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는 삶 - 배우고 익히는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지식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 지음, 이재만 옮김 / 유유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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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티양주는 공부를 위해 절제하고, 신체를 돌보고, 식사와 수면에 신경을 쓰고, 일상생활을 단순화하고, 사교활동을 삼가고, 내면의 고요를 유지하라고 말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언제나 진리에 주의를 기울이고, 아침과 저녁에는 때에 맞는 활동을 하고, 열정을 가지고 집중해서 탐구하라고 요구하며, 읽기와 기억하기, 노트하기, 글쓰기와 관련해서도 세세하게 지시한다. 간단히 말해 저자는 공부를 위해 삶의 거의 모든 측면을 규율할 것을 요구한다. 더구나 이런 요구를 할 때 저자의 어조는 `이렇게 하면 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식의 권고조보다 `이렇게 해야만 한다`는 식의 명령조에 훨씬 가깝다.-13쪽

어떤 공부를 해내는 데에 비범한 재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평균 정도의 자질만 있어도 충분하다. 나머지는 에너지와 그 에너지를 현명하게 사용하는 데에 달려 있다. 정성을 들이며 착실히 일하는 노동자처럼 에너지를 써야 한다. 그 노동자가 어딘가에 도달하는 동안 독창적인 천재는 대개 쓰라린 낙오자로 남는다. // 방금 말한 것은 누구에게나 참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것을 특히 스스로를 정신 노동에 바친다는 이유로 삶의 가장 작은 부분만을 본인 뜻대로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한다. 그들은 다른 이들보다 각자의 소명으로 성별聖別되는 사람이어야만 한다. 그들이 평생에 걸쳐 이 소명을 수행할 수 없는 처지라면, 적은 시간에 집중해서 수행해야 한다. 지적인 일을 하는 이의 특별한 금욕주의와 영웅적 덕목이 그들 일상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그들이 이 두 가지 자기 봉헌에 동의한다면 나는 그들이 용기를 잃지 않도록 신의 이름으로 진리를 알려줄 것이다.-30~31쪽

가장 소중한 것은 의지, 깊게 뿌리박은 의지다. 누군가가 되고 무언가를 성취하겠다는 의지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고유한 이상을 지향하는 그 누군가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의지다. 그 밖에 다른 모든 것은 언제나 부차적이다. 어디에나 책이 있지만 그중 필요한 책은 소수다. 사회와 자극은 자신의 고독한 정신 안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위대한 것은 그 정신 안에 있고 그것을 구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며, 열정적으로 사유하는 이가 앞으로 나아가도록 재촉한다. 강의에 관해서 말하자면, 운 좋게 강의라는 도움을 받는다 해도 스스로 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강의를 충실히 받아들이지 않거나 잘못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대중에 관해 말하자면, 때로는 대중이 자극을 주기도 하지만 대개는 정신을 방해하고 주의를 흐트러뜨린다. 거리에서 몇 푼 주우려다가는 자신을 망치고 말 것이다. 이런 것들보다 더 필요한 것은 열정적인 고독이다. 그 고독 안에서는 하나의 씨앗이 백 개의 낱알을 맺고, 충만한 태양빛이 모든 땅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기 때문이다.-33쪽

이 언어를 이해하고 정신의 영웅들로부터 은밀히 부름을 받지만 필요한 수단이 없음을 두려워하는 이는 내 말에 귀를 기울이기 바란다. 하루에 두 시간을 공부에 할애할 수 있는가? 그 두 시간을 온전히 열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 그리하여 신의 왕국에서 권위를 가진 사람이 되어 이 책이 바라는 대로 성배를 들이켜 그 강렬하고 씁쓸한 맛을 음미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있다면 자신감을 가져라. 아니, 고요한 확실성 안에서 편히 쉬어라. // 생계를 꾸리기 위해 일을 해야 할 경우라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영혼의 자유를 희생하지 않고도 밥벌이를 할 수 있다. 당신이 혼자라면 더욱더 고귀한 목적에 전념할 것이 요구될 것이다. 위대한 인물들은 대부분 어떤 소명을 따랐다. 나는 많은 이들이 지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에 매일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단언했다. 제한된 시간을 최대로 활용하는 법을 배워라. 갈증을 씻어주는 동시에 다시 목마르게 하는 샘에 매일매일을 쏟아부어라.-34쪽

교구민에게 헌신하는 시골 성직자, 공부에서 손을 떼고 위급한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나 소명을 받들어 가문을 돕기 위해 인문학에 등 돌린 젊은이는 재능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선한 것과 동일한 존재인 참된 것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만일 그들이 다르게 행동했다면, 살아있는 진리를 모순에 빠뜨림으로써 덕목뿐 아니라 진리까지 간접적으로 더럽히는 꼴이 되었을 것이다. 지식을 탐하여 가장 엄격한 의무마저 망설임 없이 저버리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들은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라 딜레탕트다. 그들은 의무로 해야 하는 공부를 그만두고 자신의 선호에 맞는 다른 공부를 하는데, 이 또한 재능을 잃는 일이다. 능력을 넘어서는 목표를 잡아서 실패할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 가상의 역량을 얻기 위해 실제 역량을 낭비하는 사람도 딜레탕트에 지나지 않는다. 아퀴나스가 공부에 관해 제시한 16가지 조언 중 2가지는 이런 사람들에게 중요하다. "너의 손이 닿지 않는 것을 구하지 마라." "곧장 바다로 뛰어들지 말고 먼저 개울에 몸을 적셔라." 평정을 찾도록 도와주어 덕목뿐 아니라 앎에도 기여하는 귀중한 조언이다.-54~55쪽

소명을 굳건히 다지고 능력을 현명하게 사용하기 위해 모든 것을 공부에 쏟으려면, 내면을 구성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거기에 더해 외적 생활, 즉 삶의 뼈대와 의무, 교제, 환경을 정돈해야 한다. 다른 어떤 낱말보다 한 낱말을 유념해야 한다. 반드시 삶을 `단순화`해야 한다. 당신 앞에는 험난한 여행이 기다리고 있으니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지고 떠나지 마라. 짐의 양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규칙을 정해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할 지 모르겠다. 그것은 착각이다. 외적 환경이 동일하다면 단순화하려는 마음속의 바람은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며, 외부에 있기 때문에 제거할 수 없는 것일지라도 영혼에서는 몰아낼 수 있다.-73~74쪽

삶의 속도를 늦추어라. 연회,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는 방문, 이웃과의 형식적인 교제, 아주 많은 이들이 남몰래 질색하는 인위적 삶의 온갖 복잡한 의식들은 공부하는 이를 위한 것이 아니다. 사교활동은 공부에 치명적이다. 과시욕과 방탕한 정신은 사유를 파멸시키는 적이다. 누군가 천재를 떠올릴 때 만찬에 참석한 천재의 모습을 상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 시간과 사유, 자원, 역량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일과의 그물에 뒤엉키지 마라. 관습을 고분고분 따라서는 안 된다. 스스로의 안내자가 되어 관습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라. 지성인의 신념은 그가 달성하려는 목표와 일치해야 한다. // 소명은 집중을 뜻한다. 지성인은 성별된 존재이므로 헛된 일을 하느라 자신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팔리시Bernard Palissy가 가구마저 땔감으로 쓴 것처럼, 지성인은 모든 자원을 영감의 불꽃을 지피는 데에 써야 한다. 공부와 공부를 돕는 환경 이외에 사소한 일을 하느라 돈과 집중력을 낭비하기보다는 장서를 모으고 유익한 여행이나 평온한 휴가를 준비하고 영감을 되살리는 음악을 듣는 편이 훨씬 낫다.-74~75쪽

자신을 온전히 공부에, 그리고 공부를 고무하는 신에게 바치기 위해 가정생활을 단념한 이들은 그 희생으로 얻은 자유에 감사하면서 그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그들은 무거운 책임을 짊어진 교인을 생각할 것이고, 라코르데르Jean Baptiste Lacordaire가 미소를 머금고 친구 오자낭Antoine-Frederic Ozanam에 관해 했던 다음 말을 자신에게 되풀이할 것이다. "오자낭이 물리치지 못환 단 하나의 유혹이 바로 결혼이었지." 그러나 공부하는 이는 결혼생활이라는 구속에 얽매어 있더라도 그 구속에서 힘과 영감 그리고 자신의 이상적인 모습 가운데 하나를 이끌어낼 수 있고 이끌어내야만 한다.-78~79쪽

그러므로 말을 천천히 하고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장소에는 천천히 가라. 말을 많이 하면 물이 쏟아지듯이 정신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온화하게 대함으로써 당신에게 이로운 소수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모임에 자주 방문할 권리를 얻어라. 그렇지만 지나친 친밀함은 우리를 목표에서 벗어나게 하므로 그들과도 너무 가깝게 지내는 것은 삼가라. 정신을 헛되이 사로잡는 소식을 좇지 마라. 도덕 혹은 앎과 전혀 관련이 없는 세상의 언행 때문에 분주히 움직이지 마라. 시간을 잡아먹고, 정신을 종잡을 수 없는 생각들로 채우는 쓸데없는 외출을 삼가라. 이런 것들이 신성한 일, 즉 고요한 묵상의 조건이다. 오직 이런 방식으로만 신성한 행복이라 할 수 있는 장엄한 비밀에 접근할 수 있다. 오직 이런 생활양식으로만 정중한 자세로 진리를 마주할 수 있다.-81~82쪽

