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뜨기가 무섭게 출근을 하고 풀리지 않는 일을 붙잡고 야근을 밥먹듯이 하고 일상에 지친몸으로 잠자리에 든다. 몇 번 뒤척이다 기억나지도 않는 꿈을 꾸다 보면 어느새 아침이고 다시 어제를 반복한다. 도대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일상의 되풀이이지만 우리는 안다. 조금씩 조금씩 알아채지 못할만큼 이야기의 끝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이 책의 주인공 소년인 바스티안의 끝없는 이야기의 끝은 현실로 되돌아옴이다. 물론 그는 예전의 소심하고 용기없는 소년이 아니라 환상계의 용기와 당당함을 간직한 낙천적인 소년으로 바뀌었다. 바스티안은 "네 뜻대로 행하라"는 표지를 가지고 환상계에서 현실에선 상상할 수 없을 힘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세상을 바꾼다. 그의 끝이 없을 것 같은 환상계에서의 신비스럽고 이상야릇한 모험들이 이 책을 가득 채우고 있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싶다는 마지막 의지를 행함으로 바스티안은 끝없는 이야기를 끝내고 현실계로 돌아오게 된다. 결국 현실과는 전혀 무관할 것 같은 온갖 말도 안되는 환상적인 이야기로 가득한 이 책의 메시지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하지만 현실에 발을 딛고 살면 살수록 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게 결코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낄때가 많다. 아니 그것 자체를 생각할 때도 드물지만. 그저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세상에 둘러쌓인 채 내 자신을 잊은 채 살아가는 것이다.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의 한 켠에서 주위를 둘러보며 끌려가며 때론 지루해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고 간혹 유쾌해 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것은 바스티안의 환상계도 마찬가지이다.다른 것이 있다면 그 쪽 세계에선 좀 더 달콤하고 흥미진진한 일들이 많다는 것이다. 현실의 바스티안과 환상계의 아트레유가 결국은 한 사람의 다른 이면인 것 처럼 환상계도 현실세계의 또 다른 면이다.중요한 것은 어느 쪽의 이야기 속에 있느냐가 아니라 그 안에서 얼마나 자기 자신 스스로를 들여다보며 사랑하는냐인 것이다. 나는 일상의 어려움에 치여 나를 잊고 산 적이 많다. 아니 차라리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산 적이 더 많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나를 둘러싼 일상과 세상이 나의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한 것이였고 난 그저 그들 주변부에 머물러 있었다. 우울하고 지루한 나의 이야기가 빨랑 끝이 났음 늘 바랬지만 바스티안의 마지막 의지를 찾지 못함인지 끝이 날 것 같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기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 어떤 이는 많은 부분 만족스러운 이야기이고 또 어떤이는 늘 슬픈 이야기이다. 지금까지의 내 이야기는 우울하고 지루했었다. 하지만 늘 그럴 순 없겠지만 의식적으로 나 자신을 사랑하려고 애쓰는만큼 조금은 유쾌하고 행복한 이야기로 바꿀 수는 있을 것 같다.
