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흐른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동문선 / 19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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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수필집이라면 일단 무조건 집어들고 볼 정도로 좋아하지만, 이 책은 그 중에서도 특히 정이 간다. 아마도 내가 처음 반했던 그의 수필집 <코끼리 공장의 해피 엔드> 시리즈와 같은 맥락의 책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10년의 시차는 있지만 양쪽 다 '주간 아사히'에 미즈마루 안자이 화백의 삽화와 함께 연재된 글들이라 비슷한 관심사와 비슷한 분량,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이다.

하루키의 관심사는 10년이 지나도 여전하다. 고양이, 달리기, 움악, 책, 영화...특별한 것 없는 일상을 느긋하게 즐기면서 그 속에서 '쿨하게'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버릇도 여전하다.

그러나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와 비교하자면, 글 사이사이에서 그가 더 어른이 되었다는 것은 느껴진다. 단 그것은 보통의 경우처럼 '기성세대화'하거나 '나이들었다'는 의미와는 다른, 미묘한 어른스러움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상처입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이야기하면서도 그는 나이들었다고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런 것이다'라는 식이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하루키스러움 역시 이런 것이다.'번역을 하면서 가장 가슴이 설레는 때는 가로로 길게 늘어져 있는 언어를 세로로 세워 놓는 그 순간이니까 말이다', 이런 문장은 무릎을 치면서 읽었다.

하루키다운 유머, 날카로움, 섬세함, 심각하지 않되 경박하지도 않음..이런 것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글이라 언제 다시 읽어도 즐겁다. 김난주씨의 번역 역시 늘 그렇듯 하루키다움을 아쉬움 없이 살려주고 있다. 하루키-미즈마루 콤비가 마음에 드는 만큼 하루키-김난주 콤비도 늘 나를 행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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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풍경 - 지중해를 물들인 아홉 가지 러브스토리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11
시오노 나나미 지음, 백은실 옮김 / 한길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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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읽을 때마다 조금은 헷갈린다. 그래도 이 정도로 잘 읽히는 역사책(?)도 없지, 하는 생각과 그런데 과연 이걸 역사책이라고 부를 수 있나..하는 생각이 왔다갔다 하는 탓이다. 개인적으로는 로마인 이야기 역시 '역사서술'로 받아들이기엔 상당히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시오노 나나미 본인도 자신의 저술에 대해 '역사평설'이라는 쟝르명을 주장했던 인터뷰를 본 기억도 있다(그 탓인지, 개인적으로 시오노 나나미의 책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아예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색채삼부작이었다).

각설하고, 이 책 역시 일단 잘 읽힌다.'지중해를 물들인 아홉가지 러브스토리'라는 부제대로, 르네상스 시절 이탈리아 여러 도시국가를 배경으로 한 아홉가지 사랑 이야기를 시오노 나나미 특유의 필력으로 생생하게 끌어내었다. 행복한 사랑 이야기보다는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은 연인들이나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을 평생 가슴에 품은 이들의 이야기가 많아서 어딘가 아련하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역시 늘 고민하던 문제는 남는다. 이 이야기들의 어느 부분까지가 실재했었고, 어느 부분이 시오노 나나미의 창작인 것인지. 몇 가지 이야기는 확실히 공인된 사료에도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사료에는 단순히 몇 줄로 끝나는 이야기를 이 정도로 만들어내려면 당연히 작가의 창작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그 부분은 이해하더라도 몇 가지 이야기에 대해서는 시오노 나나미 자신이 참고한 사료 자체가 16세기의 알려지지 않은 소설작가의 단편이다, 라고 밝히고 있으니 그러면 이 책에 실린 작품들 중 최소한 몇 편은 명백히 '소설'의 분류에 속하게 된다. 이 책이 로마인 이야기 류와는 달리 '시오노 나나미 에세이'라고 분류되어 있기는 하지만, 꼼꼼하게 읽지 않으면 모두 실존했던 이야기로 보이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거다.