<<그리스도를 본받아>>의 저자 켐피스Thoma a Kempis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람들은 만나고 나면 항상 더 왜소한 인간이 되어 돌아왔다." 이 생각을 더 밀고 나아가면, 더 왜소한 인간이 되지 않더라도 자아가 더 왜소해진다고 말할 수 있다. 스스로를 단단히 붙잡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군중에 섞일 경우 정체성을 잃어버린다. 그러므로 반드시 그 전에 스스로를 붙잡아야 한다. 군중 속에서 개인은 다수의 이질적인 자아에 짓눌려 자기인식을 잃어버린다. (중략) 위생학자들은 신체를 위해 세 가지 - 목욕, 공기욕, 몸 안의 노폐물 배출 - 를 추천한다. 운동선수가 그에게는 삶 자체인 내적 운동으로 근육을 느끼고 경기를 준비하듯이 정신의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고 인성을 강화하고 적극적인 의식을 만들어내기 위해, 나는 여기에 고요로 씻어내는 영혼의 목욕을 덧붙이고 싶다.-85~86쪽

홀로 공부하려면 아주 강하게 단련된 영혼이 필요하다. 자기 혼자서 지성인 공동체가 되는 것, 홀로 자신을 격려하고 지원하는 것, 다수의 자극이나 불가피한 필요에서나 솟아날 법한 힘을 초라하고 고립된 개인의 의지에서 발견하는 것은 얼마나 드문 영웅적 자질인가! 열정적으로 시작하더라도 이내 어려움이 닥치고, 게으름이라는 악마가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라고 속삭인다. 목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는 점점 흐릿해진다. 노력의 열매는 너무 멀리 있거나 맛이 아주 고약할 것만 같다. 우리의 멍한 감각은 쉽게 현혹된다.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고 전례를 따르고 생각을 주고받는 것은 분명 이 우울한 기분을 떨치는 데에 놀라울 만큼 효과가 있을 것이다. 또 많은 이들의 경우 그렇게 하는 것은, 원대한 목표를 끈기 있게 추구하기 위해 꼭 필요하지만 소수만이 가진 상상력과 변하지 않는 덕목을 대신해줄 것이다. 우정은 산파술이다. 우정은 우리의 가장 풍부하고 싶은 자질을 이끌어낸다. 우정은 꿈의 날개를 펼치고, 숨겨진 사유를 드러내 보인다. 우정은 판단을 감독하고, 새로운 생각을 시험하고, 열의를 지탱하고, 열정에 불을 지핀다.-91~92쪽

어떤 경우든 설령 물리적으로 고립되어 있더라도, 정신 안에서 참된 관계를 유지하는 친구 모임을 찾아라. 육체는 혼자서는 아무 쓸모가 없다. 반면 정신은 혼자서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 한 장소에 함께 있거나 어떤 이름표가 붙은 집단에 함께 속한다고 해서 만장일치를 이루고 성과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각자가 다른 이들도 노동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노동하고, 각자가 다른 이들도 공부에 집중하고 있을 때 자신의 자리에서 공부에 집중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럴 때 과업은 완수되고, 삶과 행위의 원칙은 우리를 인도하는 정신이 된다.-92~93쪽

프랑스의 철학자 비랑Maine de Biran은 일기에 이렇게 썼다. "시간을 최고로 활용하는 유일한 방법이 규칙적으로, 끊임없이, 고요하게 정신노동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현재 위치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마땅히 제 역할을 수행할 때마다 우리는 삶을 선용하는 것이다." 당신도 공부가 당신 자신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나, 지적 가능성을 키우는 일이 진정한 자아를 성취하는 일에 우선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마땅히, 그리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하라. 당신의 인격적 완성에 그 일이 필요하다면, 상이한 요구들은 그 자체로 균형을 맞출 것이다. 선한 것은 참된 것의 형제다. 선한 것은 자기 형제를 도울 것이다. 있어야 할 곳에 있고 해야 하는 일을 한다면 관조하고픈 마음이 생길 것이다. 성 베르나르에 따르면, 관조는 신을 위해 신을 남겨두는 것이다.-95쪽

말을 절제하면 끊임없이 묵상할 수 있고 현명하게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할 말만 하고 때에 맞는 감정이나 유용한 생각을 표현한 후에는 침묵해야 한다. 이렇게 침묵하는 것이야말로, 다른 이들의 횃불을 밝히다가 당신의 횃불을 꺼뜨리는 대신 남에게 무언가를 주면서도 당신 자신을 간직하는 비법이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말에 무게를 싣는 방법이다. 말하는 사람이 말 저변의 침묵을 인지할 때, 서두르거나 경박하게 흥분하지 않고 말 이면의 보물 - 알맞을 때에만 조금씩 드러나는 - 을 감추면서도 넌지시 암시할 때, 그 말은 무겁다. 침묵은 말 이면에 숨겨진 중요한 내용이다. 많은 것을 드러내지 않는 정신이 가치 있는 정신이다.-98~99쪽

너무 부담스럽지 않은 계획을 세우고 일정한 시간 동안 그 계획을 꾸준히 추구하라. 계획을 추구할 때는 들뜨지 않으면서도 결과에 대해 진정한 관심을 보여야 하고, 그 결과는 사람들이 머리를 식히려고 톱질로 잘라내는 통나무 이상의 무엇이어야 한다. 스스로 하지 않는 활동은 인간의 활동이 아니며, 그런 활동에서는 진정한 휴식이나 교훈, 훈련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므로 당신을 필요로 하는 활동이 아직 없다면, 가치가 있기에 당신에게 영감을 줄 대의를 찾아라. 그것은 계몽과 갱생, 보존, 진보에 이바지하는 운동일 수도 있고, 공공선을 위한 연맹일 수도 있고, 권리 보호와 사회활동을 위한 단체일 수도 있다. 이런 일들은 모두 참여자에게 그의 인생 전부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그의 자아 전부를 바칠 것을 요구한다. 영감이 당신에게 훗날 다시 영감에 이바지할 휴직을 허락할 때, 심지어 휴직을 강요할 때 그런 일에 당신을 바쳐라. 그러고 나서 영감으로 돌아오면, 세상의 보물뿐 아니라 위험과 오물, 울퉁불퉁한 길까지 시험하고 돌아온 당신은 영감이 열어젖힌 천국을 훨씬 더 사랑스럽게 느낄 것이다.-105~106쪽

지성인은 어느 때고 지성인이라야 한다. 지성인에게 권하는 고독은 고독한 장소라기보다는 고독한 묵상이다. 고독은 사태에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니라 사태에 초연하는 것을 의미한다. 무아지경으로 고차적인 것에 몰두하고, 경솔한 언동, 종잡을 수 없는 관념, 변덕, 난잡한 공상을 피함으로써 자신을 고양하는 것이 고독의 관건이다. 언제까지고 자신의 공부에 머무르는 것, 왁자지껄한 내면, 애걸복걸하는 욕망, 의기양양한 자만심, 오감을 사로잡는 소란스러운 바깥세상에 대한 상념 등에 흠뻑 빠져드는 것, 과연 이런 것이 고독일까? 거짓 평화가 있듯이 거짓 고독도 있다. 오히려 밖으로 나가 의무나 지혜에 따라 활동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것이, 영혼을 우울하고 약하게 만드는 대신 영혼에 양분과 활기를 주는 더 고차적인 고독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독의 순수함`이라 부른 것은 어디서나 유지될 수 있다. 고독의 순수함을 파괴하는 것은 고독의 쉼터까지 더럽힐 것이다. (중략) 당신이 내적 영감과 신중함 그리고 스스로를 기꺼이 헌신하는 사랑을 간직한다면, 진리인 신이 당신과 함께한다면, 당신은 우주 한가운데서도 혼자일 수 있다.-108~109쪽

어디에나 진리가 있고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각각의 의문을 서로 맞닿아 있는 일군의 의문과 함께 공부해야 한다. 모든 것은 우리의 전공에 기여해야 한다. 모든 것은 우리의 논제를 뒷받침하거나 반박해야 한다. 우주는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것들로 가득하다. 화가는 어디에서나 형태와 색, 움직임과 표현을 본다. 건축가는 덩어리들의 균형을 맞춘다. 음악가는 리듬과 소리를 감지한다. 시인은 은유의 대상을 발견한다. 사상가는 활동에 담긴 관념을 본다. 나는 지금 어떤 좁은 특수주의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방법론의 문제다. 모든 것을 철저히 추구할 수는 없다. 두루 관찰하기 위해 한쪽 눈을 열어두되 나머지 주의력은 특정한 탐구 과정에 쏟아야 하며, 뉴턴처럼 "언제나 그것을 생각함으로써" 나중에 내놓을 탐구의 요소들을 모아야 한다. 정신 한켠에서 결과물을 기대하는 것이야말로 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비결이다. 인간의 정신은 반추동물인 젖소와 같다. 젖소는 목초지 전체를 누비고 다니면서 먼 곳을 응시하고 느릿느릿 되새김질하고 여기서는 덤불을, 저기서는 잔가지를 물어뜯으며 우유를 만들고 야윈 몸을 살찌운다.-122~123쪽

