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괴롭다. 아이들한테 꿈을 물어보면 ‘부자’가 되겠다고 답하는 아이들은 물론, 거의 “돈 많이 벌어서”라고 전제를 붙인다고 한다. “돈을 많이 벌어서 - 부모님께 효도 할래요.”, “의사가 돼서 돈을 많이 벌래요.” 이것이 요즘 아이들의 꿈이다. 안타깝지만 이 아이들에게 딱히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으니 선생님으로서 괴로울 수밖에.

1970년대 자본주의는 날개를 달고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날아올랐다. 경제적 자유방임주의, 신자유주의 운영 장치는 물질적 가치가 정신적 가치를 앞지르는 물신숭배의 의식 풍토를 형성했고, 이제 부가 삶의 목적이자 미덕이 되는 사회가 눈앞에 다가왔다. 사실 ‘돈을 많이 벌겠다’는 꿈은 비단 아이들만의 것이 아니다. 어른이 되어갈수록 오히려 그 꿈은 더 구체적이고 치밀하게 변모한다. 지난 수년간 책 베스트셀러 목록에 무엇이 올랐는지를 기억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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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물질만능주의는 이처럼 노골적인 것이 특징이다. 왜 그 일을 하는가,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본질적 고민과 대상은 사라지고, 얼마나 많은 이윤을 남기는가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모든 걸 돈으로 환산하고 모든 걸 판매할 수 있다. 심지어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발생하는 많은 인신매매나 어린이 납치 사건 등 최악의 범죄들은 더 이상 과거처럼 원한이나 보복에 의한 것이 아니라 바로 돈 때문에 벌어진다. 대부분의 범죄자들은 피해자와 아무런 관계없는, 그저 매매(賣買)의 관계로서 범죄를 저지른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추산에 따르면, 매년 전 세계에서 이식되는 콩팥 7만개 중 5분의 1이 암시장에서 유출된다고 한다. 시장 가판대에 콩팥과 간장이 진열되어 있는 풍경이 더 이상 범죄소설에서나 등장하는 장면이 아닌 것이다. 90년대 말에 발표된 한 보도자료에 의하면, 개발도상국에서 콩팥 하나에 1천 달러,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3만 달러까지 거래된다고 한다. 그 대부분의 돈은 중간 중개인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섬뜩한 풍경이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무서운 상상과 닮아 있다. 서울 시내의 지하철 화장실을 이용해 본 사람이라면, 화장실 문에 붙어 있는 작은 전화번호들을 기억할 것이다. 그 번호는 장기밖에 팔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 그러니까 자발적으로 자신의 장기를 내다 팔 사람들을 ‘합법적으로’ 기다리고 있다.

그런 일들은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한다면 하나의 사례를 더 보겠다. 사람의 죽음과 상해를 돈으로 환산하는 보험은 어떤가. 이야말로 가장 자본주의다운, 합법의 선 안에서 벌어지는 가장 불법적인 일은 아닐까?

보험은 사람에게 미래에 대한 공포를 심어주고, 그를 통해 먹고 산다. 현존하는 수많은 건강보험, 상해보험, 생명보험 등은 일견에서 보면 안전한 미래를 위한 투자로 보이지만, 그 깊이 들어가 보면 역시 섬뜩함을 감출 수 없다. 이 사실은 최초의 보험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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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의 유래는 12세기 중반 제노바로 거슬러 올라간다. 1400년에서 1440년 사이 제노바에서 총 213개의 보험계약서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지중해 교역으로 먹고 살던 제노바에서 그 무렵 발생한 문제들 때문이었다. 제노바 인들에게 바다는 소중한 터전이자 무서운 공간이었다. 툭 하면 해일과 파도가 치고 자칫하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상업이 발달하고 물질주의가 팽배하면서 사람들은 심각한 개인주의로 빠져들었다. 심지어 같은 제노바 인들이 바다에서 위험에 빠져도 도와주지 않고 지나쳐 버리는 일이 잦아졌다. 결국 제노바 인들은 서로를 돕고 지내던 인륜이라는 보험을 버리고, 바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해양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문서상의 보험을 만들게 되었다.

즉 보험이란 ‘내가 위험에 빠져도, 내 가족이 위험에 빠져도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오직 돈뿐이다’라는 사고가 내재된 극도로 공포스러운 기획이다. 또한 상업적 안전장치에 불과했던 시스템이 인간의 내면에까지 적용되어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자극하면서 더욱더 우리의 삶속으로 깊숙이 파고들게 되었다.

다시 말해 현대사회의 보험이란 즉 인간의 불안감을 돈으로 해결하기 위한 장치이며, 보험회사는 인간의 불안 심리를 자극하여 더 많고 다양한 보험 상품을 개발하고 더 복잡한 체계로 진화하면서 사람들을 현혹한다. 또한 이 시스템을 보험회사의 상업주의를 부추기는 동시에, 그 수혜를 누리는 이들에게까지 비윤리적 사고를 파생한다. 즉 보험 시스템을 이용하여 돈을 타려고 자신이나 가족을 상해하는 신종 지능 범죄들의 탄생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에게 불안은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할 무게이다. 옛날에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이기기 위한 소박하고 맹아적인 다양한 사회적 장치들이 존재했다. 그것은 돈이 아닌 ‘사람’이었다. 공동체 의식 안에서 사람이 사람을 돕는 자연스러운 일을 행하는 여러 가지 ‘계’는, 본질적으로 돈을 모아 폭탄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믿고 돈을 비축해 불안을 함께 이겨내는 시스템이었다. 자본주의의 선봉장 신자유주의 경제 시스템은 인간의 신체를 넘어 그 마음까지 매매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마음의 매매는 더 나아가 영혼의 매매로까지 이어진다. 우리는 사후 세계의 행복을 위해 돈을 지불하고 온갖 신앙과 위안과 면죄부들을 산다. 비틀즈의 스승으로 알려진 인도의 요기 ‘마하리쉬’는 한편에서는 내적 평화를 강조하면서, 다른 얼굴로는 온갖 세속적 부를 쫓았던 이중생활로 유명하다. 그 생활이 발각되면서 비틀즈와 이별하게 되지만, 이후로도 그는 비틀즈의 유명세를 업고 미국에서 명상 센터 사업을 기반으로 호텔과 금융업에까지 진출해 대기업의 총수에 버금가는 화려한 생활을 영위했다. 그 명상 센터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평안을 주었는지는 모를 일이라 치자. 다만 더 이상 자본의 추구에서 평안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영혼의 평안을 위한 수련으로 돈을 지불하고 명상 센터를 찾고, 그 센터는 또다시 그 자본을 다른 자본의 씨앗으로 삼아 더 큰 자본을 창출하는 것은 분명히 모순이다.

이 모순은 외국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불황이면 더 큰 호황을 누리는 곳이 있다. 유명한 무당집이나 점집들은 귀신을 쫒는다는 명목으로 굿 한 번 하는 데 많게는 수 억 원씩을 요구하기도 한다. 또한 재물 운, 취업 운, 결혼 운과 관련해 부적 한 장을 수 십 만원에서 수 천 만원까지 판매한다. 이는 부가 미덕이 되어 버린 시대에는 인간의 생명, 인간의 마음과 미래, 꿈과 영혼까지 돈에 저당 잡히거나, 돈으로 정당성을 얻게 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 [고 어라운드]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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