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무명 철학자의 유쾌한 행복론
전시륜 지음 / 명상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이 쓴 책이다. 물론, 세상에 없는 사람들이 남긴 책들은 참 많겠지만, 이 책은 지은이의 인생 철학을 담고 있기에, 그 인생도 이미 끝났다는 것이 조금은 감상에 젖게 만든다. 사실 뭐 그렇게 대단한 책이라고 볼 수도 없을 것이다. 글재주가 있어서, 문장들이 재치로 넘친다는 것이 장점이긴 하나, 가볍게 책장을 금방 금방 넘길 수 있는 책으로, 줄 쳐가며 읽을 만한 감동이나, 명언들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도 그냥 재밌게 읽었다. 그렇지만, 택시비를 바가지로 올리는 운전사에게 멈칫 하다가 모른 척 팁까지 넘겨 버리는 지은이의 비정상적임 - 현대 사회는 합리적이여야 한다고 강요하고, 특히 돈에 있어서는 비합리적인 바보짓을 더욱 경멸하지 않는가?- 에 숨통이 트이기도 한다.

인생철학이긴 하나, 행복론이긴 하나, 너무 난 체 하지 않는다는 것, 너무 어렵게 쓰지 않는다는 것, 사실은 이게 이 책의 매력일지도 모른다. 지은이는 어떻게 어떻게 살아야만 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냥 자신이 살아온 방식을 보여주고, 그것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과정이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은이 전시륜은 용기 있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산 사람이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이든지간에, 자신이 행복이라고 믿는 것을 얻기 위해 산 사람이다. 어찌 보면 드물게 정말로 '자기만의 인생'을 산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책이 생각난다. 바로 이처럼 누구에게 보여지기 위한 삶, 다수의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가치들로 중첩된 삶을 추구하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간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성으로 중무장하지 않고, 생명 있는 존재의 희열을 다 느끼고 살다 죽는 게 제대로 된 인생이 아닐까 싶다. 모든 이야기가 다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에 나오는 마지막 장의 정말 활짝 웃는 아내와, 세 아이들과 찍은 젊은 시절의 가족사진이 책 전체보다도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 괘씸한 말일지 몰라도, 사실, 아마 지은이가 고인이 아니였다면, 그 사진이 이렇게 많이 마음을 끌지는 않았을 것 같다. 사람은 모두 죽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생이 의미를 잃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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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2008-01-06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우연히 이 책을 보았는데, 역시 '그리스인 조르바'를 떠올리시는군요..^ ^
제가 읽은 몇권 되지않는 책 중에서 다행히 감상을 공유할 수 있어 반갑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