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궁 홍씨 설움의 일기 - 비련의 사도세자빈
한준 지음 / 기사임당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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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임당의 여류위인 4권중 마지막권이다.

저자들이 특이하게도 역사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아니고 21세기 춘추역사연구회소속이라는 점들이 눈에 띄었다.

 

다분히 혜경궁 홍씨의 입장에서 서술한듯한 느낌이 들었고, 한중록을 많이 참고한듯한 느낌도 들었다.

 

책에서도 밝켰듯이  한중록은  혜경궁홍씨일가를 두둔하는듯한 글들이 있었고 그것은 후세에도 회자되었던 논란거리였다.

 

그러나 남편을 비명횡사시키면서 자식을 등극시켜려는 어머니의 모정은 상상할 수없을정도 였고 그점이 분명히 정조로 하여금  효심이  우러러 나오게 만든것일 수도 있다.

 

영조와 더불어 조선시대에 80이상의 천수를 누린것도 특이할 만한 사항이다.

 

사도세자가 광인이냐,아니냐, 논란거리는 많지만  그것은 역사에 묻어둘 수 밖에 없고 글자그대로 혜경궁 홍씨의 설움의 일기가 잘 묻어나와 있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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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 예술의 향기 - 화폭에 담은 천재 여류화가
유비자 지음 / 기사임당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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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신사임당은 본명이 아니고 아호이다.

원래 본명은 신인선이다.

 

사임당의 아호 뜻은 평소 그녀가 존경해 마지 않았던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인 태임을 받들겠다는 뜻으로 사임당이라는 호를 지었다.

 

어려서 부터 총명하여 5딸중 가장 사랑받는 딸이 되었고 19세에 이원수에게 시집가고 그이듬해 부친을 여의고  홀로남은 홀어머니를 끔찍히도 받들고 살았다.

후에 사임당이 낳은 7남매 모두 어머니의 성정을 닮아  효심이 지극하고 예술에 조예가 깊었으며, 학문에도 상당한 성과를 이루게 된다.

 

사임당 역시 어릴적에 아버지를 통하여  학문을 배우고 성인이되어서는 남편인 이원수와 자유롭게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할 수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물론 이토론에서 언제나 사임당이 앞서나가거나 남편을 설득하는 쪽이었을 만큼 조예가 깊었다.

 

안견의 그림을 독학하여 수묵화를 그렸고, 숙종임금은 사임당의 그림을 도화원에 명하여 필화하여 왕궁에 두고 감상을 하였을 정도였다고 한다.

 

5만원권 지폐의 초상이기도 한 사임당에 대하여 21세기 여성회에서 반대를 하며 유관순으로 하자는 주장도 제기 되었지만, 현재까지 5만원권 지폐의 초상으로 현존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3천번이나 언급되는 송시열은  이이의 모친인 신사임당을 극찬하며 자신의 문집에 소상히 소개를 했을 정도이며, 조선시대 많은 선비들의 존경과 찬사를 받았다.

 

특히 그예술적 경지 시,서화는 여성들에게 찬사가 인색했던 조선시대에 유일무이한 존재라고 하겠다.

 

신사임당의 태교가 상당히 인상깊었고, 그래서 이이같은 대학자가 탄생되었다는 점에 절로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48세에 사망하기까지 개인적으로는 순탄지 않은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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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 명시의 일기 - 허공에 핀 꽃 물 속에 잠긴 달
유비자 지음 / 기사임당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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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  국사를 배우면서 몇줄로 기재된것이 궁금해서 우연히 책을 접하게 되고 읽게 되었다.

 

동인이었던 관찰사 출신 초당 허엽의 딸로 출생하여 위로 대사성을 지낸 이복오빠둘과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을 동복동생을 두었다.

 

난설헌의 본명은 초희이고 호가 난설헌이다.

 

조선시대 호를 둔 여성은 거의 없었지만,  시를 짓기 좋아하고 호탕한 난설헌은 스스로 호를 짓고

그녀의 사후  허균이 제작한 허난설헌이라는 문집이 중국에 전해지고 알려지면서 중국인 식자들층에서 유행하며  허난설헌의 시를 비평하는 문집의 출간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이울러 일본에 까지  출간되어  널리 알려졌다.