그러므로 현명한 사람의 정신은 언제 어디서나 보통사람들이 간과하는 것도 습득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에게 가장 소박한 일은 가장 고결한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에게 의례적인 방문은 탐구를 위한 좋은 기회다. 그에게 산책은 발견하러 떠나는 여행이다. 그가 조용히 듣는 것과 대답하는 것은 그의 내면에서 진리와 나누는 대화다. 그가 어디에 있든 그의 내적 우주는 스스로를 다른 무엇과, 이를테면 자신의 생명을 신의 생명과 비교하거나 자신의 움직임을 만물의 끊임없는 움직임과 비교한다. 그리고 집중해서 공부하는 좁은 공간에서 나올 때, 그는 진리를 뒤에 남겨두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문을 활짝 열어서 세상의 장대한 활동이 발산하는 진리를 자신에게 불러들인다.-127쪽

우리는 밤의 밭에 공부의 씨앗을 뿌릴 수 있다. 잠에 빠져들면서 당신을 사로잡고 있는 문제와 서서히 형태를 갖추어가고 있거나 도무지 파악하기 어려운 관념을 마음에 떠올려라. 수면을 늦출 어떤 노력도 하지 마라. 반대로 우주가 나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평온하게 쉬어라. 결정론은 자유의지의 노예이며, 의지는 우리가 자는 동안 자신의 맷돌을 돌린다. 우리는 잠시 노력을 멈출 수 있다. 그동안 우주는 공전을 하고, 그렇게 공전하면서 우리가 고장 낼지도 모르는 정교한 기계를 우리 뇌 안에서 작동시킨다. 우리가 자는 동안에도 자연은 감시를 늦추지 않는다. 신도 끊임없이 감시한다. 우리는 이튿날 일어나서 자연과 신이 일궈놓은 열매를 조금 수확할 것이다.-133쪽

지성인에게는 마무리와 시작을 위한 저녁 기도 - 이번에는 비유적 의미로 말하는 것이다 - 가 필요하다. 우리가 전제하는 연속적인 공부의 완결은 종착점인 동시에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시 열기 위해서만 닫는다. 저녁은 생의 나날을 연결하는 중간 다리와 같은 시간이다. 아침이 되면 우리는 당장 삶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저녁에 고유한 방식으로 의식적인 노고의 시간을 연결하는 밤을 준비해야 하고, 아침을 준비해야 한다.-139쪽

저녁에는 조용히 규칙적인 활동에 몰두해야 한다. 저녁에는 본성이 성향을 드러내도록 내버려두고, 주도적 행동을 습관으로 대체하고, 격렬한 활동 대신 단순하고 익숙한 일과를 따르는 것, 요컨대 밤 동안의 금욕을 시작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 기꺼이 활동을 멈추는 것이 지혜롭다. 이렇듯 덜 활동적이고 평화로운 생활에서 지혜가 생겨날 것이다. 가족은 그 지혜를 나눌 것이고, 조용히 대화하면서 영혼을 단결시키고, 낮 동안 받은 인상과 이튿날 계획을 교환할 것이다. 가족의 견해와 목표는 단단해질 것이고, 저무는 하루는 위안을 얻을 것이며, 조화로운 분위기가 가정을 감쌀 것이다. 그리하여 매일 저녁은 가치 있는 축일 전야가 될 것이다. 사람은 흔히 오래전 어머니의 자궁에 있었을 때의 자세로 잔다. 그것은 상징이다. 휴식은 우리의 근원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휴식은 단련이다. 단련은 세상으로부터 벗어나 우리 자신에게로 물러나면서 진행된다. (중략) 단련은 평화롭게 집중함으로써 안식처를 찾고 인간 정신의 활력을 쇄신하는 것에 가깝다. 단련은 기도와 침묵과 수면을 통해 행복하게 긴장을 늦춤으로써 유기적 삶과 성스러운 삶을 회복하는 것이다.-140~141쪽

어떻게 결정을 내리든 주의해서 시간을 확보해야 하고, 확보한 시간을 완전히 사용하기 위해 온갖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 그 소중한 시간이 낭비되거나 간섭받지 않도록 사전에 위험을 알아채야 한다. 그 시간이 충만하길 바란다면 쓸데없는 준비를 하지 말고, 필요한 모든 준비를 사전에 마치고, 무엇을 하고 싶고 얼마나 하고 싶은지 의식하고, 자료와 메모, 책을 챙기고, 사소한 일로 공부를 중단하지 않아야 한다. 더 나아가, 그 시간을 공부를 위해 떼어두고 정말로 자유롭게 사용하려면 정해진 시간에 단숨에 일어나고, 아침식사를 가볍게 하고, 쓸데없는 대화와 무익한 초대를 피하고, 꼭 필요한 서신 왕래만 하고 신문은 보지 마라. 공부하는 삶을 위한 일반적인 안전책으로 제시한 이 규칙들은 무엇보다 집중해서 공부하는 시간에 적용된다.-143~144쪽

모든 것이 정돈되었다면 곧바로 공부를 시작할 수 있다. 당신은 공부에 열중하면서 앎을 쌓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주의력과 노력은 흔들리거나 흩어지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반쪽짜리 공부를 삼가라. 책상에는 오래 앉아 있지만 잡생각이나 하고 있지 마라. 공부하는 시간의 가치를 높이려면 차라리 그 시간을 줄여서라도 집중해서 사용하는 편이 나으며, 그것이 공부의 핵심이다. 무언가를 하거나 아니면 아예 하지 마라. 하기로 결정한 것은 전력을 다하고, 계속 새롭게 시작하는 것처럼 정력적으로 하라. 반쪽짜리 공부와 반쪽짜리 휴식은 공부를 위해서도 휴식을 위해서도 이롭지 않다.-144쪽

시간의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시간이 충분하다. 그는 시간을 늘리지는 못하지만 시간의 가치를 높일 수는 있다. 무엇보다 그는 시간을 갉아먹는 일은 하지 않는다. 금과 마찬가지로 시간에는 두께가 있다. 잘 주조되고 결이 깨끗한 순금 메달은 얇게 펴낸 금박보다 가치가 높다. 많은 이들이 겉모습 또는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의도에 쉽게 현혹되며, 이러쿵저러쿵 떠들기에 바빠 공부는 전혀 하지 않는다. (중략) 공부하는 시간 동안 방해받지 않는 것뿐 아니라 방해받지 않을 것임을 확신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 시간을 완벽하게 지켜야 공부에 열중하고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이 점에 관한 한 아무리 철저하게 경계해도 지나치지 않다. 외부의 요구는 그게 무엇이든 내면의 힘을 갉아먹으며, 어쩌면 귀중한 발견을 가로막을지도 모른다. 에머슨의 말처럼 "반쪽짜리 신들이 가면 진짜 신들이 온다."-146~147쪽

어떤 갈래의 앎이든 동떨어져 경작된 앎은 그 자체로 불충분하거니와 지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챌 위험을 야기한다. 수학은 비현실적인 엄격함에 익숙해질 것을 요구해 판단력을 왜곡한다. 물리학과 화학은 그 복잡성에 집착하게 함으로써 마음의 여유를 앗아간다. 생리학은 유물론으로, 천문학은 모호한 추측으로 이끈다. 지질학은 당신을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니는 사냥개로 바꾸어놓는다. 문학은 허울을 좇게 하고, 철학은 허영을 부채질한다. 신학은 거짓 숭고함과 고압적인 자만으로 이끈다. 당신은 반드시 한 정신에서 다른 정신으로 나아가면서 한 정신으로 다른 정신을 바로잡아야 한다. 경작지를 망치지 않으려면 여러 작물을 교배해야 한다. 이렇게 일정한 지점까지 비교탐구를 수행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우고 전공 공부에 착수할 시간을 늦추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한 주제가 다른 주제를 밝혀줄 것이므로 당신은 너무 많은 짐을 지기는커녕 오히려 모든 주제를 더 쉽게 배울 것이다. 정신을 넓혀감에 따라 당신은 더 쉽게 배우고 더 쉽게 짐을 덜어낼 것이다.-156~157쪽

