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찬 예찬 시리즈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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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찬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어떤 아름다운 음악가, 한 마리 우아한 말, 어떤 장엄한 풍경, 심지어 지옥처럼 웅장한 공포 앞에서 완전히 손들어버리는 것, 그것이 바로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예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비참한 사람이다. 그와는 결코 친구가 될 수 없다. 우정은 함께 예찬하는 가운데서만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한계, 모자람, 왜소함은 눈앞으로 밀어닥치는 숭고함 속에서 치유될 수 있다. 잉그마르 베르히만이 말했듯이 요한 세바스찬 바흐는 신에 대한 우리의 불경을 위로해준다. 아니 이렇게 덧붙여도 좋으리라. 우리의 하찮음은 성서를 읽는 가운데 사라지고 우리의 외설스러움은 바티칸 궁전 시스티나 성당에 그려진 몸들을 보면 육체적 사랑으로 변모한다. 그리고 폴 발레리의 <노트>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빛나는 지성으로 바꿔놓는다.-6쪽

그와는 전혀 다른 것이 고양이다. 주인에 대해서 철저하게 독립적이고, 다정하지만 그 애정을 매우 간헐적으로 표시하며, 까닭 모르게 어디론가 사라졌다가는 신비스럽게 다시 나타나고, 책들과 잉크병 사이를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고 걸어다닐 수 있는 고양이야말로 작가의 동반자가 될 수 있는 모든 자질을 골고루 갖추었다. 그 누구보다도 고양이에 관하여 탁월한 글을 쓴 사람은 바로 보들레르였다. 이곳에는 아주 많은 고양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절대로 그들의 독립성을 해치지 않았다. 고양이는 그냥 있을 뿐이다. 먹고 자고 어디론가 간다. '사제관 고양이'라기보다는 '동네 고양이'다. 우리 집에서 밤을 지내는 법은 거의 없다. 그러나 아침이면 어김없이 와서 나와 아침식사를 한다. 한 번에 꼭 한 마리씩이다. 고양이는 개와 달리 패거리를 아주 싫어한다. 고양이를 불행하게 하고 싶으면 그에게 라이벌을 만들어주라. 당신의 고양이를 행복하게 하고 싶으면 그에게 친구를 만들어주라.-203~204쪽

천사들의 모든 기능들 중에서 음악이야말로 틀림없이 그들의 천성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음악이 어울릴까? 신비주의자 앙젤뤼스 슈와즐뤼스는 이렇게 썼다. '음악가 천사들은 신을 위해 의식을 집행할 때면 바흐를 연주한다. 그러나 천사들끼리 있을 때는 모차르트를 연주한다. 그러면 신이 문간에 와서 엿듣는다.'-268쪽

러시아 정교회는 자기들의 대표를 베들레헴에 보내지 못한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그래서 전설에 따르면, 러시아의 한 왕자가 선물을 잔뜩 가지고 길을 떠났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보다 더 먼 곳에서 출발한 데다가 길을 가는 동안 어쩔 수 없이 여러 번 적선을 하게 되어 끊임없이 지체되는 바람에 그는 너무나 늦게, 그것도 수중에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이 베들레헴에 도착한 것이었다. 그후 그는 33년 동안 예수를 찾아 헤매고 난 다음, 바칠 예물이라고는 오직 자신의 영혼뿐 가진 것이 없는 빈손이 되어 결국 성 금요일 날 십자가 아래서 겨우 예수를 찾아냈다. (…) 러시아의 눈 덮인 스텝 지대를 거쳐 순록이 끄는 썰매에 선물을 가득 싣고 길을 가면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선물을 나누어주는 사람…. 동방 정교회의 신화가 만들어낸 이 네번째 동방박사의 초상, 이것이 바로 우리가 찾는 산타클로스가 아닐까? 그가 이천 년 동안이나 아기 예수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서 그저 자신이 만나는 모든 어린아이들에게 선물을 잔뜩 나누어주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 그것으로 그 인물 확인은 충분할 것 같다.-282쪽

우리 몸의 근육들은 휴식하기 위하여 하루 평균 여덟 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으면 안 된다. 그중 단 한 가지 근육만이 이 불연속성의 법칙에서 제외되는데 그것이 바로 심장근이다. 이 근육은 일생 동안 쉬지 않고 박동한다. 그렇다면 이 근육이 절대로 휴식을 취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그것은 아마도 다른 근육들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잘 휴식할 것이다. 심장의 비밀은 그것이 두 번의 박동 사이의 아주 짧은 한 순간 동안 휴식한다는 사실에 있다. 다시 말해 심장의 휴식, 잠, 바캉스는 분산되어가지고 그것의 노동과 긴밀하게 뒤섞여 있는 것이다. 심장처럼 노동하라. 너무나도 재미있고 창조적이며 다양한, 그리고 특히 일상생활에 너무나도 잘 편입되어 있고, 노력과 성숙의 국면들이 너무나도 리드미컬하게 교차하는지라 그 자체 속에 휴식과 바캉스를 내포하는 그런 노동을 하라.-299~300쪽

그러니까 육체적인 노력은 그것이 유용하고 노동에 의해 요구되는 것일 때는 몸을 추하게 만들고 반면에 그것이 무용하고 스포츠에 속하는 것일 때는 몸을 아름답게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점은 새로운 발견이지만 그 단초는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옛날 사람들은 운동선수의 고상한 몸짓과 노예의 작업이 보여주는 추한 모습을 대립적으로 생각했다. 그렇지만 운동선수의 몸이 햇볕에 쪼여서 황금빛으로 그을린 모습을 찬양하는 고대의 텍스트는 아무리 찾아보아도 눈에 띄지 않는다. 모파상도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어서지 못 했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뱃놀이꾼들의 몸이 햇볕에 '검게 탔다'니까 말이다. 왜 황금빛으로 물든 것이 아니라 검게 탄 것일까? 역시 그 이유는 같다. 즉 그들은 의도적으로가 아니라 우연히 햇볕에 몸을 노출시켰을 뿐이기 때문에 검게 탄 것이다. 그들은 일종의 봉헌 행위인 진정한 일광욕을 한 것이 아니었다. 오늘날 남자와 여자는 일광욕을 통해 저 거룩한 태양에 자신들의 몸을 봉헌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신령한 별은 청동상의 광휘를 그들에게 하사함으로써 그들을 축복하여준다.-307~308쪽

현실은 본래부터 천연색이 아니라 흑백, 다시 말해서 근본적으로 회색인 것이다. 현실에다가 색깔을 부여하는 것은 우리들의 눈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눈은 회화에 의하여 이런 방향으로 교육받았기 때문이다.-3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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