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어록
으뜸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능히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으며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있으려 하니, 그러므로 거의 도에 가깝다. 있기는 능히 땅에 있고, 마음은 능히 못처럼 깊고, 더불어 하기는 능히 착하게 하고, 말은 능히 믿음직하고, 정치는 능히 다스림으로 하고, 일은 능히 거뜬히 하고, 움직임에 능히 때를 맞춘다. 오직 다투지 않으니 그러므로 허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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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성인(聖人)을 마치 물과 같다고 말했다. 물은 만물을 윤택하게 하면서도 그 높음을 다투지 않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땅에 있으려 하니 이미 도의 진실한 이치에 가깝다. 이는 자신이 있어야 할 지위에 안주하며, 마음은 깊은 못처럼 고요하고, 화목함으로 남과 함께 하며, 말은 믿음직스럽고, 정치는 반드시 훌륭한 업적을 남기고, 일은 반드시 성과를 남기며, 행동할 시기를 잡는 데 능하다. 이는 다투지 않으므로 실수가 없다.


‘상선(上善)’이란 도덕적으로 가장 완벽한 사람, 즉 성인을 가리킨다. 옛말에 “사람은 높은 곳으로 가려 하고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려 한다”고 했다. 성인은 보통 사람과는 다르게 ‘높은 곳’으로 가려고 다투지 않는다. 오히려 물처럼 ‘낮은 곳으로 흐르고자’ 한다. 그렇다고 이것이 스스로 비하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이 스스로를 비하하는가? 그저 지세가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 광활한 바다의 경지를 이룬다. 지구의 71%가 바다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Everest)를 세계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해구(Mariana Trench)에 넣는다면 봉우리 하나도 드러나 보이지 않을 것이다. 에베레스트가 해발 8천 미터를 넘지만 마리아나해구는 수심만 천 미터를 넘기 때문이다. 사람의 모습도 자연과 닮아 있다. 소인배는 날마다 아등바등하며 높고자 하나, 큰 인물은 겸손하게 아래에 있고자 하며 온화하게 사람을 가까이 한다. 그리하여 세상의 운명을 쥔 편은 오히려 후자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세계의 약 80%의 부가 20%의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다고 한다. 권력과 명예 역시 자연히 이들에게 속하니 TV, 신문, 인터넷 등 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은 정치가 아니면 유명인이 아닌가. 공평한가? 이 문제에 정답은 없다. 다만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말할밖에.


어떻게 하면 ‘상선’에 도달할 수 있을까? 노자는 일곱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있기는 능히 땅에 있고, 마음은 능히 못처럼 깊고, 더불어 하기는 능히 착하게 하고, 말은 능히 믿음직하고, 정치는 능히 다스림으로 하고, 일은 능히 거뜬히 하고, 움직임에 능히 때를 맞춘다. 이 일곱 가지 방법은 글자만 가지고 간단하게 이해할 수 없다. 자칫하면 천박함으로 흐를 수 있으므로 《도덕경》의 취지에 따라 자연의 도와 결합하여 이해해야 한다.
“있기는 능히 땅에 있다(居善地)”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일반적으로 “자신이 마땅히 머물러야 할 곳에 머문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그렇다면 마땅히 머물러야 할 곳이란 어디인가? 낮은 차원에서 말하자면 적합한 위치에 머물러야 한다. 


현인(賢人) 손숙오(孫叔敖)는 초(楚)나라에서 여러 해 동안 영윤(令尹)의 자리에 있으면서 늘 청렴하여 개인적인 축제를 하지 않았다. 임종을 앞둔 그가 아들들에게 말했다. “대왕께서는 여러 번 토지를 하사하셨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 내가 죽으면 대왕께서 분명히 너희들에게 토지를 나누어줄 텐데 너희들은 반드시 비옥한 땅을 받아서는 안 된다. 초나라와 월(越)나라 사이에 ‘침구(寢丘)’라 불리는 땅이 있는데 토지가 척박할 뿐 아니라 이름 또한 흉흉하다. 초나라 사람은 귀신을 두려워하고 월나라 사람 또한 귀신을 믿는다. 그러니 너희들이 오랫동안 지킬 수 있는 곳은 오직 이 곳뿐일 것이다.” 손숙오가 죽자 초 왕은 과연 그의 아들에게 상을 내렸고, 아들은 아버지의 유언대로 ‘침구’ 땅을 청했다. 이 땅을 넘보는 이가 아무도 없었으므로 손숙오의 자손은 대대로 평안하게 지냈다.


