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곡
윤재성 지음 / 새움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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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곡은 禾谷일까 火哭일까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1학년때까지 나의 유년시절부터 학창시절을 몽땅 화곡동에서 살았다. 서울에서는 화곡동에서만 살았으니 내 서울살이의 전부라고 해도 좋을 그곳이다. 많이 변했다. 오래전에 결혼식 때문에 갔었던 그곳은 내가 다녔던 교회가 없었다면 찾기 힘들 정도로 변했다. 그때로부터 또 많은 시간이 흘러버린 지금은 또 변했을 것이다. 땅이 기름져 벼가 잘되는 마을이라는 이름의 화곡. 단지 제목만으로 끌렸던 책. 표지에는 시뻘건 불길이 올라오고 있다. 이 책에서 의미하는 화곡은 어떠한 의미로 다가오게 될까.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남을 도우면 도왔지 해코지는 않고 살아온 인생이었다. 누구에게든, 무엇으로든, 이렇게 처참히 곤두박질칠 삶은 아니었다. 그날의 일들은 한바탕 꾼 악몽같았다. (26 p)


운이 없던 날이었다. 동생이 차려준 아침을 맛있게 먹고 그저 한바퀴 동네를 돌았을 뿐인데 도와줄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그 뒤를 봐주다 보니 알바에 늦었고 한두번이 아니다보니 잘렸고 돈도 십원 한푼 없어서 버스도 못 타고 걸어오던 길이었다. 집앞에 누군가가 있었다. 낙서를 하려는 사람인가 보다 하고 훈계를 하려던 참이었다. 그가 무언가 팩을 던졌고 한순가 불길이 일더니 얼굴이 사라진 채로 병원에 누워있었다. 


시작은 그랬다. 그저 평범한 가족이었다. 형과 여동생이 있는 삼남매. 형은 고시 준비를 하고 동생은 학교를 다니고 문제꺼리는 단지 형진이었다. 방화범을 잡는 경찰이 되고 싶었고 불을 끄는 소방관이 되고 싶었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겠다는 그에게 형은 학교나 제대로 가라고 했었다. 갑작스런 사건으로 인해서 그는 얼굴이 흘러 내린 화상환자가 되었고 동생은 죽었고 형은 그 와중에도 공부를 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내동생도 사촌동생도 화상을 크게 입은 적이 있어서 화상의 흉터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크게 베인 상처는 흉터를 남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큰 흉이 지게 만드는 것은 화상이다. 뜨거운 물이나 액체에 의해서 데인 화상도 어마어마한 상처를 남기는데 불에 직접 데인 상처는 이루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직접적으로 불길에 휩싸였던 형진의 얼굴을 상상해본다. 남들처럼 사회생활은 물론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제대로 치료도 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버린 화상의 흔적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얼굴을 보면 고개를 돌리게 만들었을 것이고 그로 하여금 사회에 속할 수 없게 만들었을 것이다. 거기다가 그로 인한 동생의 죽음까지. 얼굴의 상처와 마음의 상처. 두가지 복합적인 요인들로 인해서 그는 알콜중독자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노숙자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거기다가 전과까지 있는 그에게 갱생의 여지는 남아있는 것인가. 


그는 단지 동생의 복수를 하고 싶었다.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른 그 방화범을 잡고 싶었다. 처음부터 이 시도는 잘못되었다. 그가 분명히 보았던 범인이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그저 단순한 실수로 인해서 불이 난 것으로 종결되었다. 그가 아무리 직접 보았다고 해도 경찰들은 믿어주지 않았고 수사를 하려 하지 않았다. 그런 그들에게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원하겠는가. 


이미 끝내버린 사건을 다시 캐내는 것은 이 사회에서 누구라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는 직접 나서서 범인을 잡고자 하지만 쉽지 않다. 더더군다나 혼자의 힘으로, 엉망이 된 얼굴로 ,평범한 시민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법이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어낼 수 있을까. 


방화를 소재로 한 한국 장르소설은 소재부터 특이하다. 점점 스케일을 키워가는 이야기는 후반부에 들어서면서는 사뭇 장대함까지도 보여준다.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 어떻게 될까. 예전에 소방관들을 주인공을 했던 영화가 생각난다. <사이렌>과 <리베라 메>였던가. 그 이후로는 같은 소재로 한 영화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상상해본다. 이 이야기가 영상으로 만들어지면 어떻게 표현될지를 말이다. 정치와 범죄 그리고 가족에 대한 사랑까지 영화화 시키기에 충분한 소재들이다. 기대해봐도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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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신의 아이 1~2 세트 - 전2권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정민 옮김 / 몽실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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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기 위해 뭘 할지 생각하는 것은 머리지만, 무엇을 위해 살아갈지를 정하는 것은 어디까지 나 마음이다. (63p)

<돌이킬 수 없는 약속>, <천사의 나이프>, <악당>, <기다렸던 복수의 밤>까지 작가의 책을 많이도 읽어왔다. 기존의 책들이 사건에 중점을 두고 풀어나가는 사건 미스터리라는 형식을 취했다면 이번의 책에서는 그 행보와 결을 약간 달리한다. 

