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자열매술꾼 열림원 이삭줍기 1
아모스 투투올라 지음, 장경렬 옮김 / 열림원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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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이나 영화에서 사람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수도 있지만 역시 내게는 생기지 않는 일을 간접경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 그 누구에게도 절대 일어나지 않을 환상적이고 허무맹랑한 일을 상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근래에 봇물 터지듯 쏟아져나오고 인기를 끌고 있는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류의 책들이 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아주 작고 낯선 책 한권이 내 머릿속을 유쾌한 상상으로 온통 헤집어 놓고 있다. 열림원에서 나온 이삭줍기 시리즈는 세계 문학,사상의 아웃사이더들을 이삭 줍는 마음으로 발굴했다는 작품들이다. 이삭을 줍듯이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발굴했다는 그 말이 난 참 마음에 든다. 작가의 인지도도 국력에 비례하는 건지 (물론 예외도 소수 있겠지만..) 선진국의 작가의 글들은 너무나 많이 번역되서 쉽게 접하게 된다. 그리고 그만큼 이국적 자극도 해가 갈수록 덜해져서 식상해져간다. 나이지리아의 아모스 투투올라라는 낯선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우선 심한 당혹감을 느낀다. 전체적으로 문장이 세련되지 않고 서툴고 투박한데다 이야기 앞뒤가 맞지 않는 듯 엉성함 투성이다. 열살짜리 어린애였을 때부터 야자열매술 마시는 일 이외에는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는 술주정뱅이의 모험담은 그야말로 술주정처럼 과장되고 황당하다. 그의 이름은 너무나 뻔뻔스럽게도 자칭 ‘이 세상에서 할 수 없는 일이 하나도 없는 신들의 아버지’이다. 술주정뱅이에다 뻔뻔하기까지 한 그의 모험담은 그러나 순수하고 유쾌하다. 신체 각 부위를 빌려서 멋진 신사가 되는 해골과 뒤로 걸어야만 하는 죽은사람들의 마을과 소원을 들어주는 신비한 알 이야기등 민담과 신화에 바탕을 두고 창작된 이야기들은 아프리카 특유의 생명력과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죽음’을 팔아버렸기 때문에 죽을 순 없었지만 ‘두려움’은 팔아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두려울 수 밖에 없었다는 내용은 다듬어지지 않은 거칠고 원초적인 원석을 보는 듯 경이롭기 까지 했다. 세계적 작가들의 세련된 문장에서 매끄러운 감동을 느꼈다면 이 책에서는 마치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구수한 옛날 이야기를 듣는 듯한 푸근함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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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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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건 영화 ‘컨스퍼러시’에서였다. 세상의 모든 일 뒤엔 어떤 음모가 있다는 강박증에 시달리는 멜 깁슨이 부적처럼 읊었던 책이 바로 ‘호밀밭의 파수꾼’이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존 레논의 암살자도 이 책을 탐독했다고 하며 빌리 조엘 등의 유명 뮤지션들은 콜필드 신도롬에 빠지기도 했다한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책이길래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넋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을까? 궁금증으로 무턱대고 읽게 됐지만 처음 느낌은 실망감이였다.

사고뭉치 문제아가 아니라 단지 학점이 모잘란던 이유로 고등학교를 퇴학당하고 며칠간 방황을 하게 된 홀든의 이야기는.방황을 하던 중에도 폭행, 강도, 살인 등의 놀랄만한 일은 전혀 없었다. 처음 내가 실망감을 느낀 이유는 이런 것들 때문이었다. 사람들로 하여금 신드롬까지 빠지게 하고 살인까지 하게 할 정도라면 이 정도의 쇼킹한 이야깃거리가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거기에는 놀랄만한 사건들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세상이 온통 혼란스럽고 어지러워 구토가 나올지경인 열여섯살의 여린 영혼이 있을 뿐이었다. 한 가지라도 진짜 좋아하는 걸 도대체 생각해 낼 수가 없었고 단지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었던 한 소년이 있을 뿐이었다. 처음엔 홀든을 보며 난 그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사춘기의 혼란스러움이군… 쯧쯧.. 나도 한 때 그럴 때가 있었지.. 하지만 사춘기 시절 누구나 한 번 느끼는 그런 감정은 좀 더 성장하면 까마득히 잊어버리는 순간전인 감정일뿐이야...’