앞에서 한동안은 다양한 길을 따라가면서 그 길들이 어디서 만나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학문이라는 땅을 여러 방향으로 걸어보는 것은 깊은 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다. 그곳에 이르러 한가운데를 파는 일에 몰두한다면 그 명백한 제한은 공간 전체를 파악하는 데에 도움이 되고, 구멍의 바닥은 하늘 전체를 드러낼 것이다. 나머지를 어렴풋이 아는 사람이 어떤 한 가지를 속속들이 알게 되면, 깊이 파고드는 탐구에 힘입어 나머지를 이해하는 수준도 크게 높아진다. 모든 심연은 서로 닮았고, 모든 토대는 서로 통한다. (중략) 모두의 삶에는 그만의 고유한 공부가 있다. 그는 용감하게 그 공부에 전념해야 하고, 섭리에 따라 다른 이들에게 지정된 공부는 그들에게 맡겨야 한다. 당신의 목표가 세련된 사람, 우월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면 전문화와는 거리를 두어야 한다. 그러나 고유한 기능을 가진 사람, 무언가 유용한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새롭게 전문화해야 한다. 달리 말해 우리가 모든 것을 이해해야 하는 까닭은 어떤 한 가지를 해내기 위해서다.-174~175쪽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정해진 순간에 필연적인 희생을 감수해야 할 의무가 있다. (중략) 모든 것이 흥미롭다. 모든 것이 유용할지 모른다. 모든 것이 고결한 정신을 끌어당기고 유혹한다. 그러나 죽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정신과 신체가 제약을 가한다. 진리와 일종의 주종 관계를 맺고 순종하는 눈빛을 보내는 것처럼, 좋든 싫든 우리는 시간과 지혜가 우리에게 허용하지 않는 것이 있음을 인정하고 감수해야 한다. (중략) 그러므로 당신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당신 자신을 가늠하고, 당신의 과업을 가늠하라. 몇 번의 실험을 거친 뒤에는, 경직될 필요까지는 없지만 마음을 다잡고 당신의 한계를 받아들여라. 독서와 어느 정도의 글쓰기를 통해 지식의 여러 영역을 둘러본 초기 공부의 이점을 유지하되, 당신의 전공에 대부분의 시간과 힘을 쏟아라. 반쪽짜리 정보를 가진 사람은 사태의 절반을 아는 것이 아니라 사태를 어중간하게 아는 것이다. 당신이 알고자 결심한 것을 아는 데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곁눈질만 하라. 다른 이들의 소명을 대신하려다가 당신 자신의 소명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176~177쪽

어떤 사람들은 일정한 양의 지식에 도달하는 것으로 쉽게 만족한다. 그들은 처음에는 공부를 열심히 하다가 이내 지식을 채우려는 공복감을 잃어버린다. 그들은 우리가 언제나 무언가를 결여한다는 것과 무한한 발견의 영역에서 우리에게는 `여기서 멈추자`라고 말할 이유가 결코 없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과시하거나 어떤 이익을 얻으려고 공부하는 것이라면 약간의 지식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일종의 눈가리개로 자신의 어마어마한 무지를 다른 이들과 그들 자신에게 감춘다. 그러나 진정한 소명은 그렇게 쉽게 충족되지 않는다. 소명을 가진 이는 모든 성취를 새로운 출발점으로 여긴다. 진리에 헌신하는 인간은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탐구하기 위해 새롭게 시작하면서 살아간다.-183~184쪽

한꺼번에 몇 가지 일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때에 따라 그렇게 할 필요도 있다. (중략) 그렇더라도 각각의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에도, 그 과제들을 재개할 때도 집중하라. 한 과제를 수행할 차례가 되면, 다른 과제는 옆으로 제쳐두고 일종의 칸막이를 친 채로 지금 눈앞에 있는 과제에 집중해야 하며, 그 과제를 끝내기 전까지는 다른 과제로 바꾸지 않아야 한다. 이것 조금 했다가 저것 조금 하는 것은 전혀 이롭지 않다. 자꾸 머뭇거리고 이번에는 이 길을 갔다가 다음번에는 저 길을 가는 여행자는 이내 용기를 잃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반면 한 길을 꾸준히 걸어가는 것, 새로운 기운으로 계속 시작하고 적절한 순간, 즉 활동의 첫 단계를 마쳤을 때에 쉬는 것은 가장 풍성한 결실을 맺는 방법인 동시에 정신을 기운차게 유지하고 용기를 잃지 않는 방법이다. 참된 탐구자는 상충할 수도 있는 여러 과제에 몰두하면서도, 어떤 장애물을 넘기 위한 두 가지 절실한 노력 사이에서 늘 정신을 평온하고 고결하게 유지해야 한다.-187~188쪽

나는 앞에서 집중의 목표가 탐구의 범위를 좁히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밝혔다. 집중하는 것과 넓게 보는 것은 심장의 수축과 이완처럼 하나의 동일한 움직임이다. 내가 말하는 집중이란 한 점으로 주의력을 모으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넓게 보는 것이란 그 점이 방대한 전체의 중심이라고 의식하는 것이다. 사실 그 점은 모든 것의 중심인데, 무한한 구 안에서는 파스칼의 말처럼 "모든 점이 중심이고, 어떤 점도 원주 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의 정신에는 두 가지 성향이 있다. 포괄적인 종합에 도달하기 위해 세부를 통합하려는 성향이 있는가 하면, 세부에서 너무 오래 꾸물거리다가 통합에 대한 의식을 잃어버리는 성향도 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성향의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첫째 성향은 학문의 목표에 상응하고, 둘째 성향은 우리의 약점에 상응한다. 더 깊이 꿰뚫어보기 위해 대상을 분리하되, 그런 뒤에는 대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통합해야 한다.-200쪽

해야 할 공부가 방대하기 때문에 절대적 의미에서는 많이 읽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오늘날 가장 한정된 전문 영역에서조차 홍수처럼 쏟아져 나와 도서관과 우리의 정신을 가득 채우는 저술들과 비교하면, 우리가 읽는 것은 매우 적다. 허겁지겁 읽는 것, 자제하지 못하는 습관, 정신을 해치는 과도한 마음의 양식, 스스로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쉽고 익숙한 다른 이들의 사유에 안주하는 게으름은 금해야 할 것들이다. 많은 이들이 귀중한 지적 자질이라며 자랑하는, 읽기에 대한 갈망은 실은 결점에 지나지 않는다. 그 갈망은 다른 결점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아서, 정신을 독점하고, 끊임없이 정신을 혼란에 빠뜨리고, 불확실한 대립을 정신 안에 만들고, 정신의 힘을 고갈시킨다. 우리는 지적으로 읽어야지 결코 격정적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건강과 현명한 소비 규칙에 따라 그날 먹을거리를 미리 정한 주부가 시장에 갈 때처럼 책에 다가가야 한다. 시장에 있을 때 주부의 마음은 저녁에 영화관에 있을 때의 마음과는 다르다. 시장에서 주부는 즐거움과 화려한 볼거리가 아니라 가정의 살림과 안녕을 생각한다.-212~213쪽

지나치게 읽는 정신은 양분을 공급받기는커녕 오히려 둔해지며, 서서히 성찰하고 집중하는 힘을 잃어버려 결국에는 산출하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면, 정신은 내면을 향해 점점 더 외향적이 되고, 밀물 썰물처럼 흐르는 관념과 내면의 이미지에 열렬히 집중하며 그것들의 노예가 된다. 이렇게 무절제한 기쁨에 몰두하는 것은 자신에게서 도피하는 것이다. 그 기쁨은 지성의 기능을 빼앗을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사유를 하나하나 따라가는 것 혹은 단어·문단·장·책으로 이어지는 흐름에 실려가는 것만을 허락한다. 끊임없는 진동이 쇠를 마모시키듯이, 끊임없는 시각적 자극은 정신의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원인이 된다. 대단한 독서가가 자신의 눈과 뇌를 혹사한다면, 그가 진정한 공부를 하리라고는 전혀 기대할 수 없다. 그는 만성적인 두통을 앓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반면 지혜롭게 공부하는 이는 자제력을 잃지 않으면서 차분하고 명석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과 유용하게 쓰일 것만을 정신에 간직하고, 뇌를 신중하게 관리하며 뇌에 아무것이나 쑤셔 넣지 않는다.-213~214쪽

사람들은 세상물정에 밝아야 한다고 말한다. 지성인 역시 세상물정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자기 전문 영역에서 저술되는 것에도 무관심할 수 없다. 그러나 시류에 휩쓸려 공부 역량을 소진하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떄로 시류는 당신을 한걸음도 전진하지 못하게 막는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스스로 노를 저어야 한다. 시류는 당신이 도달하려는 지점까지 당신을 데려다주지 못한다. 다른 이들이 이미 걸어간 길을 따르지 말고 당신 자신의 길을 가라. 견실하거나 진지하지 못한 읽을거리와는 원칙적으로 거리를 두어야 한다. 일부 문학의 걸작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 이따금 휴식 삼아 소설을 읽을 수는 있다. 그러나 소설 대다수는 정신에 생기를 불어넣기는커녕 정신을 어지럽히고, 사유를 불안과 혼란에 빠뜨린다. 또한 끊임없이 쏟아지는 뉴스의 습격에 맞서 자기 자신을 지켜라. (중략) 뉴스를 읽으면서 공부하는 시간을 소비하지 마라. 진지하게 공부하는 이는 주간지나 격주간지를 검토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 외에는 평소에 귀를 열어두고 주목할만한 기사가 실리거나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만 일간지를 읽어야 한다.-214~215쪽

