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ns Haaning이라는 예술가가 작품 제작비 약 1억원을 '먹튀'해서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그냥 먹튀면 민형사상의 조치로 처리하면 그만이지만, 예술의 명목으로 예술적인 먹튀를 해서 전세계적 뉴스 토픽이 된 것. Haaning은 지폐를 활용해서 현대 세계 노동의 본질을 표현해달라는 미술관의 요청에, 덩그러니 빈 캔버스를 보냈는데 작품명이 가관이다. 〈Take the money and Run〉(즉 먹튀...) Haaning은 미술관에 돈을 반환하지 않을 때에만 이 작품이 예술이 될 수 있다고(고로 돈은 못 뱉는다) 주장을 펼쳤고 미술관은 법적 조치를 예고하며 뉴욕타임즈부터 국내 각종 언론사까지 예술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때아닌 토론이 벌어졌다. 친구와 나도 그의 담대함에 대해 한창 농담을 나누다가 문득, '근데, 우리 어떤 작품을 보고도 이렇게 오랫동안 예술의 목적과 의미에 대해 토론한 적 없는거 같은데?! Haaning 돈값(?) 한 거 아냐?'란 생각에 이르렀다.
논쟁적인 인물/사건은 그 자체로 명쾌한 해답이나 인생의 지침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우리에게 무언가에 대해 질문하게 하고 고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소중하다. 『메이플소프-에로스와 타나토스』를 읽으면서 Haaning이 연상되었다. 메이플소프도 Haaning과 마찬가지로 적극적으로 옹호하기는 쉽지 않지만 묘한 쾌감을 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쉬이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선물한다는 면에서.
메이플소프 삶의 여정을 따라가며 가장 자주 든 질문은, '메이플소프가 탁월한 예술가인가'였다. 탁월한 예술가는 탁월한 예술작품을 창조하는 사람일 것이고, 그렇다면 결국은 탁월한 예술의 조건이 무엇인지 너무나 커다란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명쾌한 대답은 어렵지만, 얼마전 보뱅의 <작은 파티 드레스>를 읽으며 예술은 사랑하는 삶의 부산물이라는 그의 예술관에 크게 공감한 적 있다. 사랑이 인생을 구원한다고 믿고, 사랑 없이는 인간의 삶이 너무나 공허하다고 믿기에 예술가가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일 때 높게 평가하게 되고, 문학이든 그림이든 영화든 인류와 세계를 사랑하려는(배우려는/이해하려는) 의지가 느껴질 때 마음이 열린다.
이런 관점을 가져서일까. 메이플소프가 '천부적인 심미안'을 가진 '천재적인 사진작가'라고 할 때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메이플소프가 타고난 심미안을 가진 예술가인지 그저 시대를 잘 타고난 평균적인 미대생인지 유구한 논쟁은 제쳐두고서라도, 타인/세계를 사랑하는 태도가 없는 작가가 탁월한 예술가가 될 수 있을까?
메이플소프 아저씨는 그야말로 지독한 나르시시스트라 타인/세계를 깊이 사랑하지 못한다. 그의 삶에서 사랑이 존재한다면 그건 오직 자기애뿐일 것이다. 키우던 원숭이를 아사(餓死)시키고 발골해서 작품으로 만들지를 않나, 꽃 사진으로 명성을 얻었으면서도 촬영 즉시 꽃을 버리고 침을 뱉지를 않나, 흑인 남성들에게 N워드를 비롯한 인종차별적 표현을 사용하며 사진을 위한 정물 취급을 하지 않나-모든 것은 그의 사진을 위한 도구이자 사물로 종속되어 버린다. 상대를 사랑하려는 마음은 한톨도 느껴지지 않는다.
예술가가 꼭 인격자일 필요는 없지 않냐고?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키냐르가 지적했듯이, 우리는 예술작품을 통해 만든 이의 시선을 느끼고 감각한다. 잠시나마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빌려 세상을 바라본다. 낯선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경험은 때로 전율을 일으키고, 나의 시선을 미세하게 조율한다. (더욱 운이 좋다면 삶에 대한 관점이 완전히 변화하기도 한다.) 탁월한 예술/가라면 아름답고 독창적인 시각을 제공해서 감상자의 관점을 변화시킨다고 믿는다. (결국 이 또한 '아름다움'이 뭐냐는 질문으로 이어지기는 하지만...)
그런데 메이플소프 아저씨의 눈을 빌려 세상을 바라보는 경험은, 대체로는 견디기 어려울만큼 답답했다. (소울메이트였던 패티 스미스를 찍은 몇 사진을 제외하면) 대상/세계는 생명력을 잃고 경직되어 있다. 브레송이 찍은 초상사진을 감상할 때는 때로는 조용하게 감동이 되었고, 때로는 킥킥 웃음이 나왔는데.. 메이플소프의 초상 사진은 구도나 오브제가 예쁘장하다는 생각은 들어도 어딘가 생동감 없는 모습에 숨이 턱 막혀온다.
물론 메이플소프의 사진이 가진 매력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사진은, 정말 놀라울만큼 솔직하니까. 로버트는 피스팅은 약과고 신체절단 등 고문에 가까운 온갖 BDSM 성행위를 가감없이 담아낸다. 나의 심연을 외면하지 않고 내 욕망을 극단까지 추구하겠다는 담대함과 용기. 보수적인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메이플소프가 꽤 오랫동안 '정상성'에 부합하고자 자기 자신을 죽이고 살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박수를 쳐주고 싶은 지점이다. 그렇기에 그의 사진은 단순한 불쾌함과 길티함을 넘어서 플레져를 준다. 자기를 부정하지 않는 용기, 어두움을 직면하는 용기. 음, 그건 존경할만한 자세지.
그러나 이렇게 그와 그의 사진을 옹호해주고 싶다가도, 그의 인종차별, 유대인 혐오, 나치와 무솔리니의 심볼을 모으는 행태를 보자면 열불이 나는 것이다! 그가 그의 심연을 바라볼 수 있었던 건, 결국은 '나'만이 너무나 중요해서 '나'의 행위가 남에게 미칠 영향력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반대로 나의 심연을 직면하기 위해 인격체로서의 타인을 철저히 무시하는 사람이 된 걸수도 있지만, 어느쪽이든 지독하게 이기적인 나르시시스트란 말이 나온다=_=)
시간이 흐르며 예술/예술가에 대한 관점이 계속 변화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메이플소프가 탁월한 예술가인지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답하기가 어려울 듯하다. 그의 사진에는 대상/세계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지 않으니까. 오로지 '나'의 세계에 갇혀서 모든 걸 나의 욕망에 복속시키는 그의 시각은, 무엇보다 지루하니까.
그렇지만 탁월한 예술의 조건은 무엇인지/아름다움은 단순히 장식적인 기교에 불과한지에 대해 고민하며, 그를 재평가하게 될 가능성도 열어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