여전한 미스터리함은 그대로 살려두고 주인공의 감정과 인생에 조금 더 포커스를 맞춘 휴먼 미스터리라고도 볼 수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은 출생에서부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성장을 하면서 자아가 생기게 되고 그 이후로 사춘기를 거치면서 점차 자신만의 틀이 생기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은 사회와 환경과 가정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그 모든 것이 주어지지 않은 사람이라면 어떨까.

조직은 언제나 주요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윗선은 그대로지만 부리는 용도로 사용되는 밑의 사람들은 늘 바뀐다. 입맛대로 이용하고 이용가치가 없어지면 버린다. 그것이 조직의 생태다. 의리로 뭉쳐진 것이 조직이라고 했던가. 모두가 옛말일수도 있다. 

보이스피싱 회사를 운영하는 하나의 조직. 그곳에 많은 사람들이 전화기를 붙들고 주어진 대본대로 연기를 한다. 그 모든 시나리오를 만들어 내는 것은 미노루, 아니 그것은 같이 다니는 덩치 큰 친구의 이름일 뿐 자신의 이름은 아니다. 조직의 윗선에서 부르는 이름은 히로시. 십대 후반의 이아이는 비상한 지능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필수적인 교육도 받지 않았고 그 전에 호적이 없어서 이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조차도 주어져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아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뛰어난 지능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하기야 그 능력이라도 있어서 이렇게 이곳에서 붙어 있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 언제나 평안하라는 법은 없는 법. 조직의 세계에서 떨쳐나게 생긴 그는 결국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잘못으로 인해서 감옥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이 아이는 무엇을 배워갈 것인가. 

사회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지적 수준은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인 반면, 협조성이나 사람에 대한 공감성은 현저 결여되어 있다 - 라고 기록되어 있었다.(41p)

지적인 능력과 감성적인 면. 이성과 감성은 늘 상반되는 것 같으면서도 공존하는 것이다. 어느 한 부분이 빠진 인간은 정상적인 인간이지 못할 것이다. 물론 50대50으로 완전히 똑같은 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인간은 없다. 자신의 생각대로, 자신의 가치관대로 어느 한쪽으로 더 치우칠수는 있겠으나 기본적으로는 그 두상황을 모두를 비교하며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이다. 

히로시는 지적인 면은 퍼펙트할지 몰라도 그 외의 부분에서는 제로인 셈이다. 그런 그에게 이런 감정을 가르친다고 이해할수 있을까. 머리가 좋다는 것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과 동일 한 말은 결코 아닐텐데 이 아이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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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묻힌 거짓말 마틴 베너 시리즈
크리스티나 올손 지음, 장여정 옮김 / 북레시피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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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묻힌 거짓말을 다시 파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것이 파묻힌 사건일때는 더욱 어려운 일이 된다. '묻혔다'는 것은 범인을 잡지 못하고 묻혔을수도 있고 다른 잘못된 범인을 잡아 넣고 끝냈을수도 있는 일이며 범인도 알고 증거도 있지만 비리와 뇌물로 인해서 일부러 묻어 버린 것일수도 있다. 마지막 경우의 사건을 다시 꺼낸다는 것은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폭탄을 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누구도 그 사건을 다시 꺼내어서 진상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또다른 사건을 불러오게 만든다.


퇴근길 찾아온 한 남자. 그는 자신의 동생의 사건을 변호사에게 의뢰한다. 살인사건의 범인인 동생이지만 자신은 동생이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을 믿으며 무죄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벌써 몇달전의 사건이다. 거기다 동생은 이미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끝난 것이고 파묻힌 것이다. 그것은 이 남자는 다시 꺼내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한장의 기차티켓을 증거로 내밀면서 말이다. 


동생이 살인사건의 장소에 있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라지만 지정좌석제도 아니고 동생의 이름이 적혀진 것도 아닌 평범한 티켓으로 알리바이를 삼기란 불충분하다. 무언가 더 결정적인 것이 있어야 한다. 퇴근을 서두르던 그는 일단 한번 살펴보겠다며 남자를 보내게 되는데 이 의뢰를 과연 받아들이게 될까.


