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4월, 한 젊은이가 일본 도쿄에서 돌연 사망한다. 그의 나이는 고작 스물일곱. 갑작스러운 비보에 그의 지기들이 충격에 빠진 것은 당연했다. 곧이어 그의 벗들은 그를 추모하고 애도하는 글을 속속 발표한다.
“상은 오늘의 환경과 종족의 무지 속에 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천재였다. 상은 한 번도 잉크로 시를 쓴 일은 없다. 그는 스스로 제 혈관을 짜서 ‘시대의 혈서’를 쓴 것이다. 그는 현대라는 커다란 파선에서 떨어져 표랑하던 너무나 처참한 선체 조각이었다.”
“그는 온건한 상식인 앞에서 기탄없이 그 독특한 화술로써 일반 선량한 시민으로서는 규지(엿보아 앎)할 수 없는 세계의 비밀을 폭로한다. 그는 술을 사랑하고, 벗을 사랑하고, 또 문학을 사랑하였으면서도 그것의 절반도 제 몸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에 앞서, 20여 일 전에도 스물아홉의 젊은이가 사망한 일이 있었다. 짧지만 신산한 삶을 살았던 그의 죽음 앞에 그의 벗들 역시 글로써 울분을 토했다.
“유정은 단지 원고료 때문에 소설을 쓰고, 수필을 썼다. 4백 자 한 장에 대돈 50전야라를 받는 원고료를 바라고, 그는 피 섞인 침을 뱉어가면서도 소설을, 수필을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쓴 원고의 원고료를 받아서 그는 밥을 먹었다. 그러다가 유정은 죽었다. 그러나 이것이 어디 사람이 밥을 먹은 것이냐? 버젓하게 밥이 사람을 잡아먹은 것이지!”
“세상에 법 없이도 살 사람이 유정임을 절절히 느꼈다. 공손하되 허식이 아니요, 다정하되 그냥 정이요, 유정에게 어디 교만이 있으리오. 그는 진실로 톨스토이(유정의 마지막 일작 <따라지>의 등장인물로 누이에게 얹혀살며 글을 쓰는 무기력한 존재)였다. 될 수만 있다면 나 같은 명색 없는 작가 여남은 갖다 주고 다시 물러오고 싶다.”
이상과 김유정. 혜성같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짧은 삶이었지만, 그들은 우리 문학사에 큰 획을 그었다. 하지만 살아생전 그들과 그들의 작품은 빛을 보지 못했다. 미친 사람의 헛소리라거나 어린아이의 말장난, 혹은 촌스럽고 수준 낮은 잡설이라고 치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가난과 고독과 싸우며 신산한 삶을 살아야 했고, 결국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이상, 김유정, 박용철 등 가난과 고독 속에 신산한 삶을 살다 간
당대 문인들의 삶과 작품에 관한 벗들의 회억
이상과 김유정. 혜성같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짧은 삶이었지만, 그들은 우리 문학사에 큰 획을 그었다. 하지만 살아생전 그들과 그들의 작품은 빛을 보지 못했다. 미친 사람의 헛소리라거나 어린아이의 말장난, 혹은 촌스럽고 수준 낮은 잡설이라고 치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가난과 고독과 싸우며 신산한 삶을 살아야 했고, 결국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모든 죽음은 큰 슬픔을 머금고 있다. ‘그’라는 존재의 부재가 가져오는 허전함과 공허함이 마음을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자꾸만 함께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와의 끈을 가능한 한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이 책에 나오는 문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벗의 죽음 앞에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만 같은 눈물과 슬픔을 애써 참으며 글로써 벗에 관한 기억을 끄집어내고 있다. 짐짓, 태연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온갖 감정이 녹아 있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는 더욱 슬프다.
이 책은 두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김기림, 박태원, 채만식, 김영랑 등 당대를 풍미했던 내로라하는 문인들이 가까운 벗이자 동료 문인이었던 이상, 김유정, 박용철 등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 슬픔을 억누르며, 그들의 삶과 작품을 되돌아보고, 함께 했던 추억을 회억하는 것과 동료 문인이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바라본 문인들의 삶과 작품에 관한 허물없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다 보니 차마 그들 앞에서는 쉽게 할 수 없었던 내밀한 이야기도 많다.
이를 테면, 김동인은 두 번이나 무시했던 김소월을 잊을 수 없는 이유가 당시 동성동명의 기생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소설가 김남천은 춘원 이광수를 가리켜 “영리하게 살아갈 줄 아는 처세의 대가”라고 했고, 시인 오장환은 백석을 일컬어 “스타일만 찾는 모더니스트”라고 했으며, 변영로는 오상순을 일컬어 “불가사의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문인들의 동료 문인에 관한 내밀한 고백이자 에스프리라고 할 수 있다.
“아, 시는, 소설은 어찌 잊고 갔을까”
“일찍 처를 여의어 보고, 아들도 놓쳐 보고, 엄마도 마저 보내 본 나로서는 중한 사람의 죽음을 다 겪어본 셈이지만, 내가 가장 힘으로 믿었던 벗의 죽음이라 아무리 운명이라 치더라도 너무 과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김영랑이 평생의 벗 박용철의 죽음에 부쳐 쓴 글이다. 그는 여기서 ‘인생 최고의 충격을 받았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만큼 지기를 잃은 그의 슬픔은 컸다. 그러기는 채만식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김유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애써 눈물을 참으며 이렇게 외친다.
“될 수만 있다면 나 같은 명색 없는 작가 여남은 갖다 주고 다시 물러오고 싶다.”
이보다 더 슬픔과 그리움, 안타까움을 아울러 표현한 말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왜 그렇게 일찍 떠나야만 했을까. 또 자기 몸보다 더 사랑하던 시는, 소설은 어찌 잊고 갔을까. 누구보다도 가슴 아팠을 벗들의 절절한 슬픔이 그들의 굴곡진 인생사와 함께 더욱 가슴을 아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