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살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5
나카마치 신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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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런 작품이 빛을 받지 못하다니 안타까웠다. 그리고 이제서라도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에서 모든것을 다 알려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속았다. 그것도 아주 보기 좋게 속았다. 이런 속음은 즐겁다. 다음에도 또 속고 싶은 느낌마저 드는 그런 느낌이다.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을 어서어서 보고 싶다. 천계살인. 그 작품도 이 작품처럼 제목이 스포이려나. 누군가는 모든것을 다 유추해버릴수도 있지만 그 유추함을 또 한번 넘어서는 그런 작품이다. 나카마치 신 기억해두겠다.

 

자그마치 73년도 작품이다. 71년에 완성해서 73년에 책으로 나왔던 작품. 너무 시대를 앞질러 간 것일까. 그 때 당시에는 오히려 인기를 끌지 못하고 수십년이 지난후에야 주목받는 작품으로 다시 나왔었다고 하니 그 작가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생각해보게 되기도 한다. 아마 신인상을 수상해놓고 그 후 작품을 모두 퇴짜를 맞았던 주인공 사카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런 작가의 마음이 투영되어 있는 주인공일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의 죽음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청산가리를 마시고 자신의 집에서 창문으로 뛰어 내린 어느 작가의 죽음.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작품이 쓰이지 않아서 직접 자살을 한 케이스로 보이기에 딱 좋았다. 더군다나 집은 어디 한군데 다른 사람의 침입이 있을래야 있을 수 없는 밀실이었다. 이것이 사건이라면 그야말로 밀실살인사건이 되는 것이다. 다른 추리소설과는 다르게 이 책에서는 형사나 경찰이 등장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사건을 자살로 마무리 했을뿐 더이상의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단 두명의 다른 사람이 등장을 해서 문제를 해결해 간다. 그것은 사카이의 선생의 딸이자 그의 연인이었던 아키코.  또 한사람은 그의 사건을 르포로 쓰려는 작가 쓰쿠미이다. 그들 둘의 관점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날짜순대로 차례대로 기술되어져 가고 있다. 한번은 아키코의 입장에서 사건을 조사하러 가고 한번은 스쿠미의 입장에서 조사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날짜로 분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혼동스럽거나 하지는 않다. 시간을 거스르는 것도 아니고 차분히 시간의 흐름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아주 큰 잘못이라는 것은 한참 후에야 알았지만 말이다.

 

전체적으로 급박한 이야기는 전혀 없다. 서술트릭의 매력이기도 하다. 이미 사건은 저질러졌고 그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이다. 누군가 다른 사건을 저지르려고 미친듯이 따라오는 것도 없고 그럼으로 인해서 긴박하게 읽어야 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미친듯이 읽어지는 속도는 어떻게 따라잡을 것인가. 스릴이 없는 것 같은데도 스릴이 느껴지고 속도가 없는 것 같은데도 마구잡이로 달려가게 된다.

 

두사람의 이야기에 빠져서 정신없이 읽다보면 어느새 책의 반을 후딱 넘어가 있고 정신 차리고 보면 끝페이지를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만큼 뛰어난 가독성을 자랑하는 이 책은 도저히 73년이 배경이라고 느낄수가 없을 정도로 그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지는 않다. 물론 전화교환원이라던가 하는 몇개의 단어를 보면 요즘 시대와 조금은 다르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딱히 꼭 그 당시만을 지칭하는 사물이나 상황이나오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것 같기도 한 그런 이야기이다.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속고 눈을 뻔히 뜨고 있으면서도 속은것을 마술이라고 했던가. 이 책은 나에게 마술과도 같은 그런 소설이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에게 마음을 빼앗겼고 어디로 가버렸는지 모르게 시간을 빼앗겼다. 그러나 그런 빼앗김이 조금도 아깝지 않다. 오히려 더 많이 빼앗기고 싶을 뿐이다. 바로 다음 이야기를 읽고 싶어서 안달복달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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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시 - 한시 학자 6인이 선정한 내 마음에 닿는 한시
장유승 외 지음 / 샘터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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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시. 그냥 아무 생각없이 읽다 보면 하루에 하나의 시를 읽으라는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틀린 표현은 아니다. 단지 그 시가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詩가 아니라 漢詩일뿐이다. 한시도 시의 범위에 들어가니 당연히 하루에 하나의 시라는 개념 설명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사실 시라는 장르는 생각보다 굉장히 마니아적인 장르다.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에세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적어 놓은 글이 많아서 편안히 읽히고 공감도 많이 할 수 있으며 소설 같은 경우는 몇 장르를 제외하면 그런대로 쉽게 재미나게 읽히는 장르다.
 
