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 : 인생을 바꾸는 자기 혁명 - Think Hard! 몰입
황농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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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의 사전적 의미는 ‘깊이 파고들거나 빠짐’이다. 일반적으로 무언가 목표하는 바를 효율적으로 달성하려면 집중해서 해야 한다고들 한다. 나도 공부가 잘 되지 않을 때 마음속으로 “집중”이라고 외치며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예전부터 무언가를 할 때에는 ‘몰입’해야 한다고 많이 얘기하셨다. 사실 집중보다는 몰입이 더 센 강도로 무언가에 열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몰입보다 더 큰 강도의 몰입을 원한다.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몰입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천재와 범인의 지적 능력의 차이는 질보다는 양에 있다고 한다. 몰입하여 풀리지 않는 문제를 오래도록 생각하는 것이 천재들의 학습법이고 이를 통해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 이 책은 열심히 일하는 'work hard'의 패러다임에서 열심히 생각하는 ‘think hard'의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역설하고 있다. 인간의 동기가 어떻게 유발되며 이를 어떻게 유지하고 발전하는가를 연구하는 동기이론과도 상당히 맞닿아 있는 부분이기도 한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죽음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다시 읽는다면 가치관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말한다. “우리 인생은 죽음을 향해 질주한다. 결국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죽기 시작한다. … 이숙명적인 죽음에 대하여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죽음에 대하여 내가 저항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러다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죽음에 대하여 내가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한 것이다. 내가 살아 있는 시간이 유일한 기회이고 이 삶의 기회를 잘 보내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나한테 달려 있다.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에 대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살아 있는 동안 가장 삶다운 삶을 사는 것이다. … 하루하루가 생동감 넘치고 삶의 희열로 꽉 찬, 그리고 작지만 내가 가진 모든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는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살아 있음이 나의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이다.”라고. 이 부분에서 나 또한 삶을 헛되이 살지 않겠다는 강한 동기를 얻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졌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보았다. 내 삶을 끄는 원동력이 내 안에 있어야 하는데 주변에 의해서, 시간에 의해서 그냥 끌려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의 삶은 달라져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무엇보다도 내 안에서 꿈틀대는 무언가를 느낀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내가 가진 모든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는 삶’을 위해서는 몰입을 해야 한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었고, 나 또한 어떤 일을 할 때 억지로 했던 기존의 습관을 차근차근 버려 나가면서 단순히 해 나가던 일을 조금 더 생각해 보고 나의 생각을 가지려는 노력을 하려고 한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극도의 몰입을 위해 사회적인 일이나 하나의 문제 이외의 모든 것을 끊을 수는 없겠지만 조금씩 나의 패러다임도 바꾸어 나갈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을 하는 것이 내 삶이라는 기회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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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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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향수와 같다고 했다. 내 몸에 몇 방울 뿌리지 않고서는 다른 이들을 뒤덮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영희 교수의 글은 향수와 같은 글인듯 싶다. 그녀는 힘들고 괴로울 수 있는 상황에서 누구보다도 밝게 웃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으로 삶을 살아가는 자세가 글 속에 묻어나 그 글을 읽는 우리들로 하여금 그녀의 향기에 흠뻑 취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녀의 전작들, <문학의 숲을 거닐다>나 <내생애 단한번>과 같은 책을 읽고 느꼈던 감동을 이 책을 통해서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더이상 그녀의 글을 읽을 수 없다는 슬픔에 안타까우면서도 더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향기를 나누어 주는 그녀의 삶이다. 

낸시 메리키라는 소녀는 열 살 때 소아마비로 목발을 짚게 되는 장애를 입었다. 부모는 낸시가 걸을 수 있도록 다리 근육 강화에 좋다는 수영을 가르쳤고, 그 후 열아홉 살 때 낸시는 전국 수영대회에서 1등을 거머쥐었다. 당시 대통령이던 루즈벨트 대통령이 낸시에게 물었다고 한다. "불편한 몸으로 어떻게 챔피언이 될 수 있었지?" 낸시는 대답했다. "계속해서 했을 뿐입니다. 각하." 