결론? '역사라고 착각하지 않고 읽는다면' 가볍게 시간을 때우고 재미를 느끼는데는 상당히 유용한 책이다. 그러나 재미는 느낄 수 있되 몇백년 전 실제로 일어났던 이야기라는 아련함이 주는 감동을 포기해야 하는 건 역시 아쉽기는 하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역사가 아닌 것을 역사로 착각하는 것은 더 위험한 일일진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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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의 이혼
사토 겐이치 지음, 이정환 옮김 / 열림원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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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의 이혼>을 다 읽고 나서, 앙드레 모로아의 <프랑스사>를 펼쳤다. '...(샤를 8세는) 이미 루이 11세의 딸인 키가 작고 가무잡잡하게 생긴 잔 드 프랑스와 결혼하고 있었다. 교황 알렉산드르 6세의 아들 체사레 보르지아가 굉장한 금전과 토지를 증여받고 결혼 무효 절차를 주선했다. 이 결혼은 루이 11세가 강요한 것이었으므로 무효로 할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개설서에는 무미건조하게 몇 줄 언급되었을 뿐이지만, 사토 겐이치의 소설을 읽다보면 잔 드 프랑스와 샤를 8세는 까마득한 중세 이전의 이름 몇 자가 아니라 피와 살을 가진 생생한 인물로 다가온다. 내가 역사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이다. 물론 그 캐릭터가 역사상의 진실에 얼마나 부합되는가 하는 문제가 남아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인물의 캐릭터를 가지고 진실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꽤나 무익한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저런 실존인물을 등장시킴으로써 소설의 설정은 무게를 갖지만, 소설적 재미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작가의 뜻대로 움직여주어야 할, 역사적 사실에 크게 얽매이지 않을 인물이 필요하다. 작가가 내세운 인물은 바로 뜻밖에 이혼재판을 맡게 된 변호사 '프랑수아 베트라스'.젊은 시절 잔 드 프랑스의 아버지인 루이 11세에 의해 학자로서의 미래를 잃고 연인과 헤어지게 되었던 그가 이혼재판에서 궁지에 몰리던 원수의 딸을 변호하게 되면서 소설은 본격적으로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독자 입장에서 잔 드 프랑스의 이혼 기록이 문서로 얼마나 보존되어 있는지, 따라서 재판의 세부사항이 얼마나 역사와 일치하는 것인지, 실제로 그 변호를 맡은 변호사의 이름이 프랑수아 베트라스였는지까지는 확인하기 힘들다. 그러나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사토 겐이치라는 작가가 이런 설정을 기반으로 상당히 짜임새있고 생생한 드라마를 만들어내었다는 것이다. 물론 프랑수아의 과거라던가 프랑수아와 잔 왕비와의 관계는 확실히 픽션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렇기 때문에 역사'소설'인 것이니 그런 부분이 유감스럽지는 않다.

중세 파리 대학의 분위기, 캐논(Canon)법의 내용을 비롯한 법정의 모습, 당시의 국제관계와 사회상 등이 생기있게 묘사되어 있어서 어찌 보면 딱딱한 역사서를 읽는 것 보다 훨씬 더 자연스럽게 역사적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다. 물론 그 기저에 깔려있는 것이 시대를 가로지르는 영원한 테마인 사랑과 결혼, 사회적 인간으로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기 때문에 더 친근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생각했던(그리고 실망했던?) 것 중 하나는 한국에서 서양사를 다룬 연구서는 나올 수 있어도 서양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나오기 힘들 것 같다는 거였는데, 일본에서는 태연스럽게 이런 소설이 나오고 나오키상을 수상할 정도로 성공을 거둔 것을 보면 그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물론 이미 이전에 시오노 나나미라는 작가가 있었으니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이런 식의 책들이 많이 쓰여지는 것에 대해 일본인들의 유럽 선호가 과한 탓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아니면 일본의 유럽 연구가 상당한 저변을 가지고 있다고 부러워해야 할지. 그래도 책을 덮는 솔직한 심정은 부럽다, 쪽에 더 가까웠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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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 접시 위에 놓인 이야기 5
헬렌 니어링 지음, 공경희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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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자면, 내가 음식을 다룬 책을 구입하는 이유는 음식이야기를 읽으면서 입맛을 다시고 싶기 때문이다. 눈으로는 책 속의 음식을 즐기고 입으로는 진짜 음식을 먹는 버릇은 다이어트에는 최악의 습관이라 해도 포기하기 힘들만큼 유혹적이다.

