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봐
니콜라스 스파크스 지음, 이진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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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스릴러라고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 정도를 읽기까지는 그저 평범한 로맨스만 부각되었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건가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할 무렵 서서히 스릴은 그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노트북]을 비롯해서 [병속에 든 편지], [워크투리멤버], [라스트송] 등 여러 베스트작품을 발표했으며 영화화된 작품도 상당히 많은 작가다. 그만큼 대중들의 입맛을 잘 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번 작품도 역시나다. 기대했던 그 마음은 충족감으로 바뀌게 된다. 쫄깃하게 잘 만들었다.


깜감한 밤, 타이어가 완전히 펑크났다. 바꿔야했다. 핸드폰도 어디갔는지 가지고 오지 않았다. 누군가를 부를수도 없고 사람들도 자주 지나다니지 않는 그런 도로여서 도움을 구할 수도 없었지만 누가 도와준다 해도 무서웠다. 거기다 비에, 번개까지 치는 그런 밤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차를 끌고 집까지 가야했다.


시합이 끝났고 얼굴은 엉망진창으로 알록달록하게 물들었다. 집주인이자 친구와 음식점에서 간단히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한 여자가 트렁크에서 타이어를 꺼내려고 애쓰는 장면을 보았다. 그냥 지나가야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도저히 외면할수가 없었다. 여자에게로 다가갔다. 


콜린과 마리아. 그들은 그렇게 만났다. 마리아는 콜린을 무서워했다. 그 상황에서 남자를 무서워하지 않을 사람이 있다면 그것도 강심장일 것이고 거기다가 등치가 크고 얼굴까지 멍든 그였기에 더욱 무서웠을 것이다. 하지만 콜린은 내면으로는 착한 사람이었다. 최대한의 거리를 두고 마리아를 안심시켜 가며 도움을 주고 쿨하게 떠났다. 그렇게 그들의 인연이 끝일줄로만 알았지만 동생으로 인해서 그들의 인연은 거기서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자석처럼 이끌린 두사람.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이어진다. 동생의 도움으로 다시 만나게 되고 서로의 이름을 알게 되고 서로를 알아가고 가족을 소개하고 친구를 소개한다. 그런 그들에게 스토킹이라는 장애물이 하나 던져진다. 이 상황에서 그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동양이나 서양이나 어떤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는 경찰이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인가 보다. 아무리 그녀가 경찰에 가서 이야기를 한다해도 명확한 증거와 용의자를 연관시킬수가 없는 이상은 경찰은 사건접수를 하지 않는다. 그러니 알아서 조심을 해야 하는 것이다. 


콜린은 보호관찰단계여서 누군가에게 해를 가할수가 없다. 그랬다가는 바로 구속이 되고 이전에 있었던 폭력사건까지도 그대로 기록에 남는다. 분명 마리아에게 사건은 계속해서 저질러지는데 딱히 누군가는 드러나지 않는다. 마리아는 대번에 누구의 소행인지 알아내고 마는데 과연 그녀가 생각한 그 사람이 맞을까.



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하면서 내내 콜린을 의심했다. 그가 모든 것을 저질러 놓고 모른 척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장르소설을 너무 많이 본 까닭이다. 모든 사람들을 의심해보는 것, 설사 주인공이라 할지라도 의심해야 한다는 것을 너무 믿었다. 콜린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순수하게 마리아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었을 뿐. 그들에게 닥친 이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다시 아름다운 사랑을 이어갈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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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탕에서 생긴 일 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1
마스다 미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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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으로 유명한 구마모토 지역의 벳부를 중심으로 다케오, 유후인, 사가 등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온천 투어를 다녀온 적 있다. 3박4일의 일정동안 하루에 한번은 꼭 목욕탕에 들렀으니 총 4개의 목욕탕을 경험한 셈이다. 화산지대여서  온통 수증기를 내뿜는 신기한 마을들. 


100엔을 넣으면 다시 돌려주면 라커가 있는가 하면 10엔을 넣고 환불이 없는 그런 라커가 있는 목욕탕도 있다. 크기도 제각각이고 온천물의 효능도 제각각이다. 아니 우리는 온천이라고 칭하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냥 동네 목욕탕일수도 있다. 관광객보다는 거주민들이 더 많은 목욕탕들.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내 그 때 그 목욕탕들이 생각났다.


