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어록
서른 개의 바퀴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모여 있으되 그 가운데가 비어야 수레의 쓰임이 있다. 진흙을 빚어서 그릇을 만들되 가운데가 비어야 그릇의 쓰임이 있다. 문과 창문을 뚫어 방을 만들되 그 가운데가 비어야 방의 쓰임이 있다. 그러므로 있음이 이로운 것은 없음이 쓸모 있기 때문이다.


 

노자는 말했다. 갖가지 재료로 마차를 만들지만 객차가 비어 있어야 사람을 태우고 물건을 실을 수 있고, 많은 공을 들여 도기를 만들지만 속이 비어야 물건을 담을 수 있으며, 힘들여 집을 짓지만 방이 비어 있어야 사람이 살고 물건을 보관할 수 있다. 즉 유형의 사물을 빌어 무형의 사물이 비로소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무형과 유형은 습관적으로 허(虛)와 실(實)로 표현되는데, 세상 만물이 허와 실의 밀접한 조화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 그렇다면 허가 중요한가, 실이 중요한가? 노자는 이를 구분하지 않고, 이 둘이 같은 사물의 양면이므로 분리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있음이 이로운 것은 없음이 쓸모 있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두고 종종 ‘허’의 일면을 강조하며 장자(庄子)의 허무주의 철학을 이야기한다.

 

이를 발단으로 천년을 면면히 이어온 둔세적(遁世的) 문화가 형성되었다. 도연명(陶淵明)이 관직을 그만두고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를 따던’ 삶은 천고의 미담으로 남아 수많은 선비들의 본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노자의 사상으로부터 깨달음을 얻었다 말한다. 그러나 사실 노자는 허를 사실의 한 면으로만 보았을 뿐, 이를 독립적인 형태로 존재한다고 보지 않았고, 이론을 중시하는(務虛) 철학은 후세가 만들어낸 발명품일 뿐이다.


불교문화는 전래된 후부터 도가문화와 결합하여 문인과 선비들은 허무에 더욱 집착했고, 주역(周易)으로부터 전해진 “하늘의 운행은 튼튼하여 지칠 줄 모르니, 군자도 이와 같이 스스로 강하게 단련함에 그침이 없어야 한다”는 진취적 정신을 상당부분 상쇄시켰다.


노자는 허무를 숭상하지 않았다. 그의 ‘무위무불위(無爲無不爲, 하지 않으면서도 하지 않는 것이 없다-역주)’는 ‘무불위’에 중점을 두어, 적극적으로 세상에 뛰어들고자 하는 태도를 나타낸다. 이는 주역이 말하는 진취정신과도 일맥상통한다.


실제 없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진흙을 빚어 불에 굽지 않고 도기를 만들 수 있는가? 건축재료 없이 집을 지을 수 있는가? 위진(魏晋) 시대 문인 유령(劉伶)은 스스로 하늘과 땅을 집으로 삼는다고 말했다. 그의 눈에는 건축재료 없이도 거할 집이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하늘과 땅은 결코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재료가 다를 뿐이다.


장자는 평생 허(虛)를 소명으로 삼았다. 벼슬에 오르지도 않고 일을 하지도 않고 날마다 “장주가 나비가 된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장주가 된 꿈을 꾼 것인지 알 수 없다”는 등의 괴이한 문제를 골똘히 생각하며, “큰 술잔을 만들어 강물에 띄워놓는다”는 등의 궤변을 늘어놓았다. 그러다 끼니가 떨어지면 부잣집에 가서 탁발을 해서라도 배를 곯는 법이 없었다.

 

한번은 장가가 수로를 관리하는 감하후(監河侯)의 집에 양식을 꾸러간 일이 있다. 감하후는 시원스레 대답했다. “좋습니다! 조세를 걷으면 곧 은자 300량을 빌려드리지요.” 하지만 장자의 집에는 이미 쌀 한 톨도 남지 않았고 그의 아내 또한 반찬값이나마 벌 손재주도 없었으니 그로서는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총명하고 언변이 좋은 장자는 즉석에서 이야기를 하나 지어냈다. “제가 어제 댁으로 오는 길에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더이다. 사방을 둘러보니 사람의 그림자도 없었지요. 자세히 보니 수레바퀴 자국에 붕어 한 마리가 누워 동해의 관리인데 잘못하여 이곳에 빠졌다며 저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제가 말했지요.

 

‘좋다! 남쪽의 오 왕(吳王), 월 왕(越王)에게로 가서 서강(西江)의 물을 끌어오도록 청하여 너를 동해로 돌려보내주지!’

 

붕어가 화가 나 눈을 크게 뜨며 말하더군요.

‘지금 몸 둘 곳을 잃어 한 되의 물만 있으면 살 수 있거늘 당신은 서강의 물을 끌어오겠다는 빈 말을 하니 차라리 건어물 가게에서 나를 찾는 편이 나을 겁니다!’” 장자가 이야기를 마치자 감하후가 크게 웃더니 곧 장자에게 많은 식량을 빌려주었다.


장자는 참으로 큰 인물 중에서도 큰 인물이다. 공허한 것만 끌어안고 세월을 보내지 않고, 때로는 이렇게 실제적인 것을 구할 줄 알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도가 허와 실의 작용인 것처럼 인생 역시 허와 실에 의해 운영된다. 어떤 것은 반드시 ‘실제’해야만 한다. 예컨대 재능, 품성, 외모, 신체, 자원, 환경 등은 실제 지녀야만 이로써 바람을 이룰 수 있으며, 부족한 부분에는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물론 이 문제는 극복할 수 없는 것은 아니겠으나 어쨌든 장애가 된다. 그런가 하면 어떤 것은 반드시 ‘허무’이어야 한다. 당신의 도량, 포부, 성장 잠재력 등은 빈 공간을 필요로 하며, 그렇지 않으면 인생은 경직될 것이다. 허와 실의 운영에서는 두 가지 오류가 나타나기 쉽다. (후략)

 

- [왼손에는 명상록, 오른손에는 도덕경을 들어라]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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