그래서 제목에 끌려서 이 책을 구입해서 첫 부분을 좀 읽다가 덮고, 한참을 내던져 두었다.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은 이래서 나쁘고, 또 저래서 안좋고, 조리법은 뭔가 문제고..라는 이야기를 읽다보니 갑자기 먹고 있던 비스켓이 농약친 밀가루로 만들었을 화학첨가물 투성이의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음식을 다룬 책 중에 '식탁을 바꾸라'는 류의 책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몰라서 못하는 거 아니고 알아도 못하는 건데, 기왕 먹는 음식 즐겁게 먹어야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듣고 먹으면 오히려 스트레스 원인이 될 것 같아서였는데..그런 점에서 보면 이 책은 내 기준에 영 맞질 않았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꺼내어 읽은 뒷부분은 오히려 그런 면에서는 괜찮았는데, 문제는 책 뒷부분이 완전 요리책인데 거기 나오는 요리 중에 실제로 여기서 따라할 만한 요리가 거의 없다는 것. 나처럼 요리책을 소설책읽듯 읽는 사람이야 상관없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이도저도 아니지 않을까. 결국 책의 제목은 소박한 '밥'상이지만, 대부분 미국식 재료, 미국식 조리방법만을 다루고 있어 실제 우리가 소박한 밥상을 차리는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조리방법 역시 가장 단순한 방식을 택한다고는 했지만 야채요리에도 버터의 사용빈도가 높아서 정말 건강에 좋을까..라는 의문도 조금은 든다. 소박한 밥상이라는 번역서 제목은 얼핏 보면 썩 훌륭한 의역이지만, 뜯어보면 '안성맞춤'같은 잘못된 번역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상당히 인기가 있었던 건 이전 니어링 부부의 책들이 소개되면서 불러온 화제성을 잘 이용한 출판사 마케팅의 승리다. 재생지를 사용해 찍어낸 것은 마케팅이라해도 여러모로 칭찬해주고 싶은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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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오의 연인 16 - 완결
신일숙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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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오의 연인'을 시작하면서, 신일숙은 10년 이상을 별러 온 작품이라 했다. 20대 중반부터 영감을 얻었고 그리고 싶은 작품이었는데, '아르미안의 네 딸들'을 비롯한 여러 작품에 밀려서 이제야 내놓게 된 작품이라고. 그러나 그 시절부터 죽 신일숙의 독자였던 내가 이 작품을 읽고 내린 결론은, 유감스럽게도 '10년 전 그 시절에 나오던가, 아니면 나오지 말아야 할 작품'이었다는 것이다.

너무 가혹한 평가일 수도 있지만, 아마도 다른 작가가 이 만화를 그렸다면 내 평가도 다소는 후해졌을 것이다. 내러티브나 그림체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작품은 아니므로. 그러나 신일숙이기에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을 만큼, 순정만화계에서 '신일숙'이라는 네임 벨류는 크다. 그리고 그러기에 독자가 그녀의 만화를 집어들면서 거는 기대치도 클 수 밖에 없다. 신일숙이 이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어중간한 스케일, 즉 가요계, 영화계, 기업 분야까지 다루면서도 어느 것도 전문적이지 않은 모습으로는 10년 전이면 모를까 오늘날 독자들의 입맛을 만족시키기에 어렵지 않을까. 그동안 독자들은 성장했고 눈높이를 높혀왔으니 말이다.

뒤로 갈수록 처음의 작품 성격이던 환타지 로맨스가 아니라 지나치게 유혈 낭자한 활극이 되어버리는 것도 당황스럽고, 고전적 패턴에서 벗어나려는 나름대로의 시도인지는 모르나 순정만화에서 기대되는 로맨스 포맷에서 과하게 벗어나버린 주인공들은 감정 이입을 오히려 힘들게 할 뿐이다. 읽으면서 자꾸 비판적인 되어가기에 잠시 작가의 의도대로 끌려가기에는 나 자신이 너무 자라버린 탓인가 하고 고민도 했지만, 다른 만화들을 접했을 때의 느낌을 생각해보니 그런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변함없음'을 우리는 인생의 덕목 중 하나로 꼽지만, 그래도 사실 아무것도 변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니 가장 좋은 것은 너와 내가 서로 인식하지 할 못할 만큼 조금씩, 천천히, 함께 변해가는 것일 것이다. 신일숙처럼 나와 80년대를 함께했던, 그때 내 감수성을 풍부하게 해 주었던 작가들, 나는 그들이 '변함없기'보다는 나와 함께 변해주기를 원한다. 그들을 오래 지켜보고 싶은 독자로서의 욕심으로, 다음 작품에서 신일숙의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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