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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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연히 읽게 된 이 책은, 한 마디로 참 잔인하다. 모든 사람 눈을 갑자기 멀게 해버렸다는 설정뿐아니라 그 뒤로 벌어지는 사건들 역시 그렇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를 수 있는 이유는 이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많은 철학자들이 그렇게 말해왔고, 우리 스스로가 그렇게 인정해왔던 사실이 이 책에서는 가볍게 뒤집힌다. 빵 한조각을 위해서 강간을 참아내야 하며, 폭력을 휘두르며 눈 먼자들의 식량을 강탈하는 비열함이나 무차별적인 살인. 이렇게 까지 지저분하고 악할 수 있을까? 내가 눈이 멀어도 그럴까?

난 그렇지 않으리라는 굳은 생각속으로 몇 가지 사실들이 떠오른다. 우리 사회에서 살인이나 폭력은 눈 먼자들이 저지르는 일인가? 돈때문에 부모를 죽이고 자식을 버리는 일이 우리 역사속에서 사라진 적이 있던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이상해 질 것이다. 눈 먼 자들, 의지할 것이라고는 칼날처럼 남은 본능의 예리함과 살기 위한 끈질긴 집념의 그들에게 보여지는 모습과 우리 사회 모습이 오버랩된다는 점은 말이다.

이 책은 감성어린 말이나, 풍부한 지식이나 유쾌한 사건들은 없다. 하지만, 더러운 몸을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씻어내리는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과정은 될 것이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다움이란 것이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 되는지 사회를 파괴하는 힘이 되는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멀어버린 눈으로 세상을 살아가야한다면 이라는 소름이 돋을정도로 끔찍한 상상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내내 그 두려움을 증폭시킨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읽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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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 학원신서 4
칼 세이건 지음, 서광운 옮김 / 학원사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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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주를 생각하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너무나도 작게 느껴졌다. 우주의 그 수많은 은하들 가운데 하나, 그 은하 중에서도 구석진 곳에 자리잡고 있는 태양계. 그 주위를 돌고 있는 지구 위의 작은 생명체, 하지만 칼세이건은 그렇기 때문에 더 위대한 한 사람 한 사람이라고 말을 한다. 이 광대한 우주와 무한의 시간 가운데 함께 있는 내 옆의 생명체에게 감사하다고. 이 책을 읽고 난 우주를 생각하면 지구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아직까지 유일한 지적생명체인 우리가 더 위대하게 느껴진다.

우스갯소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하늘만 바라보며 지내던 천문학자가 밑을 보지 않고 다니다가 구덩이에 빠졌다는 이야기. 천문학자가 하늘만 바라보고 다닌다면 일반 사람들은 자기 주위만을 보고 다닌다. 늘 거기에 있는 태양과 달과 별에 대해 그리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에 우리가 전혀 가보지 못하고 알지 못한 어딘가에 놓여져 있다면 우리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하려 지표가 되는 무언가를 찾을 것이다. 사람들이 지구 위에서 자신이 어디 있는가를 알기 위해 주위를 보듯, 옛 항해사들이 별자리를 보듯, 천문학자들은 우주적인 존재로서 우리가, 지구가 어디에 있는가를 궁금해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단지 천문학자들만의 호기심일까?

밤하늘에 별자리를 바라보고 있으면(찾을 수 있는 것이라곤 오리온자리와 북두칠성, 카시오페아가 전부인 지극히 평범한 나이지만) 우주와 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가끔씩 생각하는 것이지만 한 번 생각을 하면 책을 뒤지고 인터넷을 뒤지게 될 정도로 빠지게 된다. 고등학교 때 콘택트라는 영화가 개봉을 했었다. 조디포스터가 좋아 보게 된 그 영화는 나에게 '칼 세이건'이라는 이름을 알게 해주었다. 서점을 돌아다니며 그가 쓴 코스모스를 찾았을 때 그 두께에 기가 질렸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가 자기가 알고 있는 위대한 것들을 얼마나 우리에게 알리고 싶어했는지를 느낄 수 있는 두께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주를 생각할 수 있었고, 그 속에 존재하는 나를 생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우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변화와 현상에 대해서 지식적인 측면에서 무언가를 알게 되었다는 것보다는 그것들을 통해 내가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이제 하늘을 바라보면 좀 더 깊이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주적인 존재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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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말걸기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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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걷다 보면 하루에도 몇 백명은 모르는 사람들이 지나간다. 어떤 날은 이렇게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이상한 기분이 들 정도로 신기할 때가 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들도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것처럼 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그 기묘함은 더욱더 커진다.

