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의 할리 퀸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55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설영환 옮김 / 해문출판사 / 199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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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에 단편 취향이라, 크리스티의 작품 중에서도 장편보다는 단편이 좋다. 어차피 나라는 인간이 장편 추리물을 읽으면서도 범인을 맞추려는 시도는 커녕 100% 작가의 의도대로 움직여주는 편이라(이야기가 전개되는 내내 눈 댕그랗게 뜨고 탐정들의 활약을 구경만 하는 독자가 나다) 아예 호흡이 짧은 단편 쪽이 더 편하기도 하고..

미스 마플, 에르큘 포와로, 배틀 총경, 토미와 터펜스, 파커 파인..크리스티가 창조해낸 탐정들은 다양하기도 하지만, 독특하기로 따지자면 아마도 이 단편선의 할리퀸이 으뜸일 듯 하다. 제목처럼 할리퀸은 어디선가 미스터리하게 나타나서 몇 마디 대화만으로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하는 단초를 만든다. 그렇다고 그 이상 행동으로 옮기는 것도 아니다. 실제 사건의 해결사는 새터드웨이트씨라는 초로의 노신사. 자신이 60 평생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관객 노릇만 해 왔다고 생각하는 새터드웨이트씨는 잠시라도 무대의 배역을 맡아 어긋난 사실을 바로잡아주는 역할을 퍽 즐기곤 한다.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알리지 않는, 가끔은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인지도 의심하게 하는 할리퀸과 사건에 부딪힐 때마다 평소와는 다른 활동력으로 필요한 행동을 취하는 새터드웨이트씨는 나름대로 썩 괜찮은 콤비다. 그리고 이들이 해결하는 사건은 대부분 미스터리중에서도 로맨스에 가까운 것들로, 단편 중에는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인생극장'에 가까와 보이는 작품들도('도박사의 영혼' '바다에서 온 남자') 끼어있다. 그리고 마지막 열두번째 단편 '할리퀸의 길'에서는 크리스티가 다른 작품에서도 가끔 보여주었던 신비주의적인 요소가 드러난다.

할리퀸이라는 인물의 개성 때문인지 아가사 크리스티의 다른 단편들에서 보이던 발랄한 모습보다는 애잔한 구석이 많다.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사건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던 사실들이 보이기 쉽다'는 할리퀸의 주장도 인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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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Travels 쉬 트래블스 2 - 라틴 아메리칸 다이어리 2
박정석 지음 / 효형출판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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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꽤 지난 일이지만, 어느 신문의 책 소개란에서 '박정석'이라는 이름을 보고 든 생각은 '역시, 책을 내긴 냈구나'였다. 나올 책이 나왔다.라는 느낌이랄까. 통신의 여행 동호회에 글을 올리던 시절부터, 그녀의 여행기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글 중 하나였다.

내가 읽은 그녀의 여행기가 꽤 많았었는데 그 중 출판된 것은 올라오다 말았던(책에 나온 대로 노트북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더 이상 통신에 올라오지 않았었다) 라틴 아메리카 여행기라는 걸 알고는, 글 자체의 매력보다는 다녀온 곳의 특수성으로 인해서 선택된 걸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고. 나 자신은 그녀의 글을 몇년간 쭉 읽으면서 이 라틴 아메리카 여행기가 오히려 그녀의 다른 여행기보다는 참 무겁고 암울하다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역시 떠날 당시 그녀의 상황 때문이었겠지만.

좀 무겁고 암울해도 여전히 매력적이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 책으로 접한 글에서는 처음 그 여행기를 읽었을 때의 암울한 느낌은 덜해서, 글이 바뀐 건지 아니면 내 자신이 달라진 건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었다.

하긴, 어쩌면 그 몇년 사이에 나 자신이 바뀐 건지도 모른다. 여행이라는 것이 무조건 즐겁지만은 않은 것임을, 오히려 여행을 무겁게 하는 것이 여행지에서는 꼭 즐거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임을, 여행지에서 겪는 쓸쓸함과 고독과 불편함마저 그 여행의 일부임을...생각해보니 나도 그 사이에 배운 것 같다. 여행만 떠나면 그저 좋았던 풋내기 여행객이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은 '박정석화' 되어 버린 걸까.

매 시간 즐겁지 않은데도 왜 시간과 돈을 들여서 여행을 하냐.는 질문에는, 고맙게도 그녀의 말을 빌어서 대답할 수 있다. 그 기억으로 밋밋한 일상을 견디기 위해서라고.

그녀가 어디에선가 또 치열한 여행을 하고 있기를. 그리고 돌아와서 우리에게 그 기억을 풀어내어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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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스 2
키티 켈리 지음, 이종인 옮김 / 동방미디어 /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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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번쯤은 꿈꿔봤을 것이다. 왕과 여왕, 왕자와 공주, 왕관과 드레스와 성, 대관식과 결혼식과 무도회....그리고 이런 동화같은 이야기가 현실에서 가장 비슷하게 나타난 것이 바로 영국 왕실 아니었던가.....그러나 이 책은 그런 순진한 환상을 완벽하게 무너뜨린다.

