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한 리뷰 입니다>
도종환 시인의 신작 시집 『고요로 가야겠다』는 한동안 소식이 뜸했던 시인을 다시 만나는 반가운 인사처럼 다가온다. 『『접시꽃 당신』의 섬세한 감성으로 기억되던 그가 오랜 시간의 침잠 끝에 꺼내놓은 이번 시집은, 자연과 인간 내면을 잇는 그의 본래 음성이 한층 더 깊고 단단해진 모습으로 돌아왔음을 보여준다.
이 시집의 시편들은 대부분 자연에서 비롯된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나무, 꽃잎, 흐르는 물, 바람과 하늘 같은 익숙한 일상의 풍경들이 곧 시인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그러나 도종환의 자연은 강인함보다는 연약함을 먼저 드러낸다. 막 돋아난 새순,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처럼 여리고 가뿐한 이미지들이 반복해서 등장하는데, 이는 시인이 세상의 약한 존재들에게 보내는 깊은 애정의 표현이기도 하다.
시집은 2월로 시작하여 2월로 끝나며, 한 해의 순환이라는 시간의 원을 따라 흐른다. 첫 시편 <소원>은 혼탁한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다짐과도 같다. 정치적 격랑과 사회적 재난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외면하지 않아야 할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달라고 기도하는 시인의 모습은, 우리에게 균형과 중정을 잃지 말라는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탄핵 정국이라는 극한의 상황을 견뎌낸 이에게서 나온 시라 그런지, 그의 고요는 체념이 아닌 ‘버티어 끝내 도달한 침착함’에 가깝다.
표제시 <고요>는 시집 전체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고요는 감정을 밀어내는 냉랭함이 아니라, 휘몰아치는 감정의 비바람이 멎은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상자를 열어보게 하는 진실의 힘이다. 그 고요 앞에서 시인은 오래 묵혀둔 상처와 감정들을 조심스레 꺼내어 들여다본다. 이 책이 '머언 삶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이'처럼 정치판을 돌며 겪은 수많은 풍파를거쳐 이제는 고요히 돌아와 자신을 돌아보는 시들을 모은 것이라는 암시인 듯하다.
<밤이 온다>의 시편들은 외로움의 깊은 그림자를 담고 있다. “산다는 건 참 쓸쓸한 일”이라는 그의 고백은 개인의 슬픔이면서도, 누구나 한 번쯤 가닿는 삶의 어두운 순간을 정직하게 포착한다. 그러나 시인은 그 어둠을 영원한 것으로 남겨두지 않는다. <사과밭 주인>의 마지막 구절처럼, 결국 세상을 다시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랑’임을 보여준다. 사랑의 손길만이 상처 옆에 끝까지 서 있을 수 있다는 믿음이다.
『고요로 가야겠다』는 시인이 정치적 풍파를 지나 보내며 다시금 얻어낸 통찰의 기록이자, 더 깊어진 감성과 단단해진 인품이 배어 있는 귀한 시집이다. 시간이 흘러도 도종환은 여전히 아픔을 감싸 안고 연약함을 끝까지 지키려는 시인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이어간다. 이 시집은 우리가 잃어버린 마음의 속도를 되찾고, 한 번 더 숨을 고르게 해주는 ‘고요한 벗’ 같은 책이다.
#고요로가야겠다 #도종환 #도종환시집 #한국시 #시추천 #서정시 #열림원 #시인의말 #신작시집 #책추천 #독서기록 #문학의힘 #시읽는밤 #한국문학 #산문시 #감성시 #책서평 #일상과문학 #고요의힘 #북유럽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