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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9년 12월
평점 :
파란 바탕에 노란 레몬. 겉표지를 벗겨내면 어디선가 한번쯤은 본듯한 그림이 그려져있다. 중간의 파란 부분에 촛점을 맞추면 향수병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 부분을 벗어나 넓게 보면 두 사람의 옆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사람의 눈이라는 것은 참 정밀하기도 하지만 눈에서 보는 장면을 뇌에서 인식하는 것과 연결을 해야 하기 때문이 그로 인한 일루젼들도 간간히 보인다. 이 그림은 무엇을 의미히는 것일까.
분신. 작년말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선물을 내놓은 사람이 자신의 분신이라면서 자신이 그토록 아끼던 물건이라는 것을 강조했었다. 나눌 分 몸 身. 몸을 나눈다는 의미. 그야말로 자신을 둘로 갈라서 자신과 같은 것을 만들어 낸 몸이라는 뜻으로 주로 사람들이 자신들이 아끼는 것을 또는 아끼는 사람을 지칭할때 사용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 분신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마리코의 장1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마리코의 장 15로 끝이 난다. 마리코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과 교대로 후타바의 장이라고 해서 또 다른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겹쳐진다. 제목으로 미루어 보면 마리코와 후타바는 서로 분신일까. 그녀들은 서로 사는 곳도 전혀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가족도 다르고 학교도 물론 다르다. 하지만 같은 것이 존재한다. 그 어떤 누가 보아도 똑같은 것이 말이다. 엇갈리기만 하는 두사람. 그녀들이 만났을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야기의 마술사 게이고의 책답게 빠르게 사건이 벌어진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피하는 엄마의 눈길을 느끼는 마리코. 그녀의 부모님은 기숙학교를 알아보고 그녀로 하여금 집에서 떠나도록 만든다. 엄마의 차가운 눈길이 자신이 엄마를 닮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느끼는 그녀지만 자신의 출생에 비밀이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다. 그런 그녀가 방학을 맞이하여 집으로 온 바로 그날 사건은 벌어진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정점을 향해 올라간다. 그 순간은 매우 차분하다. 무서움을 느끼지 못한다. 다만 긴장될 뿐이다. 높이가 올라감에 따라서 정비례하는 심장박동이 느껴질 뿐이다.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기대하고 있기에 아니면 예상하고 있기에 그 긴장감은 더욱 날카롭게 여겨진다. 그런 준비조차 없이 빠르게 치닫는다면 오히려 긴장감은 제로 베이스가 될수도 있다. 작가는 그런 느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일단 첫장을 넘기면서 독자들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만든 롤러코스터에 몸을 싣는다. 떠난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하게 올라간다. 롤러코스터의 실제 탑승시간은 얼마되지 않는다. 길어봐야 몇분이지만 탑승객들은 그 시간이 영겁의 시간만큼 길게 느껴지고 그로 인해서 소리를 지르게 된다. 그만 내려달라고 말이다.
작가의 책의 탑승시간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롤러코스터에 비하면 굉장히 긴 시간을 요한다. 그만큼 즐거움을 느낄 시간이 더 길어지니 행복한 것이다. 시간만 길어졌다뿐인가 그 긴장감과 즐거움과 스릴은 그 길어진 시간만큼 더하여진다. 긴 라이딩의 경우 휴식이 필요하다. 롤러코스터도 잠깐의 쉬어가는 구간은 마련해 놓고 있건만 게이고의 책에는 그런 부분이 전혀 없다. 일단 책장을 연 순간 그대로 직진이다. 돌아보지 않는다. 옆길로 새지 않는다. 앞만 보고 정주행이다.
마리코와 후타바의 이야기, 펼쳐지는 십여개의 장 들중에서 어느 것 하나도 허투루 넘길수가 없다. 격자틀에 가로와 세로로 줄을 걸어 놓고 짜 올라가면 작품이 만들어지듯이 후타바와 마리코는 서로 엇갈리면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주 가까이에서 봤을 때는 무엇인지 모르겠다가 완성되고 난 후 한발자국 뒤에서 보면 그 그림이 선명하게 드러나듯이 종장에야 마침내 그 모든 결말이 매듭지어진다. 이 책을 덮은 후 당신은 어떤 그림을 만들어 내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