낸시의 일화는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장영희 교수의 삶 또한 그녀 자신이 말했듯 기적이다. 어떻게 그러한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하루하루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고 나아가기 위해 노력한 결과이다. 이들의 삶은 나를 꾸짖는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힘듦 이상의 괴로움은 없다는 듯이, 나 혼자만 힘들게 살아간다는 듯이 온갖 푸념과 불평을 일삼는 나의 일상에 커다란 깨우침을 주었다. 나보다 더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그 상황 속에서 굴하지 않고 더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몰랐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려운 상황이라고 좌절하고, 난 할 수 없다고 도망쳐 버린 나약한 내 자신을 반성해야겠다. 그리고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그것을 인정하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희망을 가지고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죽음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희망을 새기며 새봄을 기다린 장영희 교수처럼 나 또한 '희망'과 '기적'을 마음 속에 새기고 힘든 하루하루를 살아가려 한다. 그녀가 말했듯 내가 지금 힘겹게 살고 있는 하루하루가 바로 내일을 살아갈 기적이 될 것임을 믿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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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오히라 미쓰요 지음, 양윤옥 옮김 / 북하우스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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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라는 책 제목이 이미 이 책의 모든 걸 담고 있다. 사실 이 책은 중학교 때 처음 읽었고 고등학교 때 다시 한 번 읽었다. 그러니까 이번에 읽은 것이 세 번째 읽는 셈이다.  나 자신에게 새로운 각성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이 책을 읽고 싶어졌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역시나 또 단숨에 읽고 말았다. 하지만 몇 번을 읽는다 해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깊은 감동에 빠져드는 그런 책이다. 어느 멋진 표현을 쓴다고 해도 일종의 경외심마저 드는 이 심정을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쓴 오히라 미쓰요. 그려는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이 책 속에 담았다. 그녀의 삶은 정말 한 인간이 이렇게 파란만장하게 살 수도 있구나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녀는 중학시절에 끔찍한 왕따를 당하고 할복자살까지 기도한다. 하지만 결국 생명을 포기하지 못하고 자살에 실패한 후, 끝없는 밑바닥 인생을 경험하며 방황 끝에 야쿠자의 아내까지 지낸다. 이혼 후 호스티스까지 한 그녀, 한 사람의 인생이 얼마만큼 추락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려는 것처럼 정말 참담한 인생이다.

예전에 이 책을 읽을 때는 그녀의 고통을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했고 따라서 그녀가 자살을 기도한 것은 단순히 ‘삶이 조금 힘들다고 생명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나이를 먹고, 그러면서 사회 안에서 느끼는 책임이나 압박감과 많은 경험을 통해서 배운 힘든 세상살이를 생각해보니 얼마나 힘들었으면, 정말 오죽했으면 그랬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요즘은 모든 것을 다 가진듯한 유명 연예인도 스스로 목숨을 끊고 또 이를 따라 많은 사람들이 자살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 모두는 함부로 타인의 인생, 선택을 비웃을 수 없다. 그 사람의 삶을 살아보기 전에는 말이다. 하지만 삶이 힘들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주위의 관심과 따뜻한 손길로부터 인생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자그마한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는 거창한 자선사업도 아니고 어려운 상담도 아니다. 단지 관심을 가지고 몇 마디 따뜻한 말 한 마디라도 해 주는 이웃이 되었으면 한다.

 언젠가 영화 라디오 스타를 보면서 가슴에 와 닿았던 대사가 생각이 난다. “ 별은 혼자 빛나는 게 아니라 다른 별의 빛을 받아 빛난다.”라는. 주위를 둘러보자. 우리 모두가 지금의 위치를 지키며 반짝반짝 빛날 수 있는 것은 우리를 비춰주는, 우리를 빛나게 해주는 든든한 조력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주위에 간직한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소중한 의미를 갖는지 깨달아야 한다.