당신의 책을 선택하라. 흥미를 끄는 광고나 자극적인 제목을 믿지 마라. 성실하고 정통한 조언자를 곁에 두어라. 곧장 수원水源으로 가서 갈증을 풀어라. 일급 사상가들을 사귀어라. 혼자 힘으로 읽는 것이 늘 쉽지는 않기 때문에 그들과 어울리면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 경탄할 만한 것에는 진심으로 경탄하되 헤프게 경탄하지는 마라. 형편없이 쓰인 책, 사유가 빈곤한 책에는 등을 돌려라. 주요 관념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책만 읽어라. 이런 책은 그리 많지 않다. 책은 서로 되풀이하고, 서로 내용을 희석하고, 서로 반박한다. 그런데 희석하고 반박하는 것도 일종의 반복이다. 검토해보면 사유에서 새로운 발견은 드물다는 것을 알 수있다. 축적되어 있는 오래된 관념 혹은 영원한 관념이야말로 최상의 관념이다. 인류의 지성과 진정으로 교감하려면 좀스럽거나 언쟁을 일삼는 사람들을 멀리하고 최상의 관념을 토대로 삼아야 한다.-217쪽

다시 니콜의 말을 인용하면, "책은 인간의 작품이며, 인간의 타락은 그의 행위 대부분을 오염시킨다. 인간의 타락은 무지와 현세욕으로 이루어지며, 거의 모든 책은 이 두 가지 결점을 어느 정도 포함한다." 그러므로 많은 경우 책을 걸러가며 읽을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을 신뢰해야 하고, 신의 자식인 우리 자신의 좋은 면을 신뢰해야 한다. 우리 안에 있는, 진리를 찾는 본능과 선한 것에 대한 사랑이 안전장치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한 권의 책의 가치는 어느 정도 당신 자신의 가치, 당신이 그 책에서 끌어내는 것의 가치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라이프니츠는 무엇이든 이용했다. 아퀴나스는 동시대 이단자와 이교도에게서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유를 받아들였지만 그 가운데 어떤 것도 그에게 해롭지 않았다. 지적인 사람은 어디에서나 지성을 발견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어떤 벽에나 자신의 편협하고 무기력한 정신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최선을 다해서 무엇을 읽을지 고르되, 훌륭하고, 폭넓고, 진리에 대응하고, 신중하고, 진취적인 책을 고를 수 있도록 노력하라. 이런 특성들은 당신 자신의 특성이기도 하다.-218~219쪽

(근본적 읽기) 자신을 형성하는 과정에 있고 거의 모든 것을 배워나가야 하는 사람이라면 아직 진취적으로 읽을 때가 아니다. 초기 단계에서 교양을 두루 배우고 있거나, 새로운 갈래의 공부와 지금껏 간과되어온 문제를 과제로 삼으려는 것이라면, 이 목표를 위해 저자들을 비판하기보다 믿어야 하며, 독자 자신의 견해에 따라 저자를 이용하기보다 저자의 사유를 그대로 따라가야 한다. 너무 일찍 행동에 나서면 습득에 방해가 된다. 처음에는 유순하게 읽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되풀이하며 "너는 네 스승을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퀴나스는 이 말을 실천했고, 그것이 이롭다는 것을 알았다.-220~221쪽

(정보 습득 위한 읽기) 자신을 도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보를 얻기 위해서 다른 책에 의지하는 사람은, 더 이상 전과 같은 정신 자세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역으로 정신 자세가 달라졌기 때문에 책에서 정보를 얻으려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보를 찾아서 이용하길 원하는 사람은 순수한 수용의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 계획을 가지고 있다. 참고하는 책은 그의 하인이 된다. 어느 정도의 유순함은 언제나 필요하다. 그러나 그 유순함은 저자보다는 진리를 향해야 한다. 유순한 독자는 저자의 결론을 논박하지 않을 만큼 저자를 신뢰하면서도, 논의의 모든 단계를 노예처럼 따르지는 않는다. 이런 태도는 극히 중요하다. 공부할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책을 참고하는 것은 시간 낭비이기 떄문이다. 또 단순히 책을 참고하듯이 공부하는 것은 스승의 가르침에 머무르는 것이고, 자신의 주제로 안내하는 저자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자신을 도야할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이다.-222~223쪽

고양적 읽기에 관해 말하자면, 일반적인 규칙에 얽매이지 말고 각자의 경험에 근거해 책을 선택해야 한다. 이미 당신에게 도움을 준 것은 십중팔구 다시 도움을 줄 것이다. 길게 보면 한 책의 영향력은 점차 약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매번 강하게 영향을 미치는데, 습관이 들수록 그 영향을 빠르게 받아들이게 되고, 통찰력이 깊어질수록 그 영향에 익숙해진다. 책의 한 페이지는 관념과 감정의 연합이 상기시키는 정신의 상태와 연결된다. 이런 식으로 좋아하는 저자와 영감을 주는 대목이 있으면 지적 정신적 침체기에 어마어마한 도움이 된다. 좋아하는 책들을 곁에 두고 언제든 필요할 때 거기에서 기운을 얻어라. 몇 년 동안 정신이 시들해질 때마다 보쉬에의 콩데Louis Conde에 대한 <추도사(Oraisons Funebres)>의 마지막 부분을 읽고 기운을 되찾은 사람들을 나는 알고 있다. 각자 자신을 성찰해서 무엇이 도움이 되는지 알아야 하고, 아픈 영혼을 위한 약을 곁에 두고 효능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거듭 먹어야 한다.-223~224쪽

특정한 종류의 읽기는 휴식에 썩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떤 읽기는 도움이 되기는커녕 읽은 후에 반드시 행해야 하는 묵상에 오히려 해가 되고, 당신의 길에서 벗어나게 한다. 나는 고된 일을 마친 후에 독일의 철학자 첼러Eduard Zeller의 <희랍 철학사 개요(Grundriss der Geschichte der Griechischen Philosophie)>를 읽은 사람을 알고 있다. 그것은 휴식이었지만 충분한 휴식은 아니었다. 어떤 이들은 양념을 잔뜩 친 이야기나 공상적인 이야기를 읽어서 정신의 장면을 완전히 바꾸어버린다. 또 어떤 이들은 공부할 의욕을 떨어뜨리고 정신을 해치는 가벼운 읽을거리에 탐닉한다. 그런 것은 모두 해롭다.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다른 물건처럼 도구적 역할만 하는 책을 위해 당신을 희생하지 마라. (중략) 저마다 취향이 있기 마련이고, 휴식을 위한 읽기에서는 취향이 가장 중요하다. 아퀴나스에 따르면 단 한 가지만이 진짜 휴식을 준다. 바로 기쁨이다. 지루한 무언가에서 휴식을 찾으려는 것은 착각이다. 당신이 좋아하는 것, 당신을 너무 들뜨게 하지 않는 것, 어떤 식으로든 당신에게 해롭지 않은 것을 읽어라.-224~225쪽

지성의 창공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천재들의 이름을 때때로 떠올리는 것은 정신의 귀족들이 남긴 기록을 훑어보는 것이다. 이 자긍심은 걸출한 아버지나 위대한 조상을 자랑스러워하는 것만큼이나 아름답고 효과가 있다.-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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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공부 - 내 삶의 기초를 다지는 인문학 공부법
윌리엄 암스트롱 지음, 윤지산.윤태준 옮김 / 유유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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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공부 습관을 기르려면 우선 공부해야 할 내용과 공부할 시간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이 두 가지는 공부를 보조하는 수단으로 긴요한데 아주 간단한 방법, 예컨대 효율적인 계획표로 해결이 가능하다.-66쪽

계획표는 한 주가 시작되기 전에 짜야 한다. 자기 일상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 때까지 이 계획은 하루, 한 주, 한 달로 이어져야 한다. 계획을 통해 발생할 효과를 기대하지 않으면 첫 주도 못 채우고 포기하게 될 것이다. 계획을 세우는 데 기울인 정성과 노력만큼 효과를 볼 것이다. // 한 주 동안 해보고 금세 습관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는 접는 편이 좋다. 학문의 중요성이나 필요에 따라 계획표를 변경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것 한 가지는 확실하다. 실행되지 않은 공부 계획은 계획에 그칠 뿐 전혀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에머슨 R.W.Emerson의 말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열정 없이는 어떤 일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두세 가지 공부 습관을 익힐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열정을 가져야 한다. 이제 두 번째 습관을 제시하겠다. 앞서 제시한 습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의 필요에 따라 스스로 더 효과적인 습관을 만들면 된다.-67~68쪽

