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한자퍼즐 1
큰그림 편집부 지음 / 도서출판 큰그림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렸을 때 서예 학원에 다닌적이 있습니다. 제가 다닌 서예 학원에서는 한자와 한글 두가지 중에서 선택을 할 수가 있었지요. 저는 한자를 선택했고 동생을 한글을 선택했었답니다. 그 이유인지 몰라도 동생은 한글을 또박또박 참 이쁘게도 씁니다. 반면 제 글씨는 날아갑니다. 성격 급한 탓도 있겠지요.

 

그에 비해서 동생은 한자를 많이 알지는 못합니다. 저는 또래들보다는 많이 아는 편이지요. 따로 공부를 한 적은 학교 다닐때 말고는 없으니 서예 학원의 영향이 컸다고 볼 수 밖에 없겠지요. 물론 학교 다닐때 방학숙제로 천자문을 백번씩 쓴 경험은 있습니다. 어렸을 때 배운 한자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잊어버리지 않는답니다.

 

언젠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자를 몰라서 무슨 글자인지 찾으려고 옥편을 찾는 모습을 보았답니다. 그들은 옥편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도 모르더라구요. 일반적인 사전과는 다르게 옥편은 부수를 알아야 쉽게 찾을수가 있답니다. 이 글자가 조합으로 이루어진 것이라서 기본이 어디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지요. 물론 모른다 하더라도 총획으로 찾는 방법도 있습니다.

 

크로스워드 퍼즐을 좋아합니다. 한국말로 하면 낱말퍼즐이겠지요. 단어를 외울 때 그냥 무작정 외우면 재미도 없고 지루하지만 퍼즐을 이용하면 훨씬 더 쉽고 재미나게 외울수가 있지요. 그런 퍼즐을 한자어로 만든 것이 바로 이 책입니다. 이렇게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네요.

 

퍼즐에 넣어야 할 한자들을 급수별로 분류해서 뜻과 음을 제공하고 있기에 간단한 설명만 읽으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가로 풀이와 세로 풀이가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한글 단어로 하면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는 단어지만 문제는 그것을 한자로 써야 한다는 것이지요. 가능하면 밑에 있는 제시어도 보지 않고 쓸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한자를 보고 써봐도 좋겠습니다. 친절하게 쓰는 획순도 제공하고 있어서 누구라도 쉽게 따라 써 볼 수 있게 구성해 두었네요.

 

저처럼 어른이라면 쉽게 알 수 있지만 어린 아이들도 도전해 볼 수 있도록 이 책에서는 본문에 나오는 단어들을 한글단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해설을 보아도 무슨 단어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대놓고 답을 주는 것이지요. 그래서 포기할 수 없게끔 한번더 신경을 써 두었답니다. 연필로 써보고 지워서 반복해서 도전해봐도 더욱 재미날 것만 같은 그런 퍼즐임에 틀림없네요. 가족끼리 다같이 시간을 내어서 해봐도 좋고 저처럼 차분히 혼자서 오랜만에 한자어를 쓰는 시간을 가져봐도 좋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히데오에게 뭐든 해 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최선을 다하는 상대는 히데오가 아닌 다다토키다. (146p)

 

작열. 끓는다. 단어도 끓고 표지도  끓는다. 활활 타오른다. 이야기는 작열하다 스스로 지쳐 파멸했다. 언제나 주장하듯이 사랑은 타이밍인 것을. 그러나 그 누구도 그 타이밍을 딱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지금 자신의 짝이 옆에 있는 사람이라면 신께 감사하시길.

 

미스터리라고 하지만 전반부에 걸쳐서 사랑이 전제되어 있다. 사랑이 있었기에 복수도 결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랑이 없었다면 그까짓 일이야 그저 사고로 치부하고 넘어가고 내 인생을 살았으면 될 일이다. 복수를 하고 싶을 만큼 자신의 남편을 사랑한 그녀다.

 

그녀는 지금 방문의사의 아내다. 아침에 남편을 배웅하고 나면 그녀는 본격적으로 집 뒤지기에 나선다. 무언가를 찾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녀는 남편의 은행잔고를 찾아내고 무언가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은 무조건 다 사진을 찍어둔다. 그녀는 보통의 아내와는 다르다. 남편에 대해서 사랑이 아닌 그 무언가를 찾고자 접근했음이 너무나도 명백하다.그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남편에게는 동생이 한 명 있었다. 병원에 있는 동생. 여자는 남자에 대한 마음은 좋지 않지만 그 동생에게는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고 싶어한다. 자신이 가지지 못했던 아이를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남편에 대한 죄책감으로 동생에게 더 잘해주고 싶은 것일까.