하지만 시라는 장르는 장르의 특성상 축약도 많고 은유적인 표현도 많다. 그러므로 인해서 이해하기 어렵거나 해석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진다. 한때는 시를 소설처럼 풀어서 길게 쓴 시도 유행을 했었는데 요즘의 시의 트렌드는 정확히 어떤지는 모르겠다. 전에 영시를 읽어본 적도 있긴 한데 한국말로 된 시도 어려우니 영어로 쓴 시도 당연히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골랐던 시들이 그나마 이해하기 쉬운 시들이어서 오히려 읽히는대로 그대로 이해할 수 있어서 더 쉽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그렇다면 한시는 어떨까. 일단은 기본적으로 한자로 쓰여있다. 그럼 중국시인가 할텐데 여기서 우리 역사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가 한글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한자를 썼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더군다나 예전 조상들중 양반들은 한자어를 익히고 쓰는 것이 자신들의 특권인양 여기기도 했었다. 한자어가 워낙 많고 까다로우니 아무나 배울 수 없었고 배우기도 쉽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예시이기도 하다. 양반이 아닌 사람들은 한자어를 쓸줄 몰랐으니 말은 하되 읽거나 쓸수는 없었던 것일까.
 
그 당시 사람들이 했던 말도 궁금하긴 한다.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은 글씨를 쓰는 시스템이지 말하는 시스템은 아니었는데 그렇다면 그 당시 사람들이 말하던 것도 한자어가 아닌 한국말이기는 하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유추해 보면 말은 한글, 글자는 한자 이렇게 나누어져 있었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그러므로 여기에 적힌 한시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면서 학자가 많은 편이다. 추사 김정희나 다산 정약용, 퇴계 이 황같이 우리가 이름만 대면 쉽게 알수 있는 사람들이 지은 시도 있고 장유, 이달 처럼 이름을 불러줘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를만한 사람들의 시도 있다.
 
지은이나 추천한 사람별로 시를 묶은 것이 아니라 하루라는 시간을 기준으로 해서 각 시간에 맞는 시들을 편집해 두고 있어서 다양한 시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잇다. 시, 더군다나 한시가 거기서 거기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수도 잇겠지만 읽다보면 어떤 한자어를 썼는지 또는 어떤 배열로 해서 본문 내용을 구성하고 있는지가 작가마다 다 다르다. 원래 한시는 네구절 또는 여덟구절이지만 본문에서는 편의상 두구절이나 네구절만 골라 뽑고 있다. 길지 않다. 짧은 호흡으로 한 문장씩 끊어 읽기 좋다. 한자어를 몰라도 좋다. 한글로 다시 풀어 놓은 글을 읽노라면 무슨 뜻인지 알수 있기 때문이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모르는 한자어가 많아서 소리내어 읽을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해석이 있었어도 시라는 것은 읽는 맛도 있는 법인데 한자어 밑에 소리나는대로 음을 적어 두었다면 훨씬 더 좋지 않았을까. 어려운 한자어도 있고 잘쓰지 않는 한자어들도 있어서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모르고 그냥 위에 설명되어 있는 뜻만 파악하고 지나간 시들이 많아서 아쉬웠다. 하나하나 찾기도 만만치 않은 일이라 찾기도 어렵다.
 
한 편의 한시를 두고 추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어두는 구성이다. 개인적으로는 '내 새끼들을 위하여' 라는 제목이 붙은 한시가 뭉클했다. 한자어로도 이런 마음을 표현할수가 있구나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냥 한자어 하나하나를 두었을뿐 인데 이런 문장으로 이루러지다니. 한자어도 나름 조사가 있고 동사가 있고 명사가 있을테지만 그냥 단어 하나씩으로만 알아온 나에게는 신기한 일로만 여겨졌다. 아마도 중국어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좀더 익숙하게 여겨졌을지도 모르겠다.
 
네개의 구절로 이루어진 구절을 해석하면 이렇게 된다.
 
농가의 젊은 아낙 먹을 것 떨어지니
빗속에 보리 베어 풀섶 사이 돌아오네
생나무 습기 먹어 연기조차 일지 않고 들어서자
아이들은 옷길 끌며 우는구나.
 