너무 무리한 공부 계획을 짜지 마라. 능력은 사람마다 다르다. 학문에 따라서는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사항은 가능한 한 빨리 판단하고 상황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 또 계획표는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유연하게 짜야 한다. 잘 짜인 계획은 생활에 질서를 부여할 것이며, 나아가 삶 전체를 짜임새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 심리학자와 작업능률 전문가가 연구를 통해 잘 짜인 시간과 그 시간의 결과물의 상관관계에 관한 흥미로운 통계를 낸 적이 있다. 에워 B.C.Ewer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몇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해야 할 떄, 다 망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마다 처리하는 방법이 다른데, 한꺼번에 해내려는 압박 때문에 결국 한 가지 일에 전력을 쏟지 못하고 이 일 저 일 헤매기만 하다가 일을 다 망치고 맙니다." 에워 박사의 말을 들으니 서너 가지 과제를 동시에 했던 기억이 다시 떠오르지 않는가?-68~69쪽

전기를 읽으면서 만나는 삶, 더 나은 세상을 만든 사람,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 등은 모두 시간 관리에 철저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일하거나 공부하는 습관을 보면 반드시 계획을 잘 짜고 그에 따라 움직인다. 실제로 계획을 짜고 일정을 수행하는 일은 당신의 삶에서 완수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다. 이 임무를 수행하는 데 실패한 사람은 사회 부적응자나 법적 파산자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그중에서도 자기 자신이 스스로에게 견디기 힘든 짐이 되는 경우가 가장 비극적이라 할 것이다.-69쪽

학생에게는 즐겁게 공부할 책임이 있다. 누구도 대신 흥미를 느껴줄 수 없으며,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한 공부를 더 재미있게 만들어줄 수도 없다. 강의에 참여하고 과제를 열심히 수행하는 것은 학생의 기본 의무이다. 이러한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사회적 지위도 영향력도 없는 인간이 되어 이 직업 저 직업을 전전하는 인생을 살게 된다. 언제나 자기가 넘지 못한 담장 건너편의 잔디는 더욱 푸르를 것이라는 후회를 품고 살 것이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지루하기만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모든 것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지한 이유는 그것에 대해 공부하고 싶을 만큼 충분한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 공부에 흥미를 느껴야 한다는 기본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것은 미래에 어떤 일을 하건 그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한 필수요건이다. 예술가는 항상 자기 일을 즐긴다. 어떤 분야가 됐건 예술가란 가능한 최선의 방식을 택해 할 수 있는 한 완벽하게 그 일을 해내려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대로 교육받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예술가와 같은 자세로 지식을 추구해야 한다.-195~196쪽

삶이 언제나 다양하고 가치 있는 경험과 선택을 제공해 주는 것은 아니므로 교육을 통해 그것을 얻어야 한다. 교육과정에서는 일견 재미없을 것 같은 학문을 수없이 공부해야 한다. 그런 학문이 정말로 싫을지도 모르겠다. 엘리엇 T.S.Eliot은 "아무 관심도 없는 학문을 열심히 공부해보지 않은 사람은 진정 교육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적성에 전혀 맞지 않는 학문에 억지로 흥미를 붙여 무언가를 배우도록 하는 것 또한 교육의 일부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아마도 전혀 흥미가 없었던 내용이나 학문을 충분히 공부한 다음에는 그것이 더는 지루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 흥미는 의지와 노력의 결과이다. 같은 말이 종종 집중력을 정의하는 데 똑같이 쓰이곤 한다. 어떤 의미에서 흥미와 집중력은 숙명적으로 매우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다. `집중력`이라는 단어는 맞물려 돌아가는 작은 톱니바퀴들 또는 수많은 부품이 정확한 순서로 배열되어 정밀하게 작동하는 기계장치를 연상시킨다. (계속~)-196~197쪽

(~이어서) 만일 학생이 어떤 학문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그것을 배우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이기를 포기한다면, 그는 톱니바퀴가 제대로 맞물리지 않았거나 정밀한 기계장치에 고장이 났을 때처럼 고통스러운 소음을 내게 될 것이다. 선생은 학생에게서 "저는 집중력이 없는 것 같아요"라는 호소를 수도 없이 듣는다. 그리고 같은 날 바로 그 학생이 운동장에서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 뛰어노는 모습을 목격한다. `집중력`이라는 단어는 매우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 학생과 학부모가 낮은 학업 성취도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을 때마다 즐겨 사용하는 `흥미`라는 단어와 매우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이트 Gilbert Highet는 "집중은 지적인 과정이며 선택이다"라고 말했다. 흥미를 돋우면 집중력이 저절로 엄청난 힘을 발휘하여, 학생을 해야 할 일의 한가운데로 안내해줄 것이다. 흥미가 없는 곳에는 집중력도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도 없다.-197~198쪽

어떤 학문에 대한 흥미는 유전적으로 물려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마법의 주문이나 한마디 과장된 약속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스스로 획득해야 한다.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강의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원인을 알아내는 것이다. 그 원인을 찾으려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 학문이 어렵다거나 과제가 너무 많다는 등의 변명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 학문에 흥미가 없는 이유를 확실히 진단할 수 없다면, 그냥 조금 더 성실하게 공부해보는 것만으로 태도가 바뀔 수도 있다. 한 달간의 실패로 잃어버린 흥미도, 단 하루의 성공으로 모두 되찾을 수 있다.-198쪽

모든 과제, 모든 학문이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흥미진진해질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어떤 학생에게는 수학은 공부해보았자 아무 소용도 없을 것 같고 국어는 지루할 뿐이지만, 역사는 그들보다 훨씬 더 의미 있고 재미있게 여겨질 수 있다. 만일 수학을 제일 싫어한다면 그 학문을 가장 먼저 공부하라. 제일 싫어하는 학문을 정복하면 다른 학문에서 좋은 성적으로 얻는 것은 물론이고, 인생에서 어떤 난관에 부딪혀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까지 얻을 것이다. 인생은 일견 아무 매력도 없어 보이는 크고 작은 의무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주어진 일이 재미있거나 지루하거나 상관하지 않고 달려들어 해결해낼 수 있는 사람만이 성공과 행복을 거머쥘 수 있다. // 노력과 의미는 단순한 공식이나 연습만으로는 이끌어낼 수 없고, 흥미 또한 단어를 외우거나 과학법칙을 배우듯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일에 흥미를 느끼는 가장 좋은 방법은 `흥미를 느끼고 열심히 하기만 하면 인간에게 한계란 거의 없다`라는 결의에서 출발하는 것이다.-198~1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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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지성인 남편의 조력자로 여기며 여성에게 베아트리체가 되라고 하는 3부 1장 <일상을 단순하게 만들어라>의 회유하는 듯한 논조는 시대를 감안하더라도 내 신경에 거슬렸다. 저자와 동시대인인 버지니아 울프가 이 책을 읽었는 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분위기가 이러했다니 그녀가 <<자기만의 방>>에서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 분노를 억누르느라 몹시 애썼겠군 싶더라.


한편으론 공부에 별 뜻이 없는 남자를 배우자로 삼은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던 듯 하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콩깍지 신혼이 끝난 뒤 난 왜 저 인간 책 읽는 동안 집안일 따위에 정력 낭비 해야 하는 거지? 라며 분통을 터뜨리거나, 그의 공부가 내 보기에 시원찮으면 당장 집어치우고 투잡이라도 뛰어! 라며 바가지를 긁는 크산티페가 되었을 것 같다. ^^;; (경쟁적이며 질투가 심한 내 성격적 결함을 고려할 때, 부부가 같이 뭔가를 하는 것보단 분업이 잘 되어 있고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주는 편이 맞았던 거다.)


어차피 전업주부가 되기로 한 거, 열심히 하고 있다. 새벽에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한 뒤 창문 열어놓고 본격적으로 쓸고 닦으며 광내고 설거지, 냉장고 정리, 빨래, 다림질, 행주 or 걸레빨기에 분리수거까지 다 해놓고 씻고 아점 먹고 휘리릭 요리책 넘기며 저녁 메뉴 선정 후 장 보고 오면 정오. 잠깐 넋 놓고 있으면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가버리므로 아침엔 음악도 틀어놓지 않고 집중해서 쉬지 않고 일한다. 그러고 오후 5시까진 완전히 내 시간! 이 중 세 시간 아니 저자의 말대로라면 두 시간만 확보해도 잘 해나가고 있는 셈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3~4년간은 그 두 시간도 힘들겠지만;;) 여하간 목숨같은 그 시간을 공부에 온전히 쏟아붓기 위해선 저혈압이고 뭐고 무조건 일찍 일어나 부지런 떠는 수밖에 없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 몸은 고되지만 이 일정을 칼 같이 지킨 날엔 몹시 기분이 좋아져서 저녁상 차릴 때도 요술(?)을 부리게 되고 밤에 잠도 잘 온다. ^0^ 대단한 공부를 하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하루 하루 채워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내 재능과 운이 허락하는 최대치에 도달하게 될 지도 모른다.