 

[성모]의 작가다. 워낙 강한 이야기라서 모두가 다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던 그런 책이다. 그 이후 [절대 정의]로 돌아왔었다. 충분한 미스터리를 담고 있찌만 전작에 비해서 본다면 어느정도 약해진 느낌이 드는 그런 책이었다. 물론 작가 특유의 개인을 통한 사회적 메세지를 전하는 것은 여전했다. 그 이후 이 작품이다.

 

전작들에 비해서 본다면 확실히 어느 정도는 강함이 물렁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 물렁함이 낯설 뿐 싫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말랑해진 느낌이 더 부드럽게 다가갈 수 있게 해주고 책장을 빨리 넘기게 만들어 버린다. 두껍지 않은 페이지는 이야기에 속도감을 붙여서 달아난다.

 

그녀의 정체가 밝혀지고 남편이 숨기고 있었던 이야기가 드러나고 동생이 행동을 취하면서 이 모든 이야기는 스스로 봉합한다. 작열하던 이야기는 스스로 불을 줄여간다. 이제는 태울 것을 다 태웠다는 듯이 말이다. 안타깝다. 부디 그들의 남은 인생이 행복하기만을 바랐는데 그렇게도 타이밍은 언제나 서로를 빗겨나는 것일까.

 

나.

이사람에게 끌리기 시작했어-. (199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빛의 현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도 둘째 치고 내용도 둘째 치고 딱 작가 이름만으로 이 책은 읽어보고 싶다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그런 작가가 몇 있다. 쉽게 말하면 믿고 보는 작가라는 뜻이다. 한 작품을 읽어보고 이 작가는 믿을만하다고 생각되어 그 작가의 작품을 찾아서 읽고 많이 읽었기 때문에 더 믿음이 가는 작가들이 있다. 바로 요코야마 히데오가 그런 작가이다. 내게는.

 

꽤나 두꺼운 전작 [64]에 비해서 이 책은 얇은 편이다. 476페이지가 무어 그리 얇으냐고 하겠지만 개인적인 체감은 그러했다. 거기에다가 어디선가 비추어지는 햇살까지 느껴지는 표지는 더 따듯함을 준다. 과연 이 책이 미스터리일까 라는 의심이 생길만큼 말이다. 원제인 노스라이트를 그대로 반영하는 표지이다.

 

아오세 미노루라는 건축가가 살고 싶은 집을 지어주세요. 저희는 신경 쓰지 마시고요. 아오세는 말했다. 제가 그러고 싶습니다. 언젠가 만들고 싶었습니다. 빛을 환대하고, 빛에게 환대 받는 집을.

 

의뢰인이 원하는대로 집을 디자인했다.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고 싶은 집을 이런저런 조건을 제시하기 마련이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건축가가 살고 싶은 집을 만들어 달라고 했었다.건축가를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것일수도 있겠지만 약간의 의심을 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실제로 의심도 했다.

 

그렇게 집을 디자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곳에 없었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어떠할까. 이런 경우에. 당연히 집이 완성되었고 당연히 그 가족들이 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살기는 커녕 이사를 한 흔적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본다면 전혀 상관없는 남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찾아 다닐 수 있을까. 아니면 그러려니 무슨 사정이 있겠거니 하고 넘겨 버릴까.

 

내가 읽었던 일본 소설에는 건축가가 몇번 등장을 한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라는 작품에서도 건축가가 주인공이었고 [염원]이라는 작품에서도 건축가가 아이 아버지로 등장을 한다. 이번 작품도 아오세라는 건축가가 등장을 한다. 그가 자신이 만든 작품에 의뢰인이 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의 행방을 그의 가족들을 행방을 찾아가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사건이 평면적이다. 그렇게 엽기적이지 않다. 주인공이 특정 사건들과 연관성이 없는 탓에 극적인 효과도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번역자은 읽기 쉬운 그런 작품은 아니었다고 하면서 산길을 걷는 것에 이 작품을 비유하고 있다.확 올라가는 때가 있다면 줄기차게 내려가는 길도 있고 구불구불한 맛도 있는 그런  산길 말이다. 큰 사건이 없는 탓에 자칫 밋밋하게 느껴질수도 있지만 이 작품은 그런 밋밋함조차도 강점으로 살리고 있다.