어려웠던 당시의 상황의 절절함을 나타내준다. 박동욱박사는 이 시를 설명하며 식당에 들어온 엄마와 아이들이 자장면을 한그릇만 시키는 장면으로 예를 들어주고 있다. 갑자기 [우동한그릇]이라는 책이 떠오르는 시점이다. 어느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엄마는 아이들을 먹이기 위해서 먹여 살리기 위해서 애쓰고 있었구나라는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새삼 다시 한번 뭉클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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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백 모중석 스릴러 클럽 21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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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손에 들고 줄기차게 달려 세시간 반을 읽고 제일 마지막 장을 덮는다. 이게 스릴러를 읽는 참 맛이다. 시간이 없을때 책을 잘라 읽어야 할 때는 스릴러라는 장르를 보고 싶어도 포기하는 편이 낫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잘라읽기의 좋은 점은 이전까지의 흐름을 다시 파악해야 하므로 복습을 할 수 있어서 좋다. 찬찬히 반복해서 읽어볼때도 있다. 하지만 그 흐름을 타서 재미가 있어질만하면 다시 끊어두고 다음을 기약해야 한다.

 

한번에 죽 내쳐읽기의 장점은 그야말로 속도감이다. 한번 익혀놓은 주인공들을 바탕으로 더해지는 새로운 인물들을 추가해가면서 내처 달리게 된다. 주인공이 궁지에 처할때면 심장박동이 빨라지기도 한다. 더군다나 이 책은 온전히 주인공의 입장에서만 쫓아갈 수 있으므로 그 긴박감은 훨씬 더하다. 내가 주인공이 된 것마냥 느낄 수 있다. 그 어떤 다른 힌트조차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가 나고 내가 그다. 과연 이 싸움에서의 승리자는 누가 될 것인가.

 

결백. 단 두글자. 주인공의 결백을 밝히는 것인가. 주인공이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다는 식의 이야기는 많이 쓰여왔다. 얼마전 읽었던 요네스뵈의 [아들]도 그런 스토리를 기반으로 그 위에 덧붙여진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제이컵을 위하여]나 [리뎀션] 같은 작품도 그랬었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인 맷 헌터는 아니다. 그는 사람을 실제로 죽였다. 단지 그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젊은 나이. 술 취한 상태. 친구가 얻어맞고 있는 것을 본다. 그냥 그대로 도망쳤거나 신고를 했으면 좋았을 것을 친구가 뻗을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던 그는 자신의 어깨를 친 그 사람의 목을 겨냥해서 잡고는 같이 뒹군다. 머리 뒷부분을 그대로 땅에 찧은 그사람은 사망하고 맷은 살인죄로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과실치사로 보석으로 풀려날 것만도 같은 사건이지만 아마도 일단은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4년형을 받게 된다. 앞부분의 설명은 잠시뿐 그이후 9년이 흘렀다. 전과자에게 누가 일을 시켜줄까 하지만 그에게는 형이 있었고 그래서 형 밑에서 일을 할 수가 있었다. 또한 지금 그에게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이제 막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상태다. 오랜동안 기다린 아이니만큼 그들의 기쁨은 더욱 컸을 것이다. 이제부터 더욱 행복할 날만 기다리면 되는 그들에게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일 때문에 출장을 간 그녀, 올리비아에게서 한통의 사진이 맷에게 보내진다. 화질이 좋지않아 잘 보이지는 않지만, 머리색은 다르지만 확실히 맷은 올리비아인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녀의 앞을 가리고 선 남자. 올리비아는 대체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맷은 잠시 패닉에 빠지지만 올리비아에게 확인을 하기 위해 전화를 건다. 당연히 올리비아는 전화를 받지 않고 그녀의 소재 파악을 위해서 회사에 전화를 걸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녀가 어느 호텔에 머무르는지 알 수가 없는 사실뿐이다. 맷은 그녀를 믿는다. 이제 막 자신들의 아이까지 생긴 참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그녀는 그 몰래 언제부터 이런 생활을 해온 것일까. 맷은 이제 아이의 존재까지도 의심을 하게 된다.

 

사고였고 실수이긴 했어도 한 사람의 생명을 뺏은 맷. 그 사건으로 인해서 죄값을 치루긴 했지만 자신의 동네를 떠나서 살아야만 했던 그였다. 이제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고 자신의 동네로 다시 돌아오려고 한다. 그 동네에 계속 살고 있던, 그의 사건을 아는 사람들은 그를 환영해줄까. 아니 환영은 못해주더라도 그들이 그곳에 사는 것을 달가와할까. 전과자라는 낙인이 새삼스럽게 무겁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이야기가 정리될 만하면 새로운 사람의 등장으로 인해서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이야기가 무슨 관련이 있을까 하면 틀림없이 그 끝에는 내가 알고 있는, 앞에 나왔던 사람과 연결된다. 그 고리고리들은 서로서로 연결되어서 마지막에는 이야기라는 아주 긴 하나의 체인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 체인의 끝에는 누가 남아 있을까.

