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5천년 기후변화에 관한 기초 연구》에는 주커전이 수십 년 동안 연구한 기후 변화의 결과가 모두 담겨 있다.
이 논문은 발표되자마자 중국 국내외 학술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중국의 고대 문헌 기록과 고고학 논문, 물후관측기록 등을 조사해 놀라운 결과를 도출해냈다.
주커전의 연구결과를 살펴보면, 수천 년 동안 중국의 기후가 주기적으로 변화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후 변화의 주기는 약 400~800년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매우 재미있는 사실이 숨겨져 있다. 경제적, 정치적 요인 외에 기후 변화도 왕조의 흥망성쇠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양사오(仰韶)문화(중국 황허(黃河) 중류 유역에서 기원전 5000년부터 기원전 3000년 무렵까지 존속했던 신석기 문화. 옮긴이)에서 상(商)나라(기원전 1600~기원전 1046년 무렵에 중국에 있었던 왕조. 옮긴이) 때까지 2천 년 동안 황허 유역의 평균 기온이 지금보다 섭씨 2도 가량 높았다. 1월 평균 기온이 약 섭씨 3~5도였고, 시안(西安)(북위 34.233도, 동경 108.911도)과 안양(安陽)(북위 36.1도, 동경 114.35도) 일대에 아열대 식물과 동물들이 서식했다.
하지만 서주(西周) 시대(기원전 1050~777년)에는 중국의 기온이 일시적으로 하락해 작물경작이 극심한 타격을 입었다. 연이은 흉년으로 민생이 피폐해지자 주나라가 쇠락하고 중앙권력이 약화돼 제후국들이 각지에서 할거하면서 중국 역사가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들었다.
서한(西漢)(기원전 206~서기 9년) 시대에는 다시 기후가 따뜻해져 곡식 농사가 풍작을 거두고 물자가 풍부해졌다. 한무제가 흉노를 토벌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풍부한 물자가 탄탄히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기후가 열악해 해마다 흉년이었다면 한나라가 그렇게 짧은 기간에 수십만 대군을 동원해 흉노 정벌에 나설 수 없었을 것이고, 설령 정벌에 나섰다 해도 군대의 사기가 떨어져 흉노를 전멸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동한(東漢) 말기부터 삼국시대, 남북조 시대까지 중국 대부분의 지역에 한랭기가 찾아와 기온이 지금보다 약 1도가량 낮았다. 날씨가 추워지자 자연재해도 자주 나타나 해마다 흉년이 계속되었고, 지방 세력가들이 백성들을 수탈하자 굶주린 백성들이 봉기를 일으켜 통일제국이 분열되었다.
당나라로 들어서면서 날씨가 다시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중국은 역사상 가장 강한 국력을 과시하며 태평성대를 누렸다. 당시 주변 국가들과 벌인 전쟁에서 당나라는 거의 전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당나라 말기에 또 한 번 한랭기가 나타났다. 열악한 기후는 중앙정권을 힘없이 무너뜨렸고 중국은 또 다시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중국은 전통적인 농업 국가이기 때문에 날씨가 국가의 흥망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대부분의 농지를 귀족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천재지변이 끊이지 않으니 중앙권력이 약화되고 농민반란이 일어나 나라가 멸망할 수밖에 없었다. 흥미롭게도 기후 변화 시기와 역대 왕조 교체시기가 거의 일치한다.
지금의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을 중심으로 한 관중(關中) 지역은 한나라와 당나라 때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는데, 이때 관중 지역에 약 3천 년 간의 온난기가 계속되었다. 송나라 이후에는 중국 대부분의 지역이 한랭기에 해당해 기온이 지금보다 1~2도 낮았고, 그로 인해 관중 지역의 식량 생산이 급감하고 경제와 문화도 쇠퇴했다.
과거에 물자가 풍부했던 허시주랑(河西走廊)도 점점 황폐화되었고, 관중 지역이 쇠퇴하자 실크로드의 번영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때부터는 중국 경제의 중심이 남쪽으로 이동해 양쯔강 중하류 유역의 기름진 평야가 중국 농업의 최대 생산지로 부상했으며, 그 덕분에 해상 실크로드가 점차 번성했다.
기상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명나라 말기에 속출한 천재지변이 명나라를 멸망시킨 중요한 원인이다. 숭정제에게 조금만 더 시간이 주어졌더라면, 그래서 날씨가 조금 더 좋았더라면 그는 아마 중국 역사상 위대한 황제로 이름을 남겼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역사는 그에게 그리 관대하지 못했다. 그가 황제로 등극한 직후부터 나라에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았다. 숭정 원년(1628년)부터 중국 북부에 심각한 가뭄이 나타나 땅바닥이 갈라지고 풀포기 하나 자라지 못했다.
명나라의 멸망은 여러 가지 원인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지만, 기후 문제가 멸망을 앞당긴 중요한 원인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자성과 고영상(高迎祥), 장헌충(張獻忠) 등 농민봉기세력의 우두머리들이 하남(河南) 지역에 천재지변이 발생한 틈을 타 세력을 급격히 확대했고, 마침내 이자성이 도읍으로 쳐들어가 명나라를 멸망시켰던 것이다.
앞에서 분석한 바에 의하면, 인구의 많고 적음이 기후 변화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미미하는 걸 알 수 있다. 요즘은 이산화탄소가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주범으로 낙인찍혔지만, 산업혁명이 일어나기도 한참 전인 그 옛날에 이산화탄소가 어디서 어떻게 생겨나서 기후를 변화시켰단 말인가?
주커전은 《각 시대별 세계 기후의 변화》의 맨 뒷부분에 자신의 결론을 밝혔다. 태양열의 강도 변화가 기후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원인일 수 있다는 것이다. 태양열 복사가 억제된 것이 기후를 크게 변화시킨 주요 원인이고, 작은 변화를 일으킨 건 대류 활동이라는 주장이었다. 그의 이 가설은 기상학계에서 높이 평가받으며 후대 과학자들의 기후 연구에 새로운 증거를 제시해주었다.
- 저탄소의 음모(거우홍양 지음, 허유영 옮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