한국에서는 아파트 문화가 일상이 되고 집집마다 샤워시설이나 욕조가 있어서 옛날만큼 목욕탕에 자주 가지 않는 편이다. 목욕탕보다는 찜질방이라는 이름으로 대체되고 있기도 하다. 그래도 가끔은 겨울이면 뜨끈한 수증기가 가득 차 있는 목욕탕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옷을 많이 껴입어야 하고 그래서 벗는 것도 껴입는 것도 힘들긴 하지만 말이다.


욕조에서는 별의별 종류의 사람들이 다 있다. 저마다 자신만의 가장 편한 방법을 찾아서 휴식을 취하는 셈이다. 이 그림을 보자마자 어? 난데? 하고 바로 공감했다. 사람들이 없을 구석 자리를 찾아서 편하게 몸을 뉘이고 동실동실 떠있기. 가장 좋아하는 자세다.


수많은 공감요소들이 가득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우리나라의 차이점을 엿볼수도 있다. 아마 위와 같은 경우가 한국에서 있었다면 바로 난리가 나지 않았을까. 아줌마들이 남탕이나 남자 화장실을 청소하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편이지만 반대의 경우는 절대 불가한 이야기다. 


하물며 목욕탕 옷갈아입는 곳에서는 옷을 입지 않은 아줌마와 할머니들이 카운터의 남자와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한다. 작가는 그것을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 자신도 나이가 들면 그렇게 될까 하고 생각했다지만 한국적인 정서로는 조금은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가 아닌가. 그럴지라도 비슷한 부분들은 꽤 많은 편이다. 


겨울에 목욕탕을 나오면 집에 오는 길에 머리가 가닥가닥 얼어서 고드름이 되었었다. 어린 시절 엄마따라 목욕탕에 가본 사람이라면, 엄마가 너무 빡빡 밀어서 벌개진 피부를 보고 울상이 되어 본 사람이라면, 더운 목욕탕에서 시원하게 목욕을 끝내고 바나나 우유를 한모금 해본 사람이라면, 아니 목욕탕이라는 곳에 한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 그것이 바로 이 여탕에서 생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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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이 머무는 곳
히가시 나오코 지음, 이연재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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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것을 영혼의 그릇으로 삼으시겠습니까?"


당신이 가장 아끼고 소중히 생각하는 물건은 무엇입니까?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할지 괜히 내가 가진 주변의 물건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분명 당신도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나처럼 주위의 물건들을 돌아볼 것이다. 혹시라도 누군가의 혼이 그곳에 깃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죽으면 어떻게 될까?  이런 질문에 사람들은 어떤 대답을 하게 될까. 기독교에서는 천국을 주장하고 있다.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간다는 그곳, 아픔도 질병도 없이 영원한 행복만 가득하다는 그곳, 드라마에서는 죽은 이후에 이 세상의 일을 잊기 위한 차를 권해주었었다. 그 차를 마시면 이 모든 일들은 잊어버리게 된다고 했던가. 불교에서는 착한 일을 하면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한다. 진실은 그 누구도 모른다. 그 누구도 갔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은 없으므로 말이다. 몇몇 예외상황이 있기는 하다만 공식적으로는 죽으면 그것으로 끝일뿐이다.


이 소설은 지극히 판타지성이 강하다. 죽은 후 자신이 원하는 물건에 깃들 수 있는 것이다. 그 어떤 물건이어도 상관없다. 단지 살아있지만 않은 것이라면 무엇이어도 된다. 사람, 식물, 동물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가능하다는 결론이다. 송진주머니처럼 서서히 사라져가는 존재도 있고 이름표처럼 누군가의 몸에 부착될수도 있고 부채처럼 시기별로 한번씩 꺼내지는 물건도 된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추억을 생각하며 그리고 남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자신이 깃들 물건을 선택한다. 키워드가 지정이 된 종이에 대고 숨을 후하고 불어넣으면 그것으로 오케이. 당신은 당신이 원한 물건 속에서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다. 


번역자는 '죽음이 두려워졌을때 읽는 책'이라는 광고문구를 보고 서정적이고 포근한 글이겠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나는 오히려 그 반대였다. 혹 가슴 아픈 사연들이 존재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먼저 앞섰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럴지라도 혹시라도 내가 보고픈 사람들이 내 주위에서 어딘가에서 나를 보고 있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어렸을때는 모두 주위에 있었다. 가족들도 친척들도 친구들도 그리고 아는 사람들도 모두 살아있었다. 점점 나이가 드니 하나 둘씩 내 주위를 떠나간다. 저마다 다른 이유들로 말이다. 언젠가는 나 또한 떠나겠지만 떠난 이들의 빈자리는 언제나 조금은 쓸쓸하다. 내가 그들을 아는 관계가 가까웠던지 멀었던지 간에 말이다.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유명 인사들의 죽음마저도 그렇게 여길때가 있으니 가까운 관계일때는 말할수 없이 더욱 허전함을 감출수가 없다. 