행주를 개키면서.jpg


ps. 본문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아퀴나스의 '지식을 획득하기 위한 16가지 조언'을 라틴어로 읽고 싶어 검색해봤다. --->  Sixteen Precepts for Acquiring Knowledge (De modo studen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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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로그아웃 - 인터넷은 우리를 어떻게 바보로 만드는가
알렉스 륄레 지음, 김태정 옮김 / 나무위의책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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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꽤 괜찮은 취미들이 있다. 나는 시간이 날 때면 주로 독서, 피아노 연주, 영화감상, 일기 쓰기, 요가, 아내와 대화하기 혹은 친구 녀석들과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보낸다. 나는 직장에서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할까 봐 늘 전전긍긍하는 그런 부류의 인간이 아니다. 그러니 무슨 이유로, 예전 같으면 텔레비전에 알록달록한 방송 정지 화면이 나올 늦은 시간대까지 잠도 안 자고 메일을 쓰고 인터넷을 헤맨단 말인가?-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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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세체니는 빼앗기기 전에 내주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정말 욕심 없는 삶을 살았다. 어떻게 보면 미친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사심이 없었다. 세체니는 경제학자와 정치가로서 근검절약을 장려하였다. <네가 3백 마리의 양을 가지고 있더라도, 서른 마리만 가지고 있는 듯 절약하라.> 이것은 세체니의 좌우명 가운데 하나였다.-39쪽

멋지게 차려입고 오페라 초연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렇듯 우스꽝스럽게 보이는데도, 의식적으로 그것에 저항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들과 똑같이 행동하고 문화와 대중 매체를 주로 자신의 사회적인 위치를 강조하거나 대화에 한몫 끼일 수 있는 수단으로 이용할 게 확실하다. 문화소비에 지출하는 돈은 대부분에게 주로 체면 유지 비용이다. 나는 대중 매체와 문화에 드는 비용을 줄이기 시작한 이후에 나한테 정말로 중요한 일들에 돈을 아낄 필요 없이 많은 것을 포기할 수 있다고 확정 지었다. 예를 들어, 나는 시류에 밝으려면 어느 정도라도 읽을 수 있는 외국의 모든 신문과 잡지를 정기 구독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오랫동안 시달리며 살았다. 그런 고질병이 절정에 이르렀을 즈음에는 아침마다 다섯 부나 되는 신문이 우리 집 우편함을 꽉 틀어막고 있었다. (…) 나는 하루에 네 번 정도 텔레비전 뉴스를 들었으며, 미국과 프랑스와 영국에서 현재 <화제>로 오르는 것을 알아내기 위해 인터넷에 매달렸다. 나는 전형적인 정보 중독 증상을 보였다.-134쪽

어쩔 수 없이 형편에 쫓겨 대중 매체와 문화와 이벤트 비용을 다이어트할 수 밖에 없게 된 이후에야 비로소, 나는 그동안 <시류에 따라가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전부 내 정신을 산만하게 하고 쓸데없는 것으로 채우고 나 자신의 생각을 가로막은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는 [애틀랜틱 먼슬리]를 굳이 정기 구독할 필요가 없으며, 심지어는 [메르쿠어]와 [태틀러]까지도 전혀 아쉬움 없이 포기할 수 있다. 또한 2,048킬로바이트 스트리밍 다운로드가 가능한 DSL이 없어도 전혀 불편이 없으며, 언젠가 다시 휴대폰을 소유할 생각이라면 결단코 통화 가능한 것으로 만족하리라. 나는 밤비, 골든 카에라, 황금칠면조상의 수상자가 누구인지 알고 싶지 않다. 누가 올해의 망언 인사로 뽑혔는지도 알아야 할 필요 없으며, 언론의 어떤 주요 인물이 <이달의 화제>로 선정하든 선정하지 않든 상관없이 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유전자 연구나 두뇌 연구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 또한 텔레비전 방송에서 기필코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는 이유 하나로, 2주일에 한 번씩 주말마다 유럽의 <예술 중심지>를 찾아다니며 전람회를 관람할 필요도 없다. (이어서~)-135쪽

(~이어서) 이번 주에 언론에서 요란하게 과대 선전하지 않는 그림들이 걸려 있는 가까운 미술관에도 얼마든지 갈 수 있다. 또한 무슨 굉장한 일인 양 추앙받는 연극을 쫓아다닐 필요도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수시로 뉴스 듣는 일까지도 포기했다. 대부분 중요하다고 하는 뉴스들이 내 삶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따금 한 귀로 뉴스를 듣고 싶으면 라디오를 켠다. 시끌벅적한 텔레비전 방송을 시청하는 것과 저녁에 한 시간 라디오 방송을 듣는 것의 관계는 슈퍼마켓의 인스턴트 식품과 자연식품 가게의 싱싱한 야채의 관계에 비유할 수 있다.-135쪽

텔레비전만큼 머리를 아둔하게 만들고 군중 심리에 휩슬리게 하는 기기도 없다. 또 그렇게 많은 둔감함과 잔인함, 진부함, 시간 낭비를 야기한 대중 매체도 없다. 얼마 전까지도 정신적인 상류층에 속하려면 최소한 라틴어를 읽을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텔레비전을 포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른바 지적인 정보 방송이라고 하는 것조차 대개는 학문적으로 중요한 것을 전달하기보다는 그저 지식을 전달하는 척할 뿐이다.-137쪽

문화 쓰레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하나는 전문 지식으로 도피하는 것이다. 빠듯한 자금 사정은 여러 가지 면에서 불편할 수 있지만, 동시에 우선순위를 정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즉, 삶에 무리한 부담을 주는 모든 잡동사니로부터 벗어나도록 도와준다. 그러면 진실로 애착을 느끼는 일들만이 남는다. 글렌 굴드의 인생과 업적이든 중세의 교회 미술이든 펑크 록이든 특별한 분야에 조예가 깊은 사람은 우리 대부분의 문화 소비를 좌지우지하는 군중 심리에 휩쓸리지 않는다. 그런 열정이 물론 우스꽝스러운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현대의 예술 소비 풍조에서 가장 쉽게 벗어날 수 있고, 이 테마에서 저 테마로 허겁지겁 쫓겨 다니지 않으며, 오늘은 광우병 때문에 내일은 유전자 조작된 사과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다. 전문가는 풍성한 지식을 즐기고 독자적인 삶을 영위한다. 전문가는 아무것도 모르고서 그저 이리저리 발버둥치는 사람과 대조를 이룬다.-139쪽

저명한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원숭이의 도움 없이도 이 사실을 인식했다. 두뇌 연구자들의 실험이 있기 오래전에 나온 <성취의 우울증>에 대한 블로흐의 이론에 따르면 소원과 동경은 언제나 성취에 이르는 문턱에서 사그라진다. 이러한 인식을 마음속 깊이 새기는 것만으로도 아주 많은 돈을 절약할 수 있다. 아이팟이나 최신식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막상 갖게 되어도 기분이 더 나아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것도 당장 포기할 수 있을 것이다.-152쪽

중산층 안에서 밑으로 처지는 사람들도 아주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다. 기능공은 혼자서 평생 1백만 유로가 훨씬 넘는 돈을 벌 수 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그에게 남아 있는 재산은 벌어들인 것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시시한 잡동사니나 부질없이 시간 때우는 데 많은 돈을 지출했기 때문이다. 세이셸 여행, 병을 보관하기 위한 부실한 목재 장식장, 퐁뒤 기기, 와플 굽는 기기, 클럽 회원권, 제빙기와 요구르트 기기, 가벼운 젤라틴 신발, 레저 활동을 위한 배낭, 콤비 재킷, 여행용 양파 절단기, 신체의 지방질만을 측정하는 저울, <브러싱 처리된 고급 크롬> 고기 저미는 기계, 보푸라기 제거하는 기계, 전신 마사지 기기, 과자 봉지를 봉인하는 열기계, 유산소 운동기, 유명 디자이너의 프라이팬, 주서기 두 대, 자석 목받침 등.-154쪽

주변의 강압에 밀려 물건을 사는 태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작은 술수를 사용할 수 있다. 미국의 소비 반대주의자들은 <하루라도 물건을 사지 말자>는 운동을 생각해 냈다. 그러면 겸사겸사 운동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은 정말로 천재적인 발상이다. 일주일에 하루, 예를 들어 금요일을 선택하여 현금이든 카드든 절대로 1센트도 지출하지 않기로 작정한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이것을 시험해 보면 우리가 날마다 무의식적으로 얼마나 많은 구매 결정을 내리는지 깨달을 것이다. 여기에 참여하려면, 커피나 담배처럼 현금 집약적인 기호품에 집착하지 않을수록 이상적이다.-159쪽