변호사 마틴 베너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 변호사 베너와 기자와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담담히 털어놓는 베너. 그는 자신이 이 사건을 조사하게 되면서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를 낱낱이 이야기하고 있다. 다섯건의 살인사건을 저지른 범인. 처음 조사에는 극구 자신이 저지르지 않았다며 범행을 부인하던 그녀가 두번째는 180도로 마음을 바꿔서 모든 것을 인정해버리고 말았다. 


정말 자신이 저질렀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에게서 무언의 압박을 받았던 것일까. 베너는 이 사건에 한발을 살짝 들여놓고 맛만 보려고 했지만 어느틈엔가 사건은 그를 쭈욱 빨아들였다. 조금씩조금씩 그를 집어 삼키던 이 사건은 결국 그를 몽땅 집어 삼켰다. 온몸이 빠져버린 그. 이제 남은 것은 단지 얼굴뿐이다. 이 얼굴을 잘 살려서 사건의 늪에서 빠져나올 것인가 아니면 얼굴까지 잠기고 자멸할 것인가.


오랜만에 만나는 스웨덴 소설. 익숙한 지명들이 반가움을 더한다. 범인의 자살, 누명, 사건의 재조사. 기존의 장르소설들과 비교해 보아도 그리 특별할 것 없이 보이는 이 이야기가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마도 일반적이지 않은 캐릭터 때문일 것이다.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해서 이끌어가는 범죄이야기. 나카야마 시치리의 미코시바, 마이클 코넬리의 미키할러는 모두 변호사가 주인공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시리즈다. 작가 크리스티나 올손도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변호사 베너를 만들었다. 


다른 변호사들과 비교한다면 일단 미국과 스웨덴을 모두 경험해서 좀더 넓게 볼 줄 안다는 점이 있고 죽은 동생의 딸을 입양해서 키울만큼 책임감도 있지만 여자 문제에 대해서 조금은 자유롭고 싶어했고 아마 이 사건이 끝난 이후로 여자친구이자 같이 일하는 루시와의 관계에도 변화가 올 것임이 틀림없다. 


사건을 맡아서 수사를 하는 변호사들은 거의 항상 대부분 위험에 놓여있다. 그것이 파묻힌 사건을 다시 꺼내어 수사를 하는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다. 자, 마틴 베너 시리즈는 이제 시작이다.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가. 참고로 1편의 이야기는 아직 완전히 마무리 되지 않았다.


젊은 남자 하나가 사무실로 찾아와 부탁들 했다. 죽은 여동생의 누명을 벗기고 사라진 조카를 찾아달라고 했다. 처음엔 마지못해서였지만 나중에는 내가 이 사건에 점점 빠져들었다. (4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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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열대어 케이스릴러
김나영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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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에 물을 담고 빨간물감을 조금 떨어뜨려봐. 약간 흔들어 주면 짜잔~ 붉은 열대어 모양이 완성되지. 지난 2년동안 병원에 누워있었다고 했다. 그건 이해할 수 있다 쳐도 그 이전의 기억조차도 나지 않는다. 뇌가 녹아버린 모양이다. 지금 29살의 나, 이서린의 기억은 25살에 머물러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의식을 되찾고 가장 먼저 마주한 얼굴은 간호사였다. 당연히 가족일줄 알았던 그 다음은 형사의 얼굴이 대신했다. 형사는 무엇이 생각나느냐고 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든 것이 중요하다는 소리다. 그러나 내 기억속에는 그 무엇도 들어있지 않다. 남편은 , 한태현은 어떻게 된 것일까. 


남편은 나와 함께 뛰어내렸다고 했다. 그 결과 병원에 오래 있게 된 것이라고. 그가 뛰어내린 그러니까 자살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형사는 그가 자신들이 살았던 곳에서 연쇄적으로 벌어졌던 세건의 살인에 대한 범인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결국 나는 모든 것의 증인이 되는 셈이다. 내 기억속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지만 말이다. 정말 그가 세명의 여자들을 모두 죽였을까. 둔기로 내리치고 목을 졸라서 말이다. 


한번도 남편을 의심해본 적 없습니까? (40p)


아내 이서린 남편 한태현, 그의 동생 한정호 동생의 애인 희주, 남편의 친구 강준성과 그의 동생 강윤성. 딱 여섯명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얼키고 설켜서 맞물려있다.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는 법. 사건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살인사건에는 반드시 그렇게 된 원인이 있다. 그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누구일까. 범인이 직접 그 원인이 이유라서 범행을 저지른 것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다른 어떤 요인이 더 있고 범인은 단지 그 원인을 해소하기 위해서 저지른 것일까. 