짧은 열한편의 이야기가 몹시 아쉽다. 더 많은 사연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 세상은 넓고 물건들은 많지 않던가. 번역자가 기대한 것은 잘못되지 않았다. 충분히 서정적이고 포근했으며 나의 불안감 섞인 기대마저도 다 덮어준 그러한 글이다. 끝나버린 이야기가 모자라게 느낄만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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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니와 몬스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8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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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도 다케루는 일본 의학 장르소설 작가로는 일순위에 꼽힌다.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 [아리아드네의 탄환], [페르세우스의 영역]까지 한번도 실해하지 않았던 작가의 작품. 믿고 읽는 재미가 있는 그런 책들이다. 작가의 책은 의학분야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단지 그 분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나 사회면으로까지 크로스 되어 좀더 넓은 범위를 다루고 있고 그것은 결국 일본의 현실세계와도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아리아드네의 탄환]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Ai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그것은 작가가 실제로 Ai 정보연구 추진실 실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것에서 비롯되기도 했을 것이다. 작가의 실제 상황을 자신의 책에서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나니와몬스터. 처음에는 나니 '와' 몬스터. 이렇게 읽었다. 나니와라는 지명이 있는 줄 몰랐던 까닭이다. 오사카 지방을 '나니와' 라고 한다는 사전 지식이 없었던 탓이다. 나니와 지역의 몬스터라는 뜻일까. 과연 제목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한 지역병원. 휴일에 환자가 발생한다. 열이 떨어지지 않은 아들을 데리고 온 엄마. 작은 지역인탓에 서로서로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터라 휴일이지만 아이를 봐주기로 한다. 그저 일반적인 감기일줄로만 알았지만 아이는 캐멀바이러스로 판명되고 국가에서는 이 지역에서 더이상 바이러스가 퍼지지 않게 격리지역으로 선포해야 한다고 한다. 


함부로 떠든 소문과 언론 보도를 맹목적으로 믿는 시민들이 그 가족을 아케이드 거리에서 내쫓은 거지.(128p)


아이는 며칠 지나지 않아서 나았지만 사람들은 전염성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가게를 운영하던 그 집은 결국 그 지역을 떠나게 된다. 사람들은 소문만을 믿었던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임의대로 판단을 내린 것일까. 사실 그 바이러스는 나라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크게 위험한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가끔 정치적으로 큰 이슈와 연예계 쪽에서 루머가 함께 터지는 날이면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연예게 소식으로 그 소식을 덮으려고 그러냐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그것이 가능할까 하지만 소설 속에서의 일본이라는 나라는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으며 얼마전 한국에서 전 대통령의 일과 한 커플의 결별소식이 함께 나온 날도 어김없이 이런 식의 댓글들이 달렸었다. 소설이 픽션이기는 하지만 아예 없는 허무맹랑한 말들을 지어 붙이기보다는 실제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허구를 쌓아올리는 것인 만큼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되어진다. 


세간의 눈길을 피하고 싶다거나 언론과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아고 생각할 경우 일부러 다른 불상사를 내놓아 주의를 그쪽으로 돌리는 거죠. (277 p)


경찰이나 검찰 또는 정치계에서 사건이 일어난 경우 큰일을 무마시키기 위해서 다른 자질구레한 일을 먼저 터뜨리는 거다. 그것을 그들은 룰렛이라고 부른다. 누구 하나가 옴팡 뒤집어 쓸 수는 없으니 어느 부서에서 그런 일을 꺼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을 임의대로 돌아가면서 선정하는 것이다. 그만큼 각 부처마다 숨겨놓은 비리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비리들이 과연 일본만의 문제일까.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법의 세계에 절대 정의는 없다.(33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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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설백물어 -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7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금정 옮김 / 비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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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다. 그 어느 쪽으로 육지와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인지 유달리 신에 관한 이야기가 많고 여러가지 귀신 이야기들이 여러 종류로 발달되어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이야기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나온 것이 바로 이 [항설백물어]이다. 신기한 이야기들이 가득한 이 책. 항설백물어를 시작으로 [후항설백물어], [속항설백물어]까지 나와있다. 시리즈로 연결된 이야기들을 뒤로부터 거꾸로 역순으로 읽은 셈이다. 


