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피싱
조진연 지음 / 북오션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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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한 리뷰 입니다>

조진연 작가의 『블랙피싱』은 최근 전 세계를 흔들어놓은 거대 피싱·스미싱 조직의 실체를 끈질기게 파고들며, 우리가 ‘뉴스로만 보던’ 디지털 범죄의 민낯을 충격적일 만큼 생생하게 드러낸다. 전 세계를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던 캄보디아를 거점으로 활동해온 범죄 집단의 대대적 검거는 이러한 위험한 일들이 소설속에만 존재하지 않고 실제로 존재한다는 점에 책을 읽는 긴장감을 늦출 수 없도록 만든다. 이 책은 그러한 범죄의 뒤편에 감춰져 있던 심리적·사회적 메커니즘을 적나라하게 풀어내며 단순한 사건 기록을 넘은 인간 탐구를 이뤄낸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범죄 조직 내부의 인간들이 결코 단순한 ‘악당’으로만 소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 속의 인물들은 돈이라는 맹목적 욕망, 조직의 강압, 스스로의 양심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일부는 자신이 저지르는 악행을 인지하며 괴로워하고, 일부는 이미 욕망의 기계에 완전히 포획되어 인간성이 소거된 채 ‘돈의 노예’로 전락한다. 이 잔혹한 구조 속에서 누군가는 사냥감이 되고, 또 누군가는 사냥꾼이 된다. 작가는 이 심리적 균열과 비극을 미화 없이 그려내면서도,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연약하고 또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예리하게 해석한다.

작품의 중심에는 한국지사 ‘장수식품’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던 한 피싱 콜 담당자가 있다. 그는 누구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도 ‘쥐꼬리만 한 인센티브’와 상관의 냉혹한 태도에 환멸을 느끼며 결국 내부 고발자로 전환한다. 조직을 경찰에 넘기며 일망타진을 이끌어낸 후에도 그는 끝내 멈추지 않는다. 중국 본사를 향한 역피싱, 즉 불법적으로 축적된 자금을 되돌려 빼앗기 위한 사적 투쟁이 이어지며, 소설은 한 개인이 조직의 괴물 같은 시스템과 맞서는 긴박한 서스펜스 구조를 완벽하게 만들어낸다.

이 과정은 단순한 복수극이 아닌, 인간이 거대한 악의 구조와 맞설 때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가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블랙피싱>이 특히 돋보이는 건 실제 범죄 수법과 조직 운영 방식을 면밀하게 재현하면서도, 독자가 디지털 범죄의 위협을 피부로 느끼게 만들 만큼 현실적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문자 몇 줄이 오고 가는 사기’ 정도로 가볍게 여겨지던 피싱의 세계가 실은 철저한 시스템, 무자비한 인력 구조, 그리고 인간 심리를 이용한 정교한 기술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소설은 단순히 재밌는 범죄 스릴러가 아니라,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디지털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를 정면에서 마주하게 하는 일종의 사회보고서이기도 하다.


 


 


 

읽는 내내 불편함과 긴장감이 공존하지만, 그 끝에는 이상하리만큼 묵직한 울림이 남는다. ‘악’이란 기계처럼 구조 속에서 생성되는 것인지, 아니면 인간 개개인의 선택으로부터 오는 것인지—이 책은 그 어느 것도 단정하지 않지만, 그 질문을 독자의 마음속에 강하게 새긴다.

디지털 범죄가 일상이 되어버린 시대, <블랙피싱>은 지금 우리가 반드시 읽어야 할 동시대적 작품이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이야기, 그리고 그 속에서 아직 꺼지지 않은 인간성의 불씨를 찾게 해주는 이 소설은 강렬하면서도 깊은 사유를 제공한다.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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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 혁신의 비밀 - 내부자가 파헤치는
딘 캐리그넌.조앤 가빈 지음, 이윤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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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한 리뷰 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 혁신의 비밀』

테크 산업의 흐름이 하루가 다르게 요동치는 시대, 반세기 동안 세계의 기술 지형도를 바꿔온 기업이 있다. 애플·구글·아마존 등 이른바 ‘매그니피선트 7’에 속한 기업 중 가장 긴 역사를 가진 마이크로소프트다. 1975년에 설립된 이 회사는 본래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출발했지만, 오늘날 우리는 일상 전부를 마이크로소프트 생태계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직장에서의 엑셀과 팀즈, 집에서의 Xbox, 심지어 우리가 사용하는 검색이나 클라우드 서비스까지 그들의 손을 거친다.


