하더라도 사람이 사람을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세상에 공무원만큼 책임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절대적으로 없다.

2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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