 

여기까지가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삼국시대부터 성년이 되면  이름되신 자라는 성년이름을 짓고 부르는 것이 유행이였고  호는 아명이라 하여 본명보다는 호라는 아명이 조선시대에 널리 유행하였다.

 

지금은 유명한 강릉 초당두부는 허난설헌의 부친인 초당 허엽이 강릉부사 재직시절에 두부제조를 하면서 처음으로 바닷물을 사용해 두부를 응고시키는 이른바 간수비법을 개발하여 지금까지도 그의 호를 따서 초당두부라고 불리우고 있다.

 

이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난설헌의  한시를 읽고 있으면  정말  그 감수성이 예민하고, 천재적인 면모를 볼 수 있다.

 

다만 그천재성이  27살에 요절함으로 참으로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기전에 자신의 시를 다불태우라고 해서 천여편의 시가 존재하지 않고 사라진것이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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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 눈물의 일기 - 영혼으로 돌아온 비운의 황녀
정지현 지음 / 기사임당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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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의 기억된다.

영화로 제작되어 많은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덕혜옹주

 

많은부분들이 각색되어  역사왜곡이니 하는 말들이 실제 많았다.

덕혜옹주가 일본에 있는동안 조선인들을 격려하거나 독립운동에 가담한 적은 없다.

 

덕혜옹주의 실체를 연구한 사람은 한국사람이 아니라 일본문학을 전공한 혼마 야스코라는 여성사 연구가가 일본에서의 삶부터 그궤적을 추적하여  자료를 남김으로서  조명받게 되었고 국내에서 발행한 덕혜옹주의 대부분의 서적들도 상당수  혼마 야스코의 책을 바탕으로  저술되었다.

 

이책을 집필한 정지현이라는 글쓴이도 역사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고 의사이다.

21세기 춘주 역사 연구회라는 동호회소속으로 이동호회 활동속에 저술된 책이다

 

다만 낙성대연구회에라는 괴물집단에 경기를 일으킬만큼  싫어하는 나로서 춘추라는 말도 썩달갑지 않았다.

 

일문잡지중 춘추문예라는 잡지가 있는데. 이책을 다읽기 전까지는 그런 오해를 하기도 하였다.

 

비극적 삶을 살아간 덕혜옹주의 삶은  많은 연민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역사속에 나라를 잃고 나면 남는 결과가 어떤것인지를 다시한번 깨달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친일한자들의 단죄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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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의 국가와 역사
시오노 나나미 지음, 오화정 옮김 / 혼미디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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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아마도  리더의 2편으로 생각될만큼 국가의 경영을 잘 수행한 로마의 황제와  이책을 집필하는 일본의 문제와  리더부재를 꼬집기 위해 쓴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숨어있는데  저자가 이탈리아에서 체류하는 관계로 언젠가 이탈리아시사방송에서  소위말하는 이태리명품  알마니,프라다등의 하청제작을 하는곳이 중국불법체류자들을 고용하여  적은인건비를 들여 만들어 내는것을 고발프로그램으로 보여주었는데, 그런제퓸을  고가에 책정하여 그것을 열광하며 구매하는 일본소비자들을 꼬집는 대목이 있는데 왜거기서 우리나라와 너무나도 닯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태리장인의 한땀한땀의 정신으로 만들어진것이 아니라 그제품들은 지하창고나, 주차장에서 불법중국체류자에 의해 생산된제뭄을 팔았다.

 

지금은 중국에 생산공장을 만들어 아예 메이드인 차이나로 생산되는 제품들이 많으니 아마도 브랜드값이라고 불 수 있겠다.

 

이야기가 곁가지로 잠시 흘렀다.

 

이책을 읽으면서 깨달은점  로마의 리더들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철저히 지켰다.

사망전 모든재산을 사회에 헌납하고 자신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는 대목에서 새삼

다시한번 우리와 비교되는 대목이라고 느꼈다.

 

저자의 다른책도 계속해서 읽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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