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빨개지는 아이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김호영 옮김 / 열린책들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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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도 되지 않은 짧은 틈에 다 읽어 버렸다.이렇게 금새 읽게 되는 책은 왠지 돈 주고 사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상빼의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역시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깔끔하고 우화적인 그림체에 걸맞은 동화같은 아름아운 이야기가
시도 때도 없이 얼굴이 빨개지는 아이 마르슬랭, 그리고 어디서고 ‘아이츄’하며 재채기를 해대는 꼬마 르네 라토…마르슬랭과 라토의 아기자기하고 가슴 찡한 우정을 보고 있노라면 아련한 안개 속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든다.나도 저런 적이 있었던가? 그들과 같은 친구들이 있었던가? 순수하고 애틋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대했던 적이 있었겠지..
근데 참 우습다.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더 두터운 안개 속으로 몽롱하게 빠져드는 느낌이다.물론 전혀 기분 나쁘지 않은 포근하고 따스함 속에 파묻힌 채..책장을 덮고 다시 눈을 떳을 땐 난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있었다.삭막하고 건조한 일상에 잘 어울리는 어른으로 씁쓸한 미소를 지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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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자
류시화 지음 / 김영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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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은 어디에나 있었다. 역마살도 지독한 듯 떠돌아다니는 그는 여행의 길목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생의 증거를 찾는다고 한다.여행이 좋았고 삶이 좋았던 그에게 생은 어디에나 있었다.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나태함으로 진저리나게 머물러있는 내겐 어디에고 생은 없는 듯 하다.가끔은 살아있음이 차마 죽을 수 있는 용기 없음일 뿐일때도 있는, 삶에 대한 희망도 바람도 더 이상은 없는 그저 버티기뿐일때가 많다. 시간이 용기없는 자신을 삶의 끝으로 자연스레 데려다주기를 하릴없이 바랄 뿐…

몇 년 전 류시화의 ‘하늘 호수로 떠나는 여행’을 읽은 후 인도에 대한 아련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하지만 그의 새 책 소식에 반가움으로 책장을 펼쳤을 땐 이미 인도에 대한 생각대신 생의 무료함으로 끙끙대고 있었다.이 책은 단순히 지리적, 생태적 낯선 곳으로의 기행이 아니다.그보다는 같은 하늘아래 속해 있으나 역시 속해 있지 않은 낯선 영혼들을 방문하는 일종의 철학서라고도 할 수 있다.일과 사람들에 치이고 부대끼면서 남들만큼 소유해야 하고 남들만큼 알아야 한다는 강박증으로 일생을 살아야 하고, 세상이 정해놓은 잣대로 행복을 실감해야만 하는 우리들에게 책 속의 그들은 진정 낯선 행성의 낯선 이들이다.

어떤 이들은 그들의 사고 방식이 나약하고 현실 도피적일 뿐인 게으른 이들의 자기 도취라고 비웃울 지도 모르겠다.하기사 ‘어떻게 하면 삶에서 행복할 수 있는가?’라는 저자의 질문에 그의 스승이 답한 “그대 자신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매 순간 기억하는 일이다”라는 말을 내 가까운 이에게 했을 때 제발 정신 좀 차리고 현실적이 되라는 핀잔을 들었었다.그래도 난 이 말을 믿어보려고 한다.우리는 단지 행복해지기 위해 이 세상에 왔고, 행복해 져야 할 권리와 의무가 있으니깐…그 낯선 행성의 사람들처럼 ‘아 유 해피?’라는 인사말을 하면서 늘 자기 자신이 완전히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 곧 행복임을 잊지 않으면서 말이다.며칠 전 메신저의 대화명을 ‘아 유 해피?’라고 했더니 날 아는 많은 이들이 “노~~~” “아임 언해피” 라며 울부짖는다.그들에게도 류 시화의 인도식 행복론을 알려줘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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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선물 -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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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에 한 번씩 동거중인 남자에게 얻어맞곤 소리 질러대는 다방 다니던 젊은 여자의 방 옆에는 머리 감기 전 꼭 마당에서 비듬을 털어대곤 하는 공장다니는 총각의 방이 있었다. 마당을 돌아 안채에는 택시운전하는 아저씨와 한량없이 사람좋은 아줌마의 두 아이들이 비좁은 한 방에서 살았고 그나마 떡하니 가장 넓은 구역은 동네사람들에게 정신이 약간 돌았다고 판정받고 있는 싸움쟁이 주인아줌마가 차지하고 있었다.항상 벌개진 코를 벌를거리던 능글맞은 과일집 아저씨가 그 남편이였고 부부 사이에는 안성맞춤인 멍청한 사내아기가 있었다. 그리고 잘 잠기지도 않은 담 옆에 있어 대문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옆에 역시 초라하고 작은 방이 우리 집이였다.아버지가 갑작스레 사업에 실패하고 낯선 그 집으로 이사를 간 때의 내 나이도 소설 속 진희처럼 열두살이었다.

