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현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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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도 둘째 치고 내용도 둘째 치고 딱 작가 이름만으로 이 책은 읽어보고 싶다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그런 작가가 몇 있다. 쉽게 말하면 믿고 보는 작가라는 뜻이다. 한 작품을 읽어보고 이 작가는 믿을만하다고 생각되어 그 작가의 작품을 찾아서 읽고 많이 읽었기 때문에 더 믿음이 가는 작가들이 있다. 바로 요코야마 히데오가 그런 작가이다. 내게는.

 

꽤나 두꺼운 전작 [64]에 비해서 이 책은 얇은 편이다. 476페이지가 무어 그리 얇으냐고 하겠지만 개인적인 체감은 그러했다. 거기에다가 어디선가 비추어지는 햇살까지 느껴지는 표지는 더 따듯함을 준다. 과연 이 책이 미스터리일까 라는 의심이 생길만큼 말이다. 원제인 노스라이트를 그대로 반영하는 표지이다.

 

아오세 미노루라는 건축가가 살고 싶은 집을 지어주세요. 저희는 신경 쓰지 마시고요. 아오세는 말했다. 제가 그러고 싶습니다. 언젠가 만들고 싶었습니다. 빛을 환대하고, 빛에게 환대 받는 집을.

 

의뢰인이 원하는대로 집을 디자인했다.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고 싶은 집을 이런저런 조건을 제시하기 마련이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건축가가 살고 싶은 집을 만들어 달라고 했었다.건축가를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것일수도 있겠지만 약간의 의심을 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실제로 의심도 했다.

 

그렇게 집을 디자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곳에 없었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어떠할까. 이런 경우에. 당연히 집이 완성되었고 당연히 그 가족들이 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살기는 커녕 이사를 한 흔적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본다면 전혀 상관없는 남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찾아 다닐 수 있을까. 아니면 그러려니 무슨 사정이 있겠거니 하고 넘겨 버릴까.

 

내가 읽었던 일본 소설에는 건축가가 몇번 등장을 한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라는 작품에서도 건축가가 주인공이었고 [염원]이라는 작품에서도 건축가가 아이 아버지로 등장을 한다. 이번 작품도 아오세라는 건축가가 등장을 한다. 그가 자신이 만든 작품에 의뢰인이 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의 행방을 그의 가족들을 행방을 찾아가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사건이 평면적이다. 그렇게 엽기적이지 않다. 주인공이 특정 사건들과 연관성이 없는 탓에 극적인 효과도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번역자은 읽기 쉬운 그런 작품은 아니었다고 하면서 산길을 걷는 것에 이 작품을 비유하고 있다.확 올라가는 때가 있다면 줄기차게 내려가는 길도 있고 구불구불한 맛도 있는 그런  산길 말이다. 큰 사건이 없는 탓에 자칫 밋밋하게 느껴질수도 있지만 이 작품은 그런 밋밋함조차도 강점으로 살리고 있다.

 

창가로 다가갔다. 사실은 들어오자마자 바로 그쪽으로 가고 싶었다. 가슴께에서 거의 천장 부근까지 크게 낸 북향 창. 커튼 줄을 힘껏 당겨 커튼을 젖혔다. 빛이 실내로 내려앉았다. 선도, 다발도 아닌, 지극히 엷게 짜낸 베일 같은 빛이 슬며시 실내 전체를 감싸 안았다. (88p)

 

원제인 노스 라이트는 검색해 보니 특별한 뜻은 없었다. 북쪽에서 비치는 빛일까. 그가 원하던 그런 빛. 집을 볼 때 남향이 제일 좋고 남향 다음이 동향이라고 들었었는데 지금 내가 사는 집은 남서향이다. 채광은 눈이 아플 정도로 들어오고 해 넘어가는 석양이 매일같이 장관인 그런 집이다. 노스라이트는 어떨까. 엷은 베일같은 빛. 그런 빛이 쫙  깔린다면 지극히 편안하고도 아늑한 집이 되지 않을까. 작가의 꼼꼼함과 진중함과 따사로움이 한가득 들어오는 노스라이트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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