하지만 책을 다 읽을 때쯤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사춘기가 훨씬 지난 지금도 난 여전히 홀든처럼 세상이 혼란스럽고 버겁지만 애써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내색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너무나 익숙하게 세상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이기 때문에 나 혼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 사회속에 도태되고 밀려나게 되고 마는 것이다. 그저 그들처럼 아무 내색없이 살아가는 것이 이 세상을 잘 살아가는 간편한 방법인 것이다. 열여섯의 홀든은 스물아홉의 홀든이 되고, 마흔 셋의 홀든이 되어 잊고 있었던 또 다른 우리의 영혼을 일깨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다시 보고 달라진 나로 인해 콜필드 신드롬에 빠지게 되나보다. 샐린저는 이 책을 영화화하자는 제안에 홀든이 싫어할까 봐 두렵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한다. 홀든은 인쇄된 활자가 아닌 살아있는 영혼인 것이다. 그리고 그 영혼을 느끼는 사람은 또 다른 홀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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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러건트 유니버스
브라이언 그린 지음, 박병철 옮김 / 승산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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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예술은 현실도피적인 학문이라고 아인슈타인이 그랬던가? (내 기억이 확실친 않지만..) 난 누구보다 그 말에 공감한다. 회사일로 집안일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 과학관련도서를 읽는다든지 전시회나 음악회를 다니면 내 머리속을 그토록 어지럽혔던 일들이 왠지 하챦게 느껴지곤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엔 경제적인 궁핍함까지 나를 괴롭힌터라 비싼 음악회 대신 이 책을 고르게 됐다. 역시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물리적 이치와 우주가 왜 이런 모양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을 보며 난 나를 둘러싼 또 하나의 세상(골치아픈)을 잊으려고 하니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난 사무실에서 왕창 스트레스를 받아서 씩씩거리며 퇴근을 하다가 어느 순간엔가 음… 우주가 11차원이란 말이지.. 그럼 그게 어떤 모양이 되는거지?…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랬다. 상대성이론이라든지 양자역학, 만물의 최소단위가 진동하는 고리형 끈이라는 끈이론등으로 우주 생성의 비밀을 파헤치는 현대 물리학을 차근차근 읽다보면 항상 부족한 월급 때문에 짜증나는 내 주머니 사정이나 맘에 안드는 동료직원의 거슬리는 행동등도 하챦게 느껴졌다. 상상하기도 어렵게 무지하게 큰 우주에서 내 고민은 너무나 작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무실로 책이 도착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전공도 아닌데 이런 책을 왜 읽느냐며 희한한 눈초리로 쳐다보곤 한다. 난 당당하게 이 책은 전공자를 위한 전공도서가 아니라 일반인을 위한 교양과학도서라고 말해주지만 여전히 납득할 수 없다는 듯한 그들의 눈초리는 그저 무시할 수 밖에… 외국은 이런 책들이 잘도 팔린다던데..

 

정말이지 이 책은 나처럼 물리학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충분히 이해할 만한 책이다. 물론 우주나 물리학에 관심은 있어야겠지만 너무나 익숙하지만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역시 쉽게 설명해주고, 양자역학과 현대물리학계의 초미의 연구대상인 초끈이론까지 그 흐름을 매끄럽게 이야기 해준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지만 가까이 하기 어려웠던 우주 탄생의 이야기와 왜 하필 이런 모양으로 변형되었는지, 블랙홀에 대한 이론적 접근에 대해서도 쉽게 풀어서 설명해준다.

