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퐅랜,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우린
이우일 지음 / 비채 / 2017년 12월
평점 :
아침이면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길을 따라서 등교를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내린 비, 나는 우산이 없어 허둥지둥 하지만 아이들은 그저 당연하다는 듯 그 비를 맞으며 걸어간다. 일상생활이라는 소리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지나니 미친듯이 쏟아지는 비는 조금씩 그치기 시작한다. 오클랜드의 일상이었다.
작가 역시 날씨 이야기로 시작한다. 일년에 대부분 비가 오는 포틀랜드. 자신과 가족들은 처음 우산을 썼지만 딸을 처음으로 하나둘씩 우산을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이방인들만 우산을 쓸뿐 정작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저 일상이라는 듯이 비를 다 맞고 다닌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어느순간 내가 겪었던 장면들이 생각났다. 영화의 장면이 오버랩되는 듯이.
미국 오리건주의 작은 도시 포틀랜드에 어느날 문득 날아가서 정착을 한 작가와 가족. 가족들이라고 해봐야 자신과 같은 일을 하는 아내와 딸이 하나. 이 세명의 가족은 가장이 끄는대로 새로운 환경에 던져졌다. 일때문에 이사를 간 것도 아니고 자녀의 유학때문에 이사를 간 것도 아니다. 단지 새로움을 추구하고 싶었던 작가의 바람이었고 같은 일을 하는 아내는 그 마음을 너무나도 이해를 잘했던 것이었다. 부창부수라고 해야 하나. 누구 하나라도 반대를 한다면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샤로움을 추구해야 새로운 그림과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일까. 이해는 할 수 있지만 나로써는 조금 어려운 결정이라 할수 있곘다. 어디 한번 잠간 나갔다 오는 것으로도 한참을 이것저것 따져봐야 하는 성격이니 말이다.
작가가 퐅랜에 사는 동안 자신이 겪었던 생각과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와 가족들의 이야기까지 줄줄이 이어진다. 노빈손 시리즈를 비롯해서 여러 책을 낸 작가답게 이야기는 아주 재미나게 펼쳐진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힌다.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는 것이 절대 쉽지않다는 것은 누구라도 다 알고 있지만 살아보는 것과 여행하는 것은 다르다고 했던가. 살아가는 이야기는 훨씬 더 소소한 재미를 전해준다. 피식거리는 웃음과 새로운 정보들을 읽는 것은 또한 여행가고 싶은 욕구를 불러 일으킨다. 여행을 간다고 이 모든 것을 경험할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더 익숙한 삶을 살아볼 수 있지 않을까.
포틀랜드. 유명한 관광지도 아니고 큰 대도시도 아니다. 그러니 당연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한다. 더군다나 그런 지역이다보니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동양권 사람들을 찾아보기도 힘든 그런 도시다. 그래서 더욱 낯설음의 재미를 준다. 포틀랜드의 독창성은 그 나라 자체에서도 유별나다고 한다. <포틀랜디아>라는 시트콤까지 제작될 정도로 독특하다니 인정하고 남음이 있다.(79p)
비가 내리는 날이 대부분인 퐅랜에서 날씨가 좋은 여름날은 축제의 향연이다. 각종 축제가 계속해서 연달아 벌어지고 하루에도 몇개의 축제들이 동시에 펼쳐지기도 한다니 그야말로 어디를 가야 할지 결정하기 어려울 지경이라고 한다. 조는 것을 환영한다는 조용한 음악 페스티발도, 누드로 자전거를 타는 축제도, 가짜영화제도 모두 가보고 싶을만큼 재미나보이고 독특하기도 하다. 날씨 좋을때 퐅랜에 간다면 여러가지 축제를 미리 찾아보고 참여해보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겠다.(166p)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책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한다는 것이다. 도서관이나 헌책방, 서점. 그런 곳을 구경하다보면 하루가 모자라다. 퐅랜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책방의 공기에는 마치 환각제가 섞여 있는 것만 같다.(182p) 차이나타운의 입구에 있는 서점에 들르기를 좋아한다는 작가는 그곳의 분위기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이해가 된다. 또한 책을 바로 뽑아준다는 에스프레소 북머신도 궁금하다.
무엇이든 모으기 좋아하는 콜렉터인 작가와 무엇이든 버리기 좋아하는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작가 아내. 극과 극을 달리는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 또한 읽는 재미를 준다. 그들이 딸을 키우는 방법 또한 보통의 학부모와는 또 다르다. 퐅랜에 있으면너 한국의 아이들과는 다르게 아빠를 따라서 누드크로키도 그리러 다니고 자신의 그림과 글을 모아서 책도 만들어 내고 마침내 유럽의 학교에 입학원서를 내고 그곳으로 공부하러 간 딸 은서. 그 아이가 한국에 있었다면 아마도 제도화된 그림만 배우지 않았을까. 한국의 교육과정에 대해서 또 한번 비판적으로 생각해보게 되는 순간이다.
일년에 대부분을 비가 온다는소리에 처음에는 약간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던 퐅랜. 날씨에 따라서 민감해 하는 사람이라면 처음에 거부감이 들수도 있겠지만 그곳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나가는 작가의 이야기에 또 솔깃해질 것이다. 작가처럼 오랜시간 살아본다면 더욱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니 이렇게 책으로 간접체험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그곳을 잠깐 여행해도 살아본 듯한 느낌을 받지 않을까.
각 장마다 달려있는 ps.는 재미를 줄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유용한 정보를 주므로 더욱 유용하다. 마지막에 들어 있는 포틀랜드 일러스트 또한 마찬가지다. 자전거로 한바퀴 돌아보면 충분한 작은 도시 퐅랜.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어진다. 한번이 아닌 적어도 두번. 비가 오는 우기에 한번 그리고 비가 오지 않는 쨍쟁한 날씨에 한번. 적어도 그렇게 두번을 가봐야 퐅랜의 진정한 매력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