그 전까지는 그런 동네가 있다는 것도 영 아귀 맞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모습도 다 드라마나 책 속에서만 나오는 것인 줄 알았다. 바로 옆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싸워대고 조용할 날 없는 그 사람들의 삶을 보며 난 단지 신기함과 세상의 요지경으로 호기심을 채울 뿐이였다. 그리고 또 이십수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을 통하여 그동안 한번도 생각할 엄두도 내 보진 못한 그 집의 사람들과 어린시절이 떠오른다.소설 속 진희는 열두살 결코 많지 않은 나이에 절대 믿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란 제목의 목록으로 동정심, 불변, 오직 하나뿐이라는 말, 약속등을 지워나간다. 인간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라는 확신을 하며…그래서일까? 진희는 열두 살 이후 성장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는다.열두살 나이로는 너무 조숙하다고 할 만큼의 성숙한 지적 사유로 주변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 나간다.어린 시절 단지 호기심으로 그들을 바라볼 뿐이었던 나와는 너무나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알아채 버린 진희에게서 서른이 넘어버린 지금 나는 새삼스레 세상을 다시 쳐다보게 된다.

하지만 십년 전이나 이십년 전이나 혹은 철없던 내 어린시절이나 진희의 조숙한 시절에서의 공통점은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였던 것 같다. 비록 약속이나 동정심을 절대 믿지 않고 사랑과 삶에 대해 그저 냉소적이였을 뿐이라고 외치고는 있지만 말이다. 어쩌면 그런 부르짖음은 그럴 수 없음에 대한 역설적인 외침이 아니였을까?작가란 한 순간도 세상에 대해 시선을 거두면 안된다고 누군가 말한 것 처럼 은희경 씨의 ‘타인에게 말걸기’와 같이 이 작품에서도 인간에 대한 작가의 치밀하고 애정어린 시선을 느낄 수 있다.그리고 이젠 자신에게조차 건조함으로 쩍쩍 갈라질 수 밖에 없는 나 같이 메마른 감성의 인간에게 순간이나마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과 인간에 대한 애정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 준다.지금까지는 심각하지도 비루하지도 않은 회색의 일과들이 나의 일상이였다. 작품 속 쥐의 일과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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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케의 동물 이야기
악셀 하케 지음, 이영희 옮김, 미하엘 소바 그림 / 창해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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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결에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본능적으로 불길한 느낌이 들어 몸뚱이는 꼼짝도 않은 채 살며시 눈만 치떠 바라보았지만 어둠 속엔 어떤 실루엣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기분 나쁜 바스락 소리는 규칙적인 리듬을 타며 계속 귀를 거슬리게 했다. 마침내 상체를 반쯤 일으켜 청각이 이끄는대로 불길한 존재에게 다가갔다. 순간 터져나오는 비명을 삼킨채 부들거리는 손에 잡힌 신문쪼가리로 그를 지그시 눌러 주려 했다.

헉~ 순식간에 시커멓고 징그러운 날개짓으로 눈 앞을 스치듯 날아가 버린 그것은 지금까지 내 뇌리에 세상에서 가장 두렵고 혐오스러운 존재로 각인되고 있다. 그나마 날개없는 그것들은 징그러울지언정 내 손안에 그들의 운명을 좌지우지 할 힘이 있어서 그런데로 무시할 수 있었지만 어린 시절의 그 무서운 기억 뒤로는 이젠 가까이 할 수 조차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겸손하고 정이 많으며 인간을 상대로 운명적인 짝사랑을 하는 거라고 하케는 안타까워 한다.난 사랑의 지고지순함과 위대함을 믿고 있지만 정말이지 바퀴벌레의 짝사랑만은 외면하고 싶다.

하지만 기린에 대한 하케의 생각에는 진심으로 동감한다.우리의 영혼이 견디기 어려울 만큼 큰 상처를 받으면, 우리는 기린의 목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서 머리 위에 솟은 털복숭이 뿔을 꼭 잡은 채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들과 입맞춤을 할 거라는….생각만 해도 환상적이고 낭만적이지 않은가?동물원에 가면 흔히 있는 기린을 보며 단지 목이 참 길군… 목이 저처럼 기니 목도리를 하려면 무진장 실이 많이 필요할거라는 삭막한 생각만 했었지 그 목을 타고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과 입맞춤을 할 거라는 생각은 감히 해보지도 못했었다.그리고 하케는 놀라운 비밀도 살짝 알려주고 있다.