 

이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귀결되어 질것인가. 맷은 올리비아를 찾을 수 있을까.  올리비아는 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일까. 결백은 누구의 결백을 의미하는 것일까. 쉴새없는 몰려드는 사건의 파도에 흠뻑 몸을 적시고 빠져볼 시간이다. 단 파도가 몰려오는 것이 끝나면 반드시 육지로 돌아올 것을 잊지말것. 그 속에 계속 빠져있다가는 할런코벤의 세계에서 현실속으로 돌아오기 힘들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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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시간의 한국사 여행 1 - 도전과 응전, 새 길을 열다, 선사 시대에서 고려까지 36시간의 한국사 여행 1
김정남 지음 / 노느매기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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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은 어렵다. 하지만 재미있다. 역사책도 어렵다. 하지만 재미가 없다. 아마도 역사를 싫어하는 사람들이이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생각일 것이다. 그런 것을 예측이라도 하듯이 가능하면 쉽고 재미있게 역사를 읽으려는 사람들을 겨냥한 책들이 마구마구 쏟아지고 있다. 그런 책들로 통해서 흥미도 가지게 되었고 적어도 내 나라에 살고 있으면서 내나라 역사정도는 알야야 하겠다는 생각에 그런 책들을 더 열심히 읽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국사'라는 과목이 필수과목에서 빠지면서 학생들은 역사를 등한시 하게 도었고 그러므로 인해서 자기들이 살고 있는 이 나라 대한민국의 역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그런 아이들에게 역사적 주체사상이라는 것을 강조해봐야 따분하고 지루하기 마련이다. 다시 필수과목이 되면서 어느 정도 조금은 역사에 대해 알게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정말 재미있어 하는 아이들을 빼고는 어렵고 지루한 것도 맞는 말이기는 하다.

 

이 책은 그런 한국사를 36시간이라는 틀안에서 펼쳐 놓았다. 정확하게 시간을 따져서 36시간이 아니라 하나의 챕터를 한 시간으로 묶어서 한 권당 12시간 총 세 권 즉 36시간이라는 틀 안에서 한국사를 풀어 놓는 방식이다.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거나 빨리 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괜찮은 방식이라 할 수 있겠다. 저자는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다. 그런 강점이 글에서도 배어 나온다. 자신의 아이들에게 읽히려는 생각으로  쓴 것처럼 요목조목 설명을 잘 해두었다.

 

역사라는 것 자체가 한자어가 들어 가지 않으면 설명이 어려운 만큼 한자어를 풀어가며 설명을 해주고 있어서 한자어를 몰라서 역사에 흥미를 가지지 못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더욱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겠다. 필수과목으로 지정을 하지 않으면 공부를 하지 않는 그런 생각은 버려지면 좋을텐데 필수과목들이 워낙 많고 하니 그렇지 못한 과목들은 뒤로 밀리게 마련이다. 국사나 한자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과목을 다 잘해야지만 계속 공부를 잘한다는 칭찬을 들을 수 있는 시스템인 한국의 교육이 문제이긴 하지만 나도 그렇게 자라왔고 지금의 아이들도 그렇게 자라나고 있다. 나중의 아이들은 어떠할까.

 

이 책은 선사시대부터 고려까지의 시기를 다루고 있다. 워낙 방대한 조선의 이야기들은 다른 책으로도 많이 읽었던 터라 안 그래도 앞쪽의 이야기가 궁금했는데 나의 요구를 딱 맞춰주기라도 하듯이 1권부터 볼 수 있어서 안성맞춤이었다. 선사시대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학교 다닐 때 배웠던 구석기,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 철기시대를 거쳐온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 지겨울 법도 하지만 오랜만에 보는 이야기들은 오랜 친구를 만나 옛이야기를 듣는 듯이 반가왔고 술술 잘 읽혔다.

 

또한 우리나라 정세뿐 아니라 그 시기에 한국을 둘러싸고 있는 중국이나 일본의 정세도 같이 말해주고 있어서 왜 그렇게 그들이 계속 전쟁이나 싸움을 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앞쪽에서는 시각적 자료인 사진이 좀 나오는 편이고 삼국시대를 가면서 사진 자료보다는 지도가 많이 나오는 편이다. 그 지도들도 다 예전에 익히 보던 것들이라 나에게는 익숙했지만 모르는사람들이 보면 또 관심을 가지고 볼 수도 있겠다.

