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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노동자 ㅣ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6
클레르 갈루아 지음, 오명숙 옮김 / 열림원 / 2025년 5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 입니다.>
클레르 갈루아는 1937년 파리 출생으로 제 2차 세계 대전의 한 복판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마리클레르, 엘르, 마리프랑스, 르피가로, 마리마치 등 유수의 잡지에 문학 비평을 집필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나의 유일한 욕망>,<양팔 가득 장미꽃을>,<흰 실로 수 놓는 소녀>,<예레미야의 밤>,<인생은 소설이 아니다>,<네개로 조각난 가슴>,<만약 사랑에 관해 이야기 하라면>,<위험한 시간등>이 있다.
빅토르와 라이오넬, 세베르가 동성연인인줄 알면서 크리스틴의 머릿속은 오로지 빅토르만이 사랑의 대상이었다. 소설의 시작은 병을 앓다 죽은 빅토르의 장례에 참석차 코르뒤레로 출발하면서 시작 된다. 역대 가장 많은 폭설이 내린 날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빅토르의 집에 도착한 크리스틴은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격렬한 포옹을 빅토르의 주검에 쏟아낸다. 그동안 연인으로 동거해온 라이오넬이나 세베로나 빅토르의 부모조차도 망설인 행동을 영원한 작별을 아파하며 표출한 것이다. 크리스틴의 빅토르에 대한 사랑은 어떠한 보상도 배제한 일방적인 사랑, 영적인 사랑이었던 것일까?
작가는 이러한 구체적인 묘사를 통해 인물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고 그들이 겪는 갈등과 감정을 독자에게 더욱 설득력 있게 전달하려 했을 것이다.
"드라마 연출은 사절이야. 눈물도 안되고. 나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떠드는 것도 안돼. 크리스틴만 나하고 동행하는거야. 너희둘하고 우리 부모님, 호기심 때문에 돌아가지 않고 남아 있는 하객들은 기차를 타고 따라오도록 해" 살아 있을 때 빅토르는 유언처럼 다짐해둔 이 말이 크리스틴의 가슴을 영원히 매이도록 해버린 것이다.
클레르 갈루아의 소설 <육체노동자>는 1970년대를 배경으로, 당시 사회에서 쉽게 드러내기 어려웠던 다양한 인간 관계와 그 속에서 인물들이 겪는 내면의 복잡한 갈등 및 욕망을 섬세하게 그려낸 수작이다. 발표된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독자들에게 선사하는 강렬한 울림은 여전히 유효하며,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를 보여준다. 작가는 단순히 남녀 간의 관계를 넘어 동성 간의 사랑, 그리고 여러 인물이 복잡하게 얽힌 다자간의 애정 전선까지 솔직하고 거침없이 다루었다. 이러한 관계의 다층적인 묘사는 인간의 욕망과 감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지를 생생하게 드러내며, 독자로 하여금 사랑과 관계의 본질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진다. 글의 전개가 하루라는 시간안에 10년간의 다양한 시간과 장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무작위로 다룬 관계로 전후관계나 스토리의 전개가 잘 연결되지 않는 난해함이 있어 다소 혼란스럽지만 책을 다 읽고나서 가슴속 저 밑바닥에서 치미는 감동을 묵직하게 맛볼 수 있다는 게 이 책을 읽는 묘미다.
소설은 겉으로 보기에 '난잡해 보일 수 있는' 관계들 속에서도 인물들이 겪는 내면적 고뇌, 관계 속에서의 충돌, 그리고 보수적인 사회적 시선과의 마찰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방황, 금기된 욕망으로 인한 죄책감, 사랑과 질투, 소유욕 등이 뒤섞인 복합적인 감정의 소용돌이, 그리고 사회적 규범에 맞서며 느끼는 고립감 등이 인물들의 삶을 관통하는 주요 갈등 양상으로 나타난다. 특히 주인공 크리스틴의 시점에서 연모의 대상인 빅토르, 동성애자인 세베르, 라이오넬, 크리스틴에게 매달리는 아쉴 등 다양한 배경과 관계를 가진 인물들과 얽히며 겪는 이야기는, 작가가 인간 관계의 다층성과 주인공의 내면 성장 과정을 심도 있게 탐구하려는 의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
클레르 갈루아는 이러한 복잡한 관계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 속에서도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선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며 인간 본연의 나약함과 동시에 강렬하게 발현되는 욕망을 그렸다. 소설 속 인물들은 완벽하지 않으며 때로는 이기적이거나 어리석은 선택을 하기도 하지만, 작가는 그들의 그러한 모습조차 인간 본연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복잡한 관계 속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지난한 과정을 밟도록 유도하였다. 시대적 제약 속에서 관계에 대한 보수적인 시선에 용감하게 도전하며, 사랑의 형태는 다양할 수 있으며 인간의 감정은 사회적 규범으로 쉽게 재단할 수 없음을 강력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오늘날의 관점에서 다소 시대착오적인 시선이나 표현일일 수도 있으나, 그 시대에 이토록 솔직하고 대담하게 인간 관계의 복잡성을 탐구했다는 점 자체만으로도 <육체노동자>는 문학사적 의미가 매우 크다. 성소수자나 인간 관계에 대한 편향된 신념에서 벗어나 좀더 유연한 사고를 원한다면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