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건 영화 ‘컨스퍼러시’에서였다. 세상의 모든 일 뒤엔 어떤 음모가 있다는 강박증에 시달리는 멜 깁슨이 부적처럼 읊었던 책이 바로 ‘호밀밭의 파수꾼’이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존 레논의 암살자도 이 책을 탐독했다고 하며 빌리 조엘 등의 유명 뮤지션들은 콜필드 신도롬에 빠지기도 했다한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책이길래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넋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을까? 궁금증으로 무턱대고 읽게 됐지만 처음 느낌은 실망감이였다.

사고뭉치 문제아가 아니라 단지 학점이 모잘란던 이유로 고등학교를 퇴학당하고 며칠간 방황을 하게 된 홀든의 이야기는.방황을 하던 중에도 폭행, 강도, 살인 등의 놀랄만한 일은 전혀 없었다. 처음 내가 실망감을 느낀 이유는 이런 것들 때문이었다. 사람들로 하여금 신드롬까지 빠지게 하고 살인까지 하게 할 정도라면 이 정도의 쇼킹한 이야깃거리가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거기에는 놀랄만한 사건들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세상이 온통 혼란스럽고 어지러워 구토가 나올지경인 열여섯살의 여린 영혼이 있을 뿐이었다. 한 가지라도 진짜 좋아하는 걸 도대체 생각해 낼 수가 없었고 단지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었던 한 소년이 있을 뿐이었다. 처음엔 홀든을 보며 난 그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사춘기의 혼란스러움이군… 쯧쯧.. 나도 한 때 그럴 때가 있었지.. 하지만 사춘기 시절 누구나 한 번 느끼는 그런 감정은 좀 더 성장하면 까마득히 잊어버리는 순간전인 감정일뿐이야...’

하지만 책을 다 읽을 때쯤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사춘기가 훨씬 지난 지금도 난 여전히 홀든처럼 세상이 혼란스럽고 버겁지만 애써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내색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너무나 익숙하게 세상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이기 때문에 나 혼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 사회속에 도태되고 밀려나게 되고 마는 것이다. 그저 그들처럼 아무 내색없이 살아가는 것이 이 세상을 잘 살아가는 간편한 방법인 것이다. 열여섯의 홀든은 스물아홉의 홀든이 되고, 마흔 셋의 홀든이 되어 잊고 있었던 또 다른 우리의 영혼을 일깨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다시 보고 달라진 나로 인해 콜필드 신드롬에 빠지게 되나보다. 샐린저는 이 책을 영화화하자는 제안에 홀든이 싫어할까 봐 두렵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한다. 홀든은 인쇄된 활자가 아닌 살아있는 영혼인 것이다. 그리고 그 영혼을 느끼는 사람은 또 다른 홀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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