 

학교 다닐때의 시절을 되새기며 다시 읽어보고 싶은 사람 또는 역사에 대해서 누군가 선생님이 설명하듯이 풀어주기를 원하는 사람 또는 이제부터 한번 우리나 역사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알아보고 싶다 하는 사람들이 처음 시작하는 책으로 읽어주면 좋을 책이다.

 

이 책은 몽실서평단에서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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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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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의 강점은 읽는 사람이 직접 그 사건에 뛰어 들어 범인을 찾는 그 짜릿함을 맛보는데 있다. 대부분의 경우 독자들은 작가들의 트릭을 꿰뚫지 못한다. 그것이 또 매력이기도 하다. 남들도 다 아는 트릭을 써버린다면 그 책을 읽는 의미는 반감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범인이 누군가를 알아내는 순간 사건을 이루고 있던 팽팽한 긴장감은 일시에 풀어지고 만다. 하지만 마지막 장에서 작가는 독자들의 뒤통수를 친다. '그런데 그 사람은 잡았습니까?'

 

사실 장르문학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누구인지 짐작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두개의 이야기가 교차되는 스타일. 한 사건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나오고 다른 한 사건에서도 다른 사람의 이름은 거론되지만 정작 주인공의 이름은 '그'라는 존재로만 말하고 있을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이 사람이 누구였다는 것을.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난 이후에 '아~' 하고 아쉬움의 감탄사를 내뱉어봐야 이미 늦었다.

 

누쿠이도쿠로. 이름은 이미 익숙하다. '미소짓는 남자'라는 작품을 봤을때도 그랬고 '신월담'의 표지를 봤을때도 그랬다. 공교롭게도 모든 작품들을 표지만 보았을뿐 실제로 읽지 못해서 이 작가와의 만남은 이후로 넘어가다보다 했었는데 이렇게 첫 작품으로 보기를 잘했다 싶다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 또한 자신의 작품을 안 읽은 사람들이라면 이 작품을 먼저 보아주길 원한다고도 적혀 있다. 첫 작품이라 설렁설렁 할 것이라는 선입견은 접어 두는 것이 좋다. 어린 아이 그것도 여자아이 유괴, 그것을 연쇄적으로 풀면서 사건은 긴박감을 절대 잃지 않는다. 상상 그 이상이다.

 

한 여자아이의 유괴사건이 살인사건으로 종결되면서 경찰들은 바빠진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아이를 데려갔으며 또한 어떤 이유로 이 아이를 죽인 것일까. 모든 인력이 투입이 되지만 사건은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이 하나의 사건은 또 다른 여자아이가 사라지면서 더욱 혼란에 빠지게 된다. 사건을 풀어내면서 경찰서 안에서 벌어지는 권력 다툼이라던가 또는 개인의 이야기를 접목시키고 있어서 경찰이기 이전에, 사건을 풀어나가는 사람이기 이전에 그들도 그 곳을 벗어나면 평범한 인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이의 시험을 걱정한다거나 또는 부인과의 관계가 좋지 않다거나 하는 사사로운 일 같지만 그들의 인생속에서 이런 사건들을 제외하고 본다면 가장 큰 일 중에 하나인 것이다.

 

평면적인 두가지 사건이 있다. 그 하나가 경찰의 입장에서 그리는 아이유괴사건이라면 나머지 한 이야기는 피해자 입장을 그리고 있다. 딸아이를 잃어버린 한 아버지. 그 유괴사건의 피해자인지는 알 수 없지만 딸의 죽음으로 인해 뚫려버린 구멍을 메우기 위해 종교에 의지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그가 처음부터 종교에 의지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한번의 실패 후 자신이 직접 나서서 종교단체를 찾게 되었고 그곳에서 자신의 딸을 찾을수 있다는 말도 안되는 신념에 빠져버린 것이다.

 

평면적으로 평행성을 달리면서 죽 나름대로 자신의 길을 가던 두 이야기는 어느 한 시점에서 교차점을 이루면서 합해졌고 그 점을 계기로 입체적인 도형으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과연 딸을 잃어버린 아버지는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마음을 달랠 수 있으며 경찰들은 몇 건의 실패를 거듭한 후에 범인을 잡을수가 있게 되는 것일까. 慟哭. 아주 큰 소리로 서럽게 우는 것을 뜻하는 단어이다. 아마도 딸을 잃은 아비의 심정을 대변하는 한 단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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