‘침구’란 묘지를 뜻하므로 불길한 의미를 지닌다. 손숙오는 재능과 덕행이 출중하고 지위까지 높으니 겸손하지 않아도 될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그의 아들들은 재능과 품성 면에서 모두 평범하여 만일 아버지의 후광을 입어 모든 사람이 탐내는 좋은 위치를 차지한다면 지켜내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있어” 대대손손 이를 지켜낼 수 있었다.
좀 더 높은 차원에서 이야기하자면 자신이 힘으로 감당할 수 있는지를 헤아려 편안하게 있을 위치에 머물러야 한다. 당(唐)나라 재상 필함(畢?)의 외숙은 태호(太湖) 현에서 오장(伍長) 직을 맡고 있었다. 필함은 이를 부끄럽게 여겨 수차례 사람을 보내 낮은 관직을 버리고 수도로 올라와 높은 관직을 받으라고 권했다. 하지만 외숙은 번번이 듣지 않았다. 필함은 관리 양재(楊載)를 보내 외숙을 낮은 관직에서 해제시켜 배에 태워 수도로 보내도록 명했다. 양재가 도착하여 필함의 의도를 전해들은 그의 외숙은 말했다. “저는 보잘것없는 사람입니다. 어찌 재상의 자리에 오른 조카를 두었겠습니까?” 양재가 거듭 권하자 그가 다시 말했다. “저는 해마다 일한 만큼의 봉급을 받으며 평안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만일 제게 잘못이 없거든 평생 이에 만족하며 살게 허락해주십시오. 알지 못하는 벼슬자리를 제가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양재가 이를 필함에게 전하니 필함도 외숙의 말이 옳다 여겨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
필함의 외숙은 오장의 직책을 좋아하고 그 재능 역시 이 자리에 적합했으니, 스스로 이 일을 하며 평생을 평온히 보내길 원했다. 참으로 ‘있을 곳’을 아는 인물이었다.


더 높은 차원에서 보자면 “있기는 능히 땅에 있다”라는 것은 형세에 순응하여 어느 위치에 있든 적응하고 만족한다는 의미다. 손숙오는 젊은 시절 시골에 살며 재능과 품성으로 널리 이름이 났다. 입신할 기회가 없을 때에도 그는 책을 읽고 농사를 지으며 평온하게 지내며, 세상이 알아주지 않음을 원망하지 않았다. 훗날 천거를 받아 영윤(재상에 상당하는 벼슬)의 자리에 올랐을 때 그는 백성을 교화하며 도로써 다스렸다. 수리시설을 건설하고 생산을 독려하고 정책과 법령을 정비하는 등 자신의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을 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농민의 자리에서는 좋은 농부로, 학자의 위치에서는 좋은 학자로, 지도자의 위치에서는 좋은 지도자로, 아버지의 위치에서는 좋은 아버지로 그는 늘 최선을 다했다. 요컨대 어떤 위치에서라도 그는 훌륭하게 제 역할을 했으니 진정 “능히 땅에 있다”고 말하기에 족하다.


“마음은 능히 못처럼 깊다(心善淵)”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낮은 차원에서 말하자면 깊은 못처럼 신중하여 경박함이 없고 말에 과장이 없음을 의미한다. 좀 더 통속적으로 말하자면 입이 무거워 떠벌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중국의 성인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군자는 말하는 데는 둔하나 행하는 데는 민첩하고자 한다.” 인도의 성인 간디 역시 이렇게 말했다. “침묵은 진리를 받드는 사람의 정신훈련 중 하나이다.”


좀 더 높은 차원에서 보자면 입단속만으로는 부족하다. 깊은 못은 수심이 깊다는 특징 외에도 매우 맑아 불순물이 없다는 특징이 있다. 마음도 깊은 못과 같다. 가늠할 수 없는 깊은 지혜를 간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영혼에 사심과 잡념이 없다. 손숙오의 예로 보건대, 그는 초나라 영윤의 자리에 있는 동안 백성의 이익을 위해 마음을 다했고, 이를 위해 군주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하기도 했다. 때문에 세 차례나 면직을 당했지만 그는 아쉬움을 남기지 않았다. 매번 임용될 때에 우쭐하지 않고 담담하게 왔듯 말이다. 파직 당했을 때 그가 억울한 마음으로 불만을 품었다면 그의 언행에서 자연스럽게 표출되었을 것이다. 처음 임용되었을 때 들떠 과시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이 역시 나타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늘 물 흐르듯 소탈하게 오고 갈 뿐 억지의 흔적은 조금도 없었다. ‘마음이 능히 못과 같음’이 바로 이와 같다. (하편에 계속)
  

- [왼손에는 명상록, 오른손에는 도덕경을 들어라]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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