‘연금술사라…. 무슨 금속들을 금으로 만들수 있다고 우기던 사람들이라지… 진짜 그럴 수 있다면 로또 복권에 일주일치의 행복과 기대를 고스란히 얹을 필요도 없고 또 그보다 더한 실망감을 참아낼 필요도 없겠군… 그야말로 지니의 요술램프를 가지는 셈이겠군..’이 책의 제목을 본 순간 처음 들었던 생각이다. 책의 내용이나 작가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한 연금술=황금=로또복권=돈의 등식이 찰라적인 시간에 내 머리를 가득채운 셈이다. 이런 걸 속물적이라고 하는건지… 어쨌든 로또 복권 4장값의 돈을 지불하고 책을 샀다. 당첨되지 않은 실망감보다는 뭔가 나은 걸 느끼게 되겠지 하는 일말의 기대로 말이다.이 책의 주인공 산티아고도 아주 조금은 속물적인 나랑 비슷한 구석이 있긴 있었다. 보물을 찾게 될 거라는 꿈을 꾸고 짚시 점쟁이를 찾아가서 해몽을 하고 어찌어찌해서 보물을 찾아 떠나는 긴 여행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마도 일반적인 우리 서민들은 그런 꿈을 꾸면 분명 복권을 샀을 것이지만.. 알퐁스 도데의 양치기 소년은 별을 바라보며 아가씨와의 순수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이솝 우화의 양치기는 거짓말을 하면 큰 일 난다는 사실을 늑대에게 호된 대가를 치루며 몸소 말해준다. 양치기라는 직업을 우리 현실에선 좀처럼 보기 힘들지만 이런 소설들의 영향으로 왠지 낭만적이고 비현실적인 교훈의 메신저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그리고 코엘료의 양치기 산티아고도 그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산티아고는 보물이 묻혀 있다는 피마미드로 가는 긴 여정에서 늙은 왕, 크리스탈 상인, 연금술사, 낙타 몰이꾼등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산티아고는 단순한 보물이 아니라 ‘자아의 신화’를 찾으러 가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하지만 사실 난 ‘자아의 신화’라는 어휘가 잘 와 닿지 않는다. 산티아고가 세상을 직접 보고 경험하기 위해서 스스로 양치기가 되었다는 것과 일맥 통하는 무언가라는 생각뿐… 산티아고는 양치기를 하며 양과 대화할 수 있었듯이 모든 사물들에도 정기가 있고 마음을 열면 그것들과도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는다. 결국엔 바람과도 이야기를 하고 태양과 사막과도 교류하게 된다.연금술이란 납을 금으로 바꾼다거나 불사신이 되게 하는 특별한 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만물의 정기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리고 딱히 연금술이란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으면서도 자신의 삶 속에서 충분히 연금술을 실천하는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이야기 해 준다. 결국 산티아고는 보물을 찾아 금의환양을 하고 사랑하는 여인의 곁으로 간다.우리 현실에선 보물 즉 자아의 신화를 찾아 모든 것을 버리고 불안하고 기약할 수 없는 긴 여행을 떠나기를 두려워하며 그저 자신의 가슴 한 켠에 담아두며 현실에 안주하는 삶을 택한 크리스탈 상인이 더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작가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땐 온 우주가 그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고 이야기한다.그리고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내는 것만이 우리 삶의 유일한 의무라고 말한다. 어쩌면 그것은 의무가 아니라 우리네 꿈일지도 모른다. 실현할 수 없는 아니 실현하지 않는 꿈 말이다. 도대체 우리 중 몇 명이나 회사를 그만두거나, 가족을 떠나서 과감히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나겠는가…
뱅상의 셀레스틴느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이다. 이 시리즈는 생쥐와 곰의 결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동물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셀레스틴느와 에르네스트가 소풍을 가기로 한 날 비가 억수같이 온다. 소풍을 갈 수 없다는 에르네스트의 말에 셀레스틴느는 실망하며 가자고 보채고 우리의 자상한 곰 아저씨 셀레스틴느는 에정대로 소풍을 간다. 밖에선 비바람이 치는 대도 텐트 안에선 더 없이 아늑하고 따뜻하다. 텐트를 친 부잣집 주인이 처음엔 화를 내지만 결국엔 자신의 집으로 에르네스트와 셀레스틴느를 불러들여 함께 하루를 즐긴다는 이야기다.벵상의 갈색톤의 따스하고 섬세한 수채화는 한 없이 자상하고 따뜻한 곰 아저씨 에르네스트를 잘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특별할 것도 큰 교훈도 주지 않을 것 같은 일상적인 에피소드가 첫 번째 이야기에서처럼 이번에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 대단할 것도 없는 잔잔한 일상사가 어쩌다 소풍 한 번 가는 것이 집안의 큰 행사가 되어버리고 그나마도 어른들의 일정에 맞춰 쉽사리 지켜지지 않는 것을 보면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가 되어버릴 수도 있겠다. 이 책을 아이에게 읽어주면 비오는 날이라도 소풍은 갈 수있다는 기대감을 줄 테니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할 듯..ㅎㅎ