그렇다면 질문은 자연스럽게 이렇게 이어진다.

“어떻게 이토록 오래, 그리고 끊임없이 혁신을 이어올 수 있었는가?”

『마이크로소프트 혁신의 비밀』은 이 질문에 가장 가까이에서 답할 수 있는 두 사람이 쓴 책이다. 딘 캐리그넌과 조앤 가빈, 모두 지난 20여 년 동안 MS 내부에서 혁신 프로젝트를 직접 경험한 인물들이다. 그들은 혁신의 성공담만을 나열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떻게 실패했는가’를 정면에서 다룬다. 그리고 바로 그 실패가 어떻게 더 큰 혁신으로 이어졌는지를 차분히 보여준다.

가장 인상적인 예는 Xbox 초기 개발 이야기다. 게임 마니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만든 첫 제품은 처참히 실패했다. 많은 기업이 이 지점에서 혁신을 포기한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는 달랐다. 실패를 인정하고 방향을 통째로 돌렸다. 과감히 조직을 재편하고, 철저하게 사용자 중심으로 접근하며, 완전히 새로운 전략으로 시장에 다시 뛰어들었다. 그 결과는 모두가 아는 그대로다. Xbox는 글로벌 대표 게임 플랫폼이 되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게임 산업의 주요 플레이어로 자리 잡았다.


이 책의 가치는 단지 과거의 성공 사례를 복기하는 데 있지 않다.

저자들은 오피스, 빙, 비주얼 스튜디오 코드, MS 리서치, 코그니티브 서비스, 책임 있는 혁신 등 7가지 케이스를 통해 마이크로소프트가 어떤 방식으로 혁신을 실천해왔는지를 구체적으로 해부한다. 그리고 그 경험에서 추출한 ‘4가지 지속 가능한 혁신 패턴’을 제시함으로써, 독자가 자신의 조직이나 프로젝트에 적용할 수 있도록 현실적인 힌트를 제공한다.

이 책은 마이크로소프트라는 거대 기업의 비밀을 파헤치는 동시에, 혁신이란 결국 ‘특별한 영감’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찰, 실수에 대한 빠른 인정, 그리고 끊임없는 방향 수정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메시지—혁신의 가장 큰 적은 실패가 아니라 실패를 외면하는 태도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테크 산업에 관심 있는 독자뿐 아니라, 변화가 필요한 조직을 이끄는 리더, 어떤 영역에서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분명히 얻어갈 것이 있다. 기교 없이 담담하지만, 내부자만이 들려줄 수 있는 깊이를 갖춘 이 이야기는 ‘혁신’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반세기를 버텨온 기업의 혁신 비밀을 알고 싶은가? 이 책은 그 질문에 가장 정확한 답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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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로 가야겠다
도종환 지음 / 열림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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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한 리뷰 입니다>


도종환 시인의 신작 시집 『고요로 가야겠다』는 한동안 소식이 뜸했던 시인을 다시 만나는 반가운 인사처럼 다가온다. 『『접시꽃 당신』의 섬세한 감성으로 기억되던 그가 오랜 시간의 침잠 끝에 꺼내놓은 이번 시집은, 자연과 인간 내면을 잇는 그의 본래 음성이 한층 더 깊고 단단해진 모습으로 돌아왔음을 보여준다.


이 시집의 시편들은 대부분 자연에서 비롯된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나무, 꽃잎, 흐르는 물, 바람과 하늘 같은 익숙한 일상의 풍경들이 곧 시인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그러나 도종환의 자연은 강인함보다는 연약함을 먼저 드러낸다. 막 돋아난 새순,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처럼 여리고 가뿐한 이미지들이 반복해서 등장하는데, 이는 시인이 세상의 약한 존재들에게 보내는 깊은 애정의 표현이기도 하다.


