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범죄 조직 내부의 인간들이 결코 단순한 ‘악당’으로만 소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 속의 인물들은 돈이라는 맹목적 욕망, 조직의 강압, 스스로의 양심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일부는 자신이 저지르는 악행을 인지하며 괴로워하고, 일부는 이미 욕망의 기계에 완전히 포획되어 인간성이 소거된 채 ‘돈의 노예’로 전락한다. 이 잔혹한 구조 속에서 누군가는 사냥감이 되고, 또 누군가는 사냥꾼이 된다. 작가는 이 심리적 균열과 비극을 미화 없이 그려내면서도,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연약하고 또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예리하게 해석한다.
작품의 중심에는 한국지사 ‘장수식품’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던 한 피싱 콜 담당자가 있다. 그는 누구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도 ‘쥐꼬리만 한 인센티브’와 상관의 냉혹한 태도에 환멸을 느끼며 결국 내부 고발자로 전환한다. 조직을 경찰에 넘기며 일망타진을 이끌어낸 후에도 그는 끝내 멈추지 않는다. 중국 본사를 향한 역피싱, 즉 불법적으로 축적된 자금을 되돌려 빼앗기 위한 사적 투쟁이 이어지며, 소설은 한 개인이 조직의 괴물 같은 시스템과 맞서는 긴박한 서스펜스 구조를 완벽하게 만들어낸다.
이 과정은 단순한 복수극이 아닌, 인간이 거대한 악의 구조와 맞설 때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가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블랙피싱>이 특히 돋보이는 건 실제 범죄 수법과 조직 운영 방식을 면밀하게 재현하면서도, 독자가 디지털 범죄의 위협을 피부로 느끼게 만들 만큼 현실적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문자 몇 줄이 오고 가는 사기’ 정도로 가볍게 여겨지던 피싱의 세계가 실은 철저한 시스템, 무자비한 인력 구조, 그리고 인간 심리를 이용한 정교한 기술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소설은 단순히 재밌는 범죄 스릴러가 아니라,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디지털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를 정면에서 마주하게 하는 일종의 사회보고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