1980년대에 소련의 잠수함들이 청어떼와 의사소통을 할 수도 있었지만 아쉽게도 교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다.그 이유는 청어가 유독 러시아어를 싫어했기 때문이란다. 청어들이 소련사람들이 청어 요리를 즐긴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였단다.또한 왠만한 지적인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악어와 악어새의 친밀한 관계에 상당한 오해가 있다는 얘기도 해 준다.악어새는 동물치과협회의 의뢰를 받아 악어의 이빨을 정기적으로 검사하고, 잇몸에 붙어 있는 거머리를 처리해 주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렇게 하고 지역의료보험조합에서 돈을 받는다고 까지 하니, 악어새가 악어의 친구가 아닌 것은 분명한 셈이다. 친구 없는 악어의 공격성은 악어 핸드백에 들어 있던 립스틱을 찾다가 그만 손가락을 잃어버린 여자들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이처럼 하케는 동물들에게 인간의 감정을 불어 넣어서 때로는 우리 자신이 바퀴벌레가 되기도 하고 혹은 지렁이나 앵무새가 되어 보기도 한다. 그래서 차마 생각지도 못했던 엉뚱하고 엽기스럽지만 우스꽝스러운 상상을 하게 만든다.거기에 미하엘 소바의 파스텔톤의 따스한 그림들은 추운 겨울 눈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며 한 장씩 음미하며 읽기에 안성맞춤이다. 아참! 목욕탕에서 샴푸 뚜껑을 열다가 신음소리를 듣고서야 그것이 카멜레온의 목이라는 걸 알고 놀랜 사람이야기를 하며 하케는 우리에게 카멜레온에 대한 경고를 잊지 않는다.“핸드폰을 사용할 때 특히 조심해야 한답니다. 가끔 카멜레온에게 귀를 물어 뜯길 수도 있으니 말이에요…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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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말걸기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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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랑에 대한 단상(斷想)들의 모자이크같은 소설이다. 세상의 모든 예술작품들에서 가장 많이 다루어지는 주제인 ‘사랑’…그래서 너무나 진부할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이야기하고 또 기꺼이 들어준다. 사랑 없이는 도대체 삶이란 걸 살아낼 자신이 없어서일까? 생에 사랑은 오직 단 한 번 뿐이라고 자신있게 부르짖으며 맞이했던 첫사랑은 비웃듯이 추억이 되버렸다.

‘더 이상 서로에 대해서 알 것도, 알고 싶은 것도 없이 사랑하는 관계란 지긋지긋했다 – 그녀의 세번째 남자’ 던 말이 맞아서였을까? 세상 끝날 때까지 갈 것 같던 3년간의 치열한 사랑은 지긋지긋한 무료함으로 끝나버렸다. 사랑하면서 더 이상 서로에 대해 알 것이 없는 사람들은 누구나 결혼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서로를 애증에 차서 노려보게 될 즈음이면 이제 슬슬 아이를 낳고 집을 장만하는 일상의 길로 함께 접어드는 것이, 언젠가는 끝나기 마련인 사랑이 종말로 향해가는 가장 바람직한 수순이라는 뜻인 줄은 소설 속 그녀처럼 나도 그때는 미처 몰랐었다.

하지만 어차피 무슨 일이든 ‘처음’이란 것은 시행착오가 있기 마련이라는 위안으로 또 하나의 사랑을 6년만에 찾아냈다.결혼은 죽도록 사랑하다 죽기전까지 떨어지기 싫은 사람이랑 하는 거라며 사랑을 찾는 동안 많은 또래들은 여자 팔자 뒤웅박이라며 적당한 조건을 찾아 탐색전을 벌이느라 늘 전투 중이였다. 감정이란 변하고 사라지는 거야. 결혼은 변하지 않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결정하는 게 좋다던 소설 속 연미의 말을 그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나도 진작에 연미가 되었어야 했다. 어렵게 찾은 두 번째 사랑도 여지없이 끝나버렸다.이제 나는 은희경의 말처럼 사랑은 그저 천상의 약속일 뿐이니 천상으로 보내려 한다. 천상의 약속을 지상에서 찾으려 한 내가 어리석었던 걸까?
그리고 하나, 둘… 그 다음 부터는 무조건 ‘많다’고 느끼는 어느 아프리카 사람들처럼
–그녀의 세번째 남자- 새로 만나게 될 의미없이 많은 사람들 중 어느 누구랑 적당히 남은 생을 살아내야만 는지도 모르겠다.그리고 또 어쩌면 ‘분명히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사랑을 이루고 나니 이렇게 당연한 순서인 것처럼 외로움이 기다리고 있다. 이루지 못한 사랑에는 화려한 비탄이라도 있찌만 이루어진 사랑은 이렇게 남루한 일상을 남길 뿐인가.-빈처’에서처럼 남루한 일상 대신 화련한 비탄을 갖게 됨을 다행으로 여길 수도 있으리라.게다가 ‘연미와 유미’의 연미처럼 결혼한 다음부터는 삶에 대한 기대도 없었고 누구를 의지하는 마음 없이 나 혼자 살아온 셈이였기 때문에 행복했다고… 사랑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었다고 나 또한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정말이지 사랑없이도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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