시집은 2월로 시작하여 2월로 끝나며, 한 해의 순환이라는 시간의 원을 따라 흐른다. 첫 시편 <소원>은 혼탁한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다짐과도 같다. 정치적 격랑과 사회적 재난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외면하지 않아야 할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달라고 기도하는 시인의 모습은, 우리에게 균형과 중정을 잃지 말라는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탄핵 정국이라는 극한의 상황을 견뎌낸 이에게서 나온 시라 그런지, 그의 고요는 체념이 아닌 ‘버티어 끝내 도달한 침착함’에 가깝다.


표제시 <고요>는 시집 전체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고요는 감정을 밀어내는 냉랭함이 아니라, 휘몰아치는 감정의 비바람이 멎은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상자를 열어보게 하는 진실의 힘이다. 그 고요 앞에서 시인은 오래 묵혀둔 상처와 감정들을 조심스레 꺼내어 들여다본다. 이 책이 '머언 삶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이'처럼 정치판을 돌며 겪은 수많은 풍파를거쳐 이제는 고요히 돌아와 자신을 돌아보는 시들을 모은 것이라는 암시인 듯하다.


<밤이 온다>의 시편들은 외로움의 깊은 그림자를 담고 있다. “산다는 건 참 쓸쓸한 일”이라는 그의 고백은 개인의 슬픔이면서도, 누구나 한 번쯤 가닿는 삶의 어두운 순간을 정직하게 포착한다. 그러나 시인은 그 어둠을 영원한 것으로 남겨두지 않는다. <사과밭 주인>의 마지막 구절처럼, 결국 세상을 다시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랑’임을 보여준다. 사랑의 손길만이 상처 옆에 끝까지 서 있을 수 있다는 믿음이다.


『고요로 가야겠다』는 시인이 정치적 풍파를 지나 보내며 다시금 얻어낸 통찰의 기록이자, 더 깊어진 감성과 단단해진 인품이 배어 있는 귀한 시집이다. 시간이 흘러도 도종환은 여전히 아픔을 감싸 안고 연약함을 끝까지 지키려는 시인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이어간다. 이 시집은 우리가 잃어버린 마음의 속도를 되찾고, 한 번 더 숨을 고르게 해주는 ‘고요한 벗’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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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로 가야겠다
고요로 가야겠다
도종환2025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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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 세계 일주 옵빠야! 7
엘튼정 지음 / 지식과감성#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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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한 리뷰 입니다>


<죽어서 세계 일주> – 시가 아닌 메모, 감정의 흩어짐 속을 걷다


지식과감성 간에서 출간된 시집 <죽어서 세계 일주>는 제목만큼이나 도발적이다. 그러나 그 도발이 끝내 시적 울림으로 승화되지 못하고, 감정의 파편으로 흩어져 버린다는 점이 이 책의 한계다.

첫 장을 펼치면 ‘죽음’과 ‘욕망’, ‘육체’가 얽힌 문장들이 마치 낯선 일기장처럼 쏟아져 나온다. 표현은 솔직하고, 어떤 구절에서는 통제되지 않은 생의 진동이 느껴지지만, 그 솔직함이 시적 형식으로 응집되지 못한 채 흘러가 버린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시집’이라기보다는 ‘감정 메모집’에 가깝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선정성 또한 단순히 자극적인 묘사로만 소비되는 인상이 강하다. 성과 죽음을 병치한 시적 장치는 문학의 오래된 테마지만, 이 책에서는 사유의 깊이보다 노출의 강도가 앞서 있다. 육체의 이미지가 영혼의 비유로 승화되지 못하고, 오히려 감각적 충동의 나열로 남아 있다는 점은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던지는 감정의 원형에는 어떤 진실이 있다. 다만 그 진실이 ‘언어의 정제’를 거치지 못해 독자에게는 마치 낙서된 메모장을 엿보는 듯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감정의 생생함은 살아 있으나, 그것이 시로서의 구조나 음악성을 갖추지 못한 채 산만하게 흩어져 있다.


이 책은 시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작품이다. 시인이 아닌 한 개인의 감정 기록으로 본다면 솔직하고 직설적이다. 그러나 ‘시집’으로서 평가한다면, 감정의 응축과 언어의 형상화가 미완성에 머문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탐험하기에는 아직 언어가 충분히 단련되지 않은 것이다.

