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궐>을 보관함에 담아두고도 작가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했는데 피니스아프리카에 신간으로 이치호 미치를 만나게 됐다. 굉장히 뒷맛이 안 좋았던 <네온테트라>,어느날 결혼한 누나가 친정에 돌아오고나서의, 겉모습은 좀 무섭지만 마음 착한 남매와 엄마에게 버림받고 학교에서도 외톨이인 소녀 세 사람의 따뜻한 이야기 <마왕의 귀환>, 글의 시작은 몽글몽글했는데 결말에 가서 땀이 싸악 식어버린 <피크닉>, 세상에 단둘이던 남매, 그 오빠를 잃은 여동생과 교도소에 있는 가해자가 편지를 주고받는 <하나우타>... 가해자를 비난하고 분노하는 여동생의 편지와 가해자의 사과 답장으로 시작되었으나 그것이 차츰 어떻게 서로를 구원하게 되었는지...이혼하고 혼자 아무 의욕없이 살아가던 고등학교 교사 신고에게 오랫동안 만나지못한 딸이 남자의 모습으로 찾아오는 <사랑의 적량>. 사랑에 있어 적절한 양이 어느만큼인지, 적당한 거리는 어느 정도인지 그게 항상 어려웠던 내가 가장 감정이입하며 읽었던.... 그리고 후배 부친의 장례식으로 만난 선후배의 이야기 <장례식>. BL소설을 썼던 작가의 전작이 이런 느낌일까 예상해보게 됐는데 읽다보니 <네온테트라>의 외전 느낌이기도 하다. 후배가 쇼이치?이혼한 아내와 장인의 기일법회로 만난 이야기 <작은 스파크>. 7가지의 이야기가 어찌보면 모두 제각각인데 공통점이라면 주로 가족 내의 이야기라는 것. 하나같이 작가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섬세한 감정선과 이야기마다 그 스몰 월드가 생활감이 있다고 할까 생생하게 펼쳐지는 느낌.작가가 풀어놓는 이 '스몰 월드'가 마음에 드셨길 바란다- 고 편집자의 말에 쓰셨는데, 아주 마음에 듭니다. 그래서 이젠 <창궐>을 사야겠어요.
책을 좋아하다보니 책에 관한 책도 좋아한다. 인쇄해서 책을 만드는 이야기도 물론 좋지만 한자한자 손으로 써서 책을 만드는 필사본의 시대가 배경인 이야기는 느껴지는 감동이 또 다르다. 이 책은 그렇게 힘들게 만든 책들을 짊어지고 다니며 빌려주는 세책상 센의 이야기이다. 센의 아버지는 책에 실릴 삽화의 목판을 조각하는 장인이었는데, 정치적인 서적과 관련되어 손가락을 부러뜨리는 벌을 받고 실의에 빠져 삶을 버리고 말았다. 그런 이유도 있고 해서 센은 사람들이 책을 통해 기쁨을 얻을 기회와 책을 지키기위해 위험을 무릅쓰게 되고 각종 사건에 휘말린다. 그게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여간 재미있는게 아니고 감동적이기도 하다는 것. 그 와중에 귀중한 책을 화재로 모두 잃기도 하지만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나 나간다. 그런 센의 활약과 성장을 계속해서 응원하며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니 김사장님, 열심히 팔고 다음 권도 꼭 내주세요^^어릴 때는 집에도 책이 많지 않아서 화장실에 있던 신문쪼가리고 어른들 잡지고 글이 있는건 닥치는대로 읽던 아이였는데(어른 잡지의 거시기한 내용도 이상하게 이해가 잘되서 국민학교 저학년에 이론적으로는 알걸 다 알아버린 ㅋㅋ) 친척집에 가서도 그 집의 책을 읽느라 밥상머리에서 숟가락을 든 채 책을 읽다 혼나곤 했는데, 아마도 읽을 책이 부족해서 그 갈급함이 더했던 것같고 필사본의 시대에는 그 한 권의 책이 얼마나 소중했을까 생각하게 된다. 책을 접하기가 너무나 쉬운 지금은 읽을 책이 항상 잔뜩 밀려있어 그 소중함을 잊고 있지는 않은지.
분노하고 질문하며 멈춰 애도하고 다시 전진하는 인물들"소름돋는 섬찟한 이야기도 있고 애달프고 슬픈 이야기,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기계들도 등장하고 인간과 식물이 결합된 존재들도 있다. 그 모든 이야기들은 모두 삶과 죽음과 투쟁과 생존, 애도에 관한 이야기이다. 정보라 작가의 서문은 그저 하루하루 정해진대로 살아가는 나의 잊고있던 수치심을 불러 일으킨다. 변명하자면, 하루하루 살아갈 뿐인 삶이라도 그것 자체가 투쟁의 연속이라고 말하겠다. 그렇다고 해서 부끄러움이 가시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