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 -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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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라면, 연대기적으로 맨 처음에 거인족들이 있었고, 그 다음에 제우스가 있고, 제우스는 누구와 누구를 낳았고, 또... 이런 이야기를 연상하게 되었었다. 순서대로 신들을 읽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조금은 틀에 박히게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윤기의 이 책은 그러한 천편일률적인 신화 이야기에서 벗어나서, 신발, 뿔 등 몇 가지의 키워드를 통해 신화를 바라본다. 따라서, 이 책 속에서는 그동안 신화 읽기에서 놓쳤던 것들을 새삼 깨닫게 되며, 읽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상상의 세계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무심코 보았던 그리스 로마 신화 관련 그림들 속에서 숨은 그림 찾듯 '상징'을 찾게 된다. 아마 이제는 '낫'을 든 신이 그려져 있는 그림을 본다면, 그가 크로노스가 아닐까 의심해 볼 것 같고, 이마에 초생달 장식이 있으면, 아르테미스가 아닌지 의심할 것 같다.

그렇지만, 이 책의 장점은 이윤기만의 창조적인 신화 읽기를 보여주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책 마지막에 '독자는 지금 신화라는 이름의 자전거를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라. 처음에는 필자가 짐받이를 잡고 따라갔다. 뒤를 돌아다보지 말고 그냥 달리기 바란다. 필자는 짐받이를 놓은 지 오래다. 독자는 혼자서 이미 먼 길을 달려온 것이다.' 라고 이윤기는 쓰고 있다. (소설가 출신 다운 멋진 표현이다!) 이윤기는 방대한 그리스 로마 신화의 한귀퉁이만을 읽어주었다. 하긴 그래도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나머지 부분들은 독자들이 나름대로 읽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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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쁠라스의 악마는 무엇을 몰랐을까? 피노키오의 철학 4
양운덕 지음 / 창비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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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한 책이다. 부담을 덜어주는 여백과 그림으로, 책에 쉽게 손이 가게 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지만, 이왕 쉽게 쓰려고 맘 먹은 거, 더 재미있게 쓸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아무래도 지은이가 혹시 잘못된 지식을 전달하지 않을까 좀 긴장한 탓이 아닌가 싶다. 또한, 뒤로 갈수록 어려운 이론들을 단순히 정리하는 수준에서 끝내는 것 같다. 전반부의 니체에 대한 설명이 생동적인 것과는 대조된다. 물리학적, 수학적인 내용들이 많아, 지은이로서도 한계에 부딪친 게 아닌지.

아무튼 이렇게 쉽게 철학을 설명하는 책이 많이 나오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철학을 왜곡하는 것만 아니라면, 철학이 전혀 딴 나라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데는 이러한 책들이 제격인 것 같다. 그렇지만, 여기서 멈춘다면 곤란할 것이다. 잘 썼든, 못 썼든, 지은이의 해석이 많이 가미될 수밖에 없는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자들을 위해서라도, 책에서 언급한 철학, 철학자, 기타 이론들에 대한 참고 문헌을 필히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논문에 참고 문헌을 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어디까지나, 이 책에서 끝나지 않고, 더 생각하고 싶은 사람들, 원래 니체, 비트겐슈타인 등이 뭐라고 했는지 스스로 읽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철학의 왕국으로 가는 안내서를 전달한다는 의미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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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과 동양이 127일간 e-mail을 주고받다 대담 시리즈 2
김용석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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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적인 것, 동양적인 것이 무엇인가? 사실 참 어리석은 질문이다. 그렇지만, 질문을 던진 사람이나, 질문에 답하는 철학자들이나, 그걸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에 아직도 이러한 질문에 대해 서양은 '이성적, 분석적...이다', 동양은 '직관적, 감성적...이다.' 등등의 외우기 편한 답을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머리만 복잡해질 것이다. 그리고, 왜 이 똑똑한 철학자들이 말을 빙빙 돌리는 것인가 하고, 내심 화를 낼지도 모른다.