시가 감정의 배설이 아니라 사유의 결실이라면, 이 책은 아직 ‘여행 중’인 셈이다. 제목이 암시하듯, 죽어서 떠나는 세계 일주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지금은 다만, 떠나기 전 가방 위에 흩어진 낙서들만이 남아 있다.


#죽어서세계일주 #지식과감성 #엘튼정 #시집비평 #한국시비평 #감정의파편 #시의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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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대의 소년
카를 올스베르크 지음, 장혜경 옮김 / 모스그린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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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한 리뷰 입니다>


모스그린의 소설 〈무한대의 소년〉은 인간 존재의 본질과 사랑의 윤리를 깊이 탐구하는 작품이다. 겉으로는 과학기술과 인간 의식의 결합을 다룬 SF소설처럼 보이지만, 실은 죽음과 영생, 사랑과 집착, 믿음과 오해가 교차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주인공 마누엘과 그의 친누이 율리아의 시점이 번갈아 가면서 사건을 이어가는 형태의 소설이다.


주인공 마누엘은 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S)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청년이다. 몸이 서서히 움직이지 않게 되면서도 그는 자신이 사라진 후에도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한다. 그 순수한 열망은 곧 ‘영혼의 정보화’, 즉 인간의 정신을 디지털로 전환해 영생을 가능케 한다는 실험과 맞닿게 돤다.


율리아는 동생의 병에 대해 어떻게 하면 동생의 고통을 줄여줄수 있을지를늘 고민하면서 그 방법에 대해 서로다른 견해를 가진 부모간의 의견차를 줄이고 서로의 이해의 폭을 좁혀가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으며 한 때 이교도들에세 납치된 동생을 구출해 내는 트리거를 찾아 사건의ㅡ 대전환의 계기를 만든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영혼이 데이터로 옮겨져 영원히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것이 사랑의 연장이자 아들의 구원이라 생각한다. 반면 어머니는 영혼은 결코 복제되거나 저장될 수 없는 인간만의 신성한 영역이라고 믿으며 간절히 기도한다. 두 사람은 모두 마누엘의 행복을 바랐지만, 그를 바라보는 믿음의 방식이 달랐을 뿐이다.


배닝야스퍼스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인간욕망을 가상공간에서의 구현을 통해 막대한 부를 만들어낸 사업가이다. 마누엘을 이용해 사기성 '영혼의 영생'이라는 사업을 추진하지만 결국은 이루지 못하고 다른 사업으로 여전히 자본증식에 성공해 가는 이 시대의 거부이다.

과학이 생명을 연장할 수는 있지만, 인간의 존재 이유를 보존할 수는 없다는 것. 마누엘을 실험 대상으로 삼으려는 사기꾼 집단의 논리를 알게 된 뇌신경학자 베렘붐은 자신의 의학기술로 한 인간의 귀중한 생명이 헛되이 희생될 것임을 알리고 마지막으로 정의의 편에 서서 야스퍼스의 사기극 전말을 폭로하는 단초가 된다. 그는 인간의 의식이 결코 단순한 정보의 총합이 아님을 밝히며, 그들의 음모를 미수에 그치게 한다.


〈무한대의 소년〉은 기술이 인간의 생명과 영혼을 어디까지 대체할 수 있는가를 묻는 동시에, 진정한 인간성은 어디에 있는가를 성찰하게 한다. 죽음과 소멸의 공포 앞에서도, 사랑하는 이를 놓지 않으려는 인간의 마음은 얼마나 위대한가. 그리고 그 마음이 때로는 얼마나 위험할 수도 있는가.

이 소설은 독자에게 ‘무한대’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것은 결코 기술로 도달할 수 있는 영생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기억의 지속성이다. 작가는 과학과 윤리의 경계에서, 결국 인간을 지탱하는 것은 연민과 책임감이라는 사실을 조용하지만 강하게 전한다.


〈무한대의 소년〉은 미래의 이야기 같지만, 실은 지금의 우리를 비춘다.

죽음을 두려워하며 영생을 꿈꾸는 시대에, 작가는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영원히 남기고 싶은가 — 데이터인가, 사랑인가.”

이 질문이 오래도록 마음을 붙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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