 그녀는 자신을 빛나게 해 준 많은 소중한 분들의 역할을 맡아, 이제는 예전의 자신처럼 방황하고 있는 청소년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과거를 뼈저리게 후회하면서 말이다. 삶의 의미를 잃고 혼란을 겪고 있는 많은 청소년들이 자신처럼 되지 않게 하기 위해. 폭음에 문신, 호스티스 생활 등으로 망가진 그녀의 몸이지만 그녀는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사는 것이 삶의 목표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낭비한 많은 시간을 생각하며 이를 더 크게 채우려고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  아직 많이 미숙한 나지만, 그녀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알 것 같다. 그녀가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말로써 독자에게 아주 간절하게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주저앉을 때가 아니다. 아무리 힘들고 죽고 싶다 할지라도 지금을 내 인생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하자. 앞으로 겪어야 할 더 많은 고통이 있겠지만 충분히 견뎌낼 수 있다. 지금까지 지내온 고통도 날 무너뜨리진 못했잖는가.”

그렇다. 아주 잠깐 가져보는 포부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다짐하고 싶다. 이제부터 하루하루를 성실히, 진정으로 후회 없는 삶을 살겠다. 한 번도 지금까지 실패한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앞으로는 더 빛나는 삶을 살겠다. 하루하루 피곤하고 지친 몸으로 살더라도, 죽고 싶을 만큼 힘든 그 어떤 시련이 온다고 해도 전혀 걱정할 것 없다. 실수하고 실패한 그 순간일지라도 인생은 지금부터라고 생각하고 다시 힘을 낼 수 있는 강한 사람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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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이청준 문학전집 중단편소설 5
이청준 지음 / 열림원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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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눈길>을 오랜만에 읽었다. 고등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 하권에 실려 있어서 고등학교 때 처음 읽었는데 보통 내신공부를 위해 문학을 공부하면 아무리 좋은 문학 작품이라도 그 가치와 재미를 잘 느낄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수업시간에 읽고 또 혼자 읽어봐도 정말 감동적이었다. 몇 개월 전에도 도서관에서 따로 책을 빌려서 이 작품을 읽었는데 감동이 줄어들기는커녕 더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또 다시 <눈길>을 읽으니 그 감동이 되살아 나면서 마지막 어머니의 심경을 듣는 순간에는 또 눈물이 났다.  