뒷얘기는 재미있다, 유명한 사람들의 뒷얘기는 더 재미있을 거다. 라는 생각으로 집어든 책이었는데, 읽는 동안 내내 씁쓸했다. 어차피 그동안 이런 저런 매체를 통해서 다 들은 이야기지만 이렇게 차곡차곡 체계적으로 모아서 들으니 영국 왕실에 대해 가지고 있는 그나마의 환상마저 우르르 무너졌다고나 할까.

소위 로열 패밀리라는 사람들이 다들 왜 그리 약한 걸까. 술에 의지하고, 약물에 의지하고, 배우자 외의 다른 상대들과 끊임없이 스캔들을 일으키고...너무 한결같이 다들 문제가 있어보이니 원래 그들 자신이 그렇게 약한 인간인건지, 아니면 왕실의 일원이 되어 끊임없이 매스컴에 노출되는 유명인사로 살아야 하는 스트레스가 그들을 그렇게 만든 건지 궁금해질 지경이다.

키티 켈리가 말하는 암울한 왕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젊어서 죽은 덕분에 허물은 다 묻히고 영원한 영국의 장미로 남은 다이애나가 오히려 행복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영국의 군주제는 과연 얼마나 지속될까? 그래도 이 책을 영국 내에서 판매금지시킬 정도로 영국인들이 아직 왕실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듯하니, 아마 그렇게 쉽게 무너지진 않을 거 같긴 하다. 그것이 군주제와 전통에 대한 낭만적인 애정이든 자본주의 경제 논리에 따른 관광자원 보존 노력이건 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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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가서 꼭 먹어야 할 음식 130가지
한복진 외 지음 / 시공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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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와 여행에 관심이 많은 터라, 이런 부류의 책은 사실 언제나 환영이다. 게다가 이 책은 아마추어적 지식과 여행 경험을 버무린 음식수필이 아니라, 말 그대로 해외에서 먹어볼 수 있는(사실 요즘은 국내에서도 맛볼 수 있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130가지 요리를 확실하게 정리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전문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 현지에 거주중인 황건중씨와 요리전문가라 할 수 있는 한복진 교수가 함께 쓴 이 책은 아기자기하거나 재미있지는 않다. 그러나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체와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해서 우리가 흔히 접하는 외국 음식들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준다. 아마 이 책만 야무지게 읽어도 해외 여행을 가거나, 국내에 많이 들어와 있는 외국 식당에 갔을 때 같이 간 사람에게 메뉴에 대해 확실하게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막상 여행을 가서 이것저것 보다 보면 이 책에 등장한 음식들을 챙겨먹고 온다는 건 쉽지 않다. 그러나 그러면 뭐 어떠리. 나 같은 경우는 여행이랑은 상관없이 내 집 소파에 편하게 앉아서 이 책을 읽는 것이 아주 즐거웠으니 말이다. 표지나 편집상태, 활자가 아주 깔끔하고 사이즈는 작지만 사진 역시 적절하게 골라 배치되어 있어서 읽는 즐거움이 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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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공지영 지음 / 김영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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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책을 삐딱한 눈으로 보던 시절이 있었다.분명 책을 집어들면 잘 읽히니 재능있는 작가라는 건 인정했지만, 그녀가 386세대의 아픔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거엔 도무지 공감가지 않았다.그 시절, 정말 어렵게 살았던 이들의 글을 읽다보면 특히 그녀의 이야기는 배부른 투정으로만 들렸었다.

그렇게 몇년간 그녀의 책들을 외면하다 집어든 '공지영의 수도원기행'은 예상외로 썩 괜찮았다. 그녀가 달라진 것인지, 아니면 내가 가지고 있던 삐딱함이 사라진 것인지 몰라도 이 책 속에서 나타나는 그녀의 모습은 상당히 호감가는 것이 되어 있었다. 날카로움과 치기가 사라진 대신 넉넉함과 겸허함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고나 할까.

제목은 '수도원 기행'이지만, 기행문에 치우쳤다기 보다는 작가 자신의 내면을 상당히 심도깊게 고백하고 있다. 그 글을 읽으면서 한 인간으로서의 그녀, 나보다 조금 앞서서 세상을 헤쳐나온 한 여자로서의 그녀가 새로이 보였다. 이제 40을 넘고 나니 20대의 여성들이 부럽다기 보다는 가엾어진다는 그녀. 자신이 겪어온 20대의 질풍노도가 생각나서 그 모든 것을 겪으면서 나이들어야 할 20대들이 가엾다는 글을 읽으면서, 아..그녀도 이제 한 고비를 넘었구나.라고 느낀 건 더 어린 사람으로서는 오만한 일일까.

20대에 참 많은 여행을 했던 나인데, 이제는 여행이 심드렁하다. 나도 공지영의 나이가 되면, 한번 더 그녀같은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 굳이 '수도원 기행'은 아니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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