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말걸기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거리를 걷다 보면 하루에도 몇 백명은 모르는 사람들이 지나간다. 어떤 날은 이렇게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이상한 기분이 들 정도로 신기할 때가 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들도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것처럼 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그 기묘함은 더욱더 커진다.

이 책은 그 기묘함이 현실감으로 다가올 수 있게 해준 책이다. 금방 인사를 나누고서 돌아서면 잊어버릴 것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몇 백명의 사람들 틈에서는 그존재감조차 신기한 사람들이 그 사람 한 사람만을 바라보면, 그 삶이란 것이 굉장히 깊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렇기때문에 냉소적이고 독설적인 말투에서도 한 가지만은 뚜렷하게 보이는데 그것은 '진지함'이다. 그리고, 처음장부터 마지막장까지 그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인물들을 이해하고 싶어지는 마음이다.

가끔은 답답한 주인공의 행동과 도덕적인 가치관에 맞지 않는 생각들을 대하기도 한다. 내가 그였다면, 내가 그녀였다면.. 하고의 만약의 상황이 생각나기도 한다. 결혼한 사람의 불륜상대가 되어 그 비참함을 맛보지도 않을 것이고, 자신의 외로움을 일기장만으로 달래야하는 건조한 결혼생활도 하지 않을텐데 말이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내가 그들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어차피 불가능한 것이다. 그것이 조금은 슬프긴 해도 말이다. 삶이 완전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삶이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그랬던것 처럼 말이다. 아무렇게나 살지 않아야 겠다는 마음만으로도 그 진지함은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사는 것일까? 이 생각만으로 그들에 대한 이해가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사랑과 증오, 삶과 죽음 - 우리 인생에서 모든 것이라고 이야기해도 좋을만큼의 이 커다란 이야기들을 이 책은 일상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물론 그 일상적이라는 말이 진부하고 지루하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언제나 그렇듯이 그녀의 말투에 재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하루꼬박 이 책을 읽었다. 눈이 아프고 흐릿해지는 글자가 생기면 잠시 책을 덮었다를 반복하면서, 그렇지만 서두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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