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5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8년 6월
평점 :
하라 료의 책을 읽는 법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시간과 장소를 선택한다.
책을 손에 든다.
읽는다.
-----------------------------
이 조건이 수행되지 않는다면 그의 책을 읽는 참맛을 느끼기 힘들 것이다. 즉 진득하니 꾸준히 읽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는 것이다. 스릴러처럼 휙휙 마구 페이지가 넘어가는 그런 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재미가 없어서 이해가 안되거나 그래서 속도를 늦춰서 다시 읽거나 해야 하는 그런 분야도 아니다. 그저 꾸준히 그리고 끈질기게 그렇게 사와자키의 뒤를 따라가다 보면 입에 씹고 있던 무언가에서 즙이 나오듯이 그 진미가 살아난다는 말이다. 그런 밀어붙이는 맛이 있는 책이다.
시즌 2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내가 죽인 소녀], [안녕, 긴 밤이여]까지 세 작품을 묶어서 시즌 1로 구성한 작가는 같은 주인공을 대상으로 같은 배경을 대상으로 시즌 2를 기획해냈다. 연장선 상에 있다. 굳
이 시즌 2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시즌 1 뒷 이야기 그 다음 이야기라도 이해할수 있을 듯 한데 굳이 작가가 시즌 2라고 이름을 새롭게 붙인 데에는 급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사이 9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버린 것이 가장 큰 이유일수도 있겠다. 그동안 사와자키 탐정은 어떻게 변했을까.
자신을 이쪽길로 이끌어 낸 동료 와타나베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사무소. 아직도 와타나베를 찾는 사람은 심심치않게 있다. 그가 이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지금에도 말이다. 물론 사무소 이름을 보고 그렇게 찾는 사람도 있지만 여전히 그와 관련된 인물도 있는 까닭이다.
사무소를 새롭게 꾸며야 겠다는 생각만 벌써 몇년째, 한 해의 마지막 날 사무소를 여는데 메모지가 한장 팔랑거리고 떨어진다. 무심한 사와자키는 신경도 쓰지 않고 일단 자리로 돌아와 앉는데 어느틈엔가 쪽지의 주인이 나타난다. 급하게 와타나베를 만나고 싶다는 여자. 머리로 하나로 야무지게 묶은 그녀는 이십대로 보이지만 그보다 훨씬 더 어려보이기도 한다.
그녀는 자신의 아빠를 구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은행총격사건으로 총을 쏘았고 그 사건의 범인이라고 아빠가 자수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무슨일이 있거든 와타나베를 찾으라고 평상시에도 이야기를 했다는데 알고보니 불량청소년으로 이름 날리던 그녀의 아빠에게 와나타베는 폭력단에 들어가라고 충고를 했었단다.
그 말을 그대로 들은 십대의 그녀의 아빠, 이부키 데쓰야는 실제로 폭력단에 들어가 조직 생활을 했다는 것. 그 이후 손을 씻고 지금은 요릿집 주인을 하고 있지만 전력을 들어보면 꼭 그가 그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말할수도 없는 듯 하다. 은행사건의 진범은 누구인가.
그녀의 아버지를 면회할 수 있다는 전화를 받고 사와자키와 그녀는 급하게 경찰서로 이동을 한다. 이 와중에 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은행에서도 일어난 총격사건. 그녀의 아버지를 이송하는 와중에 일어난 총격사건. 사와자키는 이 사건의 목격자이자 이 사건을 막아보려고 교통사고를 일으킨 당사자이기도 하다.
분명 은행에서의 총격사건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점점 가지를 치고 뻗어나간다. 그와 함께 그날 그 시간에 은행에서 사라진 90대 노인의 행방도 묘연해진다. 총격사건과 유괴사건은 어떤 연유로 이렇게 하나의 짝이 되어 같이 묶여 버린 것인가. 그것은 의도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적으로 우연에 의한 것이었다. 사방에 가지를 치고 뻗어나가는 사건들이지만 그 와중에 우연히 이렇게 묶여버리는 사건도 있는 것이다. 하나의 사건은 이제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한다.
하라료의 책을 읽기 전 반드시 제일 앞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미리 파악해 둘 것. 이름과 그들의 간략한 설명만 알고 시작한다 하더라도 훨씬 더 재미나게 이야기를 읽을수 있는 지름길이 된다. 굳이 지름길을 두고 멀리 돌아가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부디 평안히 가시길.
작가는 이 작품을 내고 오래지 않아 그 다음 작품을 우리에게 보여주겠노라고 약속을 했다. 그 다음 이야기가 또 기대가 된다. 우직한듯 충성스러운 듯 그러면서도 사건을 물고 다니는 사와자키. 경찰에 척을 지는 듯, 자신의 실속을 챙기는 듯, 약자의 편에 서는 사와자키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맺는말을 대신하여 나오는 아주 짤막한 이야기는 작가가 우리에게 주는 하나의 덤이라 느껴진다. 그것마저도 재미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