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살인자 쿠르트 발란데르 경감
헨닝 만켈 지음, 박진세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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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90년 1월 7일, 스웨덴 룬나르프에 있는 두 채의 농가.  각각 노부부가 살고 있는 그 곳에서 한 집의 남편이 잔인하게 살해당했고 부인은 의자에 묶인 채 목에 올가미가 걸려있는 빈사상태로 발견되고 이후 병원에서 숨을 거둔다.

살해당한 뢰브그렌은 말 그대로 "도살"당한 상태. 부검의 소견은 "피해자는 네다섯번 죽고도 남을 폭력에 희생되었다"

이웃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 부부에게는 딱히 돈도 없고 적도 없다는데 대체 이 폭력적인 살인의 이유는 무엇인가? 대체 누가?

사건을 맡은 위스타드경찰서의 쿠르트 발란데르 경감은 해결의 실마리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악전고투하고 감식을 맡은 뤼드베리는 뢰브그렌의 아내가 숨지기 전 반복해서 말한 "외국"이란 말과 특이한 올가미 매듭에 주목한다.  범인이 외국인일지 모른다는 정보는 스웨덴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난민들을 향한 인종차별주의자들의 폭력과 살인으로 이어지고 수사는 더욱 난항을 겪는다.

쿠르트 발란데르는 멋진 히어로와는 거리가 먼, 내가 볼 때는 찌질하기까지 한 사람이다.

아내는 이혼하겠다고 나갔고 딸은 가출을 반복하고 아버지는 치매증상을 보이고 아내와의 재결합을 원하면서도 유부녀인 여검사에게 끌린다.  꿈속에선 흑인여성과의 성적판타지를 꿈꾸고 술취한 채 운전하다가 동료 경찰에게 적발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그가 여전히 경찰일 수밖에 없는 것은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와 포기하지 않는 끈기라고 할까.

1990년대 경찰의 수사를 따라가는 것은 2021년의 독자에겐 조금은 버거울 수도 있다. 스마트폰도 없고 CCTV도 거의 없나? 유전자감식도 어렵고 경찰은 내내 발로 뛰고 전화통을 붙들고 실낱같은 가능성을 쫓는 지난한 과정을 거친다. 그걸 따라가다 보면 경찰들의 고충과 한계, 좌절감 등이 고스란히 느껴지고 오랜 인내 끝에 사건을 해결했을 때의 기쁨 또한 함께 하게 된다.


엄청나게 많이 읽은건 아니지만 북유럽소설들에서 엿보이는 "복지국가의 어두운 뒷면"을 여기서도 볼 수 있다. 밀려드는 난민들에 대한 문제. 인권존중의 측면에서 난민은 받아들여야 하는데 진정한 난민과 그저 기회를 잡으려는 사람들의 구분이 어렵고 많은 난민들을 관리하기 위한 인력도 부족하다. 그들 중 일부가 그 관리의 눈을 벗어나 저지르는 내국인에 대한 범죄 또한 큰 문제이고 외국인들이 내국인의 일자리를 차지한다는 반발도 만만치 않고 인종차별주의자, 인종혐오범죄에 노출되는 것도 막아야 한다. 우리 나라에서도 몇 년 전에 심각한 이슈가 됐던 기억이 있는데 어느 나라나 비슷한 딜레마를 안고 있는 것 같다. 발란데르는 이런 시대적인 변화와 딜레마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발란데르 형사를 만난 것, 헤닝 만켈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피니스아프리카에 덕분에 전혀 몰랐던 작가를 만난 것이 몇 번인가.  이번에도 만남은 성공적이었다. 또 다른 만남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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