이 책은 그 기묘함이 현실감으로 다가올 수 있게 해준 책이다. 금방 인사를 나누고서 돌아서면 잊어버릴 것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몇 백명의 사람들 틈에서는 그존재감조차 신기한 사람들이 그 사람 한 사람만을 바라보면, 그 삶이란 것이 굉장히 깊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렇기때문에 냉소적이고 독설적인 말투에서도 한 가지만은 뚜렷하게 보이는데 그것은 '진지함'이다. 그리고, 처음장부터 마지막장까지 그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인물들을 이해하고 싶어지는 마음이다.

가끔은 답답한 주인공의 행동과 도덕적인 가치관에 맞지 않는 생각들을 대하기도 한다. 내가 그였다면, 내가 그녀였다면.. 하고의 만약의 상황이 생각나기도 한다. 결혼한 사람의 불륜상대가 되어 그 비참함을 맛보지도 않을 것이고, 자신의 외로움을 일기장만으로 달래야하는 건조한 결혼생활도 하지 않을텐데 말이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내가 그들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어차피 불가능한 것이다. 그것이 조금은 슬프긴 해도 말이다. 삶이 완전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삶이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그랬던것 처럼 말이다. 아무렇게나 살지 않아야 겠다는 마음만으로도 그 진지함은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사는 것일까? 이 생각만으로 그들에 대한 이해가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사랑과 증오, 삶과 죽음 - 우리 인생에서 모든 것이라고 이야기해도 좋을만큼의 이 커다란 이야기들을 이 책은 일상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물론 그 일상적이라는 말이 진부하고 지루하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언제나 그렇듯이 그녀의 말투에 재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하루꼬박 이 책을 읽었다. 눈이 아프고 흐릿해지는 글자가 생기면 잠시 책을 덮었다를 반복하면서, 그렇지만 서두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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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가형 옮김 / 해문출판사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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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코난 도일의 홈즈 시리즈를 너무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그런데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 읽는 것이었다. 홈즈 시리즈는 사건이 발생하고, 와트슨과 홈즈가 사건을 풀어가는 것이었는데,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사건의 시작부터 독자가 지켜볼 수 있다. 사건의 전모를 같이 볼 수 있기 때문에 범인을 잘 찾을 수도 있고, 탐정의 눈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만 범인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에 더 어려울 수도 있는 소설이었다. 열명의 인디언에 대한 동요가 나오는 순간부터 소설은 흥미로워 진다.

인디언 섬에 갇힌 10명의 사람들, 그리고 차례로 다가오는 죽음. 범인은 10명 중에 한 명이다.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말고 범인을 찾아 보길 바란다. 단서는 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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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금이 있던 자리
신경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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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의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라는 소설에 이런 말이 나온다.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비련이지, 뭐.'

그 말처럼 세상에는 불륜을 미화해서 진정한 사랑이었네,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네, 하는 이야기들이 널리고 널렸다. 그런데 이 소설은 사랑을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 그냥 그녀의 편지를 통해 느껴지는 그녀의 잔잔한 기억들을 편안하게 읽게 된다. 그녀에게 왔던 아버지의 첩, 향긋한 냄새가 나고, 얼굴이 하얀 동경의 대상에 대해 자신이 생각했던 것들.. 그리고 현재 자신의 모습.

봄이 시작되는 어귀에서 시작된 그녀의 생각은 산이 푸릇해질 쯤이면 어려운 결정을 하며, 성숙해진다. 신경숙의 애잔한 표현들이 읽고 난 후에 기분을 묘하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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