아이들을 위한 동화에는 종종 동물들이 등장하곤 한다. 글쎄, 그 이유라는 것이 호기심을 자극하고 어려서부터 자연과 좀 더 친근하게 하려는 데 있지 않을까? 어른들의 시각에서는 쥐는 온갖 전염병의 매개체인 없애야만 하는 존재이고, 곰은 웅담과 쓸개가 요긴하게 쓰이는 동물로 인식된다. 하지만 벵상의 세계에선 쥐는 더 이상 혐오스런 존재가 아니라 귀엽고 사랑스런 아기가 되고 곰은 웅담과 쓸개의 유무와는 전혀 관계없이 그저 마음 넓고 자상한 어른의 모습일 뿐이다. 쥐와 곰의 이 말도 안되는 가족 체계가 아이들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더군다나 철없이 보채고 귀챦게 하는 셀레스틴느의 말에 언제나 귀기울이고 존중해주는 곰인 에르네스트는 아이들이 원하는 어른이 어떤 모습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벵상의 셀레스틴느 이야기의 세번째 시리즈인 <박물관에서>는 경비로 취직하기 위해서 박물관을 찾은 에르네스트와 셀레스틴느의 모습이 담겨있다. 일하는 내내 셀레스틴느와 함께 하기를 원하는 에르네스트는 당연히 취업을 거절당하고 박물관에 온 김에 관람을 하기로 한다. 관람도중 셀레스틴느와 에르네스트는 서로 길을 잃고 찾는 등의 에피소드가 펼쳐진다.벵상의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은 화면 가득한 갈색톤의 따스한 수채화이다. 더불어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서 잔잔한 사랑과 교훈을 끄집어내는 자연스러움은 이제 막 책을 가까이 하게 되는 유아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조금이나마 맛볼수 있게하지 않을까?!
애초부터 이 책을 살 생각은 없었다. 벵상의 어른들을 위한 동화에 나온 삽화가 너무나 맘에 들어 이 작가에 대해 더 알아보니 아이들을 위한 책을 많이 냈다는 걸 알았다. 마침 어린이날이 다가오고 있었고 어린 시절부터 책을 가까이 해야 한다는 단 하나의 확고한 교육관(?)을 가지고 있고 기념일엔 무조건 조카에게 책을 선물하곤 하는 나로선 당연히 마음으로 벵상의 셀레스틴느 이야기 시리즈를 몽땅 구입했다. 사실 나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어떤 책이 더 유익하고 교훈적인지 선택하기가 참 난감하다. 일단 인터넷 서점의 베스트셀러를 찾아보고 그에 따른 서평을 꼼꼼이 읽어본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삽화를 보는 편이다. 색감이나 분위기를 보고 얼마나 창의적인지 아이들의 상상력을 어느정도 부추길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물론 나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유, 아동교육에 대한 전문지식도 없고 키워 본 경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셀레스틴느 이야기 시리즈는 탁월한 선택이였다고 스스로 만족한다.어른들은 이미 과학적인 동물들의 생태를 익히 잘 알기 때문에 상상력으로 그들에 가까이 다가가려 하다가도 이내 그 이미지가 깨져 버리곤 한다. 어른들에겐 동화책의 황당무계한 설정들이 아닌 동물의 왕국등의 자연 다큐멘터리의 현장감 넘치는 삶의 현장 속의 그들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하지만 어린이들에겐 동물들은 또래 친구들과 같은 존재이다. 벵상의 셀레스틴느와 에르네스트처럼.. 때문에 생쥐 아가와 곰 아저씨의 결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상한 가족의 이야기가 어린아이에겐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벵상의 생쥐는 셀레스틴느라는 귀여운 아가이다. 셀레스틴느를 돌봐주는 곰 아저씨 에르네스트는 포근하고 따스한 마음의 아빠같은 존재이다. 이 이상한 가족의 특별할 것 없는 너무나 일상적인 에피소드들이 셀레스틴느 이야기 시리즈이다. 하지만 벵상의 갈색톤의 포근하고 섬세한 수채화의 삽화들은 셀레스틴느와 에르네스트의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셀레스틴느의 인형인 시메옹을 찾기위해 노력하고 직접 만들어주기까지 하는 에르네스트의 자상함과 어린 셀레스틴느의 보챔과 칭얼거림에도 화내지 않고 끝까지 귀기울여주는 점들은 인간 어른들도 반성하고 본받을 점인 것 같다. 곰보다 못한 어른이라고 이 책을 읽은 아이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