“내일 아침 올라가야겠어요.”
소설의 시작에서부터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리고 대화중심의 소설임을 보여준다. 이 소설의 중요한 장면은 대개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아내가 어머니에게서 그 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이 소설은 어머니와 아내의 대화 분위기, 주인공들의 행동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에서도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소설의 구성 요소 각각이 잘 짜여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친 어머니임에도 불구하고 차갑게 대하는 아들의 태도,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어머니를 ‘노인’이라고 칭하는 것이다. 번번히 ‘노인’에게는 ‘빚’이 없다고 말하면서 아들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숨기려 한다. ‘노인’은 자기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으므로 자기는 ‘빚’이 없고, 그러니 그녀가 무언가를 원하더라도 해주지 않아도 된다고 계속 자신에게 말한다. 그러나 글을 읽고 있는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아들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어머니가 자신에게 보여준 사랑의 증거물인 ‘옷궤’를 보면서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것은 거기에 대해 자신이 어머니에게 너무나 감사하고 있음에도 그것을 표현하지 못하고 잊음으로써 차가워지려 한다. 또한 ‘나’ 자신도 실제로 형편이 어려워 어머니에게 많은 것을 해줄 수 없으므로 이에 대한 자기방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노인’이라는 호칭을 쓰면서 어머니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지만 결국은 자신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인정하고 들추어내지 못하고 약간은 삐뚤어진 애정표현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머니의 무덤덤한 태도도 인상적이다. 아들이 자신에게 차갑게 대함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그것에 대해 화내거나 슬퍼하지도 않고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아내가 어머니를 부추기며 어머니의 속마음을 얘기해보라고 권하여도 어머니는 그저 자기 속으로만 삭히고 감내할 뿐이다. 말을 아끼며 장죽 끝에 풍년초를 꾹꾹 눌러 담는 모습에서 아들에 대한 서운한 마음과 아들에게 해준 것이 없는 미안함을 삭이고 있는 어머니의 안타까운 심정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소설에서는 이처럼 심리를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구체적인 형상이나 사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렇게 표현함으로써 독자의 입장에서는 더 안타까움이 전해지고 공감이 가는 것이다.
 하지만 ‘나’가 인정하기 싫어하는 ‘빚’이 정말 없을까, 어머니가 아들에게 미안해 하는 것처럼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을까. 물론 집안 형편이 어려워 아들에게 물질적인 지원을 많이 못 해주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부모가 자식에게 송구스러워 해야 하고, 아들은 어머니에게 받은 것이 없다고 자기도 줄 필요 없다는 생각을 갖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집이 팔렸음에도 불구하고 먼 곳에서 온 아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지어 먹이기 위해 옷궤를 집안에 두고 아무렇지 않게 아들을 맞은 어머니, 아들을 끝까지 배웅해주기 위해 하얀 눈길을 함께 걷고 훌쩍 떠나버린 아들을 뒤로한 채 혼자 눈 발자국을 따라 동네로 돌아오던 어머니의 눈물겨운 심정을 생각하면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느낄 수 있다. 진심으로 어머니의 사랑만큼 큰 사랑은 없다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혼자 돌아갈 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애써 지우려 했던 아들도 결국은 자신이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어머니의 큰 사랑과 어머니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인하며 눈꺼풀 아래 뜨거운 것이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이 소설은 모자간의 사랑을 확인해가는 과정을 점심 때부터 밤까지의 한나절 동안의 시간적 배경에서 그리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하루 동안에 일어난 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옛날 일어났던 어머니와 아들이 걸었던 눈길에서 어머니와 아들 간의 사랑을 찾을 수 있다. 그 기억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서 이 하루가 쓰였던 것이다. 뒷이야기는 나오고 있지 않지만 분명 ‘나’는 ‘노인’이 아닌 ‘어머니’에게 사랑을 전하며 고맙다는 말을 하게 되지 않을까. 모자간에 쌓아 두었던 모든 오해와 서운함과 미안함 따위는 버리고 펑펑 울며 터놓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가슴이 찡해지며 미소가 절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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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윤성희 지음 / 창비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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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식구가 많은 집에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새 신발을 신어본 적이 없었다. 형들의 신발을 물려 신는 것을 싫어하던 그는 형들보다 키가 커지려고 계속 먹어 대는 바람에 살이 쪘다. 첫눈이 오던 날, 비료포대로 썰매를 타는 데, 그의 몸무게 때문에 가속도가 붙고 밑창이 닳아버린 운동화로 썰매를 멈출 수 없어 그와 비료 포대는 계속 달린다. 그러다가 달리는 자동차 앞까지 뛰어든다. 한 사내가 그의 등을 밀쳐내고, 그는 이마에 가벼운 찰과상만 입었지만 사내는 비료 포대를 덮고 한쪽 구두만 신은 채 죽었다. 이 사건에서부터 그의 상처가 시작된다. 그 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발을 찌르는 볼펜, 심이 빠져버린 볼펜을 본 후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물건들을 상상하며 모으는 취미를 가졌다. 아마도 쓸모없는 물건들을 보며, 그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한 것이 아닐까. 자신을 구하다 목숨을 잃은 사내를 생각하며, 또 그에게 남겨진 만삭의 아내를 생각하며 그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자신의 존재를 비하하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는 어린 나이임에도 매우 사색적이었다. 물 묻은 바퀴를 굴리며 하나만 남은 바퀴가 왜 쓸쓸한가를 생각하고, 도살장으로 실려 가던 돼지가 도망가는 장면에도 격렬히 반응한다. 아마도 그 사내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가 무의식적으로 그에게 작용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는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중학생이 된 그는, 아버지에게 온 편지를 받게 된다. 그 사내의 아내, 만삭이었던 아내가 낳은 아이가 자라며 자기 집에 편지를 계속 보내오고 있었던 것이다. 해마다 편지를 받고 그는 그 편지의 주소로 무작정 떠난다. 자전거를 타며 엉덩이에 피가 날 정도로 힘들게 가서 아이를 만났지만 그는 그냥 돌아오고 만다. 집으로 돌아와 실종신고도 안 하냐는 물음에 가족들은 국수나 먹으라고 한다. 이 장면은 유머가 번득이면서도 슬픈 장면인 것 같다. 그는 그의 상처에 다가가려 노력하지만 아직 치유하지는 못한다.