 

창가로 다가갔다. 사실은 들어오자마자 바로 그쪽으로 가고 싶었다. 가슴께에서 거의 천장 부근까지 크게 낸 북향 창. 커튼 줄을 힘껏 당겨 커튼을 젖혔다. 빛이 실내로 내려앉았다. 선도, 다발도 아닌, 지극히 엷게 짜낸 베일 같은 빛이 슬며시 실내 전체를 감싸 안았다. (88p)

 

원제인 노스 라이트는 검색해 보니 특별한 뜻은 없었다. 북쪽에서 비치는 빛일까. 그가 원하던 그런 빛. 집을 볼 때 남향이 제일 좋고 남향 다음이 동향이라고 들었었는데 지금 내가 사는 집은 남서향이다. 채광은 눈이 아플 정도로 들어오고 해 넘어가는 석양이 매일같이 장관인 그런 집이다. 노스라이트는 어떨까. 엷은 베일같은 빛. 그런 빛이 쫙  깔린다면 지극히 편안하고도 아늑한 집이 되지 않을까. 작가의 꼼꼼함과 진중함과 따사로움이 한가득 들어오는 노스라이트만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도의 자리로 - 영광의 그분과 거룩한 발맞춤
C. S. 루이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일예배에서 목사님이 설교를 하신다. 자주 등장하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C.S 루이스다. 목사님이 그 분을 좋아하셔서 그분의 책을 많이 읽으셔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이 문구만은 꼭 공감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으로 알려주시는 것일수도 있겠다.

 

저자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자라면서 무심론에 심취하기도 했고 그렇게 함으로 온전한 회심을 경험했다. 그 이후로는 기독교 사상가로서 뛰어난 저작들을 남겼다. 이 책은 저자의 작품들 중에서 기도를 다룬 글들을 엄선해서 묶은 책이다. 원래의 제목을 질문형 제목으로 바꾸어 저자의 글이 질문의 답이 되도록 편집한 것이 인상적이다.

 

내 기도가 통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가장 기본적인 궁금증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아시는데 내가 외 구해야 하는지에 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누구라도 한번쯤은 기도에 대해서 궁금했었던 질문이기도 하다. 혹시 하는 생각으로 남들에게 묻지 못했던 기도에 대한 질문들에 대한 응답을 이해하기 쉽도록 해두어서 더욱 옆에 두고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한번 읽기 보다는 여러번 반복해서 내 기도에 의심이 갈때 읽기 좋은 그런 책이다.

 

기도는 요청이기 때문이다. 강요와 달리 요청의 본질은 상대가 승낙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혜가 무궁하신 신이 유한하고 어리석은 피조물의 요청을 들으신다면, 당연히 승낙하실 때도 있고 거부하실  때도 있을 것이다.(15p)

 

비단 기독교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기도는 누구나 한다. 특히 절박할 때면 더하다. 그런 기도를 했는데 들어주지 않았다고 해서, 즉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하나님이 없다고 무시해서는 안된다. 저자의 말을 본다면 왜 그런지 한번에 이해가 된다.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던 나조차도 간절히 기도했는데 들어주시지 않았던 기도가 있었다. 내 간절함이 덜했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내 절박함이 하늘에 닿지 않았다고 생각도 했다. 극적으로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부인도 했다.

 

하지만 책을 보면 너무나도 잘 이해되지 않는가. 나는 이런 기도를 들어달라고 요청을 했고 그는 자신의 뜻대로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았던 것 뿐이다. 그가 거절했다고 해서 내가 그분을 원망한다면 그것은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 조그만 나의 반항일뿐이고 바보같은 짓일뿐이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이렇게 글로써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그리스도인은 이런저런 사건이 자신이 그렇게 기도했기에 일어났는지 여부를 물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모든 사건이 예외 없이 기도 응답임을 믿어야 한다. 기도한 대로 받든 그렇지 않든 관계없이, 관련자 전원의 기도와 필요가 모두 참작되었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72p)

 

위의 구절과 비슷한 맥락의 문장이다. 좋은 일이 있어도 나쁜 일이 있어도 우리는 그것이 기도의 응답임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 수도 있다. 모든 것을 다 하나님 마음대로 한다면 구태여 우리가 기도할 의미가 없지않은가 하고 말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기도는 요청이다. 그러니 들어주실 수도 있는 것이다. 간절하면 더욱더 그 가능성은 높아지지 않을까.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이 들어주시던 들어주시지 않던 기도를 해야 하는 것이고 멈출수가 없는 것이다.