 

저자는 과학자라는게 믿어지지 않는다. 보통 과학자들하면 두꺼운 안경에 고리타분하고 어려운 물리용어나 수학공식을 남발(?)하는 사람으로 여겨지는데 책을 읽는 내내 그가 무척이나 친절하고 배려가 깊은 사람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난해한 물리이론들을 실제생활의 유머러스한 상황이나 마치 SF영화를 보는 듯한 장면등을 예제로 들어 설명하는 걸 보면 이야기를 지어내는데 대한 천재성까지도 느끼게 된다.

 

무언가를 전문용어 없이 일상적인 언어로 설명할 수 없다면, 그것은 당신이 그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증거다라고 말한 어니스트 러더프드의 말대로라면 저자는 현대물리학의 모든 이론들을 완벽하게 이해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비록 우리는 타인에게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을지라도 그 흐름만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현대를 살아가면서 과학의 변방에 머물러 있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소설읽는 사람을 쳐다보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과학도서 읽는 사람을 쳐다보는 사회분위기가 하루빨리 조성됐음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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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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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이 조수처럼 주기적으로 밀려왔다 쓸려간다.  아마도 그 때쯤이라서 그랬을까?

잡독을 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분명 좋아하는 스타일의 책들이 있다.

스밀라는 물론 그 부류의 책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난 스밀라를 읽는내내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삭막했고 냉담했고 우울했고 그리고 무료했다.  내 상태는 그랬고 스밀라는 내게 어떤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읽는 내내 난 무심했다.  스밀라의 우울하고 한없이 침잠되는 분위기는 이미 그전에 내가 그 자리에 있었기에 더 이상 밑으로 내려갈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 바람에 소름이 돋을 때마다 문득 문득 스밀라가 생각난다.

아마도 눈이 오기 시작하면 잃어버린 추억처럼 그린란드를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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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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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흔히 말하는 베스트셀러, 그중 특히 소설류는 잘 읽지 않는다. 그 책들 중 대부분이 통속적인 사랑이야기가 많았고, 그도 아님 이리 꼬고 저리 뒤집는 그래서 그 난해함으로 절대 통속적이지 않는 진짜 문학이라고 주장하는 책들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몇 번의 선택의 실패 후에 소설을 읽으려면 차라리 많은 세월 많은 사람들에게 검증받은 고전문학을 읽는게 안전하겠다는 생각까지 한 터였다.
‘무라카미 하루키’ 라는 이름과 비틀즈의 ‘노르웨이 숲’… 도대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그 이름들에 대해서는 도대체 어떤 책일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드디어 난 하루키의 문학에 조금 비집고 들어갔지만 아주 잠깐, 아주 얕게 들어간 때문인지 아직 그에게서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왠지 모르지만 그저 자유로와 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주문처럼 책을 읽는 내내 마음 속 어딘가에서 외치고 있었다. 사람들에게서, 사회적 규칙, 관습에서 그리고 성에서까지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 어쩌면 우리 주변의 사람들의 잣대로 보면 어딘가 평범치 않고, 조금은 비뚤어지고 모자라고 공허한 인물들이 주로 등장하는 이 책은 어찌보면 현실성의 결여로 보일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내면 어디가엔 차마 표출하지 못한 모자라고 비뚤어진 면들이 있지 않을까? 다른 사람에게 들킬까봐 오히려 너무나 정상적이고, 너무나 현실의 관습에 적응이 잘 돼서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듯이, 삶 자체가 당연한 순리대로 그저 살아가는 것이라는 듯이 잘 살고 있는 척 하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관습과 규칙에 맞추어 살도록 조금씩 쇠뇌되어 쇠뇌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이젠 알아채지 못하면서.. 그는 매일 아침 태엽을 감는단다. 한 36번쯤.. 태엽을 감으며 오늘도 성실하게 계획에 맞춰 잘 살 수 있도록 한단다. 하지만 일요일은 감지 않고. 조용하고 평화롭고 고독한 일요일엔 태엽을 감을 필요가 없으니깐. 난 몇 번을 감아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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