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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오의 연인 16 - 완결
신일숙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3년 5월
평점 :
절판
'파라오의 연인'을 시작하면서, 신일숙은 10년 이상을 별러 온 작품이라 했다. 20대 중반부터 영감을 얻었고 그리고 싶은 작품이었는데, '아르미안의 네 딸들'을 비롯한 여러 작품에 밀려서 이제야 내놓게 된 작품이라고. 그러나 그 시절부터 죽 신일숙의 독자였던 내가 이 작품을 읽고 내린 결론은, 유감스럽게도 '10년 전 그 시절에 나오던가, 아니면 나오지 말아야 할 작품'이었다는 것이다.
너무 가혹한 평가일 수도 있지만, 아마도 다른 작가가 이 만화를 그렸다면 내 평가도 다소는 후해졌을 것이다. 내러티브나 그림체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작품은 아니므로. 그러나 신일숙이기에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을 만큼, 순정만화계에서 '신일숙'이라는 네임 벨류는 크다. 그리고 그러기에 독자가 그녀의 만화를 집어들면서 거는 기대치도 클 수 밖에 없다. 신일숙이 이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어중간한 스케일, 즉 가요계, 영화계, 기업 분야까지 다루면서도 어느 것도 전문적이지 않은 모습으로는 10년 전이면 모를까 오늘날 독자들의 입맛을 만족시키기에 어렵지 않을까. 그동안 독자들은 성장했고 눈높이를 높혀왔으니 말이다.
뒤로 갈수록 처음의 작품 성격이던 환타지 로맨스가 아니라 지나치게 유혈 낭자한 활극이 되어버리는 것도 당황스럽고, 고전적 패턴에서 벗어나려는 나름대로의 시도인지는 모르나 순정만화에서 기대되는 로맨스 포맷에서 과하게 벗어나버린 주인공들은 감정 이입을 오히려 힘들게 할 뿐이다. 읽으면서 자꾸 비판적인 되어가기에 잠시 작가의 의도대로 끌려가기에는 나 자신이 너무 자라버린 탓인가 하고 고민도 했지만, 다른 만화들을 접했을 때의 느낌을 생각해보니 그런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변함없음'을 우리는 인생의 덕목 중 하나로 꼽지만, 그래도 사실 아무것도 변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니 가장 좋은 것은 너와 내가 서로 인식하지 할 못할 만큼 조금씩, 천천히, 함께 변해가는 것일 것이다. 신일숙처럼 나와 80년대를 함께했던, 그때 내 감수성을 풍부하게 해 주었던 작가들, 나는 그들이 '변함없기'보다는 나와 함께 변해주기를 원한다. 그들을 오래 지켜보고 싶은 독자로서의 욕심으로, 다음 작품에서 신일숙의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