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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이 머무는 곳
히가시 나오코 지음, 이연재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3월
평점 :
절판
"당신은 어떤 것을 영혼의 그릇으로 삼으시겠습니까?"
당신이 가장 아끼고 소중히 생각하는 물건은 무엇입니까?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할지 괜히 내가 가진 주변의 물건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분명 당신도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나처럼 주위의 물건들을 돌아볼 것이다. 혹시라도 누군가의 혼이 그곳에 깃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죽으면 어떻게 될까? 이런 질문에 사람들은 어떤 대답을 하게 될까. 기독교에서는 천국을 주장하고 있다.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간다는 그곳, 아픔도 질병도 없이 영원한 행복만 가득하다는 그곳, 드라마에서는 죽은 이후에 이 세상의 일을 잊기 위한 차를 권해주었었다. 그 차를 마시면 이 모든 일들은 잊어버리게 된다고 했던가. 불교에서는 착한 일을 하면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한다. 진실은 그 누구도 모른다. 그 누구도 갔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은 없으므로 말이다. 몇몇 예외상황이 있기는 하다만 공식적으로는 죽으면 그것으로 끝일뿐이다.
이 소설은 지극히 판타지성이 강하다. 죽은 후 자신이 원하는 물건에 깃들 수 있는 것이다. 그 어떤 물건이어도 상관없다. 단지 살아있지만 않은 것이라면 무엇이어도 된다. 사람, 식물, 동물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가능하다는 결론이다. 송진주머니처럼 서서히 사라져가는 존재도 있고 이름표처럼 누군가의 몸에 부착될수도 있고 부채처럼 시기별로 한번씩 꺼내지는 물건도 된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추억을 생각하며 그리고 남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자신이 깃들 물건을 선택한다. 키워드가 지정이 된 종이에 대고 숨을 후하고 불어넣으면 그것으로 오케이. 당신은 당신이 원한 물건 속에서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다.
번역자는 '죽음이 두려워졌을때 읽는 책'이라는 광고문구를 보고 서정적이고 포근한 글이겠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나는 오히려 그 반대였다. 혹 가슴 아픈 사연들이 존재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먼저 앞섰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럴지라도 혹시라도 내가 보고픈 사람들이 내 주위에서 어딘가에서 나를 보고 있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어렸을때는 모두 주위에 있었다. 가족들도 친척들도 친구들도 그리고 아는 사람들도 모두 살아있었다. 점점 나이가 드니 하나 둘씩 내 주위를 떠나간다. 저마다 다른 이유들로 말이다. 언젠가는 나 또한 떠나겠지만 떠난 이들의 빈자리는 언제나 조금은 쓸쓸하다. 내가 그들을 아는 관계가 가까웠던지 멀었던지 간에 말이다.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유명 인사들의 죽음마저도 그렇게 여길때가 있으니 가까운 관계일때는 말할수 없이 더욱 허전함을 감출수가 없다.
짧은 열한편의 이야기가 몹시 아쉽다. 더 많은 사연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 세상은 넓고 물건들은 많지 않던가. 번역자가 기대한 것은 잘못되지 않았다. 충분히 서정적이고 포근했으며 나의 불안감 섞인 기대마저도 다 덮어준 그러한 글이다. 끝나버린 이야기가 모자라게 느낄만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