<신용카드 콘돔>을 대중화시키려는 운동도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이 운동의 요지는, <너는 정말로 이것이 필요한가?> 아니면 <너는 내면의 공허함을 메우려고 이것을 사려는 게 아닌가?>라는 물음이 쓰인 작은 봉투 안에 신용 카드를 넣어 두자는 것이다. 그러면 물건을 살 때마다 신용 카드 콘돔에서 신용 카드를 꺼내야 한다. (…) 그러나 그 배후의 생각은 옳다. 사람들이 사는 대부분의 것은 별로 쓸모가 없는 것이며, 절약하면서 사는 물건들이야말로 올바른 것들이다. (…) 잔돈에 <인색하게 구는 일>, 값싼 물건을 쫓아다니는 것만큼 돈을 낭비하는 경우도 별로 없다. 경기가 침체되기 시작했을 때, 13유로 50센트짜리 알디 샴페인을 낚아채고 독일 철도청 유실물 센터의 경매에서 40유로에 산악용 자전거를 입수하면서 경제 난국을 타개할 수 있다고 충고하는 수백 권의 책이 서점에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사실은 이런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이 엉터리 샴페인이 정말로 꼭 필요한가? 또 사방천지를 둘러보아도 반경 3백 킬로미터 이내에 산 비슷한 언덕 하나 없는 함부르크에 살면서 과연 산악용 자전거가 필요한가?-160쪽

나는 오랫동안 본의 아니게 부유한, 그야말로 무척 부유한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흥미 있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었다. 취향이 고상한 부자들은 예로부터 간소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부유한 사람들일수록 <평범한> 삶을 흉내 내는 것을 사치스러운 일로 여긴다. 현재 살고 있는 시골의 성이 클수록, 모든 편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지만 가능한 한 작은 도심의 공동 주택을 더 동경한다. 그러면 부엌 어딘가에서 요리사가 조리한 음식을 근사하게 차려진 식탁에 앉아 먹는 게 아니라, 시장(슈퍼마켓이면 더욱 좋다)에서 비닐봉지 가득 장을 보아서 직접 요리하고 나중에 직접 두 손으로 설거지하는 것이 호사스러운 일에 속한다.-170쪽

부자들이 비교적 부담 없는 삶을 영위할 가능성은 오직 하나밖에 없는 듯하다. 사도 바울은 이런 특효약을 2천여 년 전에 간단하게 요약했다. <너희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듯 소유하라!> 분수에 맞는 검소한 삶을 영위하는 사람은 여러 가지 이점을 즐길 수 있다. 첫째로 고상한 취향을 유지할 수 있다. 로저문드 필처가 이러한 좋은 사례이다. 로저문드 필처는 영국의 유복한 가정 출신이며, 남편과 함께 스코틀랜드의 널찍한 별장에서 살았다. 그녀는 자신의 책들이 성공을 거두었을 때, 이미 중년의 나이에 새삼 호사스럽게 살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보았다. 그러다 책의 판매 부수가 1백만 부를 넘어섰을 때, 우리 대부분이 했을 것과는 정반대로 행동했다. 남편과 함께 시골의 별장에서 작은 오두막으로 이사를 한 것이다. 사도 바울의 격언은 두 번째로 실용적인 면에서도 유익하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듯 소유하는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재산을 잃어버려도 생활방식을 바꿀 필요가 없다. 습관이 호사스럽고 소원이 변덕스러울수록, 무(無)로의 추락은 더 고통스럽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카를 마르크스는 런던에서 망명 생활하던 시절에, 부인 예니 폰 베스트팔렌만큼 의연한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다. 마르크스는 많은 하인에 익숙해 있었으며, 부인이 직접 요리해야 하는 상황을 한탄했다. 그러나 부인은 남편보다 훨씬 더 겸허한 성격이었으며, 남편처럼 원통해하는 대신 요리에 대한 열정을 길렀다. 예니 폰 베스트팔렌은 남편에게 없는 것을 갖추고 있었다.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하는 태도, 감상에 빠지지 않고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여 미화시키는 능력.-178쪽

<로빈슨 크루소의 원칙>을 매혹적이게 하는 것은 진부한 <긍정적인 사고>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삶의 우여곡절을 받아들이고, 희생자의 역할에 파묻히는 대신 끝까지 행위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는 능력이다.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고 설파하는 서적들의 잘못된 점은, 행복의 진부한 상투어를 독자들 눈앞에 들이밀면서 이루지 못할 기대를 일깨워 불행으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원래 어떤 삶이든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행복해지려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인지하고 이루지 못할 꿈을 뒤쫓지 말아야 한다. 삶의 기복, 존재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사람은 영원한 건강, 갈등 없는 배우자 관계, 물질적인 소원의 성취를 뒤쫓는 사람보다 어쨌든 행복한 삶을 영위할 가능성이 더 많다. 게다가 경이롭게도 행복은 외적인 상황과 무관하다. 부유하고 건강하고 가족에 둘러싸여 있는데도 극도로 불행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찢어지게 가난하고 병들고 외로운데도 행복한 사람들이 있다. 분명한 사실은, 영원한 행복의 이상향을 추구하는 사람은 확실하게 불행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평생 물질적인 부만을 쫓아다니는 사람은 결단코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193쪽

로빈슨 크루소와 카쇼기와 호호슈테르비츠 사령관의 뛰어난 특징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한탄하지 않고 끝까지 행위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의 전략을 우리의 경제적인 상황에 적용하면, 우리가 주변으로부터 강요받는 많은 외면적인 욕구를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쉬운가를 인식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실 형편에 맞지 않는 것인데도 떨쳐 버릴 수 없는 욕망이 있다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시기에 비로소 그개 얼마나 호사인지 알 수 있다. 독일의 한 가정이 불가리아의 중간 크기 마을 전체보다 더 많은 전기 기구를 사용하는 시대는 곧 지나갈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겼던 많은 것들이 앞으로는 사치로 의식될 것이다. 아주 사소한 일들, 전신 목욕, 식기 세척기, 여행. 생활이 빠듯해진 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다시 많은 것을 즐길 수 있다.-195쪽

실제로 깊은 만족을 느끼게 하는 사물들은 돈으로 얻을 수 없다. 진정한 사치품을 잃는 경우에 이 세상의 어떤 보험 회사도 보상해 줄 수 없다. 손으로 직접 쓴 편지, 독특한 장서표, 여느 꽃가게에서 구입한 게 아니라 이따금 꽃을 꺾도록 허락하는 어느 노부인의 정원에서 선물받은 꽃다발, 화장품 가게에서 돈 주고 산 것이 아니라 손수 섞어 만든 향수, 수공업자가 직접 고안하고 제작한 물건, 눈 내리는 공원에서의 산책, 무더운 여름날 호수에서의 수영, 아버지가 쉰 번째 생신에 고이 보관하신 포도주 한 병 등. 내 친구 카를 라슬로가 1960년 [사치를 위한 호소]에서 말한 것처럼, 사치는 <가지고 싶은 것은 가지고 가져야 하는 모든 것은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정의에 따르면, 시리즈 상품, 호텔 특실에서의 하룻밤, 값비싼 자동차, 돈 주고 사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것은 사치품이라 불릴 자격이 없다.-199쪽

따라서 지나치게 넘치는 삶은 피곤하고 권태로울 뿐 아니라 완전히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사실을 아직 파악하지 못한 가난한 부자들이 특히 동정을 받아 마땅하다. 그와 반대로 가난해지는 사람들은 선구자에 속한다. 결국 머지않아 우리 모두, 정말로 모두가 예전보다 한결 더 가난해질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우아하고 침착하게 대처하는 법을 빨리 터득할수록 더욱 근심 걱정 없는 삶을 누리게 된다.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욕구를 품은 사람들만이 부자로 살 수 있다. 비록 은행 잔고가 줄어들지라도, 다행히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일들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다.-199쪽

삶을 보람 있게 해주는 것들은 수중의 돈이 감소한다고 해서 줄어들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우리의 내적인 자주성은 지금까지 결코 수입의 문제가 아니었다. 박식함이나 예의범절도 마찬가지다. (…) 정중함, 친절함, 다정함, 도와주려는 마음, 삶을 쾌적하게 해주는 이런 모든 것은 참으로 무한할 수 있으며, 물질적인 여건과는 완전히 무관하다. 게다가 다행히도 인간의 모든 미덕도 이와 마찬가지다. 도덕률의 경우에는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지 마라>는 명령이 토대를 이루고 있으며, 이것을 단념하고 저것을 회피하는 것으로써 그 명령을 완수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도덕률은 언제나 일시적인 것에 그치는 데 비해, 미덕은 무한하다는 불굴의 장점을 가진다. 사랑하거나 신뢰하거나 희망하는 데는 원래 한이 없는 법이다. 또한 누군가가 도를 넘어서 현명하거나 용감하거나 정의롭거나 신중했다는 말은 결코 들어 보지 못했다. 그러므로 결핍의 시대에 우리는 미덕만큼은 자책하지 않고 마음껏 활용해야 할 것이다.-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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