세월이 흐른다. 작가는 짧은 문장 안에 긴 시간을 담고 있어 속도감 있게 사건이 전개된다. 따라서 이 소설은 짧은 분량이지만 굉장히 긴 이야기를 읽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세월이 흘러, 그는 열아홉의 생일날 밤 집을 나온다. 이어 우연히 어느 집의 정원사로 일하게 되고 7년 동안 마당의 정원에 아무 것도 자라지 않게 관리하는 일을 맡는다. 땅을 파고 흙을 파내고 이를 다시 쏟아 붓고, 땅을 파서 나무의 뿌리를 발견하고 뿌리를 뽑아 잘라내 태우는 등 어떻게 보면 이해하지 못할 행동들을 하는 그는 상처를 아마도 치유하는 중일 것이다. 꽃 그림, 개구리 그림, 우산 그림 등 아름다운 그림 타일을 담에 붙이고 그는 주인 여자에게 꽃다발이 새겨진 타일을 선물로 준다. 마당의 정원을 관리하면서 그의 마음까지 정리 된 것일까. 이제 그는 그의 상처를 치유한 듯 보인다. 아마도 상처를 지닌 듯해 보이는 주인 여자 또한 꽃다발 그림의 타일이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오래전에 잊었어야 했던 이름이 새겨진 문패’를 떼어냈다. 아마도 그녀에게는 그 이름의 주인공이 상처였나 보다.

그리고 그는 다시 옛날 아이를 만났던 곳으로 향했다. 벌써 열아홉 살 청년이 된 아이와 함께 그는 자연스럽게 오리배를 탄다.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지만 중요한 무언가를 공유하고 알고 있는 두 남자가 오리배를 타는 풍경은 매우 감각적으로 그려진다. 그러다가 그가 힘이 빠지자 청년은 오른손을 그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힘내세요.”라고 말하는 청년과 따뜻해지는 왼쪽 무릎. 그는 갑자기 잊고 있었던 수많은 장면들을 떠올린다. 그것은 가족들과의 무릎에 얽힌 추억이었다. ‘무릎’이란 가족애처럼 서로에게 베푸는 온정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식구가 많은 가족으로 인해 불편한 점도 많고 이를 짐처럼 여겼지만 그러한 식구들이 그에게는 커다란 힘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의 마음 속 상처가 치유된 순간, 그는 이를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청년과 어머니가 집을 옮겨 다니며 사는 상황과 대비된다. 청년의 가족은 경제적으로는 여유로웠지만 온정이 부족했다. 이를 느낀 그는 청년의 오른쪽 무릎 위에 자신의 왼손을 올려놓으며 “힘내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리고 쓸모없는 것들만 모아놓은 박물관에 대해 얘기하며 집에서 멀어져 간다.

이렇듯 이 소설은 시간이 흐르는 대로, 순차적으로 구성된다. 속도감 있는 전개와 함께 많은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압축적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그래서 소설은 흡입력을 지니고, 독자는 소설 속 사건의 흐름에 몸을 맡기게 된다. 또한, 이 소설은 ‘무릎’으로 상징되는 가족에 대한 혹은 타인에 대한 온정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를 구한 사내의 마음도 바로 온정이었을 것이다. 비록 그는 그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하고 그래서 온갖 쓸모없는 것들에 집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또한 소외된 것들에 대한 그의 온정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그는 집을 나와 정원을 관리하고 상처를 치유해간다. 주인집 여자에게 선물을 하며 온정을 베풀고 난 후, 이제 자신의 상처를 마주볼 수 있게 된 그는 아이에게 찾아간다. 청년이 된 아이와 그는 서로에게 온정을 베푼다. 그리고 그는 가족의 온정도 깨닫는다. 결국 이 소설의 바탕에는 온정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것을 보여주는 ‘무릎’이 제목인 것도 이해가 간다. 처음에는 이해하기 힘들고 이상한 소설이라고 생각했지만, 소설을 다 읽은 지금은 내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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