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말걸기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사랑에 대한 단상(斷想)들의 모자이크같은 소설이다. 세상의 모든 예술작품들에서 가장 많이 다루어지는 주제인 ‘사랑’…그래서 너무나 진부할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이야기하고 또 기꺼이 들어준다. 사랑 없이는 도대체 삶이란 걸 살아낼 자신이 없어서일까? 생에 사랑은 오직 단 한 번 뿐이라고 자신있게 부르짖으며 맞이했던 첫사랑은 비웃듯이 추억이 되버렸다.

‘더 이상 서로에 대해서 알 것도, 알고 싶은 것도 없이 사랑하는 관계란 지긋지긋했다 – 그녀의 세번째 남자’ 던 말이 맞아서였을까? 세상 끝날 때까지 갈 것 같던 3년간의 치열한 사랑은 지긋지긋한 무료함으로 끝나버렸다. 사랑하면서 더 이상 서로에 대해 알 것이 없는 사람들은 누구나 결혼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서로를 애증에 차서 노려보게 될 즈음이면 이제 슬슬 아이를 낳고 집을 장만하는 일상의 길로 함께 접어드는 것이, 언젠가는 끝나기 마련인 사랑이 종말로 향해가는 가장 바람직한 수순이라는 뜻인 줄은 소설 속 그녀처럼 나도 그때는 미처 몰랐었다.

하지만 어차피 무슨 일이든 ‘처음’이란 것은 시행착오가 있기 마련이라는 위안으로 또 하나의 사랑을 6년만에 찾아냈다.결혼은 죽도록 사랑하다 죽기전까지 떨어지기 싫은 사람이랑 하는 거라며 사랑을 찾는 동안 많은 또래들은 여자 팔자 뒤웅박이라며 적당한 조건을 찾아 탐색전을 벌이느라 늘 전투 중이였다. 감정이란 변하고 사라지는 거야. 결혼은 변하지 않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결정하는 게 좋다던 소설 속 연미의 말을 그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나도 진작에 연미가 되었어야 했다. 어렵게 찾은 두 번째 사랑도 여지없이 끝나버렸다.이제 나는 은희경의 말처럼 사랑은 그저 천상의 약속일 뿐이니 천상으로 보내려 한다. 천상의 약속을 지상에서 찾으려 한 내가 어리석었던 걸까?
그리고 하나, 둘… 그 다음 부터는 무조건 ‘많다’고 느끼는 어느 아프리카 사람들처럼
–그녀의 세번째 남자- 새로 만나게 될 의미없이 많은 사람들 중 어느 누구랑 적당히 남은 생을 살아내야만 는지도 모르겠다.그리고 또 어쩌면 ‘분명히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사랑을 이루고 나니 이렇게 당연한 순서인 것처럼 외로움이 기다리고 있다. 이루지 못한 사랑에는 화려한 비탄이라도 있찌만 이루어진 사랑은 이렇게 남루한 일상을 남길 뿐인가.-빈처’에서처럼 남루한 일상 대신 화련한 비탄을 갖게 됨을 다행으로 여길 수도 있으리라.게다가 ‘연미와 유미’의 연미처럼 결혼한 다음부터는 삶에 대한 기대도 없었고 누구를 의지하는 마음 없이 나 혼자 살아온 셈이였기 때문에 행복했다고… 사랑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었다고 나 또한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정말이지 사랑없이도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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