서양·동양, 남성·여성 등으로 편가르기하고, 각각에 그것들만의 본성을 찾아 못박아두려는 것은 사람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성향일 것이다. 나 또한 몇 년 전까지는 반성의 필요성도 못 느끼고, '서양과 동양은 .....점에서 다르다'를 기정사실처럼 생각하고, 말해왔었다. 세계를 '서양'과 '동양'으로 구분할 수 있고, 거기에는 나름대로의 서로 대비되는 속성이 있다 생각했었다. 문제라면, 어렴풋이 잡혀오는 그 속성에 정확한 명칭을 부여하는 것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전히 동양과 서양에 대한 이분법적인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고, 그런 내게 같이 식사중이시던 교수님이 서양 안에도 얼마나 다양한 철학이 있고, 동양 안에도 얼마나 다양한 철학이 있는데, 또 그것들 사이에는 서로 비슷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동양은 어떻고, 서양은 어떻고 하는 말을 할 수 있느냐고 하셨다.

역사의 어느 시기에 만들어진 '서양'과 '동양'이라는 명칭이 있어서, 우리는 그 명칭에 부합하는 내용들도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큰 것 같다. 김용석, 이승환 두 철학자들의 대화를 읽으면서, 나는 이들 역시, 이러한 혼돈을 버리지도, 지키지도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버리지 못하는 것은, 그래도 우리가 상식적으로 믿고 있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해명할 필요성이 있어서일 테고, 지키지 못하는 것은 그러한 이분법적 구분은 학자로서는 대답하기 난처할 정도로 지지할 수 없는 구분이여서일 것이다. 그래서, 둘은 논의 진행상 나름대로 서양적인 것, 동양적인 것을 갈라놓고도, 그것을 정말로 서양만의 서양적인 것, 동양만의 동양적인 것이라 말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믿는 '서양'이라는 것, '동양'이라는 것, 그 명칭을 둘러싸고 있는 수식어들은 거의 대부분 허상일 뿐이다. 사실, 똑같이 서양이라 부르는 것 속에서 그리스, 로마의 신과 기독교의 신은 너무나 다르며, 합리론과 경험론, 현대 프랑스 철학 등은 서로 너무나 달라 싸잡아 부를 수가 없다. 또한, 지금 '동양'이라 부르는 것 안에도, 유교와 불교의 차이, 장자와 공자의 차이는 극명하다. 다시 말해, '서양'을 '이성적'이라고 지칭한다면, 한편으로 서양 속에서 '반이성적'이였던 문화, 철학, 사상들이 줄줄이 나올 수밖에 없다. 예외가 지나치게 많은 경우에는, 차라리 편가르기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게 될 사람들이 이 책 속에서 서양이 무엇이며, 동양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결과를 갖기 보다는 그러한 편가르기 자체를 의심하게 되길 바란다. 그리고, 책 말미의 두 철학자가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면 이러한 내 바램이 나만의 생각은 아닌 듯하다. 내용을 떠나서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대화'의 시도 자체에 있다고 생각한다. '해답' 보다는 '풀이 과정'이 중요한 것이 철학이다. 현재 우리의 학문 풍토는 일방통행만 있는 것 같다. 학술지나 발표회장에서 논문을 발표하면, 학자는 다시 자신의 연구실로 돌아갈 뿐이다. '대화'는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자신의 분야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사람에게 대화란 자칫 자신의 치부를 보일 수도 있어 위험한 일이다.

