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핀란드 여행 - <카모메 식당> 뒷이야기
가타기리 하이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7월
절판


우리 집의 매일 식사는 대부분 꿈에 그렸던 대로다. 무와 파, 그리고 유부는 떨어진 적이 없다. 게다가 낫토와 달걀, 된장국에 넣을 채소 한 가지만 있으면 국 하나, 반찬 하나가 완성된다. 밖에서 거친 요리를 먹을 기회가 많으니까 집에서는 얌전하게 먹자, 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나이가 들며 그것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다.-74~75쪽

살사인지 메렝게인지 신나는 음악이 갑자기 끊기고, 띠띠뚜 하고 시보가 흘렀다. 오, 이거야말로 정확한 과테말라 시간이겠구나. 나는 얼른 가방 속에 넣어 두고 있던 짝퉁 지샥을 꺼냈다. 돌아오는 비행 지옥을 향해 슬슬 정확한 시간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시곗바늘을 시보에 맞추고 있는데, 동생이 천진스럽게 이렇게 내뱉었다. "이 시간에 맞추지 않는 편이 나을걸. 방송국마다 다르니까." 결국 어느 시간이 과테말라의 정확한 시간인지 마지막까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때 맞춘 시계의 시간은 내게 가장 소중한 과테말라 선물이 되었다. 지금도 내 방에서는 세계 여기저기에서 모은 사치스러운 시간이 제각각 흐르고 있고, 그것을 바라볼 때마다 내 시간도 아주 조금 우아해진다.-176~177쪽

나라마다 각각의 리듬이 있다. 핀란드에는 아시아의 혼잡이 아닌, 독특한 여유가 있다. 그것뿐만 아니라 내 속에는 그때 그 앞으로 고꾸라질 듯한 안경 점원에게 '하여간 일본인은 성미도 급하다니까' 하는, 지금까지 느낀 적 없는 안쓰러움 같은 마음조차 생겼다. 좀 일그러진 정의의 사자는 활동을 멈추고 여신 같은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했다. 끝자리까지 정확하게 챙긴 책값을 내고 안경 점원과 뒷줄 사람들에게 "미안합니다" 인사하고 나는 조용히 서점을 나왔다. 에스컬레이터에 기대 내려오면서 여신 같은 온화한 기분으로 아직 그 핀란드의 리듬이 몸속에 흐르고 있음을 느꼈다.-183쪽

결국 예정 시간을 30분, 예정 요금을 1,500엔 초과하여 택시는 친구들이 기다리는 집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때도 내 속에는 아직 여신의 마음이 남아 있었다. "평소 나오는 요금만 주세요" 하고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운전사에게 말없이 천 엔을 건네고 점잖게 문을 닫았다. 할 수 없다. 길을 몰랐으니. 내가 발끈하여 나무라지 않아도 분명히 다음에는 승객이 말하는 길을 제대로 듣고 가겠지. 그런 식으로 생각하니 내 몸이 조금 가볍게 느껴졌다. 사소한 부조리에 일일이 눈초리를 세우고 작은 복수를 반복하기보다 좀 더 고급스러운 무기를 손에 넣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여유라는 무기. 지금까지 어째서 금방이라도 앞으로 고꾸라질 듯이 살아왔는지. 도시에서 살아가는 스트레스 따위, 이 무기를 사용하면 거의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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