매 시리즈들이 그러하듯이 등장인물은 같다. 단지 시간의 경과가 다를 뿐이다. [속항설백물어]에서는 이제 뒷선으로 물러않은 모모이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잇다. 그런가하면 이 이야기에서는 이제 초반으로 막 마타이치를 만나서 그들이 벌이는 사건에 간간히 등장을 하는 젊은 모모이치의 모습이 보인다. 그야말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날아온 셈이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과거로의 타임슬립을 이야기 속에서는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법이다. 모모이치라는 등장인물이 마타이치를 어떻게 만나고 이 모든 사건을 거치면서 늙어왔을까를 생가가하니 그 한 사람의 인생 후반부에 함께 한듯이 동감하게 된다. 


시리즈의 다른 이야기들과 마찬가지로 이 이야기도 역시 각기 다른 별개의 사건들이 이어진다. 모두 7개의 이야기. 각각은 다른 지역에서 일어난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지만 공통된 면이 있다. 그것은 바로 법적인 처벌은 할 수 없으며 그 누군가에게 해를 입힌 이야기들이며 그 당사자들을 벌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때에 따라서는 자신들이 직접 행하지는 않아도 죽음으로까지 이어지는 비참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비가 오는 어두운 밤, 우연히 모인 사람들. 그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언니가 있었던 한 여자. 언니는 결혼하는 당일날 사라졌다. 온 마을을 다 뒤져서 찾아낸 언니는 바위 위에 홀연히 앉았었는데 아무리 집에 데려와도 여전히 그곳에 가서 앉아있던 언니는 결국 아무것도 먹지 않고 굶어죽었다. 이 이야기를 한 여자는 누구일까. 그리고 이 이야기를 토대로 배경에는 어떤 다른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까. 


여우를 죽이며 살아왔던 한 남자. 여우같은 한 여자에 홀렸다고 생각했다. 여우와 그 남자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과연 그 남자가 죽인 것은 정말로 여우이기만 한 걸까. 무시무시한 사내이긴 했으나 도박장에서도 자신의 분수를 지킬 뿐 얌전했던 한 남자. 하지만 여자에 있어서는 가릴것 없었으니 처음에는 돈으로 샀지만 이후에는 길가던 사람을 잡아챘고 나중에는 마을의 처녀들까지 노리기 시작했다. 이를 보아 줄 마을 사람들은 없을테니 그들은 어떻게 이 남자로부터 마을의 처녀들을, 자신의 딸들을 지켜낼 수 있었을까.


한 집에 나타난 너구리. 할아버지는 그 너구리를 극진히 대접해주며 사람으로 둔갑해서 나타나보라고 하는데 진짜로 그 너구리를 사람이 되어서 할아버지의 동무가 되어준다. 이것이 가당키나 한 일일까. 너구리는 사람인가 동물인가. 말을 타고 떠난 한 가족, 공격을 받아서 아내와 장인어른은 죽고 자신만 살아남았다. 그 이후로 매달 한번씩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연회를 베풀어 그들을 대접하는데 그날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건가. 마타이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밝혀내고야 마는데 진상을 알게 되면 일단 한번 놀랄 이야기.


결혼만 하면 아내가 죽거나  떠난다. 아이 또한 마찬가지다. 아내가 아이를 업고 밖에 있다가 아이가 버드나무에 목이 졸려 숨졌다니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버드나무가 아무리 가지가 길다한들, 그것이 바람에 날린다 한들 아이의 목을 조른다는 것이 합당한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을 의심하지 않았던 걸까.


황후의 시신을 버린곳에서 계속해서 나타나는 썩은 송장. 그 시신은 황후의 것이 맞을까 아니면 다른 사람의 것일까. 다른 사람의 것이라면 대체 황후의 시신이 버려진 곳에서 왜 다른 시신이 드러나는 것이며 그 시신과 황후와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저마다 예전에 존재했던 이야기의 한 부분을 들어주고 거기에서 유래된 이야기를 중심으로 점점 그 지경을 넓혀간다. 이야기 속에서만 존재했던 이야기들은 어느새 살아서 꿈틀거리면서 현실로 기어나와 그것을 현실화 시켜 버리고 그것을 사실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야기가 살아서 움직이는 셈이다. 살아있는 백가지의 이야기. 이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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