이야기 자체는 복잡하지 않게 꼬여있지만 그렇다고 느슨하지도 않다. 충분히 이해할만한 속도로 흘러가고 있다. 너무 빨리 휭하고 지나버려서 주위 경관을 전혀 볼 수 없는 그런 빠르기도 아니고 너무 느려서 속이 답답해질만큼도 아니다. 적당한 빠르기로 목적지를 향해 가면서 주변 경치까지도 충분히 즐길만한 속도로 움직인다. 


스케일이 마구 크거나 스펙터클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소재 자체가 우리가 너무나도 많이 보고 듣고 있는 것과 똑같기 때문에 충분히 공감요소가 만들어진다. 그렇게 생각할만도 하다고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초창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처벌을 받지 못한 않은 것이 어떻게 더 큰 사태로 커지는지 우리는 지금 한 가수의 사태를 보면서 잘 알 수 있지 않은가.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남의 육체나 감정을 상하게 하는 모든 사건들은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큰 바람일 것이다. 어른에게나 아이에게나 말이다.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선생들까지도 소녀가 '원인제공자'라고 더들었다. 결국 학교는 피해자인 소녀를 내몰았다. 가해자인 소년들에겐 용서라는 관용을 베풀면서.(17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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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 탄두리
에르네스트 판 데르 크바스트 지음, 지명숙 옮김 / 비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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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머니도 실은 통행증을 필수로 지참하고 다녀야만 할 사람이었다. 성명, 생년월일과 아울러 "당신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라면 가능한 신속히 이분의 곁을 벗어나십시오"라는 경고문이 명시된 통행증.(88p)


아이고 오마니! 이런 소리가 절로 나오는 엄마가 바로 여기 계신다. 에른스트의 엄마가 나의 엄마였다면 내가 매우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엄마의 1호 무기는 바로 밀방망이다. 누구든 한번 이상은 날라오는 것을 맞게 된다. 혹시 운 좋게 그것을 피했다 하더라도 2호, 3호가 언제나 더 준비되어있다. 그 다음에는 아마도 슬리퍼가 날아올 것이다. 


엄마는 무대뽀다. 그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거칠 것이 없으시다. 장애가 있는 아들을 데리고도 당연히 그 정신이 발휘된다. 우리아이가 장애가 있어요를 자랑스럽게 내밀며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철저하게 챙긴다. 어떻게 보면 눈살 찌푸릴 수도 있겠지만 작가는 유쾌하게 사건사건을 풀어 놓았다. 작가의 인생에 엄마가 없었더라면 너무나도 심심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엄마가 있었기에 작가는 이런 소설을 쓰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이야기. 자신의 엄마의 이야기. 자신의 가족들 이야기를 조금씩은 허구를 섞어서 더 크게크게 부풀려 놓은 이야기. 분명 조그마한 쌀 알갱이를 넣었는데 펑하고 튀어나온 것은 어마어마한 양의 뻥튀기처럼 말이다. 그래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말 그대로 즐거움이다. ㅋㅋㅋㅋ 이 표시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그런 퍼니함 말이다.


인도에서 여행가방 두개에 온갖 귀금속을 가득 담아서 네덜란드에 도착했다. 병원에 딸린 기숙사에 짐을 풀고 바로 간호사 근무를 시작한 엄마다. 인도 출신 엄마가 네덜란드에서 살아가면서 아이를 낳아서 키운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흔하게 보는 다문화가족의 이야기 같지만 성격 독특하신 엄마로 인해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사건들은 그야말로 우리나라의 인생극장같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방불케한다. 


어디서 이런 일들은 자주 벌어지는지 장애를 가진 아들을 데리고 낫게 해보겠다고 치유여행에 동반하는가 하면 연기를 하는 이모부에 아들을 달리기 선수로 키우기 위한 노력까지그야말로 억척스러운 엄마의 전형적인 케이스다. 


엄마는 아들에게 모든 것을 걸었다. 하지만 자식이라는 것이 언제나 엄마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그녀의 인생이 산산조각이 나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작은형은 무슬림과 결혼을 했는가 하면, 나는 학업을 중간에 포기했다. 게다가 아쉬르바트 형은 그 상태 그대로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을 터였다. (224p)


어머니의 또 하나의 꿈. 하지만 어머니의 어느 꿈도 실현되지 못하고 말았다. (258p)


엄마는 자기 자식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인도의 아이들까지도 챙기고 싶어하셨다. 가난한 나라. 아이를 업은 나이 어린 엄마들. 그런 아이들까지도 엄마는 다 돌봐주고 싶어하셨지만 끝내 엄마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니 그것은 너무나 원대한 꿈이어서 이루기 어려웠는지도 모르겠다. 그 엄마의 꿈을 작가인 에른스트가 이루어주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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