이 책의 대화는 솔직히 100점짜리는 아니다. 상당히 우왕좌왕하는 면이 많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나는 이 두 철학자에게 그 탓을 돌리고 싶지는 않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대화하는 법을 모르고 있으며, 배울 기회, 관찰할 기회 조차 없었는지, 지성인들이 그동안 얼마나 서로 간에 담 쌓고 지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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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모험
이진경 지음 / 푸른숲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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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비전공자가 쓴 철학서에 눈을 돌리기가 쉽지는 않다. 특히 전문적인 용어들을 피해가면서 대중을 겨냥해서 쓴 책일수록 일단 의심부터 하게 된다. 그러한 책들 중에는 그야말로 '개똥철학'에 불과하거나, 순전히 자기 식대로, 데카르트, 칸트, 니체 등을 구워삶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반면 철학 전공자의 책은 전문적인 자기 분야에만 틀어박혀서 읽는 사람 자신이 그 분야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고 있지 않는 한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쯤 되면, 아무리 철학이 원래는 우리의 삶에 대한 성찰로부터 나왔다 해도,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전혀 동떨어진 황당한 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철학 전공자의 책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독자의 무식함(?) 때문이기만 한 게 아닌 경우도 있다. 철학 전공자라고 해서, 다들 진정한 의미의 철학자라고 보기도 힘들다. 철학 지식이 많다는 것이 곧 자기 머리로 철학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이진경의 『철학의 모험』은 나 자신에게도 반성할 기회를 주고 있다. 이진경 처럼 철학지식을 활용하고, 시공간을 초월해서 여러 철학자들과의 대담을 상상할 수 없다면, 아무리 이 책에 언급된 철학자들과 그들의 개념을 다 안다 하더라도, 그것은 '죽은 지식'일 뿐이다. 같은 '주체'에 대해 말했더라도, 장자, 데카르트, 사르트르 등의 생각들을 넘나들면서 서로의 의견을 비판하고, 방어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그들이 썼던 언어와 그 속의 용어들이 다르고, 논증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철학자의 논증을 그 사람의 용어를 사용해서 따라가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다. 이러한 철학자들을 종합하고, 비교한다는 것은 자기 머리 속에 자기만의 틀과 언어를 가지고, 그 철학자들의 사색을 '내것 化'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일견 동화 같은 상상에, 읽는 사람들은 무척 쉽게 씌어진 글로 생각할 지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이 책이 웬만한 전문적인 논문 이상의 심혈과 용기로 쓰여진 글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많은 철학자들이 언급되긴 했으나, 이 책의 철학적인 공로는 그 철학자들 보다도 그들간의 가상 대담을 머리 속에서 쥐어짜낸 이진경 자신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게 바로 철학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진경은 이 책 속에서 철학적인 지식 보다도 그러한 철학의 과정 자체를 보여주고, 실천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 책은 4부로 나누어져 있으며, 앞서 발간되었던 <상식 속의 철학, 상식 밖의 철학>과 <논리 속의 철학, 논리 밖의 철학>을 개정한 책이다. 1부의 등장인물은, 장자, 데카르트, 사르트르, 스피노자로, 여기서는 주체와 책임의 문제를 논한다. 2부의 등장인물은, 베이컨, 로크, 버클리, 흄, 이솝이며, 경험주의에 대해 논한다. 3부의 등장인물은, 칸트, 헤겔, 포이어바흐, 마르크스 등으로, 로봇 만들기라는 화두를 가지고, 인간의 본질, 실천 등에 대해 논한다. 마지막으로 4부의 등장인물은 프로이트, 니체, 지킬박사와 하이드로, 의식과 무의식, 초인, 즉, 인간의 지향점 등에 대해 논한다. 읽고 나면, 머리가 좀 말랑말랑하게 유연해지는 느낌, 그리고 철학이 별 거 아니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기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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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28
최윤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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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우 감독의 '꽃잎'이라는 영화의 원작이다. 5.18에 대한 어떠한 구호보다, 어떠한 외침보다 절절하다. 그 이유는 이 아픈 역사를 단지 역사책 속의 한 페이지로서가 아니라 우리 마음 가까이, 우리 생활 가까이의 한 장면으로 그려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필이면, '그날, '그 자리'에 있었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여자애가 아니라, 바로 당신였열 수도 있다는 속삼임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호소력 있는 서두-'당신이 어쩌다가 도시의 여러 곳에 누워있는 묘지 옆을 지나갈 때 당신은 꽃자주빛깔의 우단치마를 간신히 걸치고 묘지 근처를 배회하는 한 소녀를 만날지도 모릅니다.' 최윤은 이 모든 것을 너무 지나치지 않게, 작가가 먼저 흥분하는 우를 범하지 않고, 우리가 그 여자애의 서서히 적셔들어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있다. 영화도 좋았지만, 영화보다도 더 잘 만들어진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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