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케의 동물 이야기
악셀 하케 지음, 이영희 옮김, 미하엘 소바 그림 / 창해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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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결에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본능적으로 불길한 느낌이 들어 몸뚱이는 꼼짝도 않은 채 살며시 눈만 치떠 바라보았지만 어둠 속엔 어떤 실루엣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기분 나쁜 바스락 소리는 규칙적인 리듬을 타며 계속 귀를 거슬리게 했다. 마침내 상체를 반쯤 일으켜 청각이 이끄는대로 불길한 존재에게 다가갔다. 순간 터져나오는 비명을 삼킨채 부들거리는 손에 잡힌 신문쪼가리로 그를 지그시 눌러 주려 했다.

헉~ 순식간에 시커멓고 징그러운 날개짓으로 눈 앞을 스치듯 날아가 버린 그것은 지금까지 내 뇌리에 세상에서 가장 두렵고 혐오스러운 존재로 각인되고 있다. 그나마 날개없는 그것들은 징그러울지언정 내 손안에 그들의 운명을 좌지우지 할 힘이 있어서 그런데로 무시할 수 있었지만 어린 시절의 그 무서운 기억 뒤로는 이젠 가까이 할 수 조차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겸손하고 정이 많으며 인간을 상대로 운명적인 짝사랑을 하는 거라고 하케는 안타까워 한다.난 사랑의 지고지순함과 위대함을 믿고 있지만 정말이지 바퀴벌레의 짝사랑만은 외면하고 싶다.

하지만 기린에 대한 하케의 생각에는 진심으로 동감한다.우리의 영혼이 견디기 어려울 만큼 큰 상처를 받으면, 우리는 기린의 목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서 머리 위에 솟은 털복숭이 뿔을 꼭 잡은 채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들과 입맞춤을 할 거라는….생각만 해도 환상적이고 낭만적이지 않은가?동물원에 가면 흔히 있는 기린을 보며 단지 목이 참 길군… 목이 저처럼 기니 목도리를 하려면 무진장 실이 많이 필요할거라는 삭막한 생각만 했었지 그 목을 타고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과 입맞춤을 할 거라는 생각은 감히 해보지도 못했었다.그리고 하케는 놀라운 비밀도 살짝 알려주고 있다.

1980년대에 소련의 잠수함들이 청어떼와 의사소통을 할 수도 있었지만 아쉽게도 교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다.그 이유는 청어가 유독 러시아어를 싫어했기 때문이란다. 청어들이 소련사람들이 청어 요리를 즐긴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였단다.또한 왠만한 지적인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악어와 악어새의 친밀한 관계에 상당한 오해가 있다는 얘기도 해 준다.악어새는 동물치과협회의 의뢰를 받아 악어의 이빨을 정기적으로 검사하고, 잇몸에 붙어 있는 거머리를 처리해 주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렇게 하고 지역의료보험조합에서 돈을 받는다고 까지 하니, 악어새가 악어의 친구가 아닌 것은 분명한 셈이다. 친구 없는 악어의 공격성은 악어 핸드백에 들어 있던 립스틱을 찾다가 그만 손가락을 잃어버린 여자들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이처럼 하케는 동물들에게 인간의 감정을 불어 넣어서 때로는 우리 자신이 바퀴벌레가 되기도 하고 혹은 지렁이나 앵무새가 되어 보기도 한다. 그래서 차마 생각지도 못했던 엉뚱하고 엽기스럽지만 우스꽝스러운 상상을 하게 만든다.거기에 미하엘 소바의 파스텔톤의 따스한 그림들은 추운 겨울 눈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며 한 장씩 음미하며 읽기에 안성맞춤이다. 아참! 목욕탕에서 샴푸 뚜껑을 열다가 신음소리를 듣고서야 그것이 카멜레온의 목이라는 걸 알고 놀랜 사람이야기를 하며 하케는 우리에게 카멜레온에 대한 경고를 잊지 않는다.“핸드폰을 사용할 때 특히 조심해야 한답니다. 가끔 카멜레온에게 귀를 물어 뜯길 수도 있으니 말이에요…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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