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본어로는 어떻게 읽힐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책을 일본어로 번역했다.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고 하면서 질 좋은 오징어를 씹듯이 몇번이고 되새기는 재미가 있는 글이라고 했다. 분명 한글로 적혀 있지만 짧게 끊어져서 연결적인 의미가 종내 잡히지 않는 이 모호함을 일본어로는 어떻게 풀어내었을까. 이 책을 번역한 하루키의 책을 다시 번역해서 그 책을 접해보고 싶다. 이 번역본과는 차이가 있을까.
2. 가지각색의 이야기들.
표제작인 <마지막 순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들>을 포함해서 아주 짧은 단편들이 소복하게 들어 있다. 퐁 17개의 이야기들이다. 단 두장밖에 되지 않은 짧은 이야기들로부터 몇장에 이르는 이야기들에 이르기까지 분량도, 소재도 다양한 저마다의 이야기들.
전남편 이야기가 처음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이 책이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였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하게 된다. 작가 이력을 미리 읽고 난 이후라서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나 다른 어떤 주인공의 이야기가 나오면 아마도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주인공에게 투영시켜서 글로써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랬을까.
<나무에서 쉬는 페이스>라는 제목의 이야기는 대화체로 이루어진 이야기가 많이 등장을 한다. 그런게 그 이야기는 널을 뛰듯이 급작하게 주제변화가 일어난다. 가령 이런식이다. 생계는 어떻게 해결해요? 프랑스어 선생님? 이라고 묻자 필리핀어도 가능하겠군. 이라고 말하는 식이다.
자신이 프랑스어를 말할수 있다며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요, 하자 갑자기 다른 이는 너는 아빠를 두명이나 잃었잖아.하면서 다시 주제를 바꾸고 아빠가 두명이에요라고 대답하자 이야기는 다시 급반전되어 내가 네 아빠가 되어 줄수 있어. 아빠 좋아하니? 라는 질문으로 되돌아 온다. 그러면서 결국 대화는 너랑 네 형은 진짜 남자야.(143-145p)라고 끝을 맺는다. 이 대화의 주제는 무엇이며 이들은 이 대화를 하고 난 이후 무엇을 얘기했는지 기억이나 하려는지 모르겠다.
이외에도 글을 읽다가 뜬금없이 다른 것들이 생각나는 때가 많았는데 표제작품에서 등장한 제목은 '후? 아이'다. 아버지가 누구인가? 나!나!나!나! 내가 아버지다.(197p) 이런 글을 보다가 제목에 꽂혀버린 나머지 미국 드라마 CSI를 떠올렸고 - 순전히 저 제목 때문이다. 이 드라마의 주제가는 who, who 라는 반복구가 등장한다. 범인이 누구냐는 것인데 본문에서는 아버지가 누구냐고 묻고 있는 셈이다 - <장거리 달리기>라는 제목의 첫번째 문장인 마흔두살 전후였던 어느날, 나는 장거리 달리기를 시작했다. 멀리까지 빠르게 달려보고 싶었다.(247p) 이 구문을 읽고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떠올렸다.
중반부에 이르러 검프가 아무 생각없이 그저 뛰던 그 장면들 말이다. 자신은 아무 생각없이 그저 뛰고 싶어서 뛰었고 뛰다 보니 뛰었지만 종내는 그의 추종자들이 생겨서 대규모의 집단이 함께 뒤었던 그 명장면이 갑자기 툭 하고 튀어 나왔다. 이야기속의 주인공은 검프처럼 열심히 뛰다가 어린 시절 살았던 장소로 이동을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녀가 뛰고 있던 그 길을 따라서 뛰고 있었다.
거기다가 <새뮤얼>이라는 제목의 단편은 정말 밑도 끝도 없다 싶다. 여기 거칠게 행동하는 네명의 남자애들이 있다. 그들은 사람들을 생각지도 않고 자기네 마음대로 시끄럽게 굴며 승강구에서 뛰면서 장난을 친다. 사람들은 화가 났고 결국 비상정차 줄을 잡아 당기게 된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지극히 잔인한 장면이 연결되지만 작가는 이보다 더 담담할수는 없다며 차분히 그 상황들을 설명하고 있다. 작가는 이 새뮤얼이라는 제목으로 통해서 그 아이의 상황을 그리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장난을 치면 안된다는 경각심이라도 주고 싶었던 것일까.
당신은 마음이란 놀라운 것이며 오래도록 살아 있고 에로틱한 거라고 여겨요.(171p) 그저 단순한 문장처럼 보이지만 중요한 것은 저 진한 글씨다. 한국말로 '이란'이라는 단어에 칠해진 진함. 분명 강조하고자 함을 드러내려고 했던 것일텐데 영어로는 어떤 단어에 핀트가 맞춰져 있음이 틀림없다.
오래도록 살아있고 에로틱한 것이 '마음'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면 분명 마음이 진한 글씨여야 할텐데 그것은 빼고 '이란'이라는 단어에 포커스를 맞춘 것은 왜일까. 그것 자체로도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일까. 원서에는 무슨 단어가 있었을까. 분명 무언가를 꾸며주는 부사어일텐데 그것이 궁금해진다.
3. 마지막 순간에 등장하는 엄청난 변화들
이 책이 처음 나온건은 꽤 오래전이다. 74년 작품. 거의 40년이 넘어가는 이 작품들이 그렇게 구태의연하게 보이지 않음은 단편이라 그럴수도 있겠고 작가의 뛰어난 역량 때문일 수도 있겠다. 거기다 하나 더하자면 소재나 주제에 그렇게 치중하지 않은 작품의 특성 때문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제목 그대로 마지막 순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