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지성인 남편의 조력자로 여기며 여성에게 베아트리체가 되라고 하는 3부 1장 <일상을 단순하게 만들어라>의 회유하는 듯한 논조는 시대를 감안하더라도 내 신경에 거슬렸다. 저자와 동시대인인 버지니아 울프가 이 책을 읽었는 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분위기가 이러했다니 그녀가 <<자기만의 방>>에서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 분노를 억누르느라 몹시 애썼겠군 싶더라.
한편으론 공부에 별 뜻이 없는 남자를 배우자로 삼은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던 듯 하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콩깍지 신혼이 끝난 뒤 난 왜 저 인간 책 읽는 동안 집안일 따위에 정력 낭비 해야 하는 거지? 라며 분통을 터뜨리거나, 그의 공부가 내 보기에 시원찮으면 당장 집어치우고 투잡이라도 뛰어! 라며 바가지를 긁는 크산티페가 되었을 것 같다. ^^;; (경쟁적이며 질투가 심한 내 성격적 결함을 고려할 때, 부부가 같이 뭔가를 하는 것보단 분업이 잘 되어 있고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주는 편이 맞았던 거다.)
어차피 전업주부가 되기로 한 거, 열심히 하고 있다. 새벽에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한 뒤 창문 열어놓고 본격적으로 쓸고 닦으며 광내고 설거지, 냉장고 정리, 빨래, 다림질, 행주 or 걸레빨기에 분리수거까지 다 해놓고 씻고 아점 먹고 휘리릭 요리책 넘기며 저녁 메뉴 선정 후 장 보고 오면 정오. 잠깐 넋 놓고 있으면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가버리므로 아침엔 음악도 틀어놓지 않고 집중해서 쉬지 않고 일한다. 그러고 오후 5시까진 완전히 내 시간! 이 중 세 시간 아니 저자의 말대로라면 두 시간만 확보해도 잘 해나가고 있는 셈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3~4년간은 그 두 시간도 힘들겠지만;;) 여하간 목숨같은 그 시간을 공부에 온전히 쏟아붓기 위해선 저혈압이고 뭐고 무조건 일찍 일어나 부지런 떠는 수밖에 없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 몸은 고되지만 이 일정을 칼 같이 지킨 날엔 몹시 기분이 좋아져서 저녁상 차릴 때도 요술(?)을 부리게 되고 밤에 잠도 잘 온다. ^0^ 대단한 공부를 하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하루 하루 채워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내 재능과 운이 허락하는 최대치에 도달하게 될 지도 모른다.
행주를 개키면서.jpg
ps. 본문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아퀴나스의 '지식을 획득하기 위한 16가지 조언'을 라틴어로 읽고 싶어 검색해봤다. ---> Sixteen Precepts for Acquiring Knowledge (De modo studen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