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모험
이진경 지음 / 푸른숲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비전공자가 쓴 철학서에 눈을 돌리기가 쉽지는 않다. 특히 전문적인 용어들을 피해가면서 대중을 겨냥해서 쓴 책일수록 일단 의심부터 하게 된다. 그러한 책들 중에는 그야말로 '개똥철학'에 불과하거나, 순전히 자기 식대로, 데카르트, 칸트, 니체 등을 구워삶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반면 철학 전공자의 책은 전문적인 자기 분야에만 틀어박혀서 읽는 사람 자신이 그 분야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고 있지 않는 한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쯤 되면, 아무리 철학이 원래는 우리의 삶에 대한 성찰로부터 나왔다 해도,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전혀 동떨어진 황당한 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철학 전공자의 책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독자의 무식함(?) 때문이기만 한 게 아닌 경우도 있다. 철학 전공자라고 해서, 다들 진정한 의미의 철학자라고 보기도 힘들다. 철학 지식이 많다는 것이 곧 자기 머리로 철학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이진경의 『철학의 모험』은 나 자신에게도 반성할 기회를 주고 있다. 이진경 처럼 철학지식을 활용하고, 시공간을 초월해서 여러 철학자들과의 대담을 상상할 수 없다면, 아무리 이 책에 언급된 철학자들과 그들의 개념을 다 안다 하더라도, 그것은 '죽은 지식'일 뿐이다. 같은 '주체'에 대해 말했더라도, 장자, 데카르트, 사르트르 등의 생각들을 넘나들면서 서로의 의견을 비판하고, 방어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그들이 썼던 언어와 그 속의 용어들이 다르고, 논증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철학자의 논증을 그 사람의 용어를 사용해서 따라가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다. 이러한 철학자들을 종합하고, 비교한다는 것은 자기 머리 속에 자기만의 틀과 언어를 가지고, 그 철학자들의 사색을 '내것 化'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일견 동화 같은 상상에, 읽는 사람들은 무척 쉽게 씌어진 글로 생각할 지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이 책이 웬만한 전문적인 논문 이상의 심혈과 용기로 쓰여진 글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많은 철학자들이 언급되긴 했으나, 이 책의 철학적인 공로는 그 철학자들 보다도 그들간의 가상 대담을 머리 속에서 쥐어짜낸 이진경 자신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게 바로 철학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진경은 이 책 속에서 철학적인 지식 보다도 그러한 철학의 과정 자체를 보여주고, 실천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 책은 4부로 나누어져 있으며, 앞서 발간되었던 <상식 속의 철학, 상식 밖의 철학>과 <논리 속의 철학, 논리 밖의 철학>을 개정한 책이다. 1부의 등장인물은, 장자, 데카르트, 사르트르, 스피노자로, 여기서는 주체와 책임의 문제를 논한다. 2부의 등장인물은, 베이컨, 로크, 버클리, 흄, 이솝이며, 경험주의에 대해 논한다. 3부의 등장인물은, 칸트, 헤겔, 포이어바흐, 마르크스 등으로, 로봇 만들기라는 화두를 가지고, 인간의 본질, 실천 등에 대해 논한다. 마지막으로 4부의 등장인물은 프로이트, 니체, 지킬박사와 하이드로, 의식과 무의식, 초인, 즉, 인간의 지향점 등에 대해 논한다. 읽고 나면, 머리가 좀 말랑말랑하게 유연해지는 느낌, 그리고 철학이 별 거 아니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기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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