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 월드컵이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다면, 2003년은 <대장금> 열풍이 전국을 강타했다. 나 역시도 당시 대장금을 한편도 빼놓지 않고 본 열혈팬이었다. 대장금 전편 중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아있는 한 장면이 있다.

 

때는 장금이가 어려서 수라간 생각시로 들어와 한상궁 밑에서 배우던 시절이었다. 장금이의 요리 스승인 한상궁이 장금에게 마실 물을 떠오라고 주문했고 장금이는 아무 생각없이 맹물을 가져갔다. 한상궁은 ‘이 물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물을 다시 떠오라고 했다. 장금이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이번에는 따뜻한 물을 떠갔다. 그러나 이번에도 한상궁의 반응은 같았다. ‘이 물이 아니다. 다시 가져 오너라’ 장금이는 다시 찬물을 가져가 보았지만 역시 같은 반응이었다.

 

어린 장금이는 한상궁의 주문이 너무 어려워 수라간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소리내어 울고 있었다. 그 때 정상궁마마가 지나가며 장금이에게 ‘여서 왜 울고 있느냐?’고 물었다. 장금이는 ‘한상궁마마님께서 자꾸 물을 떠오라고 하시는데 도대체 무슨 물인지 모르겠습니다. 무섭습니다.’라고 말했다.

 

정상궁은 ‘쯧쯧쯧 또 한상궁의 고약한 성미가 나왔구나’라고 말하며 뭔가 답을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어찌하면 좋습니까?’라고 묻는 어린 장금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그냥 짠 소금물이나 한 바가지 퍼다 주거라’ 장금이는 ‘안됩니다. 그럴 순 없습니다.’라고 울먹이며 말했다.

 

정상궁의 말에서 힌트를 얻은 장금이는 한상궁에게 다시 찾아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물을 가져가지 않았다. 한상궁은 ‘왜 물을 가져오지 않았느냐?’라고 물었다. 장금이는 한상궁에게 오히려 이렇게 질문을 했다. ‘한상궁마마, 혹시 목이 아프십니까?’ 한상궁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장금이는 활짝 웃으며 돌아갔고, 이내 목이 아픈 한상궁을 위해서 부은 목이 편해질 수 있는 따뜻한 소금물을 준비해왔다. 소금물을 마셔본 한 상궁은 마침내 ‘그래 바로 이물이구나’라며 장금이를 칭찬했다. 여기서 한상궁은 장금이에게 요리를 하는 자세에 대한 훌륭한 가르침을 전해주었다.

 



‘음식을 만드는 자는 그것을 먹는 자를 먼저 생각해야 하느니라’

 



나는 일을 할 때나 사람들을 만날 때 언제나 장금이의 일화에서 얻은 깨달음을 적용하려고 노력한다. 선물은 주는 사람의 입장이 아닌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준비해야 그 가치가 더 커지는 것처럼 일과 사람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장금이에게서 배운 교훈은 다양한 사람들과의 접촉이 많은 나에게 대인관계 측면에서도 큰 도움을 주었다. 나는 직원들과 면담을 하기 전 혹은 고객들과 미팅을 하기 전에 가장 먼저 상대방의 상황과 필요를 살핀다. 상대방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출발한 면담 혹은 미팅은 실패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나는 미팅 전 상대방에 대한 디테일한 파악을 위해 10분 정도의 시간을 투자한다. 오늘 만나야 할 사람이 요즘 어떤 상황에 있는지, 이번 미팅을 통해서 나에게 기대하는 바는 무엇인지, 그가 좋아하는 것과 그가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꼼꼼히 점검한다.

 

프레젠테이션도 마찬가지다. 발표물을 잘 만들고 멋진 목소리로 열정적인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사람이 훌륭한 프레젠터가 되는 것이 아니다. 청중들이 지금 어떤 상황에서 프레젠테이션을 듣고 있는지, 이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어떤 결과를 기대하는지 정확히 알고 그 필요를 관통하는 프레젠이션을 만드는 게 핵심이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는 디테일의 차이에서 분명하게 갈린다. 물을 떠달라는 아주 평범하고 사소한 상대방의 요청에서 상대방이 지금 목이 아프다는 상황을 파악하고 그 필요를 채울 수 있는 소금물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디테일의 힘이다. 현명한 사람은 자신의 언어가 아닌 상대방의 언어로 얘기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일에서든, 사람과의 관계에서든 상대방을 알기 위한 디테일한 10분의 투자를 아끼지 말자.

 



- 대한민국 20대, 일찍도전하라(박현우 지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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