 

왜 그 창조 행위 속에 자유 의지가 개입될 여지를 두었는지는 풀리지 않는 난제이지. 이것은 원수의 헛소리인 "사랑"의 배후 비밀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떻게 그러한지는 전혀 어렵지 않아. 원수는 인간이 자유 의지로 기여하는 행위를 미래로 내다보는 게 아니라 원수의 무한한 현재 속에서 보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위를 지켜보는 것이 곧 그 행위를 하게 만드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100p)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문장이다. 무엇을 언급하는지 쉽사리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쉽지만 이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인용한 부분들은 꽤 어려웠다. 원서에는 어떻게 쓰여졌을지가 궁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히려 그것을 읽었다면 더 쉽게 다가왔을까 하는 생각에 말이다. 두고두고 다시 곱씹어서 이해시켜야 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는 쉽지만 중간중간 철학적인 말들이 있어서 초심자에게는 어려울수도 있겠다. 기도에 회의가 드는 사람이라면 추천하겠다. 나는 기도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 하는 사람에게도 추천이다. 나처럼 오래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 역시 꼭 읽어야 할 그런 책이다. 왜 목사님들이 자주 인용을을 하는 그런 저자인지 이 조그마하고 얇은 책 한권으로 여실히 증명을 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화양연화 : 삶이 꽃이 되는 순간 대본집 2 - 전희영 대본집
전희영 지음 / 이은북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엄마랑 지영이는 만났어?(미소) 좋았겠다, 울 아빠. 나만 혼자네..(애써 씩씩하게) 두 사람한테 내 꿈에 좀 와달라고 전해줘. 내가 너무 보고 싶어 한다고. (눈시울 붉어지는데 후- 심호흡) 괜찮을 줄 알았는데... 평생 흘릴 눈물은 다 써버린 줄 알았는데 (울먹이는) 또 눈물이 나네. (200p)

 

- 1권과 2권 두권 모두를 털어서 가장 많이 울어버린 순간.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나는 문장들. 이 대사를 지수는 어떻게 연기했을까. 담담하면서도 뭉클하게 그러면서도 애절하게. 아직은 혼자가 아니지만 내가 혼자가 된다면 그 순간을 생각만 해도 조금은 무섭다.

 

같은 나이, 같은 학교의 자녀를 둔 학부모. 학교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부모로 다시 만난 그들. 이미 20년 전에 사랑했던 사이. 하지만 그때부터 주위의 반대로 인해서 결코 이뤄지지 않았던 사랑. 누군가는 피해야만 했던 그들의 만남. 그것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을 알면서도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그들의 사랑. 그래서 시간이 돌고 돌아 지금에 이르러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일까.

 

다시 만난 사랑 또한 쉽지는 않다. 이혼했으나 아이가 있으니 연결되어 있는 전남편이 있었고 그 전남편은 그녀에 대한 사랑이 아직 남아 있는 상황이었으니. 더군다나 재현은 더하다. 사랑 없는 결혼이기는 하나 아직은 결혼이 유지되고 있는 중이니 그들의 사랑이 알려지면 당연히 불륜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거기다가 재벌의 사위라는 위치가 결코 쉬운 자리는 아닌 까닭이다. 그러니 그들이 다시 만났다고 한들 사랑이 이루어지기는 참 어렵고도 고된 일이다. 사랑이 이다지도 힘들다면 누가 하겠냐라고 생각할수도 있겠다마는 시간을 겪어서일까 그들은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지수와 재현. 자신의 자리에서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각개전투를 하던 이들은 하나로 뭉쳐서 자신들의 현실에 단단히 무장하고 당당하게 맞서고 있다. 지는 자들의 편에 서라고 했던가. 그래서 그들은 적극적으로 자신들을 옹호하고 나섰는지도 모를일이다. 따로 살아온 시간이 있으니 생각하니 것이 다르고 지금 현재 있는 곳이 다르니 당연히 행동이 다를 것이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상대방을 비난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그들은 서로 믿고 의지한다. 그래서 그 사랑이 흔들림이 없는 것이다.

 

그들의 사랑에는 다수의 피해자가 존재한다. 일단 지수만을 해바라기 하던 영우가 그러하다. 언제나 한발 뒤에서 그녀의 모든 것을 섬세하게 봐주던 그 남자. 그리고 지수와 재현 그들의 배우자들이 그러하다. 재현은 서경을 사랑하지 않았어도 서경은 아니었다. 그 남자가 자신을 봐주기를 늘 기대하고 바랐다. 단지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이 서툴렀을 뿐이다. 그것은 지수의 전남편 세훈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 준서와 영민. 언제나 엄마를 먼저 위하던 영민의 마음은 어떠할까. 아빠와 이혼한 것은 알았지만 자신이 싫어하는 가해자의 아빠를 엄마가 좋아한다면 충격이지 않을까. 준서는 더하다. 엄마와 아빠가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을 아는 아이는 언제나 피해자가 된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그들 때문에 아프고 힘들다면 그들의 사랑도 재고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둘만 본다면 이제서라도 그들의 사랑을 응원해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화양연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 내게 화양연화는 왔었는가. 갔었는가 아직 오지 않았는가. 아니면 바로 지금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