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어록
환경이 주는 압박으로 번뇌하고 있다면 재빨리 원점으로 돌아오라. 스트레스가 사라지면 불안도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봄으로써 조화로움의 경지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는 스토아 철학의 신봉자이자 실천가이다. 스토아 철학에 따르면, 우주에는 보편적인 이성이 존재하고 보편법인 자연법이 모든 것을 지배하여 사람의 의지로 움직일 수 없다. ‘자연법’은 현대 철학의 ‘자연 규율’과 유사하며 고대 중국 철학의 ‘도(道)’와도 일맥상통한다.

 

스토아 철학은 또한 사람을 자연에 속한 하나의 이성적 존재물로 보고 사람의 본성과 자연법이 서로 통한다고 인식하며, 이는 마치 강물을 이루는 물방울들이 도도히 흐르는 강물과 같은 성질을 보이며 한 곳을 향해 흐르는 것과 같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연(nature)에 순응하며 ‘본성에 따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러한 관점은 고대 중국 철학의 ‘천인합일(天人合一)’과 유사하다. 천인합일의 경지에 이르면 가장 완벽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번뇌와 벗하며 행복을 가까이 두지 못한다. “인생에는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탄식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그 이유는 무엇일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그 이유를 알게 모르게 본성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자연의 궤도 밖에서 꿈에 그리는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여기지만, 결과는 뜻밖에도 번뇌의 가시덤불뿐이다. 번뇌는 자연법에 대한 인식 부족에서 비롯된다.

 

이는 “모든 번뇌는 어리석음에 기인한다”는 불가의 격언에서도 알 수 있다.


사람의 인식 능력도 자연의 궤적을 따르며 점진적인 과정을 거친다. 진정으로 ‘천인합일’을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인생에서 이러저러한 번뇌를 겪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마치 어두운 밤에 진창길을 걸으면 신발을 더럽힐 수밖에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어두운 밤길이라면 등을 켜면 되고, 신이 더러워지면 깨끗이 씻으면 되는 일이니 번뇌가 반드시 인간의 숙명은 아닐 것이다. 그런 점에서 번뇌를 없애는 것은 인류의 철학이 근본적으로 지향해야 할 목표 중 하나이다. “중생을 구하려거든 그 번뇌를 없애라”는 불가의 말도 여기서 나왔다.


그렇다면 어떻게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한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즉, 자신을 돌아보고 원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는 “원점으로 돌아오라. 자신을 지배하는 이성에는 본성의 원칙이 있으니 정당한 일을 할 때는 자신에게 만족하고 안정을 찾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진창에 빠졌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진창에 빠지기 이전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물론, 시간은 거꾸로 돌릴 수 없고 이미 일어난 일을 흔적도 없이 지울 수는 없지만, 자신의 마음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일은 가능하다. 사람의 본성은 마치 자연의 본성처럼 단지 비어 있는 것이다. 비어 있다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무궁무진한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뜻한다. 번뇌가 일어날 때는 반드시 마음의 장벽이 생기고, 이 장벽을 깨끗이 제거해야만 번뇌가 사라진다. 마치 냇물의 흐름을 막는 장애물을 없애야만 물이 빠르게 흐를 수 있듯이 말이다.
(하편에 계속)

 

- [왼손에는 명상록, 오른손에는 도덕경을 들어라]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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