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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 세계 일주 ㅣ 옵빠야! 7
엘튼정 지음 / 지식과감성# / 2025년 10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한 리뷰 입니다>
<죽어서 세계 일주> – 시가 아닌 메모, 감정의 흩어짐 속을 걷다
지식과감성 간에서 출간된 시집 <죽어서 세계 일주>는 제목만큼이나 도발적이다. 그러나 그 도발이 끝내 시적 울림으로 승화되지 못하고, 감정의 파편으로 흩어져 버린다는 점이 이 책의 한계다.
첫 장을 펼치면 ‘죽음’과 ‘욕망’, ‘육체’가 얽힌 문장들이 마치 낯선 일기장처럼 쏟아져 나온다. 표현은 솔직하고, 어떤 구절에서는 통제되지 않은 생의 진동이 느껴지지만, 그 솔직함이 시적 형식으로 응집되지 못한 채 흘러가 버린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시집’이라기보다는 ‘감정 메모집’에 가깝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선정성 또한 단순히 자극적인 묘사로만 소비되는 인상이 강하다. 성과 죽음을 병치한 시적 장치는 문학의 오래된 테마지만, 이 책에서는 사유의 깊이보다 노출의 강도가 앞서 있다. 육체의 이미지가 영혼의 비유로 승화되지 못하고, 오히려 감각적 충동의 나열로 남아 있다는 점은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던지는 감정의 원형에는 어떤 진실이 있다. 다만 그 진실이 ‘언어의 정제’를 거치지 못해 독자에게는 마치 낙서된 메모장을 엿보는 듯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감정의 생생함은 살아 있으나, 그것이 시로서의 구조나 음악성을 갖추지 못한 채 산만하게 흩어져 있다.
이 책은 시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작품이다. 시인이 아닌 한 개인의 감정 기록으로 본다면 솔직하고 직설적이다. 그러나 ‘시집’으로서 평가한다면, 감정의 응축과 언어의 형상화가 미완성에 머문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탐험하기에는 아직 언어가 충분히 단련되지 않은 것이다.
시가 감정의 배설이 아니라 사유의 결실이라면, 이 책은 아직 ‘여행 중’인 셈이다. 제목이 암시하듯, 죽어서 떠나는 세계 일주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지금은 다만, 떠나기 전 가방 위에 흩어진 낙서들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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